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47화 (47/208)

# 47

47화. 영웅은 변명할 줄 모른다 (3)

티르의 조작 덕분일까? 아니면 손오공이 한 짓이 워낙 충격적인 탓일까? 신계 연맹 커뮤니티는 혼란에 휩싸였다.

완전 난장판이 되었다.

[뉴스) 손오공 절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87

[공짜 야짤 보고 가라^^]+2

[오디슨 걔 근데 신성모독 걸리는 거 아님?]+11

[ㅋㅋㅋㅋ손오공 미친 새낔ㅋㅋㅋㅋ]+22

[손오공 CCTV 공개.gif]+991

손오공 이야기가 수두룩하게 올라왔다. 그 사이에 간간이 오디슨의 이야기가 끼어 있었다.

뭐, 혼란을 틈탄 광고도 하나씩 있었다.

“더! 더 손오공에 대한 정보를 파! 댓글을 잔뜩 달아서 이게 이슈인가 보다 하게 하라고!”

“저, 티르 님? 댓글 흐름은 어떤 식으로 할까요?”

발키리 하나가 물었다.

티르는 목덜미를 주무르며 말했다.

“신의 체면이 있지, 도둑질이나 해? 그런 식으로 몰아가! 아무래도 신이라는 게 더 자극적이잖아!”

티르는 서두르지 않았다.

오디슨에 대한 관심이 다른 곳으로 흘러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저팔계? 사오정?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한 설명!]+2

[손오공 최후 목격담, 그가 향하는 곳은? 천축!]+289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게시글입니다.)]

[손오공의 스승 삼장법사, “나는 전혀 모르는 일.”]+346

[근데 님들, 팔개로?? 팔계로?? 그게 뭐임?]+776

오디슨에 대한 게시글이 올라오지 않게 되었다.

모두가 손오공에게 관심을 보였다.

팔괘로를 훔친 손오공은 잡힐 것인가, 말 것인가? 심지어 발할라에서도 오디슨보다는 손오공에 관심을 뒀다.

“동방의 높으신 분이 신계의 보물을 훔쳐서 다른 신계로 도망갔다던데?”

“그럼 그쪽 신계는 받아 준대?”

“글쎄… 그쪽에서도 뭐 한자리 해 먹던 양반이라던데?”

“어이구, 대단한 사람이구먼!”

“아니, 원숭이래.”

티르는 때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당당하게 소리쳤다.

“재판을 개최한다!”

* * *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최상부.

“허…….”

탄성을 토했다.

내가 살다 살다 구름보다 높은 곳으로 오게 될 줄이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슬쩍 위를 올려다보고 움찔 몸을 떨었다. 눈이 마주쳤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리(unnamed eagle).”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리’의 부리부리한 눈이 나를 똑똑히 바라보고 있었다.

침을 꼴깍 삼켰다.

위그드라실의 가장 높은 가지에 앉은 독수리는 어마어마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고, 위압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 수리의 눈 사이에 앉아 있는 새하얀 매만 해도 어지간한 건물보다 크다. 그 매의 이름은 베드르폴니르(Veðrfolnir)다.

슬그머니 눈을 돌리고 이라호드에게 물었다.

“하계에서부터 늘 궁금했던 게 있소.”

“…오디슨? 지금 재판하러 온 거 알죠?”

그녀가 슬쩍 눈치를 줬지만, 차마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리’와 베드르폴니르는 대체 뭘 하는 것들이오? 라타토스크가 뿌리와 정상을 오가며 싸움을 붙인다는 건 알겠지만…….”

위그드라실의 뿌리를 갉아 먹고 사는 드래곤, 니드호그는 라그나로크의 때에 날아올라 아스가르드를 공격한다 했다. 하지만 그 대적자인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리’는 라그나로크의 때에도 그저 고고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게 궁금했다.

이라호드가 주변을 살피고 슬쩍 귓속말했다.

“아무도 몰라요.”

“…신들께서도?”

“오딘께서는 아실지도 모르지만… 워낙 입이 무거우신 분이셔서요.”

이라호드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지만, 이곳은 신들이 회의하는 장소다. 모든 신이 모이는 곳.

그렇다면?

“오딘께서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시오?”

“글쎄요. 신들의 회의가 아니라, 당신의 재판이니까요. 어떻게 하실지…….”

그분을 뵐 수 있다면 좋으련만.

부푼 마음으로 기대를 할 때, 이라호드가 나를 재판장 한가운데 있는 자리로 안내했다. 조금 떨어진 의자에는 비다르가 앉았다.

비다르가 나를 보며 이를 갈았다.

어깨를 으쓱였다.

“거 그러니까 그딴 짓을 왜 해서 이 좋은 곳에서 재회한단 말이오?”

“…개 같은 자식. 너 때문에 불탄 클랜 하우스가 대체 얼마짜리인 줄 아느냐? 응?”

그따위 것 알 바인가? 픽 웃음을 흘렸다.

비다르가 으득- 이를 갈았지만, 뭐라 쏘아붙이진 못했다.

마침 재판을 보려는 신들께서 입장하셨으니 말이다.

펜리르와 동행한 헬께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 비다르를 죽일 듯 노려보셨다.

그 옆에 있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거인.

…설마 로키인가?

눈이 마주쳤다. 로키가 히죽 웃으며 한쪽 눈을 깜빡였다.

저게 뭐지? 눈을 끔뻑이자니, 로키보다 더 큰 덩치를 지닌 이가 눈에 띄었다.

토르시다.

토르께서는 이전 에이르 신전에서 본 것과 달리, 장대한 체구를 지니셨다.

아무래도 이전에는 몸을 줄이고 찾아오셨던 모양이다.

그분은 옆에 있는 발키리와 무어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셨다.

순간 토냐르라는 이름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됐다. 떨쳐 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신들이 이 재판을 보기 위해 왔다.

시끌벅적한 이 분위기는 에기르의 연회나 다름없지 않을까? 그래도 술이 없으니 난장판이 되는 일도 없으리라.

주변을 둘러볼 때, 재판장에 우뚝 솟은 연단에 깔끔하게 잘생긴 남자가 자리했다. 올곧은 눈빛에는 맑은 정기가 가득했다.

그 눈빛에 혹시나- 하며 물었다.

“티르시옵니까?”

그분께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럴 수가! 내가 티르를 직접 뵙게 되다니!

가슴이 벅찼다.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당장에 찬미를 올렸다.

“정당하시고 정의로우신 결투의 주시자시여! 선(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고도 염려하시는 심판자시여! 미천한 전사가 감히, 그대를 뵙습니다!”

내 찬미에 돌아온 것은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내리시는 경고뿐이었다.

“흠, 피고인은 정숙하라.”

안타깝지만, 반가웠다.

티르께서는 달콤한 소리마저 정의의 저울을 위해 내치시는 분이시라. 찬미가를 부르고 싶지만, 꾹 참았다.

티르께서 말씀하셨다.

“이 법정에서 거짓을 말하는 자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함을 잊지 말라. 언제나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 가슴팍을 쿵쿵 두드리고 고개를 숙였다. 티르께서 그에 말씀하신다.

“본 재판의 판정을 맡은 나는 맹세하노니.”

오른손을 든 티르께서 엄숙하게 선언하셨다.

“질서와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 없으리라.”

그에 흥- 하고 콧방귀 소리가 들렸다.

슬쩍 돌아보니 펜리르였다. 선글라스를 쓴 그가 헬께 무어라 중얼거렸다. 낄낄대는 모습을 보자니, 티르의 오른손을 두고 뭐라 농담을 하는 모양이었다.

손목을 늑대 관절(wolf-joint)이라 불리게 한 사건이 바로, 펜리르가 티르의 손목을 끊어 버린 일이다.

법과 질서의 수호자께서 맹세를 하는 오른손을 잃어버리셨으니, 세상의 종말도 당연한 일이리라.

정의가 땅에 떨어지면 악인들이 설치는 법이다.

티르께서 내게 물으신다.

“피고인 오디슨은 암살자의 습격을 받았는가?”

그에 대꾸했다.

“그렇사옵니다.”

“재판장은 신분의 고하에 연연하지 않는 신성한 장소다. 과도한 경어 사용은 자제하라.”

“…알겠소.”

티르께서 고개를 끄덕이시고, 다시 물으셨다.

“피고인 오디슨은 발키리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사적 제재를 했는가?”

“사적 제재?”

“복수를 했느냐는 말이다.”

“그렇소.”

티르께서 더 물으셨다.

“피고인 오디슨은 주변에 피해가 갈 것을 알고도 방화를 저질렀는가?”

“그렇소.”

“피고인 오디슨은 방화를 저지른 뒤에도 사적 제재를 이었는가?”

“그렇소.”

내 말은 대부분이 ‘그렇소’였다.

티르께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시고, 나를 보셨다.

“…피고인 오디슨은 그 행위가 정당했다고 생각하는가?”

“내 눈 아래, 티와즈 루 룬에 걸고 말하오.”

눈가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렇소.”

티르께서 눈을 깜빡이시다 눈살을 구겼다.

왜 저러시는 건가?

아! 이런 바보 같으니!

“그, 본래의 육체가 암살자의 술수에 타락한지라, 재생과 부활이 아닌 아예 새 육체를 만들어 헷갈리게 해 드렸소. 본래는 여기에 티와즈 루 룬이…….”

“그만!”

티르께서 내 말을 제지하셨다.

어쨌거나 난 어깨를 으쓱이며 한마디 덧붙였다.

“전사로서 전사답게 해야 할 일이었소.”

내 말에 펜리르가 그렇지- 하고 소리쳤다. 토르 역시 껄껄 웃으시며 그렇고말고- 하고 펜리르의 말을 받으셨다.

저 둘이 어울릴 거라고는 상상치도 않았건만.

생각보다 사이가 좋다. 서로를 바라보며 킬킬대는 모습을 보자니 떨떠름하기 그지없다.

티르께서 얼굴을 쓸어내리셨다. 그리고 무어라 입을 여시다 마셨다. 펜리르와 토르, 둘 다 티르께서 잔소리한들 들을 위인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분께서는 곧장 비다르에게 물으신다.

“피고인 비다르는 살인 청부에 대해 인정하는가?”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눈살을 찌푸렸다.

티르께서 질문을 이으신다.

“피고인 비다르는 클랜장에게 살인 청부를 명하지 않았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뻔뻔스러운 작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삿대질하며 화냈다.

“책임을 회피하는가!”

티르께서 손을 들어 날 막으시지만 않았다면, 놈에 대한 욕설을 바위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했으리라!

허나 난 티르의 앞에서 더는 뭐라 하지 못했다. 그저 아득바득 이를 갈 따름이다.

티르께서는 싸늘한 눈으로 비다르를 보며 말씀하신다.

“이미 증거는 확보되었다. 후긴과 무닌이 고생해 줬지.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려 해도, 오히려 죄가 깊어질 따름이다.”

티르의 말에 커다란 까마귀 두 마리가 푸드득 날개를 휘저으며 까악- 울어 댔다.

오! 저것이 오딘께서 부리시는 후긴과 무닌인가?

“세상의 모든 생각과 기억을 읽는다는 후긴과 무닌이라니… 그게 사실이오? 사실이라면 정말 놀라운 능력을 지녔구려!”

내 말에 후긴과 무닌이 깍깍 울었다.

메르키와 친하게 지낸 덕일까? 후긴과 무닌의 울음소리에 서린 흐뭇함을 읽어 낼 수 있었다.

크흠-! 티르께서 헛기침을 하시고 다시 비다르에게 물으신다.

“암살자를 보낸 적이 있나?”

“…후우, 그래. 하지만 결단코, 찌꺼기의 피를 사용해 타락을 유도하라 한 적은 없다.”

“그런가?”

티르가 후긴과 무닌을 바라보니, 까마귀 둘이 고개를 끄덕인다. 도크알브 년이 혼자 계획한 거라고?

찌꺼기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관리하던 게 아닌가?

내가 지닌 의문을 티르께서 생각지 못하셨을 리가 없다.

티르께서는 그에 대해 물으셨다.

“그렇다면 불법적인 물품에 대한 밀수를 도왔는가?”

“그건…….”

비다르가 차마 말하지 못했다.

비열한 작자 같으니. 이를 으드득 갈았다.

“찌꺼기라니…….”

“쯧쯧, 비다르도 갈 데까지 갔군.”

“뭐, 하는 일이라곤 클랜을 운영하는 소일거리뿐인데…….”

“그게 완전 개박살이 났지. 한 사람한테 말이야.”

주위에 있는 신들 역시 웅성거리며 비다르를 비난했다.

개중 가장 차가운 목소리가 바로 헬께서 내시는 것이셨다.

“저따위 놈이 신이라며 떵떵거리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씩씩 화를 내시는 헬을 펜리르와 로키가 말린다. 그럼에도 헬께서는 분을 못 이기셨는지 차가운 눈총을 보내셨다.

나는 그분께 웃음을 보이고,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헬께서 내게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신다. 비다르에게 보내신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따뜻했다.

“이, 이이……. 나, 나는 오딘의 아들이다! 나를 비난하는가!”

비다르가 버럭 소리 높였다. 그 말에 토르가 쯧쯧 혀를 찼다.

“여기가 올림포스인 줄 아느냐, 동생아?”

“큭큭, 올림포스였으면 저 말이 먹혔을 수도 있겠지. 안 그래?”

“크하하하! 뭐, 그쪽은 그럴 수도 있지.”

펜리르가 맞장구를 쳤다.

저 둘, 진짜 잘 맞는데? 혀를 내둘렀다.

쿵쿵!

“정- 숙!”

티르께서 발을 구르시고, 일갈을 내뱉으셨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소란이 잦아들었다.

“판결을 발표하겠다.”

꿀꺽 침을 삼켰다.

정당하신 티르께서 비다르 놈에게 어떤 벌을 내리실까?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있자니, 티르께서는 내 이름을 부르셨다.

“오디슨.”

“음?”

갑자기 왜 날 부르시는 걸까?

고개를 갸웃할 때, 티르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사적 제재에 대한 정당방위의 한계를 넘어선 데다 방화에 대한 죄를 물어, 투기장 출장 정지 1개월을 선고한다.”

어? 눈을 끔뻑였다.

우우우- 신들이 내뱉는 야유가 들려온다.

이게 무슨 소린가! 출장 정지 1개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감각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이냐고 눈빛을 보냈지만, 티르께서는 나를 외면하셨다.

1개월이라니… 그렇다면 나는 대체 그간 뭘 해야 한단 말인가!

입술을 짓씹을 때, 티르께서 비다르를 부르신다.

“비다르. 살인 청부와 클랜 관리 소홀의 죄를 물어 오디슨에게 충분한 배상을 명령한다. 그 배상액은…….”

“이의 있소!”

내가 소리쳤다.

티르께서 눈살을 구기셨다. 하지만 나는 할 말은 해야겠다.

“돈은 필요 없소.”

“필요가 없다니?”

“도크알브 암살자가 말했었지. 죗값을 황금으로 치를 수 있는 곳이 발할라라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발할라는 그럴지 몰라도, 나는 그렇지 않소. 나는 돈보다는 사과를 바라오.”

비다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옹졸하기 짝이 없는 복수의 신이여, 내게 고개 숙여 사과하시오.”

비다르가 으드득 이를 갈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방진 필멸자 같으니! 겨우 에인헤리 주제에 신에게 사과를 요구한단 말이더냐! 신성모독이다!”

사나운 기세가 재판장을 가득 채웠다.

“멈춰라, 비다르!”

“흥! 법이나 읊어 대는 샌님 같으니!”

티르가 나서 나와 비다르 사이를 막아섰지만, 비다르는 으드득- 이를 갈며 티르를 밀어냈다.

펜리르를 죽인 비다르다.

그 순간의 힘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대단하리라.

티르께서 밀려나셨다.

저 불경한 작자가……!

분노를 가득 담아 바라볼 때, 헬께서 소리치신다.

“비다르! 죽음은 신이라 해도 피할 수 없다는 걸 잊지 마라!”

“흥! 신은 결국 얕보이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 이깟 필멸자에게 얕보이고 참을 순 없다!”

비다르가 사나운 맹수처럼 살기를 풀풀 뿜었다.

“결국 옹졸하고 비겁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가! 그렇다면 오라! 전사의 송곳니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이나니!”

나는 복수의 신과 맞설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단 한마디가 비다르와 나, 그리고 다른 모든 신들을 멈췄다.

“그 역시 신이다.”

걸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오싹한 느낌을 품은 한마디에 장내의 시선이 모두 소리의 진원지로 향했다.

신들의 왕, 오딘께서 오연한 표정으로 서 계셨다.

소름이 오소소 솟았다. 그 누구의 앞에서도 겁에 질린 적이 없다 자부하건만!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저분이시다. 저분이야말로, 모든 신의 왕이시다.

나는 절로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오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니, 비다르.”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고요한 재판장을 가득 채웠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오딘께서 나지막이 말씀을 이으셨다.

“내 희생을 잊지 말라.”

펑!

작은 폭발음에 놀라 눈을 드니, 그분께서는 이미 사라지신 뒤였다. 재판장은 적막에 휩싸였다.

나는 정신이 없었다.

오딘을 뵈었다는 감격과 더불어 그분이 남기신 말이 내 정신을 뒤흔들어놓았다.

무심코 중얼거린다.

“…내가 신이라고?”

멍하니 내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 굳은살이 잔뜩 박여 있고, 거칠기 짝이 없다.

그런데…….

“내가 신이라니.”

혼란과 당황, 고민이 나를 덮쳤다.

하지만 나는 전사다. 이깟 혼란 따위에 어버버- 하며 멈춰 있을 수는 없다.

가슴을 펴고 비다르에게 말했다.

“이제 사과를 받아도 되겠군.”

비다르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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