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56화 (56/208)

# 56

56화. 영웅은 넘치는 줄 모른다 (4)

덜컥, 갑자기 구름이 멈췄다.

빠르게 날아가던 구름이 멈추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쉽게도 그 광경을 본 건 단 한 사람뿐이었다.

구름이 부드럽게 방향을 틀어 하강한다.

그 구름을 목격한 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직은 때가 아니다.”

걸걸한 목소리의 주인이 딱- 손가락을 튕기자, 구름 앞에 방어막이 생겨났다.

구름은 앞이 막히자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했다.

목소리의 주인이 창을 들어 올렸다.

“네 주인에게 전해라. 아직은 너무 이르다고.”

창에 거력이 담겼다.

“가라!”

파아앙!

창이 허공을 갈랐다.

구름은 입력된 명령에 따라 도망쳤다. 빛살처럼 빠르게 날아가는 구름,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창.

둘이 무한한 태초의 공허, 검은 하늘을 가로질렀다.

팡팡팡!

엄청난 속도에 공기층이 터져 나갔다.

그 광경에 껄껄- 웃음을 터트린 사내가 타고 있는 말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슬레이프니르, 저놈을 잡을 수 있겠느냐?”

다리 여덟 달린 말이 푸르릉- 콧김을 내뿜었다. 허공에서 앞발을 긁어 대며 호승심을 내비쳤다.

슬레이프니르의 주인, 오딘이 킥킥 웃었다.

“…탐나는 놈이로다. 허나 그 주인이 정해진 물건이지.”

그가 손을 들자 그 손에 창이 되돌아왔다.

필중의 창, 궁니르지만 저 속도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그런데도 오딘은 화내지 않았다.

전력을 다한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음을 알기에.

원래부터 구름을 꿰뚫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때가 아니었을 뿐.

‘아직은 귀물(貴物)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평화의 때에 힘을 길러 둬야 멸망이 도래했을 때 활약할 수 있을 터.’

제 아들을 자처하는 이름을 지닌 투사를 떠올렸다.

전쟁의 도화선은 분명 그에게 있다. 하지만 오딘도 정확히 언제 전쟁이 터질지 아는 재주는 없었다.

운명을 들여다보는 노른들도 정확한 때를 알진 못한다. 기대 반 불안 반으로 그를 지켜보는 수밖에.

아래를 내려다본 오딘이 외눈을 찡그렸다.

“…음? 이런.”

긴눙가가프 터미널 앞에 있는 오디슨이 알을 떨어뜨렸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오디슨이 별안간 굉음이 터져 나온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발키리가 별것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아마, 긴눙가가프 특유의 이상 현상일 겁니다. 원래 여기는 때때로 굉음이 울리거나,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가? 정말이지 이상한 곳이군.”

오디슨이 고개를 저으며 알을 집어 들었다.

보통 알이라면 깨지지 않았을까 걱정해야 했으리라. 하지만 무려 히드라의 알이다.

‘그 어미를 생각하면 깨려고 해도 안 깨지는 게 아닐까?’

오디슨이 히드라와 처음 마주쳤을 때, 수 시간을 싸웠다. 죽여도 죽여도 무한히 재생되는 히드라. 독을 신경 쓰지 않아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래서 알만 챙겼다.

생각처럼 히드라는 쫓아왔고, 복수를 해낼 수 있었다.

“후후.”

오디슨이 웃으며 알을 슥슥 닦았다.

이놈 하나 덕에 복수도 하고 1등을 했으니, 예쁘지 않을 수 없다.

발키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알은 몇 점이지? 히드라의 알이니 꽤 높은 점수가 나올 것 같지만…….”

발키리가 머뭇거리며 대꾸했다.

“그, 깨진 거 아닙니까?”

“음? 깨지다니, 무슨…….”

주르륵, 오디슨이 받쳐 든 손 아래로 알 내용물이 흘러내렸다.

그토록 단단하던 알이 어이없이 깨졌다.

“죄송하지만, 깨진 알은 점수가 없습니다.”

[‘욜 사냥 대회’ 중급, 0점 1명 외 전원 탈락. 수상 대상은 없음!]

[(사진) 올해 오딘배 욜 사냥 대회에서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1명을 제외한 전원이 탈락한 것이다. 살아남은 1명은 바로 유명 투사인 오디슨, 그는 자신을 제외한 참가자 전원에게 쫓기는 등 고난을 겪고 (중략) 최후의 생존자인 오디슨은 사냥에 실패했다. 빈손이었다. 즉, 0점. 그리고 0점은 수상 대상이 아니다.]

[이누가미: ㅎㅎ 개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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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괜찮네, 얘. 잘생겼어. 내가 후원할 수 있을까?”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모니터를 보던 여신이 중얼거렸다.

혼자뿐인 곳에서 갑자기 질문이라니? 당황할 법한 광경이었지만, 무릎 위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대꾸했다.

“야옹? 후원이라면, 어느 정도까지 말입니까?”

“그야…….”

황금 목걸이를 한 여신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웃음에 고양이는 넋을 놓았다.

압도적인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은 차라리.

“당연히 낮과 밤, 모두지.”

폭력이었다.

고양이는 홀린 듯 대꾸했다.

“가장 아름다우신 분, 당신의 뜻이라면.”

정절 높아 추앙받는 순애보의 주인공이자,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몸도 팔 수 있는 탕녀.

상반된 이야기가 전해지는 여신, 프레이야(Freyja).

그녀가 브리싱가멘을 만지작거리며 읊조린다.

“아아, 나의 오드.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내가 얼마나 더 빛나야 당신이 날 찾아올 수 있을까요.”

고운 눈매 끝에 눈물이 매달렸다.

프레이야는 남편 잃은 외로움을 다른 이들로 풀고자 했다.

* * *

니플헤임에 있는 헬의 궁전, 엘류드니르.

그곳은 고요했다.

욜을 맞이하여 시끌벅적한 다른 곳과 다르게, 엘류드니르에서는 그저 음식 씹는 소리와 식기가 스쳐 달그락거리는 소리뿐이었다. 크리스마스의 모태가 욜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 고요한 밤이 정통파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건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지독한 눈치 싸움이 가득했다.

‘…어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이라호드가 입술을 삐죽이며 포크로 음식을 지분댔다.

‘오디슨? 힘들면 좀 쉬어도…….’

‘그 데이튼가 뭔가를 하자지 않았나? 내가 부족한 탓이다. 홀로 이겨 내야겠지. 그리고 갈 곳은 미리 알아 뒀다. 늦기 전에 가자.’

‘네? 정말요? 욜이라 예약이 힘들었을 텐데…….’

수상에 실패해 시무룩하던 오디슨이 어딘가를 예약해 놨다는 것에 기뻐했다. 무기력한 탓에 데이트를 내팽개치는 게 아닐까- 걱정하던 찰나였기에 더욱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은 비프로스트 터미널에 닿으며 박살 났다.

“오디슨, 이거 참 맛있네요. 먹어 봐요.”

크레네.

저 눈치 없는 님프가 거기에서 해죽 웃으며 있는 꼴을 본 뒤로 계속 기분이 가라앉은 채다.

이라호드가 작게 한숨 쉬었다.

‘문제는 님프가 아니지.’

크레네라면야 어떻게 윽박질러서 퇴치할 수 있다.

저쪽에 어두운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헬은? 무리다.

이라호드는 체할 것 같았다.

“…강글로트?”

헬이 식사를 깨작이다 집사를 불렀다.

강글로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이 깜깜하다.

마치 헬의 연애 전선처럼.

‘오디슨 님이 이토록 눈치가 없을 줄이야! 당연히 혼자 오셔야 하는 거 아닌가? 으… 여왕님께서 약간만 마음을 비치셨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불경스러운 생각이지만, 감히 제 주인을 탓했다. 강글로트는 그 정도로 답답했다. 그녀가 땀을 주룩 흘리며 헬의 곁으로 다가섰다.

헬이 입술을 작게 달싹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내놓을 수 있는 답이 뭐가 있을까?

강글로트는 고심 끝에 정석을 따르기로 했다.

망한 상황에서 정석은? 버티기다.

“참으세요. 어떻게든 참으셔야 해요. 여기에서 화를 낸다? 그럼 다 끝장난 거예요.”

“참으라고……?”

“예, 제가 식사 후에 어떻게 자리를 만들어 볼게요. 오디슨 님을 다른 데로 살짝 보내고, 한마디 하시면 되지 않으시겠어요? 감히 죽음의 여왕께서 하시는 경고를 무시할 멍청이는 없겠죠.”

“…저 꼴을 보고, 참으라고?”

헬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크레네가 있었다. 오디슨 옆에 찰싹 달라붙은 크레네가.

“이것도 먹어 봐요. 자! 아앙!”

“혼자서 먹을 수 있는데…….”

“에이, 그러지 말고요. 자, 아앙!”

“으음…….”

오디슨이 크레네에게서 음식을 받아먹었다.

알콩달콩 달콤한 분위기. 이 싸늘한 식당에서 저곳에만 온기가 머물렀다.

헬이 파르르 떨었다. 그건 이라호드도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나도 할 수 있어!’

이라호드가 앞에 있는 음식을 집었다. 크레네처럼 ‘아앙-’ 하고 아양을 떨면 된다.

꿀꺽- 침을 삼켰다.

하지만…….

‘큭, 모, 못하겠어! 저, 저 여자는 부끄럽지도 않나?’

올림포스의 님프들은 모두 저런 철면피인가?

이라호드가 좌절감을 맛보았다. 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헬은 오히려 이라호드보다 더 나쁜 상황이었다.

시도조차 해 볼 수 없었다.

‘원래 이렇게 식탁이 넓었나?’

언제나처럼 상석에 앉은 헬과 초대받은 손님, 오디슨은 마주 보는 위치다. 드넓은 식탁을 사이에 둔 채다.

팔을 늘리는 재주가 없다면, 먹여 주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자리 배치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식당 온도가 점점 떨어졌다.

“크흠.”

충직한 여집사는 잽싸게 상황을 수습하고자 나섰다.

헬 바로 곁에 있기에 죽음의 냉기를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때마침, 오디슨이 포크를 내려놓는다.

“오디슨 님? 식사를 마치셨으면, 목욕을 하시는 게 어떨까요?”

“목욕? 나 혼자 온 것도 아닌데…….”

오디슨이 난색을 비쳤다.

“호호호, 여자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는 법이죠. 안 그래요, 여왕님?”

툭- 강글로트가 헬의 옆구리를 찔렀다.

헬이 움찔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자들끼리만 할 이야기도 있는 법이야. 그러니까 오디슨, 편히 목욕하고 와. 오늘도 피곤했을 것 같은데, 아냐?”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그럼 두 사람, 헬께 실례하지 않도록 조심해다오.”

감히 헬을 앞에 두고 실례를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라호드의 등줄기를 따라 땀이 주르륵 흘렀다.

‘설마, 헬께서 나와 저 님프를 같이 묻어 버리시려는 거 아닌가?’

불안했지만, 보험은 있었다.

“두 사람을 잘 부탁하오, 헬이시여.”

오디슨이 헬에게도 당부를 한 것이다.

직후, 그는 강글로트의 인도에 식당을 나섰다.

탁-

식당 문이 닫혔다.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을 만치 차가워졌다.

한참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헬이 한마디를 꺼냈다.

“난 너희들이 싫다.”

차가운 얼음덩어리.

그처럼 말의 질감은 딱딱했고, 살을 에는 북풍처럼 오싹했다.

이라호드와 크레네가 몸을 움츠렸다.

헬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손을 쓴다면, 그가 싫어하겠지.”

복잡한 표정의 헬.

이라호드는 입술을 잘끈 씹고 입을 열었다.

“헬이시여,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뭐지, 발키리?”

“어째서 오디슨을? 그는 분명 이번에 신이 되었다고는 하나, 감히 헬께는 격이 안 맞는 이입니다. 그러니 그냥 놔두시는 게…….”

헬이 눈살을 구겼다.

쩌저적- 음식이 남은 접시 위에 살얼음이 내려앉았다.

“그는 운명으로 점지된 나의 반려다.”

“오디슨의 운명값!”

“그래, 이제 알겠는가? 너희들이 곁에서 맴돈다 한들 헛수고란 것이다.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 믿는 건 아니겠지?”

막막한 이야기.

이라호드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녀도 오디슨의 운명값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지나치게 비쌌다.

‘그게, 신이 될 운명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이라호드가 눈살을 구겼다.

운명을 뒤트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 뒤틀림이 계기가 되어 운명이 완성되는 경우도 아주 많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눈 뜨고 빼앗겨야 하는가?

‘그건…….’

이라호드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눈썹을 찌푸리고, 입술을 깨물고, 미간을 좁혔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포기? 거절당한 것도 아닌데 포기라니. 발키리의 자존심이 그를 허락지 않았다.

그때, 크레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헬께서도 오디슨을 마음에 두고 계신다는 거죠?”

“그렇다.”

직설적인 질문과 직설적인 답변.

헬이 볼을 붉혔고, 크레네는 빙그레 웃었다.

어쩐지 처연한 웃음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가만히 그가 오길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뭐?”

크레네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전 불안해요. 불안하니까 일부러 저기 이라호드 양이나 헬께서 오디슨에게 마음이 있는 것도 외면했죠.”

님프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가 두 여자를 번갈아 향한다.

피식 웃은 크레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제가 바보라서 헬께서 내리신 축복에 아름다우니 시적이니 한 줄 아셨어요? 제가 바보라서 이라호드 양이 오디슨에게 추파를 던지는 걸 보고도 놔둔 줄 아셨어요?”

헬이 크레네의 시선을 외면했다. 축복의 이름에 너무 노골적인 감상을 담은 게 부끄러웠다.

이라호드는 흠칫 놀랐다. 그녀는 크레네가 바보거나 아무런 생각도 없는 가슴 크고 멍청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들킨 탓에 당황한 이라호드가 물었다.

“그럼……?”

“오디슨은 스스로 전사라고 여겨요. 그에 자부심도 있고요. 그런 사람을 잡아 두는 건 맹렬한 눈보라가 아니라 부드럽게 내리쬐는 햇살이죠. 그러니까 전 안 잡는 거예요. 아니, 못 잡는 거예요.”

잡으려고 할수록 도망칠 테니까.

헬과 이라호드는 아무런 말을 잇지 못했다.

충분히 일리 있었다.

‘오디슨 앞에서 날을 세우고 질투를 보인다면?’

오디슨은 그저 휑하니 떠나리라.

그는 정이 많긴 하지만, 맺고 끊는 게 확실한 사람이다.

불같은 전사들은 모두가 그렇다. 대부분 금세 발할라에 적응해 불같은 성미가 죽어 버리지만, 오디슨은 그러지 않았다.

이라호드가 끌린 것도 그런 부분이었다.

‘오디슨은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 내가 못하는 걸 태연하게 해 버려.’

그 점에 동경했다.

‘…크레네처럼 하하 호호 해야 하는 건가? 그건…….’

입술을 짓씹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독점하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이다.

부르르-

이라호드의 업무용 핸드폰이 덜덜 떨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이라호드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헬이 입을 우물거리며 말을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내 운명의…….”

“후우,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이라호드가 말을 끊었다.

헬이 눈살을 구겼다.

“…그게 무슨 소리지? 도망치는 건가?”

이라호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디슨에게 프레이야의 후원이 들어왔어요.”

프레이야.

그 이름에 헬과 크레네가 움찔 몸을 떨었다.

미(美)의 여신이라는 이들은 누군가를 유혹하는 데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들이다.

게다가 프레이야라면?

“그 탕녀가!”

“저, 저도 들어본 적 있어요. 목걸이 하나를 얻겠다고 난쟁이들과 난교를 했다는……!”

안 좋은 소문을 잔뜩 흘리고 다니는 여자다.

“그 후원 조건에 대해서 오디슨과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네요.”

이라호드가 자세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후, 세 여자 모두 심각한 표정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후우. 과연 내 반려가 될 만한 남자라는 건가. 여자가 끊이질 않는군…….”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는 헬. 그녀가 길고 탐스러운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두 사람에게 눈길을 던졌다.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오디슨 곁에 있는 걸 허락하마. 대신…….”

세 여자는 공공의 적 앞에 극적으로 합의를 이뤘다.

위태로운 임시 동맹이 생겨났다.

* * *

엘류드니르의 화려한 목욕탕은 언제 들어가도 좋다.

물이 다른 걸까? 간단하게 씻고 나왔건만 새로 태어난 것만 같았다.

개운한 기분으로 목욕탕에서 나오자, 강글로트가 수건을 건넸다.

“목욕은 즐거우셨나요?”

“아아, 최고였소.”

“엘류드니르의 목욕물은 흐베르겔미르에서 물을 끌어다 쓰거든요. 피로를 푸는 데 그만한 게 없죠.”

오! 흐베르겔미르라.

세상 모든 물이 발원하는 샘. 그 샘물로 목욕을 하니, 이토록 개운할 수밖에.

흐뭇하게 웃으며 강글로트에게 물었다.

“헬께서는?”

“다른 분들과 함께 계세요.”

“별일은 없었나? 혹여 실례했다면…….”

아- 강글로트가 탄성을 내뱉었다.

별일이 있었단 건가?

이라호드가 틱틱거리기라도 했나? 아니면 이곳에 익숙지 않은 크레네가 실수를?

걱정스러운 마음에 강글로트를 바라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아니었다.

“본래 사냥 대회에서는 0점이 수상 대상이 아닌데, 점수와 상관없는 상이 하나 있대요. 살아남은 유일한 참가자, 오디슨 님은 그 대상이고요.”

강글로트가 씩 웃으며 좋은 소식을 알렸다.

점수와 별개인 상?

“설마 장려상 말인가?”

“네, 방금 그 소식이 들어왔어요.”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딘께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어 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할 질문은 뻔했다.

* * *

“어찌하면 더 강해질 수 있사옵니까?”

오딘의 앞에 부복한 채 질문했다.

오딘께서 으음- 침음을 흘리며 내게 되물으셨다.

“가족의 행방이 궁금하지 않더냐?”

궁금하다. 하지만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니플헤임에 있다면 언젠가 찾아낼 수 있을 거고, 찌꺼기가 되었다면…….”

주먹을 꽉 쥐었다.

온갖 추억이 머리를 스쳤다.

다정하게 안아 주시던 어머니의 미소, 껄껄 웃음을 터트리며 창을 가르쳐 주던 삼촌의 목소리.

눈을 꾹 감고 말했다.

“안식을 선사할 힘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나는 더 강해져야만 한다.

“힘이 넘쳐 화가 될지라도 힘을 원하는 건가?”

오딘께서 하시는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넘쳐 화가 된다 한들, 힘이 모자라 화를 입는 것보단 낫다.

난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그게 전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힘이 넘쳐 화가 된다면, 그 화를 잠재울 힘이 더 필요할 뿐입니다.”

내 대답에 오딘께서 킥킥- 소름 돋는 웃음을 지으셨다.

순간 노인의 얼굴에 악동의 얼굴이 겹쳤다.

“그 마음이 꺾이지 않겠는가?”

내가 입을 열어 그렇노라- 말하려 했지만, 말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딘께서 말을 이으신다.

“대꾸는 필요 없다. 말이라면야 뭔들 못하리. 그저, 시험하겠노라. 그 시험을 이겨 낸다면, 너는 더 강한 힘을 손에 넣겠지.”

마지막 한마디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처럼 미약했다.

‘믿음마저도 때려죽일 힘을.’

서늘한 그 말에 담긴 의미에 만족스레 웃었다.

내가 바라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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