# 67
67화. 영웅은 칭송 받는다 (2)
가슴팍이 쩍 벌어지고, 놈의 심장이 튀어나왔다.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심장이 손바닥 위에서 펄떡인다.
감탄을 터트렸다. 낫이 엄청나게 잘 든다.
“좋은 낫이다!”
“방금 그건? 너 내 권능을 어찌… 멈춰라!”
아누비스가 무어라 소리쳤지만, 나는 무시했다.
절그럭, 절그럭! 그가 마구 발버둥 치며 외쳤다.
“재판은 중단될 수 없다! 그러니……!”
그것참 잘됐군.
어차피 중간에 멈추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천칭에 아누비스의 심장을 올렸다.
끼이익.
천칭이 기운다.
“크르릉……! 대체 무슨 짓을!”
“네놈이 한 짓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만, 문제라도 있나?”
“신계 연맹의 처벌이 두렵지 않은가!”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개소리! 신계 연맹이 처벌한다면 네놈을 처벌하겠지! 신들을 바보로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날 바보로 생각하는 건가? 응?”
따져 묻자, 아누비스가 입을 다물었다.
놈이 내뱉은 기괴한 이름의 신들을 떠올려 보면 확실하다.
이놈은 아스가르드 소속이 아닌 다른 신계에 속한 놈.
이 개가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런 짓을 벌였는지 모르겠지만, 책임은 분명 아누비스와 아누비스의 신계에 있다.
“어쨌든, 이제는 질문할 차롄가? 재판은 처음이라 진행이 서툴러도 양해해라.”
개 심장은 깃털보다 좀 더 무거웠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한 채다. 아누비스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위협적이진 않다.
저 사슬에 묶여 본 경험이 오히려 내 마음을 안심시켰다. 사슬은 엄청나게 튼튼했으니까.
나는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아누비스가 그랬던 것처럼,
“너는 무고한 자를 괴롭혔는가?”
노골적인 질문이었다.
아누비스는 으르렁거리던 소리도 멈추고 입을 꾹 다물었다. 적의에 가득 찬 시선에 등골이 오싹거렸다.
나는 슬쩍 시선을 피해 천칭을 바라보았다.
끼익.
천칭이 기울었다.
“오! 정말 대단한 물건이군!”
감탄을 토했다. 대답하지 않아도 천칭은 알고 있었다.
아누비스의 심장이 바닥과 가까워졌다.
까득- 놈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계속해서 질문했다.
“너는 불의에서 고개를 돌렸는가?”
“너는 타인의 영역을 침범했는가?”
질문이 던져질 때마다 천칭이 한쪽으로 기운다.
아누비스는 사슬을 끊기 위해 끙끙- 힘을 쓰고 있었다.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이미 천칭은 기울 대로 기울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너는 나의 적인가?”
그에 아누비스가 버럭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도대체 어느 신계의 법이 그따위로 죄를 매긴단 말인가! 그런 엉터리 법은 들어본 적도 없다!”
법에 대해서 잘 안다는 듯 컹컹 짖어 놓고, 이제 와서 모른다?
허튼소리. 이건 아주 당연한 법이다.
“이건 전사의 법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누비스가 입을 쩍 벌리고 경악했다.
나는 빈정대며 천칭을 가리켰다.
“글쎄, 천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군.”
끼이익- 천칭이 1자를 그렸다. 아까 나와는 정반대였다.
아누비스의 심장이 바닥에 난 구멍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린다.
깊은 구멍 속에서는 크릉크릉- 입맛을 다시는 괴물의 소리가 울려왔다.
아누비스가 눈을 부릅떴다.
“아, 안 돼!”
아누비스가 고함질렀지만, 천칭에는 자비가 없었다.
끽, 저울이 기울고 심장이 흐른다.
“재판은 끝났군.”
“빌어먹을! 빌어먹을 족쇄! 크르르릉!”
절그럭절그럭!
아누비스의 발버둥에 사슬이 요동쳤다.
백날 그래 봐라, 그 튼튼한 놈이 끊어지나.
피식 웃으며 한마디 던지려 할 때,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들려왔다.
쿠드드드득! 뚜둑!
“…허!”
헛숨을 토했다.
사슬, 아니 죄인을 옭아매는 권능이 저 개 머리의 힘에 파르르 떨었다.
투둑, 투두둑!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크어어엉!”
쩡!
마침내 사슬이 박살 났다.
혀를 내둘렀다. 내가 전력을 다해도 꿈쩍도 하지 않던 사슬이 저렇게 박살 난다고? 놈의 반쯤 녹은 몸에서는 핏물이 주르륵 흘렀다.
제 상태도 아니거늘, 사슬을 부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크앙!”
아누비스가 울부짖으며 달렸다.
“내 심장!”
놈은 구멍으로 떨어지는 심장을 잡아채려 뛰었다.
늦다. 하지만 아누비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쾅!
바닥을 박차며 온몸을 던졌다. 구멍에 빠지기 직전, 손을 쭉 내뱉었다.
아누비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 광경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저 괴물 같은 개와 싸워야 하는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쩍 벌어진 아가리가 솟구쳤다.
“크어어어엉!”
콰드득!
“끄아아아아아악!”
팔이 씹힌 아누비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심장을 먹기 위해 뛰어오른 괴물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저런 끔찍한 괴물은 들어본 적도 없다.
아누비스가 소리쳤다.
“암무트! 이 멍청한 놈! 감히 네가 영혼을 인도하는 날 무느냐!”
아누비스가 팔을 빼내려 몸을 뒤흔들었고, 쿵쿵쿵- 벽에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다.
그럼에도 암무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우습게 볼 놈들이 아니었군.”
적어도 지금 상태로는 놈들과 싸울 수 없다. 화상을 입은 듯한 화끈거리는 고통이 여전하다.
어떻게든 여기에서 빠져나가야 하거늘…….
“아.”
손에 쥔 낫을 보았다.
내가 이곳에 올 때 통과한 검은 문. 그리고 아누비스의 가슴을 가를 때 느낀 그 감각.
이 물건에 서린 힘이라면…….
“열려라!”
사악- 허공을 그었다.
허공이 갈라지고 검은 틈이 벌어진다.
아누비스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크으으, 네놈이 또 내 권능을 훔치는구나!”
권능을 훔쳐?
이 낫이 바로 놈의 또 다른 권능인가?
사슬에 이어 낫이라니. 권능이 물질을 이룰 수도 있구나 싶었다.
“좋은 걸 가르쳐 줘서 고맙군!”
“거, 거기 서라아아! 오디슨! 오디슨! 당장 서지 못하겠느냐!”
제국놈들도 그렇지만, 참 바보 같은 소리다.
도망치는 놈에게 서라고 한다면 그 누가 서겠는가?
나는 검은 문을 통과했다.
* * *
위그드라실 최상층. 신들의 회의가 벌어지는 곳.
그곳에서는 최근 격한 논쟁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고성이 오가는 중이다.
쾅!
티르가 책상을 때리고 소리쳤다.
“아니,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갑자기 전쟁이라니! 그것도 거리가 꽤 떨어진 이집트 신계, 엔네아드와? 좀 상식적으로 행동합시다, 상식적으로!”
법과 정의를 담당하는 신, 티르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전쟁 명분이 아스가르드에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건 너무 급진적인 이야기다.
펜리르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빠지고 싶으면 빠져라, 겁쟁이.”
“아니, 누가 그런 소리를 했나? 그저 이게 절차에 안 맞단 거지!”
“절차? 그렇다면 놈들은 절차를 지켜서 오디슨을 납치했나? 응?”
“그에 대한 충분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원론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로키스 패밀리에게 그 소리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헬이 싸늘하게 말했다.
“오딘, 분명 검은 차원문을 봤다 했죠?”
“음…….”
오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면 방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딘과 헬 사이의 약속이 문제였다.
‘그 약속이 이런 식으로 골치를 썩일 줄이야.’
오딘이 눈썹을 찌푸렸다.
계산 밖의 일이었다.
본래 역사 속에서 오딘이 로키의 세 아이를 걱정할 때, 가장 걱정한 것은 헬이었다.
괴물 늑대인 펜리르와 세계뱀인 요르문간드는 신들도 꺼렸지만, 헬은 아니었다. 헬은 본디 음울하긴 해도 신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마음 약한 여신들은 어린 헬을 끔찍하게 추운 니플헤임에 던지는 것에 반대했다.
본래의 역사대로라면?
오딘은 제멋대로 헬을 니플헤임에 던졌으리라. 그 과정에서 헬이 크게 다쳐 반신이 검게 썩어 가는 모습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회귀한 오딘은 헬에게 약속했다.
‘너희 가족의 자유를 약속할 테니, 너는 저승으로 가 망자들을 관리하라.’
‘그 땅과 망자들에 대한 권리는 모두 너에게 있으니, 나는 관여치 않으리라.’
그에 어린 헬은 제 가족을 위해 차가운 니플헤임으로 갔다.
헬과의 약속 때문에 오딘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차마 방어 마법을 펼칠 수가 없었다.
긴눙가가프에서 열렸던 차원문이 재차 열리고, 오디슨이 빨려 들어감에도 오딘은 보고만 있어야 했다.
미래를 안다고 한들 모든 걸 할 수는 없다.
오딘은 그를 잘 알고 있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토르! 뭐라 말 좀 해 봐! 이게 지금 제대로 된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티르가 버럭 화를 냈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토르가 야박해 보였다.
인류의 수호자인 토르가 신들의 전쟁을 그냥 보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토르는 토르 나름대로 생각이 많았다.
‘저 망할 놈은 또 왜 날 걸고넘어지고 지랄이야.’
머리를 벅벅 긁었다.
“티르의 말이…….”
“형, 이럴 거야?”
펜리르가 으르렁대자, 토르가 입을 꾹 다물었다. 뒤이어 헬의 싸늘한 눈총을 받자, 몸이 움찔 떨렸다.
까딱 잘못하다간 이집트와의 전쟁 전에 내전 먼저 발발하리라.
토르는 눈을 꾹 감고 말했다.
“전쟁보다는 구출 작전을 먼저 시도해 보는 것도…….”
토르의 말에 로키스 패밀리가 무어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커다란 울음소리에 묻혔다.
까아아악! 까아아악!
까마귀 두 마리.
후긴과 무닌이 날아들며 울부짖었다.
그에 오딘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전쟁은 없다.”
헬의 눈살이 구겨졌다.
“그게 무슨 소리죠?”
“걱정 마라, 도망치겠다는 게 아니니. 티르의 말대로 항의부터 해도 될 것 같군.”
오딘의 말에 가장 놀란 것은 티르였다.
저 전쟁에 미친 영감쟁이가 어쩐 일로? 눈을 깜빡이며 더듬거리며 물었다.
“사실입니까?”
“그래, 전쟁할 필요가 없어졌거든.”
어깨를 으쓱인 오딘이 말했다.
“그가 돌아왔다.”
후긴과 무닌이 전해준 소식이었다.
* * *
“아.”
낯익은 거리다.
발할라. 그것도 투기장 앞.
“…오디슨?”
“뭐야,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난 거야?”
웅성웅성. 투기장 앞에 모인 관객들이 소란을 피웠다.
슬쩍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머리를 쓸어넘겼다. 별것 아닌 찌꺼기 사냥이 굉장히 길어진 기분이었다.
갑자기 다른 신계의 신과 드잡이질을 하다니.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좋은 낫을 얻었다.”
낫질에는 익숙지 않다. 하지만 이 단단하고 날카로운 낫을 이용해 창을 만든다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정말 좋은 창이 되리라.
“윽……!”
그때, 영혼이 욱신거린다. 좀 잠잠해지나 싶더니, 또?
눈살을 와락 구겼다. 이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오딘께 찾아가야 하는데… 이 몸으로 갈 수 있을까?
걱정하는 와중에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오디슨!”
이라호드가 내 몸을 이끌고 오고 있었다. 얼굴을 가린 채지만, 단숨에 알아챘다.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다.
“이라호드! 그리고…….”
“끼이잉…….”
악령이 내게 다가와 몸을 비빈다.
내 몸이라지만, 사내와 비비적거리는 취미는 없다. 눈살을 와락 구기고 녀석을 밀쳐 내려 할 때, 손이 흐릿해진다.
아, 나는 아직 영혼체다.
이라호드가 말한다.
“치료는 끝났어요. 다시 몸에 스며들면 될 거예요, 아마.”
“다행이군. 고맙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이 축 늘어지고 이라호드가 그를 부축한다. 악령은 건틀릿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이놈은 악령인데 나쁜 짓을 안 하나? 도대체 뭐하던 놈인지 모르겠다.
부딪히듯 내 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스윽!
부드럽게 합쳐졌고, 시야가 어지러웠다.
육신의 감각이 아직 약간 어색하다. 너무 오랫동안 몸을 비운 걸까? 일단 얼굴을 덮고 있는 복면을 벗었다.
팔다리를 휘저어 답답한 느낌을 없애고, 몸을 점검했다.
딱히 바뀐 건 없는 기분이다. 하나를 빼면 말이다.
“…킁,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슬쩍 내 팔을 코에 댄다. 꽃향기를 닮은 달짝지근한 냄새가 풍겼다.
“…내 몸에서 왜 꽃향기가?”
“아, 우리 집 샴푸 냄새일 거예요.”
샴푸가 뭔지는 나도 안다. 목욕탕에서 본 적 있다.
거품 나는 향유였던가?
그런데…….
“네 집?”
신경 쓰이는 말이었다.
이라호드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 몸뚱이를 그럼 그냥 버려둘까요? 님프는 취직이다 자격증이다 하면서 바쁘고, 이그나르나 토르손은 식당 일이랑 훈련으로 아주 죽어 나가던데요? 하는 짓이 완전 강아지라서, 은근 손이 많이 간단 말이에요.”
아랫사람이 많은 니플헤임에 두면 되지 않나? 생각했지만 니플헤임은 찌꺼기의 습격으로 일이 잔뜩일 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이이…….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는 걸 이해했다. 지금도 낑낑거리며 무어라 지껄이고 있지 않은가? 정말 개 같다.
반쯤 녹아내린 그 개보다야 훨씬 낫지만.
“고생했겠군.”
머리를 긁적이다가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다.
“…개. 강아지라… 강아지가 혼자 씻을 수 있나?”
툭 내뱉은 말에 이라호드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왜 저러지? 눈살을 구겼다.
“아니거든요!”
“…뭐가 아니지?”
“아니! 진짜 아니라구요! 아니에요! 아무튼 아니니까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아니라고 하니 아닌 걸로 알아 두자.
그보다, 어떻게 내가 올 줄 알았던 걸까?
그를 물었다. 이라호드가 손부채질로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며 대꾸했다.
“아… 까마귀 본부에서 알려 줬어요. 이쪽에 차원문이 열릴 거라고.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까마귀 본부라면, 후긴과 무닌인가? 그 둘이라면 내가 오는 것쯤이야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무슨 이상한 개 대가리에게 잡혔었다.”
“네? 그게 무슨… 아, 일단 가면서 이야기해요.”
이라호드가 나를 잡아끌었다.
좀 천천히 가도 될 텐데? 어째서?
의문 섞인 눈빛을 보내자 이라호드가 속삭인다.
“주변을 좀 봐요.”
주변?
주변이라면 그냥 투기장 관람객들밖에…….
“오디슨! 꺄아아아악! 오디슨!”
“오오! 대단했어! 그렇게 화끈한 경기가 필요한데 말이야! 요즘은 영 시시하다고!”
“오디슨! 사랑해요! 꺄아아아아아!”
내 주변에 사람들이 우글우글하게 몰려들었다.
눈을 끔뻑이고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모두가 잔뜩 상기된 채 내 이름을 꽥꽥 소리 질러 불렀다.
그 모습은 군단과 홀로 맞설 때보다 더 두려웠다. 적이라면 그냥 때려죽이면 된다. 하지만 이들에겐 그럴 수도 없었다.
“이라호드. 이게 대체……?”
“가면서 이야기하자 했죠? 아무래도 여기에서는 좀 힘드니까요. 자, 안겨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다 큰 처녀를 길거리에서 희롱할 수는 없다.
“그건 좀…….”
“에이, 처음도 아니잖아요, 뭐.”
음? 처음이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고개를 갸웃할 때, 이라호드가 나를 껴안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오딘 님의 호출입니다! 오디슨은 차후에 기자회견을 열 거예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꽥 소리친 이라호드가 날개를 퍼덕여 허공을 가로질렀다.
사람들은 아쉬워하면서도 감히 오딘께서 부르신다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오딘께서 부르신다고?”
“예, 곧장 데리고 오라는 말을 들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있었다. 꽤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영혼의 통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그분께 이에 대해 물어야겠군.”
그리고 나는 그분께 바칠 게 있었다.
찬란히 빛나는 승리.
그를 바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