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54화. 영웅은 넘치는 줄 모른다 (2)
욜(jól)은 본래 오딘께 보여 주기 위한 행사다.
주술사 영감이 내게 설명한 바 있다.
‘겨울에 전쟁을 어찌하겠느냐? 행군하는 전사들이 먹을 게 없는데 말이다. 안 먹고 싸울 수 있는 건 신들이나 가능한 일이지. 그런데 오딘께서는 꽤 조바심이 많으신 분이시다.’
라그나로크를 생각하면 조바심이 들 수밖에 없으시겠지.
어찌 됐든, 오딘께서는 전쟁이 없는 겨울이 되면 하계를 둘러보신다고.
그에 전사들은 갈고 닦은 기술을 뽐내고자 사냥에 나선다.
“그게 바로 욜의 전통인 사냥 대회다.”
내 말에 크레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림포스 출신인 그녀는 욜이라는 게 생소한 모양이다.
“그냥 겨울철에 먹을 게 없어서 산을 뒤적이며 사냥하던 게 굳어진 줄 알았어요.”
그것도 틀린 건 아니다.
실제로 사냥 대회에서 대부분 전사들은 허탕을 친다. 개중 겨울잠을 자던 곰을 건드려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자도 있다.
아무래도 같은 전사로서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볼을 긁적이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일을 구한다더니, 어떻게 됐지?”
내 말에 크레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잘 안됐어요. 나름 자신 있는 수자원 관리 쪽을 지원했는데… 올림포스랑은 좀 다르더라고요.”
“…으음? 님프인데?”
“맞아요. 그러니까 더 답답하죠! 세상에! 물의 요정, 님프한테 관련 자격증이라뇨? 저는 태생이 수자원 전문가라고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치는 크레네. 출렁이는 살덩이에 절로 시선이 갔지만, 억지로 눈을 돌렸다.
나는 크레네가 하는 말을 절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정수 기준도 이상해요. 왜 몸에 좋은 미생물을 죄다 걸러 내는 건데요? 그건 아무런 해도 없고, 오히려 너무 부족하면 곤란하다고요.”
크레네가 열변을 토했다.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물이야 그냥 썩은 내가 안 나면 그만 아닌가? 전장에서 피 섞인 물을 벌컥벌컥 마시던 나다.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 그런 생소한 저주는 처음 들어본다.
“으음…….”
“후우. 오디슨한테 화내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뭔가 조건을 좋게 제시해서 보면 맨날, 음흉한… 그런… 음…….”
크레네가 말을 줄였다.
무슨 소리를 하고자 하는지 대충 알아들었다.
크레네는 아름답다. 그녀를 어떻게 해 보려는 작자들도 넘쳐나겠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예요, 왜 웃어요?”
“아니, 분명 처음에 네가 나한테 한 짓이 생각나서 말이지.”
어깨를 으쓱였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음흉한 제안을 한 건 크레네였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이참! 그건 좀 잊어요, 잊어!”
투덕투덕 크레네가 내 가슴팍을 때렸다. 그에 껄껄 웃자 이라호드가 싸늘한 눈으로 말했다.
“사냥 대회 대기 장소 도착했거든요? 사람들도 많은데 대체 뭐 하는 짓이에요? 부끄럽지도 않아요?”
어깨를 으쓱였다. 주변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놈이 그…….”
“이번에 신성도 얻었다는데 왜 여길……?”
수많은 참가자들이 날 힐끗힐끗 살피고 있었다.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부끄러울 게 뭐가 있겠나?”
“…오디슨도 참.”
크레네가 얼굴을 붉혔다.
나는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사냥 대회가 끝나면 그 작자들에게 날 안내해다오. 그 목을 모조리 비틀어 놓을 테니.”
크레네가 내 여자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녀가 내게 말한 바가 없으니까.
하지만 몸을 섞은 여자다.
크레네가 싫어하는 일이라면, 그 놈팡이들을 박살 내 줄 수야 있다.
[제234회 오딘배 욜 사냥 대회]
커다란 현수막을 바라보았다.
그 아래 적힌 상품들에 시선이 갔다.
[1등, 오딘 무기고 내의 무기 1개 증정, 상금 10억 크로나.]
[2등, 오딘의 축복, 상금 5억 크로나.]
[3등, 상금 1억 크로나.]
[장려상(5인), 한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
어마어마한 상들이다.
침을 꼴깍 삼켰다. 머릿속에 다양한 생각들이 소용돌이쳤다.
오딘께서 모으신 무기가 대체 뭐가 있을까? 오딘께서 주신다는 축복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상금이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놀랍지 않아요?”
이라호드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나도 놀랍지 않다.
“오딘께서는 드라우프니르를 가지고 계시지 않나.”
무한히 증식하는 황금 팔찌, 드라우프니르(Draupnir). 그 신비한 팔찌는 9일에 한 번 본체와 완전히 같은 팔찌 8개를 만들어 낸다 한다.
하계의 족장과 왕들은 반지를 부숴 부하에게 나눠 준다. 하지만 오딘께서는 드라우프니르가 복사해 낸 것들을 신들께 나눠 주었다.
과연 최고신 오딘다우신 배포다.
“어쨌거나 3등도 상금이 1억 크로나예요. 당신이 그렇게 바라던 부족민들을 다시 부를 수 있는 금액이라구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상이 탐났다. 하지만 개중 가장 탐나는 것은…….
“…장려상이라.”
나는 오딘께 물어볼 것이 있다.
* * *
오딘배 욜 사냥 대회.
매년 열리는 대회는 아니다. 오딘께서 기분이 내키실 때 여는 대회. 그렇기에 이 대회를 위해 몇 년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올해는 꼭……!”
“1등, 아니 3등만 해도…….”
나름의 기준을 통해 상중하로 나뉘기 때문에 관심은 모조리 상급 대회에 쏠린다. 관심도와는 별개로 상중하 모두 개별 수상하기 때문에 수상 확률은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오디슨 선수? 몇 위 예상하십니까?”
“오디슨 선수! 방금 같이 있던 여성분은…….”
발할라뿐만 아니라, 다른 신계에서도 유명한 투사가 중급 대회에 나온 것이다. 상급 대회가 독차지할 관심이 중급 대회로 나뉘었다.
참가자들 모두가 눈살을 구겼다.
그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아니, 돈도 많이 버는 놈이 여길 왜 와?”
“빌어먹을. 저 자식이 투기 경기 한 번으로 버는 돈이 3등 상금의 절반이라지?”
“허… Mid300Room에서 그렇게 벌어 가는 놈이 어딨다고…….”
오딘배 욜 사냥 대회만을 위해 연 단위로 단련한 사냥꾼들.
찌꺼기를 잡지 않는 사냥꾼이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며 꾹 참은 건 모두 상금 때문이었다. 그런데 돈도 잘 번다는 이가 오니 짜증이 치미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오디슨, 저 개자식……!”
“참아라, 가라르. 참아. 기회는 많으니 말이다.”
오디슨과 같은 투사들이었다.
악연으로 확고하게 엮인 비다르 클랜. 그들은 오디슨과의 연전으로 얻어 낸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클랜원들은 오디슨에게 처참하게 당했지, 클랜 하우스는 불타 사라졌지, 클랜 마스터는 치욕스러운 사과 이후 클랜에 관심이 식었다.
“우리는 상보다, 저놈의 목이 필요하다.”
비다르 클랜은 복수를 꿈꿨다.
그게 꼭 비다르 클랜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야른시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마라.”
“으드득! 두고 보십쇼, 포르디에르 님. 제가 허투로 M300R까지 승격한 건 아니잖습니까?”
“그래… 나 역시 이날을 위해 제물을 마련해 왔으니…….”
포르디에르와 야른시다.
O500에서 오디슨에게 패배한 이들이었다. 오디슨이 승승장구할 때, 두 사람은 치욕을 견뎌야 했다.
‘저놈 때문에 내가 손해 본 것이 얼마던가! 이번에는 반드시 저놈을 잡고야 만다!’
장기전 승률 100%’라는 별명을 지녔던 포르디에르.
요술을 주로 쓰던 그는 장기전 승률 100%가 깨지자마자 무수한 도전을 받았다.
‘장기전이 되면 위험하다!’라는 생각이 ‘장기전에서도 어떻게 해 볼 수 있잖아?’가 되었다. 단기 결전을 노리는 이들이 덤벼들었다.
그 덕에 승률이 급락했다.
‘그 뚱땡이 놈도 마음에 안 들지만, 역시 저 자식이 만악의 근원이다!’
야른시다는 더했다.
‘천둥소리’ 하나를 가지고 U500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그는 무수한 실패를 겪었다.
공격력의 부재, 그 약점이 만천하에 알려지자마자 상대는 무조건 중갑을 입고 등장한 것이다.
그걸로 끝? 아니다.
“망할 새끼, 미녀를 둘이나 끼고 오다니.”
“잘생긴 놈들은 죄다 죽어야 해!”
이라호드와 크레네가 예상치 못한 도발이 되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오디슨을 적대시했다. 그리고 절대 다수의 참가자가 남자였다. 발할라 자체가 남초 사회니 당연한 일이다.
“근데, 신이잖아. 괜찮을까?”
“그 발두르도 겨우살이 가지에 찔려 죽었어. 신이라고 무적은 아니지.”
호승심 넘치는 이들에게 오디슨의 신성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제 이름을 드높일 양념으로 여겼다.
“흐음…….”
잘생긴 얼굴을 구기며 생각하는 오디슨.
그는 지금 자신이 대회 참가자 전원의 적이 되었다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저 다른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오디슨 힘내요! 그리고 대회가 끝나면 우리 집에 차 마시러 올래요?’
‘전에 못다 한 데이트, 잊은 건 아니죠?’
경기 시작 직전, 크레네와 이라호드가 으르렁대며 기 싸움을 벌였다.
오디슨은 비로소 자신이 수라장의 한복판에 있음을 알았다.
턱을 쓰다듬던 그가 한숨을 흘렸다.
“후우… 전사장 아저씨가 필요하군.”
물푸레나무 부족의 전사장. 배가 불룩 튀어나온 그는 모두에게 존경받는 전사였다. 다만 전사로서 받는 존경은 아니었다.
아내가 무려 여섯. 그럼에도 마을에서 가장 화목한 집이었다.
그게 바로 그가 존경받던 이유였다.
‘뭐? 어떻게 아내들끼리 안 싸우냐고? 그야 쉬운 일이지. 서로 질투를 안 하게 하면 돼. 어떻게 그러냐고?’
‘질투할 필요도 없게, 모두에게 잘해 주면 되잖아!’
오디슨은 고민에 빠졌다.
질투할 필요도 없게 잘해 준다.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오디슨이 생각하는 ‘잘해 준다’의 범위는 의식주다.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집.
구시대적 발상이지만, 오디슨 자체가 구식이다.
“…크로나가 많질 않으니…….”
후우- 한숨을 내쉰 오디슨은 한 장의 편지를 떠올렸다.
[오디슨에게.]
[올해 사냥제를 맞이하여, 엘류드니르에서 잔치를 열 예정이다. 반드시!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줬으면 좋겠다.]
[니플헤임의 지배자이자 죽음의 여왕인 헬이.]
오디슨의 아- 하고 뭔가를 떠올렸다.
“헬의 궁전, 엘류드니르는 좋은 곳이지. 식사도 맛있고.”
의(衣)를 빼면 완벽하다. 하지만 문제 될 건 없다. 아내도 아닌 여자에게 옷을 주는 건 너무 빠르다.
흠- 침음을 흘리던 오디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그가 마음을 정했다.
“모두를 데리고 이 잔치에 가면 되겠군.”
최악의 결정이었다.
“자! 모두 집중! 사냥 대회가 벌어지는 긴눙가가프로 입장합니다! 차원문을 넘어야 하니, 질서 있게 움직이세요!”
태초의 공허.
온갖 기괴한 것들이 판치는 그 어두운 곳으로 사냥 대회 참가자들이 향했다.
* * *
그 시각, 곤륜의 하계.
덜덜덜- 작은 지진이 일어났다. 진원지는 바로 오행산.
“어, 어어? 뭐지, 뭐지? 우끼익!”
오행산 지하에서 원숭이 한 마리가 야단을 떨어 댔다.
저팔계가 한숨을 푹 쉬었다.
“꿀꿀… 사형, 또 왜 그랭?”
“뭔가, 뭔가 온다! 감이 온다!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감이 와! 우리가 여기에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끼이익!”
산에 깔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마구 움직였다. 산이 들썩거렸다.
사오정은 제 민머리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흙을 툭툭 털어 냈다. 그가 혀를 찼다.
“쯧쯧, 사형이 심심해서 완전히 미친 것 같은데…….”
“꾸익꾸익… 나도 그렇게 생각행. 분명 팔괘로를 훔칠 때도 그랬잖앙.”
“감이 와, 이건 절대로 걸릴 리가 없다, 우끼끼!”
저팔계와 사오정이 그때 그 말을 동시에 내뱉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손오공의 감은 영 믿을 게 못 됐다.
* * *
[네, 오늘은 ‘제234회 오딘배 욜 중급 사냥 대회’의 해설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일단, 이 대회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시죠?]
아나운서의 말을 해설이 받았다.
투기장의 해설을 맡은 이였다. 싸움과 사냥은 분명 다르지만, 신화적인 괴물들을 사냥하는 것이니만큼 비슷한 점도 많았다.
[최고신이신 오딘께서 개최하시는 사냥 대회입니다. 매년 열리는 건 아니죠, 오딘께서 기분이 내키실 때 여시는 겁니다.]
[오딘배 욜 사냥대회가 없을 땐, 토르 님이나 티르 님께서 사냥 대회를 개최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역시, 오딘배 욜 사냥 대회가 가장 화려하고 열기도 뜨겁죠.]
[걸린 게 많으니 말이죠.]
하하,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웃었다.
[상품, 상금도 그렇지만 긴눙가가프에서 사냥 대회를 연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힘든 일이거든요. 태초의 공허에서 사망한 이들의 영혼은 공허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 많아서 말이죠.]
[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오딘께서만 여시는 겁니다. 마법의 신이신 오딘께서는 영혼이 공허로 빨려 들어가지 않게 미리 대회장 전체에 마법을 걸어 두시거든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사냥 대회가 시작됐다.
화면에 기괴하게 뒤틀린 긴눙가가프의 풍경이 비쳤다. 하늘에 땅이 떠 있고, 폭포가 거꾸로 치솟는다.
[긴눙가가프. 여전히 신비가 가득 남은 곳이죠?]
[예, 이번 대회는 이 풍경을 보는 것만 해도 상당히 즐겁습니다. 제각각 무리를 이룬 참가자들이 사냥을… 어?]
[어어어, 뭔가요! 왜 갑자기 오디슨 선수를?]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피의 복수를!”
“이 자식,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알아?!”
“잘생긴 놈을 죽여라!”
대회 참가자들이 사냥에 앞서 벌써 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나운서와 해설이 입을 쩍 벌렸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아나운서.
[어, 어어… 저거! 신성모독 아닙니까?!]
[아니죠! 신을 욕하면 신성모독이지만, 신을 죽이면? 신살자! 영웅의 탄생입니다!]
[오디슨, 오디슨 선수! 싸웁니까?]
오디슨이 외쳤다.
“신성한 사냥 대회에서 이 무슨 짓거리를… 큭! 두고 보자!”
[아… 아니죠, 피합니다. 싸우는 건 무리였어요.]
[오디슨 선수가 신성을 얻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최하급 신이거든요? 발할라에 수두룩한 상급 투사들보다 약해요.]
[아! 참가자들, 오디슨 선수를 쫓습니다.]
[비다르 클랜이 열성적이죠? 그리고 야른시다. 오디슨 선수와 악연이 있는 투사인데요… 엇! 요술사 포르디에르가 요술을… 아! 오디슨 선수 튕겨 냅니다!]
[그런데, 저쪽은 안 돼요! 오디슨 선수! 어디로 가나요!]
오디슨은 날아드는 화살과 작살, 그리고 그물과 요술을 피해 내며 마구 달렸다. 해설자가 탄식했다.
[아… 몰이네요. 몰이 사냥이에요. 저쪽은 금지(禁地)죠.]
[금지라면……?]
화면에 오디슨이 향하는 곳에 붙은 경고문이 비친다.
[극독 주의! 당신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해설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쉽습니다, 오디슨 선수. 신이라고 해도 위험한 독지대에 들어섰어요.]
[아. 다들 오디슨 선수가 금지로 들어가자마자, 추격을 멈추는군요.]
[아무래도 더 이상 추격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거겠죠.]
아나운서가 툭, 해설자의 어깨를 쳤다. 그리고 당황한 표정으로 입 모양을 그렸다.
‘저거 어떻게 하죠? 이거 솔직히 오디슨 때문에 중계하는 거잖아요. 누가 오디슨 빠진 중급 대회를 봐요? 죄다 상급 대회 보지.’
해설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방송국 윗선에서 지금쯤 온갖 욕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게 빌미가 돼서 잘리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뒷사정은 뒷사정이고, 방송은 방송이다.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또 모릅니다. 오디슨 선수가 완전히 탈락한 건 아니거든요?]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지 않도록.
잽싸게 아나운서가 그 말을 받았다.
[예, 게다가 다른 선수들도 이제는 제대로 사냥에 열중하는 모습이죠?]
[하하, 결국 가장 큰 사냥감을 잡아 낸 사람이 이기는 대회니까요.]
해설자와 아나운서가 땀을 삐질 흘렸다.
그들은 헛된 희망인 걸 알면서도 제발, 다시 오디슨이 모습을 비춰 줬으면- 하고 바랐다.
[끝까지 봐야 압니다.]
[네, 뭐든 끝까지… 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법이죠. 하, 하하…….]
물론, 이후에 벌어질 개판을 바란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