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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발할라-66화 (66/208)

# 66

66화. 영웅은 칭송 받는다 (1)

“미쳤군! 내가 얌전히 심장을 내어 줄 거라 생각하나?”

눈살을 구기며 소리쳤다.

아누비스가 클클 웃는다. 그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또 뭔가를 꺼내려는 셈인가? 인상을 찌푸릴 때, 팔다리가 무거워졌다.

절그럭.

“이건……?”

“죄인을 속박하는 사슬. 너처럼 재판을 거부하는 악인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다.”

“허! 겨우 이까짓 걸로?”

이깟 사슬, 쉽사리 끊을 수 있다.

힘을 써서 사슬을 잡아당겼다.

기기기긱!

사슬이 긁히는 소리를 냈고, 팽팽하게 당겨졌다.

조금만… 더……! 이를 악물고 팔을 당겼다.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힘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럼에도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다.

“대체…….”

뭐로 만든 사슬이기에 이토록 튼튼하단 말인가!

지금 내겐 쇳덩이를 밀가루 반죽처럼 주무를 힘이 있다. 영혼의 힘을 너무 끌어 쓴 부작용인가?

이 사슬은 결코 끊어지지 않았다.

큭큭, 아누비스가 웃는다.

“그것은 영혼을 인도하는 나의 권능. 영혼은 심판받기 전까지 절대 끊어 낼 수 없다.”

권능이라.

피할 여지도 없이 심장을 꺼내 주어야 한단 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 나는 영혼체다. 심장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심장이 있진 않을 터.

저놈의 말은 이상하다.

“…영혼에게 심장이 있을 리 없다, 개 대가리!”

“건방진 죄수군.”

얼굴을 굳힌 아누비스가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의 손 위에 펄떡이는 심장이 생겨났다.

저토록 적나라한 심장을 보는 건 처음이다.

이제껏 내가 봐 온 심장들은 대부분 찢기거나, 아니면 갈라진 틈 사이에서 헐떡이듯 뛰는 것들뿐이었다.

“영혼의 심장은 양심이다. 그리고 이게 네 양심이지.”

“…그게 내 심장이라고?”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영혼체이니 당연히 심장 박동은 없었다.

아누비스가 히죽 웃었다.

“자, 이제 네 심장의 무게를 달 거다. 그리고 그 무게가 깃털보다 무겁다면?”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운 거야 당연한 일 아니던가?

그르릉…….

낮은 소리가 들렸다.

천칭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는 오싹했다.

무저갱에서 들려오는 악마의 숨소리가 저럴까? 무스펠헤임에 있는 불꽃 거인들이 저런 소리를 내리라.

“저 아래로 떨어져 네 심장은 암무트의 먹이가 될 것이다.”

암무트?

아누비스가 쯧쯧 혀를 찼다.

“도대체가 아는 게 없군! 암무트는 사자의 권위와 악어의 흉포함, 그리고 하마의 탐욕을 지닌 괴물. 네 심장이 녀석의 먹이가 된다면, 너는 평생토록 하계를 떠도는 망령이 되리라.”

“허! 웃기고 있군. 지금도 망령 신세인데, 무슨…….”

“크크크, 과연 그럴까? 심장을 잃은 영혼이 신계나 명계에 갈 수 있다 여기는가? 굳어질 수 없는 하계에서 영원한 외로움을 느끼게 되리라.”

아누비스가 내 심장을 천칭에 올린다. 깃털 반대편 자리다.

그에게 물었다.

“…깃털보다 무겁지 않다면?”

“깃털과 무게가 같다면 네 영혼은 육신과 합쳐져 부활하리라. 하지만 그렇게 고결한 자는 드물지. 또한…….”

아누비스가 입을 쭉 찢으며 웃는다.

반쯤 녹은 그 얼굴이 흉물스럽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은 녀석이 말했다.

“본래라면 신왕(神王) 호루스께서 네 죄를 물으시겠지만, 그분께서는 바쁘시다. 또, 본래라면 지식의 신인 토트께서 이 재판을 기록하시겠지만, 그분은 바쁘시다. 마지막으로, 본래라면 두아트의 위대한 지배자이신 오시리스께서 판결을 내리시겠지만, 그분은 바쁘시다.”

기괴한 이름의 신들 중 바쁘지 않은 건 이 개 머리뿐인가? 나라도 이 죽어 가는 개에게 뭔가 일을 맡기진 않으리라.

아누비스가 결론을 내렸다.

“즉, 내가 검사이며, 판사다. 또 이 재판은 기록에 남지 않지.”

그가 내 심장을 천칭에 올리며 물었다.

“이제 알겠는가? 네게 내려질 판결을?”

끼익- 천칭이 기운다.

내 심장이 깃털보다 훨씬 무거웠다.

아누비스가 히죽대며 심문을 시작했다.

“너는 살인했는가?”

첫 번째 질문부터 노골적이다.

살인? 나는…….

* * *

덴 마스크, 느릅나무 부족 마을.

제국의 침공에 전전긍긍하는 부족이지만, 제국은 의외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만큼 지난 패배가 충격적이었던 걸까?

볼바인 시그니료드는 이 상황이 길게 이어지길 바랐다.

반년간의 평화는 달콤했다.

약간은 지루하기도 했지만, 이 지루함이 사랑스러웠다. 게다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도 아니다.

“판도라? 뭐 하고 있어요?”

“아, 시그니료드 님.”

오디슨의 인도에 마을에 온 손님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미모에 부족 마을 남자들이 들썩였다. 하지만 시그니료드는 판도라를 성역(聖域) 안에서 살게 했다.

부족 남자들을 못 믿는 건 아니었다.

‘역시, 이 여자는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

볼바가 하나 더 늘면 그만큼 시그니료드의 부담도 덜해진다. 게다가 시그니료드가 놓친 예지도 다른 볼바가 잡아낼 수 있을 터.

시그니료드는 판도라를 볼바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냥 바람을 쬐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원래 있던 곳에서는 이렇게 느긋하게 해와 바람을 즐길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래요?”

판도라가 쓰게 웃었다.

태양은 아폴론의 관할이며, 섬의 바닷바람은 바다의 님프들과 친했다. 햇살은 그녀의 죄를 따갑게 비난했고, 바닷바람은 추악한 여자라며 소금을 뿌렸다.

“그보다 판도라, 혹시 볼바 수업을 들을 생각 없어요?”

“볼바요? 볼바라면 분명…….”

판도라가 눈살을 좁혔다.

눈앞에 있는 시그니료드가 바로 볼바다. 그녀가 알기로 볼바는 신을 모시는 사제였다.

그와 다르게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볼바는 영능을 가진 여자만이 될 수 있어요. 남자들은 그냥 주술사가 되는 편이고요.”

“영능이요?”

시그니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전의 주술인 세이드(Seiðr), 그리고 주문(갈드, galdr)과 예지(스파, spá)를 다루죠. 셋 모두를 다 사용하는 대단한 볼바들도 있지만, 대부분 하나에서 둘 정도를 쓸 줄 알아요. 그것만 해도 충분하죠.”

“…하지만 저는…….”

판도라가 머뭇거렸다.

부족 출신도 아닌 외지인이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시니그료드가 망설이는 판도라의 손을 잡았다.

“붉은 늑대께서는 지금도 라그나로크를 막기 위해 애쓰고 계실 거예요. 그분께 힘을 보태야 해요.”

“힘을…….”

판도라는 오디슨을 떠올렸다.

잘생긴 얼굴보다 그가 해 준 말이 더 선명했다.

‘그러니까, 너는 죄인이 아니다.’

그 한마디에 판도라는 구원받았다.

이제는 자신이 그에게 힘을 보탤 때다.

생각과 동시에 판도라는 조용히 무릎 꿇고 기도를 올렸다.

“오딘의 아들이여, 적의 목을 물어뜯는 붉은 늑대여, 아직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자여, 영원히 변치 않을 전사여.”

나지막한 기도에 판도라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졌다.

그 광경에 시그니료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제대로 된 방법도 배우지 못했으나, 판도라는 이미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확고한 믿음.

오디슨을 향한 단단한 신앙이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순간, 판도라는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풍경을 보았다.

피투성이 늑대가 재판을 받는 광경이었다.

“아……!”

판도라가 움찔 떨었다.

그리고 오디슨에게 들은 말을 되돌려 주었다.

빌린 것에 이자를 더한 것이었다.

“당신은 죄인이 아닙니다. 당신이 짊어진 것은 오직 정의뿐. 그러니 피를 뒤집어쓴 전사여- 고개 숙이지 마소서-!”

그 읊조림은 주문이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내뱉은 말이 거리를 초월해 영혼을 울렸다.

그 순간, 까마귀가 길게 울었다.

까아악! 까아아아악!

늘 시그니료드를 따라다니는 늑대들이 허공을 바라보고 목청을 뽑았다.

아우우우우우우!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쿠르릉- 천둥이 울린다.

시그니료드는 이 이상 현상에 미간을 좁혔다.

“무슨…….”

까마귀와 늑대, 그리고 천둥. 전쟁의 징조다.

설마, 또 제국이?

시그니료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허나 제국군은 조용했다. 그들은 다시 덴 마스크를 침공할 명분도, 용기도 없었다.

휘이잉-!

마침내 먹구름이 흰 눈을 뿌렸다. 그 눈발은 동남쪽으로 휘날렸다.

‘제국 방향? 아니, 그 너머야.’

번개가 번뜩이는 휘광은 저 멀리를 가리켰다. 제국을 지나 있을 땅.

시그니료드는 그에 대한 소문만을 들어 봤을 뿐이었다.

‘제국을 지나 쭉 내려가면, 열사(熱沙)의 땅이 나온다.’

그런 소문이 있었다.

* * *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대낮의 햇살이 안개를 걷듯, 날 감싸는 온기가 마음속에 차오르던 미혹의 안개를 걷어 냈다.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렇다.”

아누비스가 킥킥 웃었다.

“제 죄를 인정하다니!”

“아니,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내가 이제껏 죽인 이들은 모두 적이었다.

전사는 본래가 적을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아누비스가 허- 헛숨을 뱉었다.

“그따위로 말한다 한들, 소용없다. 심판의 천칭은 결코 속지 않으니. 봐라, 네 심장의 무게는 여전히… 음?”

아누비스가 흠칫 떨었다.

천칭은 기울었다. 아까와 달리, 심장과 깃털은 같은 무게가 되었다.

히죽 웃었다.

“네 말대로 심판의 천칭은 정확하군.”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네까짓 놈이 무슨 수로 심판의 천칭을 속였는지 모르겠지만, 네 죄는 결국 밝혀지리라!”

아누비스의 심문이 이어졌다.

“너는 여색을 탐했는가?”

“그렇다. 난 남색을 탐하는 변태가 아니다.”

제국 놈들이 이 천칭에 매달렸다면 모조리 암무트라는 괴물의 먹이가 됐을 텐데. 아쉽다.

얼굴을 구긴 아누비스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너는 남의 것을 빼앗았는가?”

“너는 불을 질렀는가?”

“너는…….”

온갖 질문들이 던져졌다. 그에 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렇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았다. 나는 불을 질렀다. 나는 마약성 약물을 습관적으로 복용했으며, 나는 역사적 유적을 박살 내고 다녔다.

그러나 전리품이었고, 화공이었다. 버섯을 씹었지만 미치진 않았다. 제국 놈들이 만든 건물들을 부수는 건 복수였다.

전사로서 해야 할 일들이었다.

끼익, 끼익, 끼익.

대꾸할 때마다 천칭이 기울었다.

아누비스가 당황했는지 기괴한 질문들을 던져 댔다.

“남의 집에 숨어들었는가?”

“무기를 휴대했는가?”

“시체를 은닉하거나 훼손했는가?”

“거짓 신고를 했는가?”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이 튀어나왔다.

남의 집에 숨어든 거야, 그럴 수 있다 쳐도…….

무기 휴대? 전사라면 당연히 무기를 제 손발처럼 여겨야 한다.

시체를 은닉하거나 훼손? 오딘께 바치는 제물을 널브러뜨려 놓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오딘께서 영혼을 가져가기 좋게 창으로 꿰어둬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뭐? 거짓 신고? 우스운 일이다.

처음으로 다른 대답을 했다.

“아니다! 난 고자질쟁이가 아니다!”

“…빌어먹을.”

아누비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천칭은 거의 1자로 서 있었다. 내 심장은 허공으로 날아오를 듯 위로 치켜 올려져 있었고, 깃털은 아래로 가라앉은 채다.

아누비스가 의미 없는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았다.

“너는 이유 없이 남을 비방했는가?”

“타인의 저작물을 부당하게 게재했는가?”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를 했는가?”

“노상 방뇨를 했는가?”

자꾸만 이어지는 질문이 지루하다.

그건 천칭도 마찬가지였는지, 삐걱거리던 천칭이 마침내 스르르 사라졌다. 그와 함께 내 심장과 깃털도 허공으로 흩어졌다.

절그렁!

내 사지를 구속하던 사슬이 녹아내렸다.

손발을 움직여 보았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잘 움직였다.

목을 긁었다. 아까부터 가려웠다.

“시원하군.”

아누비스가 분노로 몸을 떨며 소리쳤다.

“…어찌,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티끌 한 점 없는 영혼이라고? 말도 안 된다! 찌꺼기를 씹어 삼키는 놈이 어찌 타락하지 않을 수 있지?”

글쎄,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간단한 사실 하나는 안다.

“이제 재판은 끝난 모양이군.”

아누비스가 입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며 무어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올 것은 의미 없는 소리뿐이다. 그의 사기 재판은 공정하기 그지없는 천칭에 의해 저지되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물었다.

“너는 분명… 내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울 때, 그리고 깃털과 같은 무게를 지녔을 때에 대해 말했지.”

아누비스가 움찔 떨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깃털보다 가벼운 심장을 가진 나는 어찌 되지?”

“그건……!”

아누비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수 없는 이유가 있나?

눈살을 찌푸릴 때, 캉캉캉! 쇠사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재판이 안 되니 힘으로 하겠다? 또 그 사슬이 날 묶는가?

족쇄를 피하고자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아니었다.

“크윽!”

그 쇠사슬은 아누비스를 묶었다.

처량하게 매달린 아누비스가 버럭 소리쳤다.

“나, 나는 길을 여는 자! 영혼을 인도하는 자다! 어찌하여 죄인을 묶는 사슬이 나를 묶는단 말인가!”

그에 대한 답은 내가 내놓았다.

“넌 믿음을 배신했다.”

그에게 권능을 준 것은 결국 그를 믿는 자들. 이 개 머리는 권능에 걸맞지 않은 짓을 벌였다.

죄인을 묶는 사슬로 죄인이 아닌 자를 묶는다? 그건 죄다.

사슬은 죄지은 자를 묶으리.

스르륵- 천칭이 나타났다.

“허. 이제 상황이 바뀌었군? 안 그래?”

“어찌하여, 이런 일이……!”

아누비스가 한탄했다.

천칭에 올릴 것이 부족하다.

깃털은 그 위에 올라가 있지만, 심장이 없다.

나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낫을 집어 들었다.

“개 심장은 얼마나 가벼운지 보자꾸나.”

“자, 잠깐!”

서걱!

낫으로 놈의 가슴팍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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