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63화 (63/208)

# 63

63화. 영웅은 초대받는다 (1)

“안 돼!”

어림없는 소리.

나는 산양의 애원을 무시했다.

빠직!

산양의 머리를 들이박았다.

그 머리를 고정하던 뿔이 부서지고, 녀석의 눈이 튀어나왔다. 혀를 길게 내뻗고 쓰러지는 놈을 던졌다.

“이, 이 새끼가!”

사슴이 달려왔다. 저놈도 참 잡기 좋은 뿔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적은 초식동물 셋뿐만이 아니었다.

“저기다!”

“놈을 죽여!”

찌꺼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화살과 투창, 그리고 손도끼까지. 다양한 무기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나는 그것을 온전히 맞으며 외쳤다.

“너희들은 내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다!”

“개소리! 신의 주구야, 죽어라!”

동물 머리를 달면서 뇌도 동물의 것으로 바꿔 끼웠나?

찌꺼기들은 언제나 사람 말을 듣질 않는다.

두다다다- 달려드는 사슴.

그 뿔로 나를 꿰려 한다.

하지만 퍽!

“크윽?”

사슴이 내 몸에 부딪히고 튕겨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히죽 웃으며 창을 휘둘렀다.

사슴의 눈에 내가 비친다. 늑대라기엔 털이 적고, 사람이라기엔 주둥이가 툭 튀어나온 괴상한 몰골이다.

왜 이런 꼴이 되었지? 신경 쓰지 말자.

상관없다. 놈들을 죽일 수 있다면 겉모습쯤이야.

푸욱!

창이 사슴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끄, 끄으……!”

마지막 가는 길, 재차 가르쳐 주었다.

녀석의 멱살을 잡아챈 뒤,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나는 개가 아니라, 늑대다.”

덥석! 뿔을 잡고 당겼다.

“크, 크허어……! 아, 아파아아아아! 아프다고오오! 끄아아악!”

사슴이 비명을 내지른다. 멈추지 않았다.

“끄, 끄에에엑! 끄아아악!”

꽈드드득!

그 뿔을 잡아 뽑았다. 사슴은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푸욱! 놈의 가슴팍에 뿔을 찔렀다.

움찔- 사슴의 몸이 떨리긴 했지만, 비명은 없다.

죽었다.

“다음은 누구지?”

주변을 둘러보자, 찌꺼기들이 움찔 떨었다.

조금 전까지 망자들을 괴롭히던 녀석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약해빠진 것들.

으르릉-

분노를 흘렸다.

“같잖은 힘으로 부리던 패악을 내게도 부려 보란 말이다!”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으아, 으아아아아!”

“젠장할! 빌어먹을 신의 앞잡이!”

찌꺼기들이 마구 무기를 휘둘렀지만, 내 몸에는 상처 하나 남길 수 없었다.

“죄의 대가를 치러라!”

창을 찌르고, 휘두르고, 후려쳤다.

그때마다 찌꺼기들은 비명을 내질렀고, 추악한 피를 토해 내며 쓰러졌다.

“으아악!”

“이, 인간의 시대가……!”

창으로는 부족하다. 손톱을 휘둘렀다.

“약자를 괴롭히는 것이 인간의 시대더냐! 그렇다면 난 인간의 시대를 부수겠다! 모조리 박살 내겠다!”

손톱을 휘둘러 긁어내고, 손가락으로 적의 눈알을 뽑아내고, 살점을 뜯어냈다.

가죽이 가로막는다면 가죽을 찢었고, 뼈가 가로막는다면 뼈를 부쉈다. 내장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고, 찌꺼기들의 피로 온몸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광란의 춤을 추고 있을 때, 예사롭지 않은 괴성이 들렸다.

콰광!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니, 찌꺼기는 모두 죽은 채다.

부서져 바닥을 뒹구는 표지판이 보였다.

[↑에이르 병원까지 1km]

[←엘류드니르까지 2km]

[→흐베르겔미르까지 30km]

길을 가르쳐 주는 표지판.

분명 강글라티가 헬의 군대를 이끌고 에이르 신전에서 싸우고 있다고 했던가? 그들을 도와야겠다.

“어후, 대체 얼마나 쳐들어온 거야… 끝이 없네, 끝이.”

이라호드가 혀를 내둘렀다. 그녀는 피 한 방울 안 묻은 깔끔한 상태지만, 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라호드의 창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그 창이 원래 상아색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녀가 얼마나 많은 찌꺼기를 죽였는지 알 수 있었다.

“고맙다, 이라호드. 내 고집을 따라 줘서.”

“뭐… 제 관할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발키리가 할 일이니까요.”

어깨를 으쓱이는 이라호드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그럼, 계속 부탁한다.”

“네? 잠깐! 오디슨!”

이라호드가 날 말린다.

하지만 나는 바닥을 박차고 에이르 신전으로 달렸다.

이라호드가 꽥 소리쳤다.

“그쪽 아니에요!”

* * *

헬의 군단장, 강글라티.

그의 이름은 걸음이 느린 자라는 뜻이다. 그 뜻처럼 그는 재능이 없었다.

남들이 빠르게 강해질 때, 천천히 강해졌다.

하지만 그는 결코 걸음을 멈춘 적이 없었다. 천천히 또 천천히,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

부웅! 붕!

매일같이 칼을 휘둘렀다.

하루해가 다 지고, 지쳐 쓰러지기 전까지 칼을 휘둘러 댔다.

스승은 그에게 말했다.

‘넌 재능이 없다.’

그럼에도 강글라티는 멈추지 않았다.

칼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스승이 생을 다하고, 함께 무기를 잡았던 친구들이 대가(大家)라고 불릴 때도, 강글라티는 고수의 반열에도 들지 못했다.

수십 년을 투자했지만, 검의 끝은 너무 멀었다.

대가라 불리던 친구들 중에는 무기를 놓고 왕이 된 이도 있었고, 장군이 된 이도 있었다. 이미 생을 다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강글라티는 늙어 허리가 휘었을 때도 검을 휘둘렀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철로 된 칼을 들 수 없을 때가 되었을 때, 그는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수천만 번 반복한 그의 검로는 그제야 좀 쓸 만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는 결국 검의 끝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쓸쓸한 죽음이었다.

‘하지만 헬께서는 내게 다시 기회를 내리셨다.’

망자가 된 뒤에도 검을 휘두르던 강글라티는 헬의 눈에 띄었다.

헬은 강글라티에게 말했다.

‘내 시녀 중에 너와 비슷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느리지만 확실하지. 너 역시 그러한가?’

강글라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헬은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좋으니 만족스러울 때까지 검을 휘두르라 했다. 강글라티는 수십 년을 더 검을 휘둘렀다.

그러고서야 생전 천재라 불리던 자들도 강글라티에게 경의를 표했다.

강글라티는 멈추지 않았다.

‘…수백 년.’

그는 수백 년을 검만 잡고 살았다.

그러던 와중 앙큼한 시녀의 꾐에 넘어가 결혼도 했지만, 부부는 서로 바빴다. 헬의 시중을 드느라, 검을 휘두르느라.

그리고 마침내, 강글라티는 모든 망자들 중 가장 검을 잘 쓰는 이가 되었다.

그제야 강글라티는 헬에게 은혜를 갚고자 했다.

헬이 말했다.

‘너는 나의 검이 되어, 내 땅을 침범하는 이들을 무찔러라.’

군단장 자리를 받았다.

강글라티는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왔다.

오늘까지는 말이다.

부우웅! 챙!

“크흐…….”

강글라티가 이를 악물었다.

찌꺼기들의 군세는 거대했고, 그 군세를 이끄는 자는 찌꺼기들의 대장군이었다. 왕급 바로 아래에 있는 대장군.

육지대장군이라 불리는, 사자 머리를 한 찌꺼기다.

그 찌꺼기는 팔이 여섯 개나 달려 있었고, 심장이 셋이나 되는 괴물이었다.

“크흐흐, 최강의 망자도 별수 없는가? 얌전히 길을 터라, 강글라티!”

“허… 내 영혼이 바스러질지라도, 물러설 수 없다.”

“쯧쯧, 너 정도 되는 검사를 죽이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야… 뭐, 어쩔 수 없지.”

히죽 웃은 육지대장군이 팔을 들어 올렸다. 여섯 개의 팔에 쥐어진 무기는 각각 뛰어난 거인족 장인들이 만들어 낸 것들이었다.

강글라티가 이를 악물었다.

‘…역시나 무스펠헤임에서 이들을 돕는가!’

진작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눈으로 확인하니 느끼게 되는 것이 또 달랐다. 강글라티가 검을 곧추세웠다.

헬이 내린 검이다. 서늘한 한기가 감도는 보검은 무수한 격전에도 방금 날을 벼린 것처럼 날카로웠다.

“너 혼자 여길 막겠다는 건 무리였다, 강글라티.”

“…헬의 영지를 더럽히는 꼴을 두고 볼 순 없다.”

“흐흐흐, 그래 봐야 절반밖에 못 막았지만 말이지. 자, 그만 죽어라! 그리고 내 양분이 되어라!”

칼날들이 날아든다.

여섯 개의 팔로 휘두르는 검격은 보통이라면 절대 막을 수 없는 경로를 그려 냈다.

강글라티는 천천히 검을 움직였다.

“허! 힘이 빠진 건가!”

“아니, 아직 미완성인 것을 함부로 쓰지 않았던 것뿐이다.”

이미 많은 상처를 입었다. 이대로 싸움이 계속된다면 남는 것은 패배뿐.

미완성이든 뭐든 써야만 했다.

카가가가강!

여섯 개의 무기와 하나의 검이 부딪혔다.

강글라티의 검은, 급류에 휩쓸리는 연어처럼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멈춘 적이 없었다. 늘 정진해 왔고, 그를 닮은 미완의 비기를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

‘느린 검.’

이름조차 단순하기 그지없는 비기다.

하지만 그 검에 담긴 경험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카강! 카가강!

연어가 천천히 강을 거슬러 오른다.

몸을 짓누르는 급류에도 지느러미를 움직인다.

마침내, 연어는 거친 강물을 뚫어 냈다.

“뭣?”

서- 걱!

느린 검격이 모든 공격을 튕겨 내고 육지대장군의 가슴팍에 기다란 자상을 남겼다. 쩌저적- 그 상처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육지대장군이 뒷걸음질 쳤다.

“크르릉……!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사자가 으르렁거렸다.

강글라티는 제 손에 남은 감각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런 것이던가.”

조금만 빨랐으면 좋았을걸. 그랬다면…….

으아아악- 바깥에서 비명을 내지르는 헬의 군단을 잃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끄아아아- 비명이 한층 더 거세지고, 강글라티가 눈썹을 찌푸렸다.

“어서 끝내자. 여왕 폐하의 병력을 더 잃을 수는 없으니.”

“크르릉… 날 너무 쉽게 보는군…….”

“글쎄, 이미 승패는 난 것 같군.”

강글라티가 피식 웃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자잘한 상처가 많아 넝마처럼 보이는 강글라티. 그리고 멀끔하지만, 가슴이 깊게 파인 육지대장군.

마침내 승패를 결정 난다.

“…커억?”

푸욱!

“대장군! 괜찮으십니까?”

“오, 오오! 불루프! 자네가 날 구했군!”

강글라티는 제 가슴팍에 박힌 창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방해가 들어왔다.

푸른 털을 가진 늑대 머리 찌꺼기. 장군급이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난 언제나 한발 늦는군…….’

강글라티가 눈을 꾹 감았다.

치명상이다. 망자인 만큼 더 싸울 수는 있으나 지지부진한 싸움 끝에 남는 것은 패배리라.

강글라티는 헬을 따라 명협 회의에 간 아내가 떠올랐다.

‘강글로트… 여왕 폐하를 잘 부탁한다.’

눈을 꾹 감고 운명을 받아들였다. 이 와중에도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육지대장군이 킬킬 웃음을 흘렸다.

“이거, 상황이 역전됐군그래? 어디 여섯 개가 아니라 일곱 개도 막을 수 있나 보자! 불루프! 날 도와라!”

“옛!”

쐐애애액!

무기들이 쇄도한다.

강글라티는 입술을 씹으며 재차 ‘느린 검’을 선보였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깊은 상처를 입었고, 한쪽에서 쳐들어오질 않는다.

느릿한 검격은 등을 훤히 내주었다.

“죽어랏!”

푸른 늑대 머리를 한 찌꺼기가 창을 내질렀다.

강글라티는 이를 악물었다.

최후를 직감했다. 하지만…….

채앵!

“후우, 큰일 날 뻔했네요.”

발키리 하나가 날아들었다.

강글라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라호드 님? 여긴 어찌……?”

“못 들으셨어요? 오디슨이 오딘의 명을 받았어요.”

“제 말은 그게 아닙니다! 어째서 여기에……?”

이라호드가 피식 웃었다.

“오디슨 성격 알잖아요.”

강글라티도 피식 웃었다.

“보낸 놈은 얼차려 좀 시켜야겠군요.”

안 되면 되게 하라.

강글라티가 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온 말이다. 그런 만큼 그는 군단에도 그런 좌우명을 적용했다.

“그런데 오디슨 님은?”

“비명 못 들었어요? 밖에서 설치고 있잖아요.”

강글라티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아까 들은 비명이 군단 병사들이 내놓던 것이 아니라니!

이라호드가 창을 움켜쥐며 말했다.

“일단 저도 도울게요.”

“그래 주신다면야, 감사합니다.”

강글라티가 검을 치켜들었다.

치명상을 입은 상태지만, 이라호드가 참전한다면 승산은 있다.

육지대장군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크르릉……! 승리가 코앞이었거늘! 불루프! 가세해라! 인간의 시대를 열기 위해!”

육지대장군이 외쳤으나, 푸른 늑대 머리를 한 찌꺼기는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홀로 읊조렸다.

“오디슨…….”

나지막한 소리는 전쟁의 굉음에 삼켜져,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 * *

망자는 침울한 상태다. 그래서 외부의 자극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

언제나 잠에 취한 듯 멍하고, 언제나 연인에게 버림받은 듯 우울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끄아아악!”

정신이 확 들 만한 고통이 뇌리를 관통했다.

헬의 군단, 망자로 이뤄진 군대는 찌꺼기들의 습격에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보통 병사 계급이라면 망자들도 충분히 잡아낸다.

하지만 전사부터가 문제였다.

“불쌍한 자들아! 내가 너희들을 구원해 주마!”

“먹어서 구원하자! 킥킥킥!”

찌꺼기들이 낄낄거리며 군단을 밀어붙였다.

군단장인 강글라티가 대장군과 싸우고 있을 때, 군단은 처참하게 당하고 있었다.

창과 방패를 든 망자 하나가 이를 악물었다.

“모여! 모두 원형진을 이뤄!”

진을 이뤄 상대하면 집단전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 혼자 싸울 것을 여럿이 상대하니 아무래도 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평범한 적들이라면 또 모를까, 온갖 기괴한 꼴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놈들이다.

콰앙!

옹기종기 모인 진에 커다란 공 하나가 들이박는다. 창칼조차 박히지 않는 둥근 철구였다.

“으아악! 내, 내 다리!”

“다리는 나중에 고쳐! 영혼이잖아! 근성으로 이기라고!”

“끄아아아아……!”

근성이 넘치는 망자 따위는 없다.

의지와 근성을 강조하는 망자들도 같은 상황이 되면 비명 지르리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망자의 고통은 영혼의 고통. 견뎌 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흐흐흐……!”

철구가 기지개를 켠다.

그 정체는 커다란 아르마딜로. 전사급 찌꺼기였다.

놈이 입맛을 다시며 망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아!”

“으, 으으으! 싫어! 싫단 말이야!”

망자가 비명 지르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아르마딜로는 그저 앙- 하고 입을 쩍 벌릴 뿐.

망자는 무저갱 같은 입안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아! 헬이시여……!”

기도를 올릴 때, 그 입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아니,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커다란 덩어리.

“으읍?”

“그렇게 먹는 게 좋다면, 내 창을 먹여 주마!”

푸욱!

병사와 아르마딜로 사이에 뛰어든 괴상한 몰골의 늑대인간이 창을 내질렀다.

“커어… 커어억!”

목덜미로 삐죽 튀어나온 창.

털썩, 망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르마딜로에게서 뛰어내린 늑대인간은 그르렁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난장판이로군.”

“당신은?”

망자가 물었다.

늑대인간은 물음을 무시하고 제 질문을 던졌다.

“여긴 누가 지휘하지?”

“어… 그게…….”

망자가 머뭇거렸다.

지휘관은 이미 저쪽에 있는 괴물들에게 찢겨 간식거리가 됐다. 그 덕에 지휘 체계가 엉망이었다.

늑대인간이 쯧- 혀를 찼다.

“그렇다면, 내가 지휘하지. 나를 따르겠는가?”

“어, 어어…….”

“말해라!”

망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따르겠습니다!”

늑대인간이 고개를 끄덕이고 고함질렀다.

“나는 지휘에 있어 첫 번째 자리에 앉는 자! 모든 망자들이여! 나를 따르라!”

그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번뜩였다.

늑대인간은 그를 확인하고 흐흐흐- 웃었다.

〈삼ㅂ#$ 첫 번째 자리 쟁취한다.〉

《금반지를 부수니, 오십네 조각.》

짐작이 맞았다.

에인헤랴르 순위에 따라 이끌 수 있는 무리가 더 커졌다.

늑대인간, 아니 오디슨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쉰넷이라… 약간은 적은 것 같지만……. 쿨럭!”

오디슨이 피를 토했다.

영혼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집중이 흐트러졌고, 변이가 사라졌다.

그의 잘생긴 얼굴이 돌아왔다.

-끼이이잇!

악령이 일렁인다.

척 봐도 보통 상황이 아니다.

망자가 오디슨을 알아봤다. 흠칫 놀란 그가 황급히 오디슨을 부축했다.

“오디슨 님?! 괜찮으십니까?!”

“아… 아아, 괜찮다. 전사의 의지는 겨우 이까짓 것에 굴복하지 않나니.”

입가를 쓱 닦은 오디슨이 창을 번쩍 들고 고함쳤다.

“나는 물푸레나무 부족의 붉은 늑대, 오디슨이다! 나를 따르라!”

커다란 소리에 망자들이 시선을 던졌다. 오디슨이라는 이름에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헬의 반려 될 자에게 영혼을 맡겼다.

54명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하나가 된 듯한 느낌에 오디슨이 씩 웃었다.

“가자!”

창을 움켜쥐고 외쳤다.

가장 앞서 달리는 한 사람과 54명. 그 뒤로 군단이 따라붙었다.

늑대 무리는 늑대 떼가 되었다.

격노가 차가운 헬하임을 뜨겁게 달궜다.

반격의 시작이었다.

‘그러니 조금만 더 버티면…….’

누구도 오디슨이 손을 덜덜 떨고 있다는 걸 몰랐다.

영혼을 불사르는 고통은 의지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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