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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발할라-60화 (60/208)

# 60

60화. 영웅은 시험 받는다 (1)

동굴 안에 비명이 메아리쳤다.

“끄아아악!”

“시, 신벌이 두렵지도 않으냐!”

비겁자들이 하는 말은 내 귀를 가렵게 했다. 그들의 경고는 전혀 무섭지 않다.

“비겁한 신의 벌 따위, 두렵지 않다!”

창을 내질렀다.

심장을 꿰뚫은 창에 그 잘난 신을 외치던 이가 침묵한다.

덜덜 떨고 있던 이들의 얼굴에 절망이 스민다.

“으, 으어! 으아아악!”

“미, 미친놈!”

겨우 둘 남았건만, 이제야 도망을 치겠다? 이 좁은 동굴에서 날 벗어날 길은 없다.

놈들은 달렸지만, 나는 날았다.

훌쩍 뛰어올라 동굴 벽을 박차고 덮쳤다.

“으악!”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꽈드득!

목을 돌렸다.

이제 앞을 보지 못할 이가 그대로 나동그라진다. 마지막 생존자는 일행이 모두 죽었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비겁한 꼴로 도망치는구나!”

“으아! 으아아! 꺼, 꺼져!”

홱! 모래를 뿌리는 놈.

나는 그에 눈살을 구기고 창을 던지려 했지만…….

“그만! 제발, 그만하세요……!”

판도라가 내 허리춤을 감싸며 막아섰다.

나는 그녀를 보고 미간을 좁혔다.

“어째서지? 저런 쓰레기 같은 작자들은 모조리 쳐 죽여야 한다.”

판도라가 고개를 저었다.

“제 죄는 이미 너무 커요. 더 이상 죄를 짓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제발… 그만하세요.”

못마땅하다.

이 여자는 너무 물러 터졌다.

“이 섬에 있는 마을을 모조리 불사를 생각이건만!”

“안 돼요!”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저 작자들은 또 너를 괴롭히러 올 거다. 그래도 좋은 건가?”

판도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무르다. 너무 무르다. 괴롭힘은 싫고, 가해자를 죽이는 것도 싫다?

도대체 어쩌란 건가.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최후의 생존자는 도망쳤다.

복잡한 심경으로 판도라를 바라보았다.

“당하는 게 싫고, 죽이는 것도 싫다면… 차라리 도망쳐라. 전사의 마음가짐은 아니지만, 도망이 무조건 나쁘다 할 생각은 없으니.”

“하지만 저는…….”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건가? 이 동굴이 무언가 중요한가? 내가 항아리를 들고 가면 이제 여기에는 남아 있을 필요도 없지 않나.”

판도라가 머뭇거리며 대꾸했다.

“하지만 제 죄가…….”

이 여자의 죄?

눈살을 구기며 물었다.

“정확히 네 죄가 뭐지?”

“이 세상에 죄악을 풀어놨죠. 제우스께서 선물하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감히 신의 명을 어겼어요.”

판도라는 그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픈지, 손을 덜덜 떨어 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잘 들어라, 판도라.”

판도라가 날 바라본다.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에게 가르쳐 주었다.

“네가 풀어 놓은 것은 죄악이 아니다.”

“…그게 무슨…….”

이 여자는 간단한 것도 모른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호기심을 선물 받았다고? 호기심이 불러오는 게 죄인가?”

아니, 고개를 저었다.

“호기심이 불러오는 건 죄악이 아니다. 지식이다.”

궁금증을 풀고자 이런저런 짓을 하다 보면, 지식이 생기는 법이다.

나는 항아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담겨 있던 것은 이해할 수 없던 일들에 대한 지식일 뿐이다.”

“하지만 신들께서는…….”

판도라의 말을 무시하고 이었다.

“아프지만 병이라는 걸 몰랐을 거다. 아무것도 없지만, 가난이라는 걸 몰랐을 거다. 눈물을 흘리지만 왜 그런지 몰랐을 거요, 다툼을 벌이지만 그게 전쟁인 줄 몰랐겠지.”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건 틀린 이야기다.

겁쟁이의 방식이다.

“현실을 외면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아는 것이 힘이다.

판도라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나는 그녀의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그러니까, 너는 죄인이 아니다.”

마침내, 판도라가 눈물을 떨궜다. 슬픔이라는 걸 몰랐을 때는 저 눈물을 이상하게 느꼈으리라.

하지만 슬픔이라는 걸 앎으로서 눈물이라고 꼭 슬플 때만 나오는 게 아님을 알았으리라.

“오디세우스, 당신은…….”

고개를 저었다.

이 불쌍한 여자에게 더는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다.

쓴웃음을 머금고 사실을 밝혔다.

“난 오디세우스가 아니다.”

“네, 네? 그, 그럼……?”

어깨를 으쓱이고 대꾸했다.

“그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전사라고 알아 둬라.”

* * *

판도라는 오랜만에 마음이 편했다. 늘 그녀를 따라다니던 가슴 통증이 사라졌고, 늘 지끈거리던 머리도 아프지 않다.

그 이유는 안다.

‘…오디세우스, 아니,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전사.’

영웅을 사칭한 전사는 판도라에게는 있어 진짜 영웅이었다.

그가 바다로 나아갔다. 투명하게 변한 몸이지만, 바다 물결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알려 주었다.

배웅 나온 판도라가 크게 소리쳤다.

“잘 가요, 오디세우스!”

그 소리에 물결을 가로지르던 무언가가 멈췄다.

얼마 만인가? 판도라가 킥킥 웃었다.

전사는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아마 난 오디세우스가 아닌데- 하고 당황하지 않았을까?

판도라는 그렇기에 한 번 더 크게 외쳤다.

“고마워요, 오디세우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라면, 차라리 다른 이름을 외치는 게 도움이 될 터.

판도라의 목소리가 파도 소리를 뚫고 섬 전체에 퍼졌다.

전사는 다시 물결을 가르고 사라졌다.

“아…….”

갔다.

그가 사라진 바다를 보던 판도라는 뒤를 돌아 섬을 바라보았다.

작은 섬. 여기에 몇백 년이나 갇혀 있었다.

이 섬은 지겹고 끔찍하다. 좋은 추억 따위는 하나도 없다.

‘그분이 오신 바다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제우스에게 받은 호기심이 일렁였다.

판도라의 눈에 작은 고깃배가 보였다. 평소라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배다.

‘이제까지 당신들이 내게 한 짓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세요.’

판도라가 고깃배 위에 몸을 실었다.

뒤늦게 판도라를 쫓아온 마을 사람들이 소리쳤다.

“저년! 저년 잡아라!”

“살인자 같으니! 그 오디세우슨가 하는 놈은 어딜 갔지?! 제우스의 천벌이 너희를 벌할 것이다!”

온갖 저주가 날아들었다.

그에 판도라는 빙그레 웃으며 외쳤다.

“나는 떠날 거야! 이 바보 같은 자식들아!”

해맑은 미소로 그들을 욕했다.

그녀의 항해가 시작됐다.

먹거리도, 마실 거리도 하나 준비하지 않고 뛰어든 항해다.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게다가 신의 저주를 받는 판도라다.

콰르릉! 쾅쾅!

며칠 지나지 않아 바다가 그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폭풍우가 내리쳤고, 바람이 배를 뒤흔들었다.

판도라가 이를 악물었다.

‘포세이돈! 그자가 날 막아서는구나!’

판도라는 포세이돈에게 바다처럼 깊은 인내를 받았다. 하지만 몰아치는 폭풍우는 그 인내로도 헤쳐 나갈 수 없었다.

폭삭 젖은 판도라는 전사의 말을 떠올렸다.

‘현실을 외면해서는 나아갈 수 없다.’

며칠이나 지났음에도 바로 방금 일처럼 또렷한 목소리.

판도라는 기도를 올렸다.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기도가 아니다. 그런 나약한 마음은 델로스섬에 버렸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자여, 당신의 용기를 저에게 주소서!”

현실을 직시하기 위한 다짐이었다.

그 순간 번쩍이는 밝은 빛이 그녀를 감쌌다. 폭풍우는 판도라를 덮쳤지만, 그녀를 꺾을 수는 없었다.

판도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가슴속에서 벅차오르는 용기에 감사드렸다.

꺾이지 않는 전사처럼, 그녀는 폭풍우에도 꺾이지 않고 나아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사방이 모두 푸른 바다뿐인 곳.

먼 바다까지 나온 판도라는 배고프고, 목마르고, 지쳤다. 아무리 꺾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몸으로 견디기엔 힘든 고통이었다.

죽지는 않겠지만, 죽음보다 더 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리라.

판도라는 마른입으로 거친 숨을 내쉬었다.

‘참자, 참자. 견디는 거야.’

계속해서 되뇔 때, 풀쩍- 물고기 하나가 배 위로 뛰어들었다.

“어……?”

판도라는 덥석 그 물고기를 잡아 들었다.

그리고 바다가 마치 자신을 감싸는 걸 느꼈다.

‘포세이돈에게서 벗어났다!’

먼 바다까지 나온 그녀는 오디슨의 냄새를 풍겼다. 에기르는 통이 큰 신이었고, 오디슨의 냄새를 풍기는 여자를 거칠게 대하지 않았다.

물고기가 계속해서 뛰어올라 판도라의 배를 채워 주었고, 그녀의 손에 닿는 바닷물은 소금기가 없었다.

“아! 그분께서 날 가호하시는구나.”

오랜만에 느끼는 신의 사랑에 판도라는 눈물을 글썽였다.

이윽고, 그녀가 탄 고깃배는 차가운 땅에 닿았다. 온화한 델로스섬과 다른 기후를 지닌 곳.

바람이 달랐고, 땅이 달랐다. 모래가 가득하던 델로스섬과 달리 이곳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무들은 또 어떤가? 부드러운 모양이 아니다. 삐죽삐죽 높게 솟은 나무들.

“아아, 정말로… 정말로 벗어났어!”

멍하니 새로운 땅을 본 판도라는 넋을 놓았다. 그녀가 주르륵 눈물 흘렸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마침 주변을 돌아보던 사내들이 그녀를 발견했다.

“누구지?”

“거기! 뭐냐! 혹시 제국에서 온 첩자인가?”

판도라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들의 복식이 묘하게 익숙했다. 투박한 가죽을 뒤집어쓴 꼴.

섬에서는 볼 수 없던 복장이다. 판도라가 용기를 냈다.

“저, 저는…….”

“어디에서 왔지?”

“저는 먼 바다에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전사, 오디ㅅ… 아.”

오디세우스라 말하려다가, 움찔 말을 멈췄다. 뒤늦게 그게 가명이었다는 걸 알아챈 탓이었다.

하지만 사내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전사! 붉은 늑대, 오디슨!”

“볼바를, 시그니료드 님을 모셔 와라! 붉은 늑대께서 사람을 보내셨다!”

느릅나무 부족에 손님이 찾아왔다.

* * *

시간을 되돌려, 판도라가 폭풍우를 만나고 있을 무렵.

올림포스에서 위업을 세운 영웅들이 기거하는 곳, 엘리시움(Elysium).

그곳은 발할라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이들이 모여 미래를 대비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싸움이 가득한 발할라와 달리 평화로운 낙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약간 소란이 일었다.

“뭐? 내가 살인? 그게 무슨 소리야!”

멋들어지게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영웅답지 않게 평범한 외모를 지닌 사내가 버럭 화를 냈다.

억울하다는 듯 가슴팍을 치던 사내가 외쳤다.

“헤라클레스! 너도 알잖아, 내가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하계에 소문이 허다하던데? 판도라를 도망치게 하고, 델로스섬의 주민들을 학살했노라고.”

“아니, 내가 무슨 수로…….”

“오디세우스, 변장과 간계의 화신인 너라면 가능한 일이지.”

장대한 체구를 지닌 금발머리 미남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오디세우스는 억울함에 헛숨을 흘렸지만, 헤라클레스는 가차 없었다.

“뭐, 어차피 조사하면 다 나와. 자, 가자, 오디세우스.”

“아니, 난 억울하다고!”

소리를 꽥 지른들, 아무도 그의 편이 되어 주지 않았다.

헤라클레스와 아테나, 그리고 헤르메스의 앞에서 오디세우스는 열변을 토했다.

“그 시간에 내가 거기에서 있을 수가 없었다니까? 나는 내 아들 텔레마코스랑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고!”

그에 아테나가 헤라클레스를 바라보았다.

헤라클레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텔레마코스를 잡아 와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되겠지.”

“그래! 얼른 그렇게 해!”

헤라클레스가 하급 신들을 부려 텔레마코스를 잡아 오게 하는 동안, 헤르메스는 이 재밌는 사건을 신계 연맹 커뮤니티에 올렸다.

[오디세우스 살인 혐의 극구 부인! 판도라의 행방은?]+8

하지만 그다지 관심 받지는 못했다.

오디세우스는 계속해서 억울하다 주장했다. 그에 델로스섬을 주시하는 걸로 유명한 두 신이 제우스 앞에 불려 갔다.

“어찌 된 일인지 아느냐?”

제우스가 물었다.

아르테미스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아폴론이 선수 쳤다.

“모릅니다. 신의 눈을 속이고, 누군가가 판도라에게 접근하던 이들을 죽인 뒤, 그녀를 탈출시켰습니다.”

“…태양을 이끄는 자도 모르는 일이라.”

제우스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아폴론이 땀을 주르륵 흘렸다. 태양 마차를 이끄는 그지만, 결국 하늘에서 뛰노는 존재. 천공신 제우스가 자신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까?

쿵쾅쿵쾅, 심장이 뛰었다.

제우스는 피식 웃었다.

“뭐, 됐다. 판도라가 도망을 쳐? 별일도 아니지. 그만 물러가거라.”

“그 항아리는…….”

“아, 그것 말이더냐? 마지막엔 최악의 것을 넣어두긴 했지. 하지만 별문제 없다.”

“…정말입니까?”

아폴론의 물음에 제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왕좌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

“하계에 풀어놓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다른 신계의 누군가가 그걸 가지고 갔다? 그 역시 상관없다. 아니…….”

파지직- 제우스는 번개를 쓰다듬으며 스산하게 웃었다.

“그랬다면 그게 자충수라는 걸 알게 될 테지. 그 상자에 남은 것은 앞에 풀려난 것들과는 다른 의미로 질이 나쁘거든.”

아폴론은 입술을 짓씹었다. 예언의 힘을 가진 아폴론은 온몸을 덮치는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그것이 인간을 미워하는 제우스의 악의(惡意)라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세계수 정상에서 눈을 감은 채 그 광경을 보던 오딘이 끌끌 웃었다.

“그래, 최악이라 할 법하지. 그렇기에 그걸 온전히 삼킨 이는 가장 강력한 신마저도 죽일 송곳니를 얻게 된다.”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 양쪽의 신왕은 동상이몽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억울하게 조사를 받은 오디세우스가 풀려났다. 증거 불충분이었다.

그는 분통을 터트렸다.

“감히 날 사칭해? 이타카의 진실 된 영주,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날? 어떤 새끼인지 걸리기만 해 봐라!”

으드득, 이를 갈았다.

그 ‘어떤 새끼’는 그 순간, 최후의 악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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