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61화. 영웅은 시험 받는다 (2)
발할라로 돌아오자마자 밀실을 찾았다.
판도라는 말했다.
‘하지만 하계에서 저걸 여는 건 참아 주세요. 인간들은 이미 많이 고통스러우니까요.’
이전에 세상에 퍼졌다는 것이 ‘지식’이다.
지금 남은 것? 크게 문제 될 것 같진 않다. 정말 위험한 것이었다면, 그 동굴에 판도라가 아니라 듬직한 수호자를 뒀으리라.
하지만 괜한 사건을 만들고 싶진 않다.
무지몽매한 자들이 유피테르에게 속아 인류에게 지식을 전달한 판도라를 핍박했듯, 오해는 가끔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흐음, 어디로 가야 할까?”
안타깝게도 내가 아는 곳이 많지 않다.
생각을 거듭하자니, 한 장소가 뇌리를 스쳤다.
“그래, 거기면 되겠군.”
내가 알기로, 발할라에서 가장 황폐한 곳이다. 동시에 가장 인적이 드문 곳이다. 게다가 밀폐된 곳이다.
정말이지 완벽한 조건 아닌가!
나는 그곳을 빌렸다. 아니, 빌린 건 아닌가?
쾅쾅!
“까악까악!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하는 거냣! 넌 아직 투기장에 오면 안 된단 말이다악!”
메르키가 문을 두드리며 고함을 내질러 댔다.
U500의 투기장 대기실에 딸린 훈련장.
운동기구 하나 없는 곳이다. 바닥은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아 울퉁불퉁하고, 갖가지 돌덩어리들이 발에 챈다.
개중 가장 큰 바위에는 갈색 얼룩이 선명하다. 내가 훈련하며 흘린 피가 저렇게 변색된 것이다.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처음 이 돌덩이를 들 때는 죽을 만큼 힘들었건만.”
피식 웃고, 돌을 툭 걷어찼다.
그건 꼭 돼지 오줌보로 만든 공처럼 가볍게 날아가 쿵- 묵직하게 떨어졌다.
내가 강해지기 시작한 곳.
그러니 항아리를 열어 힘을 얻기에 적합한 곳이다.
철컥철컥!
잠긴 문이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메르키가 문을 열려는 모양이었다.
몇 번이나 말했거늘. 재차 경고했다.
“메르키! 절대 함부로 문을 열지 마라!”
“까아아악! 뭐 하는 짓이냣! 이그나르 놈의 가게로 꺼져랏! 까악까악”
“경고했다, 메르키. 나는 오딘께 받은 시험을 해결할 참이니, 함부로 문을 열지 마라.”
오딘의 이름에 메르키가 외치는 소리가 확 줄어들었다.
메르키는 좋은 녀석이지만, 너무 시끄럽다. 어쨌거나 경고를 확실히 했으니 문을 열진 않겠지.
나는 심호흡을 하고 항아리 입구를 감싼 봉인에 손을 댔다.
“후우. 도대체 마지막까지 남은 것이 뭐지? 오딘께서 찾으라 하셨으니 찾기는 했다만… 어떤 지식인가?”
비전의 지식, 혹은 금단의 지식을 통해 신비한 힘을 얻는 이야기는 꽤 들어봤다. 주술사 영감은 늘 그 이야기의 끝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처럼 허락되지 않은 것을 탐하다간 끔찍하게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 버린다.’
늘상 지루한 소리만 늘어놓던 영감이다. 하지만 난 그 영감이 그립다. 그러니까 영감의 말을 무시했다.
부족민들을 다시 보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큭큭, 웃으며 중얼거렸다.
“기다리시오, 영감. 내 화려한 모험담을 들려줄 테니.”
오딘만 하시더라도, 여드레간 목을 매다시고 마법의 극의를 깨우치셨다.
위험의 끝에 달콤한 보상이 있는 법이다.
“…그 정도로 오래 걸리지 않기를.”
부욱!
항아리의 봉인을 뜯었다.
휘잉-! 그 속에서 푸른 덩어리 하나가 튀어나온다. 새벽빛을 닮은 덩어리는 빛이 되어 훈련장 안을 가득 채웠다.
눈이 부셨다.
“으음?”
그게 다였다.
눈을 끔뻑이자니, 푸른 빛이 점차 모여들었다. 그 빛은 다시 푸른 덩어리가 되었다. 덩어리에 뿜어져 나오던 빛이 완전히 사그라들고, 형체가 선명해졌다.
새파란 색의 사과가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바다보다 짙고 하늘보다 투명한 사과. 힘을 다한 사과가 툭- 바닥에 떨어졌다.
홀린 듯 사과를 집어 들었다.
* * *
위그드라실 최상부, 오딘의 왕좌가 있는 대전 앞.
화려하다기보다는 휑한 곳이다. 거대한 세계수의 가장 위쪽 가지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곳에서 토르와 티르가 마주쳤다.
“음, 티르?”
“토르? 어쩐 일이지?”
티르의 물음에 토르가 멋쩍게 웃었다.
운명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다. 운명을 뒤틀려 애쓰는 누군가 때문에 운명이 당겨지는 일이 잦다.
티르는 그 웃음을 어찌 이해했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너도 봤는가?”
“아무래도 끔찍한 일이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던가?
토르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침중한 투로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군, 티르도 운명에 대해 알고 있어서.’
토르가 안도할 때, 티르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는 입술을 질끈 씹고서 넥타이를 느슨하게 했다.
“내 오딘께 따져 물어 해결책을 들어야겠다.”
해결책? 토르가 눈을 끔뻑이는 찰나, 티르가 곧장 문을 벌컥 열었다.
주변을 지키던 발키리들이 제지하려 했으나, 아스가르드 3주신 중 둘을 막아 낼 순 없었다.
“무슨 일이더냐.”
흘리드스캴프에 앉아 후긴과 무닌의 머리를 쓰다듬던 오딘이 눈썹을 씰룩인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티르가 움찔 몸을 떨었다. 언제나 소름 돋는 시선이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대뜸 질문을 던졌다.
“이거 보십시오, 이거! 대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티르는 태블릿PC 하나를 떡하니 내밀었다. 그 화면에는 신계 연맹 커뮤니티의 게시글 하나가 떠 있었다.
헤르메스가 작성한 기사다.
[오디세우스 살인 혐의 극구 부인! 판도라의 행방은?]+8
오딘의 회색 외눈이 좁아진다.
티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명 오딘께서 내리신 시험이 아닙니까? ‘온 세상 모든 악의(惡意)가 담긴 항아리를 찾아라!’ 그 결과가 어찌 됐습니까? 오디슨, 그놈이 올림포스 영역에서 대역죄인을 풀어 줬습니다. 이제 이를 어찌 수습하실 겁니까? 네?”
오딘은 피식 웃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손을 저었다.
“별일 아니다.”
“아니, 별일 아니라고 하면 끝나는 일이면 참 좋겠습니다. 들키는 순간 곧장 올림포스에서 오디슨의 인도를 요구하지 않겠습니까? 오딘께서 오디슨을 올림포스에 넘겨주실 겁니까?”
“오디슨을 왜?”
오딘은 여전히 무덤덤한 태도였다.
티르가 가슴팍을 탕탕 치며 분을 터트렸다.
“전쟁!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말에 토르가 움찔 몸을 떨었다. 티르는 목석같은 오딘을 내버려 두고 그 아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눈빛으로 티르가 물었다.
‘뭐합니까? 안 끼어들고?’
마침내 토르가 입을 열었다.
티르가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아버지, 전쟁은 어차피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더냐. 노른들이 얌전히 알려 주든? 그 괴팍한 것들.”
오딘은 투덜거리며 노른들을 욕했다.
토르는 그 범상한 태도에 안심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그 항아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게 뭡니까, 아버지.”
“흐음, 쓸 만한 질문이구나.”
고개를 주억인 오딘은 문제 하나를 냈다.
“모든 항아리에 무언가를 담아 두면, 가장 아래에는 뭐가 남지?”
토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물 항아리 가장 아래에는 뭐가 남나? 가라앉은 먼지와 물때. 그렇다면 포도주의 가장 아래에는? 가라앉은 포도 찌꺼기.
이 세상의 가장 아래인 니플헤임에 찌꺼기들이 남는 것과 같다.
“침전물입니까?”
“오, 내 아들이 오늘은 머리를 굴리는구나.”
낄낄- 오딘이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주름진 얼굴에 기대가 선명하게 떠올랐고, 홍조가 피어났다.
오딘은 다시 문제를 냈다.
“분명 그 항아리에는 온갖 악에 대한 지식이 들어 있었다. 그 악의 침전물은 무엇이겠느냐?”
“…그건.”
물 아래 남는 먼지와 물때는 물은 아니다. 포도주 아래 남는 포도 찌꺼기 역시 포도주는 아니다.
좋은 것에서 나온 나쁜 것들이다. 그렇다면 나쁜 것의 맨 아래에는……?
‘반대로인가!’
토르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나쁜 와중에서 생겨나는 좋은 점입니까? 이를 테면, 역경을 견디고 태어나는 ‘발전’이라던가?”
“흠,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알기로 올림포스 녀석들은 거기에 남은 것을 ‘희망’이라 불렀지.”
희망! 말만 들어도 진취적이고 파릇파릇한 새싹 같은 느낌이다.
토르의 얼굴에 걸린 희색이 더 짙어졌다. 이 정도라면 아무런 걱정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오딘은 그리 친절한 신이 아니다.
오딘이 웃으며 말한다.
“허나 그건 거짓말이다.”
토르의 머리가 덜컥 멈췄다.
오딘이 킥킥거린다.
“포도를 가득 담은 항아리 아래에는 포도주가 생기고, 우유를 가득 담은 가죽 주머니 아래에는 치즈가 생기는 법.”
“예?”
“위에 쌓여 있던 것과 상반된 게 나올 수는 없단 의미다.”
토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표정을 보며 재밌어하던 오딘이 마침내 답을 내놓는다.
“헛된 희망. 가장 비참한 죄악이지.”
희망 앞에 ‘헛되다’라는 말이 붙어 버리면 끔찍한 어감이 된다.
오딘은 그러거나 말거나 제 할 말을 계속해서 이어 갔다.
“질병, 슬픔, 가난, 전쟁, 증오. 그것들의 농액이 모인 희망이란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노른들과 비슷한 가성으로 노래하듯 읊조린다.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부르는 곡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질병의 고통에서도 몸을 추스르지 않고, 지독한 슬픔에도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다. 가난하건만 아무것도 없이 풍요로워질 거라 믿는다. 싸움의 와중에 화살은 나를 피할 거라 생각한다. 증오의 끝에 행복이 있을 거라 낙관한다.”
낄낄낄.
오딘은 언제였던가, 올림포스가 위기에 몰렸을 때 제우스가 그걸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직, 내게는 ‘희망’이 있다! 절망하라, 포부 없는 겁쟁이들아!’
‘홀로 신계합종군의 절반을 끝장냈지.’
끔찍한 힘이었다. 제우스는 스스로 붕괴하면서도 지독한 저주를 남겼다.
그 저주에 중독되었다고 느낀 순간, 회귀한 것이 또 몇 번이던가?
오딘은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이걸로 최악의 수, 하나를 지웠다.”
토르의 안색이 나빠졌다.
티르는 지금 이 둘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토르는 티르의 표정까지 살필 여유는 없었다. 그가 입술을 짓씹었다.
묻는다.
“그렇다면…….”
“그래. 그것에는 헛된 희망, ‘맹신(盲信)’이 담겨 있다.”
사람이 무언가를 맹신하면 어찌 되는가?
모든 사실을 부정하고 고집 피운다.
그 결과, 병을 고칠 때를 놓친다. 슬픔을 외면하고, 가난 속에서도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맹신은 전쟁도 마다하지 않으며, 맹신은 증오의 씨앗이다.
끔찍한 최후의 죄악이다.
토르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그걸 흡수하면 어찌 됩니까?”
“약간이라면야 조금 고집 센 희망이겠지. 다른 사람 말을 잘 안 듣고, 제 말만 옳다고 우기는.”
토르는 답답했다.
지금 묻는 게 그게 아니다. 분명 오딘도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 저런 태도라니!
토르가 따져 물었다.
“모두 흡수하면?”
“흐음, 보통은 미치광이가 되지만…….”
토르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의 뇌리에는 한 가지 단어가 자리 잡았다.
‘라그나로크!’
오디슨이 미치면 헬이 분노할 테고, 헬의 분노는 로키스 패밀리 전체로 옮으리라.
토르는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
최악의 사태다.
* * *
“헉헉헉!”
이라호드는 땀방울을 흩날리며 달렸다. 그녀의 찬란한 금발이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짓씹고 달릴 뿐.
‘당장 오디슨을 찾아! 항아리에 든 걸 흡수하지 못하게 해! 그걸 흡수하면 미친단 말이야! 서둘러!’
토르가 헬에게, 헬이 이라호드에게 전달한 일이다.
다급한 이라호드는 자주 쓰지 않던 기능을 사용했다.
“제발!”
발할라에 온 모든 전사들의 몸에 박혀 있는 GPS. 거친 전사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박아 둔 위치 추적 장치.
이라호드는 언제나 그게 껄끄러웠다. 인권 침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갈증에 마시는 감로수처럼 절실했다.
“찾았다!”
투기장, 최하급 대기실의 훈련장. 과연 오디슨이 찾을 법한 곳이었다.
이라호드는 청동 날개를 펼쳐 쏜살처럼 날았다. 발할라 내 비행 제한 속도를 어겼다. 무시했다.
그깟 속도위반 딱지, 몇 번이라도 내줄 수 있다.
‘제발! 아직 괜찮기를!’
이라호드가 투기장 앞에 착지했다.
쿵! 커다란 굉음에 투기장 앞에 있던 사람들이 움찔 떨었지만, 이라호드는 곧장 투기장 대기실로 향했다.
그리고 메르키를 만났다.
“까악까악!”
훈련장의 문 앞에서 서성이는 메르키.
이라호드는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메르키 공! 오디슨, 오디슨은요?!”
“까악? 이라호드! 마침 잘 왔다, 네가 이 자식을 밖으로 좀 내보내라!”
“오디슨이 이 안에 있어요?”
“까악! 그렇닥! 오딘께서 어쩌고 하면서 못 들어가게 한닷!”
이라호드가 눈살을 와락 구겼다.
벌써 열어 버린 것인가!
‘왜 그렇게 성질이 급한 거야!’
이라호드는 대뜸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메르키가 고개를 갸웃할 때, 그녀가 달렸다.
쾅!
바닥을 박차고 그대로 뛰어올라 문을 걷어찼다.
콰지지직!
공성추 같은 발차기에 문짝이 그대로 박살 났다.
“까아아악?! 뭐, 뭣 하는 짓이냣!”
“급해서요, 죄송해요! 오디슨? 오디슨! 괜찮아요?”
이라호드가 다급하게 문짝을 뜯어내고 오디슨을 불렀다.
그녀의 눈이 훈련장 한가운데 있는 항아리로 향했고, 멍하니 서 있는 오디슨을 발견했다.
“오디슨!”
꽥 소리칠 때, 오디슨이 이라호드를 바라보았다. 넋을 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라호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벌써 미쳐 버린 건가?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만일 그가 정말로 미쳤다면?
‘그러면……?’
이라호드는 머뭇거리며 무어라 말을 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라호드? 어쩐 일로?”
오디슨은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끔뻑였다.
후우- 이라호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항아리는요?”
“아, 사과가 하나 나오더군.”
“사과요?”
오디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너무 맛있어서 입맛을 다시던 참이다.”
“…맛있었다구요?”
“음, 그래. 그런데 딱히 바뀐 건 모르겠군. 분명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살짝 상했나? 배가 꾸륵거리는군.
오디슨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제 배를 쓰다듬었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고? 이라호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항아리에 든 것은 올림포스 영역 전체를 오염시킬 정도로 강력한 악이라고 들었는데? 아무리 신성을 지녔다고 한들, 괜찮을 리가 없어!’
이라호드가 인상을 구기고 오디슨을 더듬었다.
어디 한 곳 잘못된 곳 없나 살피는 손길. 세심하면서도 빨랐다.
그녀의 바쁜 손길에 오디슨이 떨떠름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볼을 긁적이다 말했다.
“…이라호드, 나는 적극적인 여자가 좋다.”
뜬금없는 소리에도 이라호드는 오디슨을 더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알아요. 크레네를 날름 삼켰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좀 과하군.”
“네? 무슨…….”
오디슨이 크흠- 헛기침을 하고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문이 박살 난 탓에 화난 표정을 짓고 있는 메르키가 있었다.
“까악! 이게 뭐하는 짓이냣! 발키리 본부에 신고할 거닥!”
오디슨이 어깨를 으쓱이고 툭 내뱉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짓을 할 정도로 철면피는 아니다.”
이라호드의 볼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입이 쩍 벌어지고 눈이 마구 흔들렸다. 입술이 무언가 말을 찾았다.
어이가 없다. 당장 말이 튀어나오질 않았다.
“아니, 그……!”
그녀가 꽥- 소리치려는 찰나, 오디슨이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움찔 이라호드가 몸을 떨었다. 뒤늦게 뭐가 잘못된 건가?
그녀가 소리쳤다.
“오디슨? 어디 아파요? 오디슨!”
오디슨은 그대로 쓰러져 웅크렸다.
이라호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디슨을 부축하려 했다. 하지만 오디슨은 다른 소리를 내뱉었다.
“전쟁의 승자를 결정하시며, 마법의 극의에 닿으신 분! 영혼을 부리시는 위대한 분이시여! 모든 인간들의 아버지께 이 아들이 인사를 올립니다!”
오디슨은 쓰러진 게 아니라 부복한 것이었다.
“어?”
이라호드가 눈을 깜빡이다 뒤를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외눈박이 신, 오딘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도 황급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회색 외눈을 빛내며 오디슨을 살피던 오딘이 물었다.
“한계를 잊고 스스로를 맹신하는 힘을 얻고도 모르겠다?”
오디슨은 차마 무어라 대꾸할 수 없었다.
뭔가 간질간질한 게 있긴 한데, 이게 대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사과가 상해서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했으니.
“그렇다면 가라. 네가 얻은 것을 쓰기 가장 좋은 곳으로.”
오디슨이 물었다.
“그것이 어디이옵니까?”
“형체 없는 영혼도 얼어붙어 형체를 지니는 곳.”
오딘이 대꾸했다.
“니플헤임.”
기반이 될 체(體)의 시험은 끝났다. 오디슨은 최악의 악을 집어삼키고도 멀쩡했고, 무한한 가능성을 얻어 냈다. 그렇다면 다음 시험, 청사진이 될 심(心)의 시험에도 상이 있어야 하리라.
오딘이 덧붙였다.
“너는 바라던 것을 얻으리라.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그게 두 번째 시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