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65화. 영웅은 초대받는다 (3)
씹지 않고 삼켰다.
살덩어리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나 싶더니 곧장 내 몸을 살찌웠다.
과연 육신을 흉내 냈다 해도 영혼인가?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주물렀다.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그렇다고 한들, 여전히 앙상했지만.
툭, 말을 내뱉었다.
“…역시 맹수의 고기는 누린내가 심하단 말이야, 안 그렇소, 삼촌?”
어릴 적, 늑대를 구워 먹을 때 삼촌이 해 준 말이었다. 그 당시 삼촌은 팔을 과장되게 펼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행군 중에는 집채만 한 곰을 잡은 적도 있다. 그런데 그놈 고기는 거의 지린내가 났지. 큭큭. 그러니 참고 먹어라.’
언제나처럼 삼촌은 이후 한마디를 덧붙였다.
‘강한 전사가 되고 싶다면.’
그렇기에 나는 누린내가 풀풀 풍기는 늑대 고기도 게걸스레 뜯어 먹었다.
삼촌이 미쳐 버리고 난 뒤, 먹을 것이 없을 땐 산에 올라가 아무거나 뜯어 먹기도 했다. 그러다 늑대를 만나 혈투를 벌이고 별명을 얻었다.
아,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부족 사람들에게 밥 좀 달라고 하는 게 부끄러웠는지.
그리운 옛 기억이다.
“후우… 그나저나 안 어울리는 모습이 되셨소.”
내 말에 삼촌은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으르렁- 송곳니를 드러내며 짜증 부렸다.
“뭐가 말이더냐? 에인헤리가 되겠다 입에 달고 살던 내가 찌꺼기가 된 것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삼촌의 별명은 교활한 곰이었잖소. 근데 지금은 늑대니…….”
“…허, 쓸데없는 소리!”
삼촌이 짜증 부릴 때, 그에게 부축 받고 있던 사자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삼촌이 나를 찌릿 노려보았다.
“오디슨, 못 본 사이에 교활해졌구나. 교활한 곰이라는 별명은 네가 이어받아도 좋을 정도다.”
“…알아챘소?”
“쯧, 시간을 끌려고 헛소리를 하다니. 어쩌다 저런 놈이 되었는지.”
삼촌은 후우- 한숨을 쉬고 몸을 돌렸다.
그 등을 찌를 수 있을까? 순간 든 생각이다.
어림도 없다. 아무리 호랑이를 삼켜 강해졌다 한들, 여전히 내 영혼은 아팠다. 멀쩡한 상태에서도 싸워 이기기 힘들 텐데 어찌?
그저 삼촌이 물러서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삼촌이 나지막이 말했다.
“다음에 또 보자꾸나.”
“다음에는 삼촌이라 안 부르겠소.”
“…쯧.”
삼촌이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 등에 대고 말했다.
“잘 가시오, 삼촌.”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게 마지막으로 그를 삼촌이라 부르는 것이다.
삼촌은 사자를 부축한 채 찌꺼기들에게 외쳤다.
“가자!”
우르르 물러서는 찌꺼기들.
그 광경을 보며 어깨에 힘을 뺐다. 참고 있던 신음이 튀어나온다.
“으윽!”
더 이상 통증을 참기 어려웠다.
전투가 끝났기 때문일까? 긴장이 풀리며 고통이 엄습했다.
쿵!
내 옆에 무언가 떨어지고, 따스한 온기가 내 어깨를 감쌌다.
“오디슨, 괜찮아요?”
이라호드였다.
그녀는 아까의 말끔한 모습이 거짓말이라는 듯, 온갖 잔상처를 달고 있었다. 상처의 형태는 모조리 창에 의해 남은 것.
그런가.
“파란 늑대와 싸웠나?”
“네. 어디에서 저런 괴물이 튀어나왔는지… 창술이 대단하더라구요. 보통 찌꺼기들은 무기술이 조잡하고 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라호드가 찌푸리며 투덜댔다.
그 투덜거림에 피식 웃었다.
“부족에서도 창술로는 최고였으니, 당연하지.”
“네? 부족 최고의 창술사는 분명…….”
이라호드가 예전 내가 했던 말을 늘어놓다 흠칫했다.
나는 쓰게 웃었다.
“나도 그자에게 배웠다.”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던데요?”
창술이 다르다는 이야긴가? 어쨌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내가 제대로 창을 쥘 때쯤에 이미 삼촌은 미쳐 버렸으니.
내 창은 삼촌의 창술을 흉내 내다 내 편한 대로 휘두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리라.
“오디슨 님!”
강글라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치명상이 될 법한 상처를 여럿 단 채로 내게 고개 숙였다.
“부하들에게 들었습니다. 오디슨 님이 아니었더라면…….”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그를 제지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네?”
도망치는 찌꺼기를 가리켰다.
“사냥꾼들이 많이 당했다지? 지금 줄여 두지 않으면 위험할 거다.”
“…그도 그렇군요. 실례지만, 곧장 놈들을 추격하겠습니다.”
강글라티가 군단 지휘권을 행사했다.
커다란 목소리로 군단을 불러모았다. 내가 우격다짐으로 하던 것과 다르게 체계적인 명령이 하달됐고, 꼼꼼한 작전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그 광경을 보며 마음이 좀 편해졌다.
“오디슨, 일단 좀 쉬세요.”
이라호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이 삐걱거리는 불쾌감은 도저히 어쩔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부탁했다.
“내 몸을 부탁하지.”
“…걱정하지 말아요.”
그 말과 함께 내 영혼이 점점 흐려진다.
오딘께서 부르시는가?
영혼체라고 할지라도 오딘의 휘하에 있는 영혼. 나는 아직 헬께 소유권이 넘어가지 않은 영혼이다.
니플헤임에서도 흐릿해진 내 영혼이 붕 떠오른다.
이라호드가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돌아온다.”
엄지로 그녀의 볼을 훑으려는 찰나, 내 영혼이 완전히 투명해졌다.
뻥 뚫린 듯한 해방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라호드가 어이없다는 듯 툭 내뱉었다.
“이럴 때도 농담이에요?”
무슨 농담?
저 발키리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렸다.
‘나’라는 걸 잊어버리고 그저 몽롱한 상태로 허공을 날아다녔다.
그때, 날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오라, 오디슨. 이리로 오라.’
쩌억, 검은 문이 열렸다.
아! 영혼을 다스리시는 오딘께서 날 부르시는구나!
‘위대하신 분, 오딘이시여! 당신의 아들이 바라던 것을 들고 갑니다.’
찬란히 빛나는 승리.
나는 그 검은 문으로 몸을 던졌다.
* * *
뉴스 하나가 발할라를 강타했다.
[찌꺼기 습격! 뻥 뚫린 니플헤임 방어선!]
[(속보)습격 피해 망자 약 5만 추정! 더 늘 가능성도 있어…….]
[어째서 니플헤임은 이렇게 쉽게 무너졌나? 내통자 수색.]
헬헤임이 찌꺼기의 습격으로 인해 난장판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헬헤임에 공격이 집중되었다. 그 덕에 전체 망자 수와 비교하자면 그리 크지 않은 피해였다.
하지만 헬헤임은 니플헤임의 수도다.
망자 수를 제외한 피해를 더하면?
암울한 수치다.
[이번 찌꺼기 습격, 황금으로 따지자면? 황금 1천억 크로나 이상 피해.]
[사냥꾼 길드, 사실상 와해. 전체의 30% 이상이 행방불명.]
[(칼럼)‘헬헤임 정상화’, 몇 년이 걸릴 수도.]
헬헤임의 찌꺼기 추출 시설이 크게 당했고, 사냥꾼 길드가 거의 해체되었다. 발할라 주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한시라도 빨리 가족들을 데려와야겠어.”
이그나르가 중얼거렸다.
그는 뉴스를 듣자마자 심장이 철렁했다. 피해 망자 중에 가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토르손이 이그나르를 위로했다.
“지금 열심히 모으고 있잖아요. 조금만 더 힘내죠.”
“그래, 그렇지… 그나저나 오디슨 이놈은 대체 어딜 간 거야?”
이그나르의 말에 토르손이 쓰게 웃었다.
대장을 못 본 지도 꽤 지났다. 그래도 얼굴을 까먹을 염려는 없었다.
레이프 에릭손은 자신의 다짐을 확실하게 지키는 남자였으니까.
[아! 다 죽었구나, 싶을 때 바로 오디슨이 나타났습니다.]
지금도 TV 속에서 레이프가 떠들어 대고 있었다.
[아, 신성을 얻으셨으니 오디슨 님이라고 해야겠죠. 어쨌거나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오디슨의 사진과 그가 투기장에서 싸우던 모습들이 자료화면으로 나왔다. 그는 투사에서 순식간에 의협지사가 되었다.
오디슨을 그저 잘생긴 연예인쯤으로 알던 이들도 모두 그에 대해 말했다.
온갖 종류의 추측들이 난무했다.
개중에는 레이프 에릭손의 이야기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도 있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저도 오디슨 선수가 잘 싸우는 거 알아요. 제 취미가 투기장 관람이거든요. 그런데 레이프 특파원의 이야기는 너무 과장됐다 이겁니다.]
반박은 상식적인 부분을 찌르고 들어왔다.
[덜렁 투사 하나가 뛰어들어서, 뭐? 헬의 군단을 움직여요? 헬의 군단이 보통 군대입니까? 헬에게 절대 충성하는 군댑니다. 그런 군대가 민간인 투사 하나에 움직인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신성 모독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신성 모독이다아아!]
레이프 에릭손은 생각보다 신념이 굳은 사람이었다.
반론에 죄다 ‘신성 모독’이니 ‘내가 당할 때 사타구니나 긁던 놈이 오디슨을 비방하다니’- 하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굴어 댔다.
분명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오디슨 찬양이, 묘하게 뒤틀렸다.
토르손이 떨떠름한 웃음을 지었다.
“근데, 대체 대장은 어딨죠? 그 발키리님도 모르시던데.”
“뭐, 영혼이 육신에 어떻게 다시 들어가는지 아시는 건 오딘뿐이시겠지.”
이그나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며칠이 지나자 바뀌었다. 레이프 에릭손이 워낙 시선을 잡아 끈 탓일까? 오디슨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하지만 오디슨은 그 어디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신문 기사들이 나왔다.
[오디슨, 어디로?]
헬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시간을 냈다.
가장 중요한 일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왔느냐.”
힘없는 목소리로 헬을 맞이한 것은 오딘.
헬이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신문을 툭 던졌다. 오딘의 발치에 신문이 떨어졌다.
오디슨의 행방을 묻는 기사가 떡하니 오딘의 눈에 들어왔다.
헬이 물었다.
“그는?”
싸늘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당황과 분노, 그리고 배신감을 느꼈다.
하루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진 일이 너무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감히 찌꺼기들이 다른 곳도 아니고, 헬의 거처 코앞까지 밀고 들어왔다는 것에 격노했다.
마지막으로…….
‘내통자가 없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
헬이 생각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다는 것만 해도 극비사항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녀가 가진 힘이 니플헤임 전체의 절반쯤 되니까.
그뿐만 아니다.
찌꺼기들은 정확히 방어선의 빈틈을 노리고 쳐 들어왔다.
완벽한 방어선이라는 건 없다. 하지만 완벽을 닮기 위해 수시로 방어선을 바꿨다. 어디가 강하고, 어디가 약한지 알기 위해서는 군단 내부 사정에 밝아야 했다.
‘어쨌든 그 부분은 강글라티가 수사 중이니까…….’
지금 생각할 것은 그게 아니다.
헬이 오딘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는, 오디슨은?”
영혼의 행방이 묘연했다.
오딘은 얼굴을 굳힌 채 대꾸했다.
“…모래 속에 있다.”
쩌적!
헬의 주변 공기가 얼어붙어 서리로 변했다.
그녀는 이딴 짓거리를 할 치졸한 자를 알고 있었다.
“오시리스……!”
까드득! 헬이 이를 갈았다.
* * *
낯선 곳이다.
생소한 건축 방식에 눈을 끔뻑이고, 코를 찌르는 퀴퀴한 냄새에 얼굴을 구겼다. 꼭 시체가 썩어들어 가는 때에 나는 역한 냄새를 닮았다.
나는 나지막이 날 기다리실 분을 불렀다.
“오딘이시여?”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크크- 낮은 웃음소리에 움찔 몸을 떨고 뒤로 돌아보자니, 괴상하게 생긴 개 한 마리가 있었다.
눈살을 구겼다.
“찌꺼기?”
반쯤 녹은 개 머리 사내가 버럭 화낸다.
“어디서 그런 망발을!”
“그렇다면?”
개 머리 사내는 으스대며 가슴을 쭉 폈다.
약간 빈약한 몸이다. 갈색 피부는 보기 좋게 그을려 있었지만, 여기저기 붕대가 감겨 있어 그리 강인한 느낌은 아니다.
“나는 길을 여는 자, 영혼을 인도하는 자, 그리고 두아트의 지배자께 영혼을 심판할 권리를 받아 행사하는 자.”
거창한 수식어가 쏟아져 나왔다.
두아트?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눈살을 구기자니, 개 머리 사내가 제 이름을 외쳤다.
“아누비스.”
고개를 갸웃했다.
아누비스?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거창한 수식어를 생각해 보면 분명 신이리라. 영혼을 인도한다는 건 오딘의 권능이다. 그런 권능을 이런 개에게 나눠 주셨는가?
오딘께서 부리시는 두 마리 늑대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봤다.
‘그 늑대는 게리와 프레키. 전사자들의 시체를 먹어 치우는 늑대들이다. 그 늑대의 뱃속에 들어간 영혼을 발키리가 발할라로 인도하지.’
주술사 영감의 말에 나는 눈썹을 구기고 반론을 꺼냈다.
‘아니, 분명 전에는 싸우다 죽은 전사에게 발키리가 와서 데리고 간다지 않았소? 전쟁터에 늑대라니. 늑대들은 영리해서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오지도 않건만.’
주술사 영감은 그에 화를 냈다. 내가 한 가지만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발할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 개도 마찬가지인가?
“아무리 그래도 개 머리를 한 신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중얼거리자, 아누비스라는 작자가 소리친다.
“크릉! 난 개가 아니다! 자칼이다!”
자칼? 자칼이 뭐지?
눈썹을 찌푸렸다. 여전히 알 수 없다.
아누비스는 쯧- 혀를 차고 말했다.
“무식한 놈. 네까짓 놈이 어째서 그런 운명을 타고났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알아 둬라.”
뭘 말인가?
아누비스가 말을 잇는다.
“네 운명도 여기에서 끝이다.”
그가 손에 쥔 낫을 허공에 휘둘렀다.
쩌억!
검은 틈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황금빛 천칭이 빠져 나왔다.
천칭은 아름다웠다.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그 모습에 감탄을 토했다.
그 한쪽에 올라 있는 하얀 깃털이 부드럽게 흔들린다.
아누비스가 씩 웃는다.
“심장의 무게를 달 시간이다.”
…확실한 것 하나를 알았다.
저 개는 미친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