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53화 (53/208)

# 53

53화. 영웅은 넘치는 줄 모른다 (1)

신계는 아주 떠들썩했다.

[오디슨, 하계불가침 법을 어겼는가?]+999

티르는 떠오른 뉴스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법을 담당하는 티르기에 오디슨이 무죄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오디슨이 무죄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클릭, 티르는 그 기사 아래에 달린 댓글들을 보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헤르메스의 설명이다.

[헤르메스: 반갑다! 올림포스의 마당발, 나 헤르메스가 설명해 주지! (중략) 오디슨이 배상금보다는 사과를 요구했다! 그럼 이만 헤르메스는 바람을 타고 사라져 주지!]

[이시스: 고마워요, 헤르메스:)]

티르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 망할 설명충은 올림포스에서 어떻게 안 하나?”

그는 짜증을 부렸다. 다른 신계까지 자세한 사정이 퍼지는 걸 어떻게든 막고 싶었건만.

거기에 하필이면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댓글로 말다툼을 벌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비다르: 난 억울하다.]

[펜리르: ㅋㅋㅋ 신발 팔이가 이제는 감성도 파넼ㅋㅋㅋ]

[비다르: (차단된 댓글입니다.)]

티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차단되었다고 한들, 티르의 머릿속에는 비다르가 울컥해서 온갖 협박을 늘어놓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일어나지 않은 역사’에서 펜리르를 죽인 이야기를 늘어놓았으리라. 펜리르가 댓글로 다시 그를 놀렸다.

[펜리르: 응, 템빨 아니면 한입감^^]

[비다르: (차단된 댓글입니다.)]

[펜리르: 신발 벗고 한번 붙던가ㅋㅋㅋ]

그 이후, 비다르의 댓글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알았다.

[로키: 도망침ㅋㅋㅋㅋㅋ]

[전우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티르가 한숨을 푹 쉬었다.

‘누구는 어떻게든 지 신성을 지키려고 온갖 일에 치여 사는데… 이 망할 새끼는…….’

으드득, 이를 악물었다.

비다르가 곤욕을 치렀고, 그 신성의 체면이 낮아졌다.

하계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면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볼바께서 말씀하시길, 비다르께서 붉은 늑대 앞에 고개 숙였다는군.’

‘허어? 비다르께서 사과를? 복수가 아니고?’

비다르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갔다. 그래도 최악은 아니었다.

그 손해의 일부는 오디슨의 신성이 자라면서 만회됐다.

‘쯧쯧, 무식한 놈. 지금 제국과 왕국에서 떠들어 대는 붉은 마왕이 바로 붉은 늑대시라는 걸 모르나?’

‘오, 그 덴 마스크? 그게 어디지? 어쨌든 그 지방에서 강림하셨다던?’

‘제국의 용을 죽이신 그분께 발키리가 마중을 나와 아스가르드로 안내했다더군!’

새로운 신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게다가…….

“후우,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겠군.”

티르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다 식은 차를 들이켰다.

여전히 그의 눈은 화면 속 신계 연맹 커뮤니티에 고정된 채다.

[제우스, “있을 수 없는 일.”]+98

[아레스, “오디슨이 먼저 시작했다!”]+999

올림포스에서 강경 대응을 밝혔다.

아레스가 한 짓에 대해 인정하고, 그에 대한 사과와 함께 처벌을 약속했다. 전쟁을 좋아하는 외눈박이 노인이 시무룩할 것 같았지만, 티르는 안심했다.

그렇다고 오디슨에게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헬과 오디슨의 인연! 헬, 오디슨을 위해 하계로!]+232

[오디슨, “헬께서는 언제나 날 도와주셨다.”]+87

[헬, 오디슨에게 딴마음이? 기자의 질문에 코웃음을 친 헬!]+999

마지막은 딱 봐도 관심을 끌려고 대충 써재낀 기사였다.

아래 달린 댓글도 대부분 기레기니 뭐니 하는 욕들뿐이었다. 당사자인 헬은 그 기사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 * *

하지만 엄한 신이 그에 분노했다.

“한심한 기사인지고!”

음침한 처소. 청록색 피부를 가진 신이 부르르 떨었다.

와작!

그가 가지고 있던 태블릿 PC가 두 동강이 났다. 그는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 거친 숨을 내쉬었다.

문득 억울하다는 듯 얼굴을 붉힌 아레스의 사진이 떠올랐다.

[연관 기사]

[(단독)아레스, 제우스에게 항의! 올림포스의 반응은?]

연관 기사랍시고 떡하니 붙어 있었다. 이제는 태블릿 PC가 박살 나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쯧쯧, 오시리스가 혀를 찼다.

“왕좌에 앉아 보지도 못한 놈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었도다!”

한탄했다. 오시리스는 박살 난 파편을 바닥에 던졌다.

남을 믿는 건 언제나 배신감을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역시, 남을 믿을 게 아니다.

“아누비스!”

오시리스는 남이 아닌 자를 불렀다.

검은 자칼 머리를 한 신이 허공을 찢고 나타나 부복했다.

“오오, 나의 충성스러운 아누비스. 길을 여는 자여, 너의 권능으로 내 갈 길을 열거라.”

오시리스 앞에 고개 숙인 신.

그에게 오시리스가 으드득- 이를 갈며 명했다.

“내 너에게 명하노니… 오디슨이라는 작자를 심판하라!”

“알겠사옵니다, 죽음의 주인이시여!”

자칼 머리를 한 아누비스가 고개 숙여 명을 받들었다.

아누비스(Anubis). 그는 오시리스를 죽인 세트의 아내, 네프티스와 오시리스 간의 불륜에서 태어난 사신(死神)이다.

망자를 명계인 두아트로 인도하는 역할이다. 또, 오시리스가 두아트에 신경 쓰는 것을 싫어하자, 죽은 자의 영혼을 심판하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귀여운 녀석.”

그런데도 아누비스는 실수 한 번 하지 않았다.

과중한 업무에도 언제나 오시리스에게 충성했다. 우직하게 맡긴 일을 잘 처리하는 아들을 어찌 미워하랴?

“이리 오려무나. 옳지, 착하지.”

오시리스가 손을 뻗어 아누비스의 턱을 긁었다.

헥헥- 아누비스가 기쁜 숨을 내뱉었다.

자칼은 갯과다.

* * *

전투가 끝나고, 다시 발할라.

“으으음.”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카메라를 짊어진 이들이 수두룩했다. 그에 놀라 두리번거릴 때, 마이크라는 물건을 내 앞에 마구 들이밀었다.

“손오공과 어떤 사이입니까?”

“잠깐! 질문 하나만요!”

“오디슨, 오디슨! 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온갖 질문이 튀어나왔다.

거기에 내가 무슨 소리를 했더라? 잘 모르겠다.

[숯불 세흐림니르 구이]

나는 멍하니 의자에 등을 기댔다.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린 거지? 혀를 내두르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후우.”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지친다.

“힘들어요?”

“으음… 전쟁보다 질문에 대꾸하는 게 더 힘들군그래.”

“그럼 그 피로를 한 번에 날려 줄 물건을 꺼내는 게 좋겠네요.”

이라호드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피로를 단번에 날릴 물건이 있다고?

쿵!

테이블이 들썩였다.

묵직한 금화 주머니가 떡하니 테이블 위에 자리 잡았다.

“카드모스를 잡은 데 대한 현상금이에요.”

“…현상금?”

“예. 예전부터 의심은 되는데, 아무래도 꼬리를 잡는 게 힘드니까요. 아마 이번 일로 올림포스에서도 오디슨에게 현상금을 아주 듬뿍 걸었을걸요?”

혀를 내둘렀다.

용병들이 돈이 된다고 하긴 했지만…….

그보다, 이 돈은 그녀가 가져야 한다.

“네 것이다.”

“전 그냥 뛰어들어서 쩍 벌린 입에 창을 던진 것밖에 없어요. 들고 가서 용병들과 나누세요.”

많이들 죽었잖아요- 이라호드가 말했다.

“으으음.”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 혼자라면야 대쪽같이 받지 않겠노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용병들은? 그놈들은 내 말만 믿고 하계로 가서 온갖 고생을 하지 않았나. 카드모스의 꼬리 치기에 맞아 죽은 것만 10명.

그들을 살리는 데 드는 비용 정도는 대 줘야겠다.

“…5억은 부활 비용에 쓰겠다.”

“나머지를 나눈다고 해도, 한 사람당 2500만 크로나네요. 꽤 두둑하겠는데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반의반은 네 몫이다.”

“…안 줘도 된다니까요.”

“아니, 이건 당연하다. 본래부터 숨통을 끊은 이에게 모조리 몰아줄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용병들도 납득하리라.

이라호드에게 절반을 준다고 해도 남은 건 2억 5천만 크로나.

20명이 나눈다면? 으음… 계산이 잘 안 된다.

이라호드가 툭 말했다.

“저한테 반의반을 준다면, 1인당 1250만 크로나예요.”

“아, 고맙군.”

그것만 해도 꽤 큰돈이다.

황금 생각을 했더니, 확실히 피로가 좀 가신 것 같다.

흐뭇하게 웃을 때, 이라호드도 씩 웃었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으응? 뭐가 더 있나?”

“그야 당연하죠. 카드모스의 시체가 있잖아요.”

아, 카드모스의 시체!

용은 예로부터 버릴 것이 없다 했다.

그 뿔과 뼈, 그리고 이빨은 좋은 무기가 된다. 가죽은 최고의 갑옷이 된다. 용의 피는 어마어마한 회복력을 품고 있으며, 용의 고기는 천하의 진미임과 동시에 강한 힘을 준다고.

꿀꺽. 침을 삼켰다.

“…그 역시 돈과 같은 방식으로 나누지.”

“뭐… 솔직히 용병들은 감히 용의 시체에 명분을 주장할 수 없을 텐데요.”

할랴헤랴르 용병단은 나와 함께 용을 사냥한 무리다.

우두머리 늑대는 한 무리를 굶기지 않는다.

그것이 금반지를 부수어 나눠 주는 족장이나 왕의 마음가짐이리라.

“베푸는 게 싫은 건 아니다. 넘치느니 부족한 게 낫지.”

어깨를 으쓱였다.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금반지 생각을 하니, 문득 내 위업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룬스톤을 꺼내 선명하게 빛나는 스칼드를 음미했다.

〈용과 맞선 전사는 떨지 않노라.〉

〈늑대 가죽을 쓰고 늑대가 되어,〉

〈홀로 군단을 찢어 죽이는 사내.〉

〈오딘께 2만 산 제물을 바치니.〉

〈죽어 전사는 에인헤랴르로서,〉

〈삼백스물일곱째 자리 앉는다.〉

처음보다 겨우 두 구절이 늘었다. 하지만 그 둘 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업적이었다.

용과 맞서고, 군단을 찢어 죽였으니까.

전사에게 있어 이보다 더한 자랑거리가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나는 신이 된 게 아니었던가?”

“네? 지금도 신인데요?”

“으음, 그런데 왜 룬스톤에는 내가 에인헤리라고 하는 거지?”

이라호드가 킥- 하고 웃었다.

“신은 에인헤리가 못 될 이유가 있어요?”

“그건…….”

내가 눈을 끔뻑이자, 이라호드가 씩 웃었다.

“발키리장은 시그룬 님이지만, 발키리 최고 사령관은 프레이야 님이세요. 그분도 발키리시니까요. 그리고…….”

이라호드가 말을 이었다.

“토냐르 선배도 나름 정식으로 발키리 명단에 이름을 올린 분이세요.”

좋던 기분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아, 토르시여. 당신께서는 왜 나를 시험에 들게 하시나이까.

머릿속에 끼는 미혹을 지우기 위해,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

“토르의 용기와 스스로의 정당함으로, 오딘의 승리를 위하여.”

나지막이 중얼거릴 때, 이그나르가 숯불을 들고 다가왔다.

“고기 구우려면 한참 남았는데, 벌써 무슨 기도야.”

“…그게 아니라…….”

“그리고 그 기도, 좀 이상하지 않냐? 밥 먹는 게 싸움도 아니고. 안 그래? 토르손?”

쟁반 가득 밑반찬을 들고 온 토르손이 에헤헤- 멍청하게 웃었다.

그리고 툭 말했다.

“원래, 대장은 좀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그렇지? 큭큭.”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이 두 덩치들에게 무슨 소리를 하랴.

눈살을 구기며 질문을 던졌다.

“둘 다, 수련은 열심히 하고 있나?”

어째 전에 봤을 때보다 살이 더 붙은 기분인데?

이그나르와 토르손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이 자식들이?

미간을 찌푸릴 때, 토르손이 말을 돌렸다.

“아 참! 대장, 대장도 사냥제 때에 사냥 대회 나가? 출장 정지라 못 나가나?”

토르손의 말에 눈을 끔뻑였다.

“사냥제? 욜을 말하는 거냐?”

“응, 안 그래도 요즘 TV만 틀면 그 이야기뿐이던데? 못 봤어?”

티브이? 그걸 내가 볼 기회가 어딨나?

이그나르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너네 대장은 아직 TV 리모컨도 다룰 줄 몰라.”

“어…….”

토르손이 당황했다.

그에 나는 변명했다.

“나, 나는 마력이 없어 마법 물품을 다룰 수 없다!”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대체 뭐가 문제지?

슬그머니 눈치를 보자, 이라호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마력은 무슨… 어쨌든 딱 잘라 말하면, 오디슨도 참여는 가능해요. 투기장 경기 출전 금지지, 발할라 행사 출전 금지는 아니니까요.”

“그런가?”

“예, 그렇기는 한데… 잊은 건 아니죠? 사냥제 때엔 저랑 같이 있어야 해요.”

그야 물론이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냥 대회에 나갈 수 있다니!

낌새를 챘는지 이라호드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이번 대회는 상품이 어마어마하대요.”

“상품?”

“예, 1등 상이 뭐더라? 오딘께서 내리시는 어떤 거라고 했는데…….”

오딘께서? 갑자기 열정이 들끓었다.

사냥 대회가 어떤 식으로 치러질지 기대되었다.

“일단 밥이나 먹자고.”

이그나르가 숯불 위에 불판을 깔고 고기를 구웠다.

꼬르륵- 그제야 배가 고팠다. 어서 빨리 고기가 익었으면 하는데…….

음?

“뭐 하냐, 너?”

“숯불이 약해진 거 아닌가?”

뜨겁지 않다.

* * *

“헐레벌떡 뛰어가서 하계에 내려가셨잖아요. 그리고 전력을 다해서 오디슨 님을 도우셨구요. 그런데… 오디슨 님을 그냥 보내셨다구요? 네? 또 기회를 그냥 날리셨어요?”

강글로트가 따지듯 물었다.

헬은 그녀의 말에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글로트가 입을 벌리고 눈을 깜빡였다. 입술을 움찔거리다 마침내 질문을 던진다.

“여왕님, 오디슨 님이 권능을 얻으신 거 알죠?”

“응.”

헬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디슨은 붉은 마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좋은 권능을 얻어 냈다.

사람들이 믿는다면, 신은 영원불멸하다.

그리고 신의 힘은 결국 사람들이 상상하기 나름이다.

한 사람이 ‘우리 신이 무조건 제일 세거든요? 빼액!’ 하고 난동을 피운다고 권능이 생겨나는 건 아니다.

보편적인 믿음이 권능을 이룬다.

천공의 지배자인 제우스가 번개를 던지는 것. 그리고 승패를 결정짓는 오딘의 궁니르가 늘 적의 숨통을 끊는 것도 모두 그 범주였다.

“차가운 니플헤임의 지배자, 혼란과 불꽃에서 피어난 죽음의 여왕. 그리고 지옥 불 앞에서도 변치 않는 자.”

헬이 꿈꾸듯 읊조렸다.

오디슨의 신명 앞에 붙은 것이 바로 ‘지옥 불 앞에서도 변치 않는 자’이다.

‘붉은 마왕은 지옥 불 앞에서도 변치 않노라. 아아! 그는 불에 타거나 녹지 않으니, 그를 죽이기 위한 방법을 찾을 수 없다네.’

어느 음유시인이 한 말이 그대로 그를 지칭하는 별명이 되었다.

“운명이야.”

딱 잘라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로키는 불의 신이다. 동시에 불처럼 혼란을 일으키는 자이다.

불은 혼란을 일으켰고, ‘죽음’과 ‘파멸’과 ‘주체할 수 없는 번짐’을 낳았다.

그의 사위가 될 거라면 배짱이 필요하다. 뜨거운 불길 앞에서도 태연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강글로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불은 예로부터 힘의 상징이었죠. 그리고 오디슨 님은 그 힘에 지지 않는 권능을 얻었고요. 그럼 여기서 문제 하나 낼게요.”

“문제?”

헬이 되물었지만, 강글로트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더 심각해졌어요. 젊고, 잘생겼고, 강해질 여지가 넘쳐나는 ‘신’을 꼬셔 보려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요?”

“…윽.”

직후, 강글로트는 아주 간단한 진리 하나를 입에 담았다.

“나한테 좋아 보이는 건, 다른 누구에게도 좋아 보이는 거예요. 잊지 마세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번 사냥제 전야에 오디슨 님을 확실히 맡아 두세요. 축제의 밤에는 역사가 이뤄지는 법이니까요.”

헬이 꼴깍 침을 삼켰다.

강글로트는 못 미덥다는 듯 헬을 보다 말했다.

“아니, 아예 제가 오디슨 님한테 말해 둘게요.”

“뭣? 그, 그건…….”

화들짝 놀란 헬이 강글로트를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강글로트는 적어도 연애 문제에 있어서는 헬을 믿지 않았다.

“운명이라면서요? 전장에 서는 전사가 언젠가 죽는 것도 운명이죠. 죽음의 여왕이 그를 부르는데 거절할 수 있겠어요?”

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분명 오디슨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야지- 하고서 제대로 말을 못 할 게 뻔했다. 차라리 강글로트가 저질러 준다면?

헬은 차마 강글로트를 저지하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아이의 이름은 어떻게 하지……?’

노처녀 신은 벌써 장밋빛 미래를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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