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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발할라-45화 (45/208)

# 45

45화. 영웅은 변명할 줄 모른다 (1)

도크알브는 현명하게 움직였다.

어떻게 내가 살아 있는지, 혹은 어떻게 된 일인지 묻기보다는 당장에 이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놓치지 않았다.

휙! 팔을 잡아당겼다.

“꺅!”

도크알브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하지만 그 순간, 도크알브는 그림자로 변해 바닥에 달라붙었다.

허, 놀라운 술수다.

그림자라는 이득을 확실히 이용할 줄 아는 녀석이다.

바닥에 달라붙은 도크알브가 칫- 혀를 찼다.

“망할 자식… 숨겨 둔 한 수가 있어서 그렇게 뻣뻣했다, 이거지? 그럼 제대로 한번 놀아 보자고!”

쉭쉭쉭! 그림자에서 손이 튀어나오고 단검을 내던진다.

챙! 하나를 튕겼지만, 다시 또 하나가 날아들었다.

단검이 대체 몇 개나 있는 거지? 짜증을 부리며 튕겨 냈다.

“이깟 잔재주로 날 죽이려고 했는가!”

“칫, 제대로 싸우면 뒤처리가 귀찮다고!”

도크알브가 꽥 소리를 지르며 단검을 연이어 던졌다.

직선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단검, 그리고 기괴하게 휘어져 날아오는 단검. 열 개가 넘는 단검들이 일시에 뿌려졌다.

마치 궁병대에서 쏜 화살 같았다. 나는 감탄을 내뱉으면서도 그것들을 모조리 쳐 냈다.

챙챙챙챙!

늑대의 힘을 깨운 나는 이전과 다르다.

볼 수 없는 것을 보았고,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었다.

단검의 궤적이 선명하게 보였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숨겨진 단검을 알려 주었다.

그뿐인가?

예민한 코는 쇠 냄새를 놓치지 않았고, 몸에 숭숭 돋아난 털들은 가느다란 바람도 예민하게 느꼈다.

챙챙챙챙!

손톱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단검들이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모조리 추락한 단검들이 흉물스레 공원에 널브러졌다.

시체와 단검으로 장식된 공원이라. 휴식할 장소로 좋진 못하다.

“미친! 그걸 다 쳐 내?”

“크흐흐. 꽤 재밌는 여흥이었다! 이제는 내 차례겠지!”

“흥! 지랄! 그림자에 숨은 나를 끄집어내겠다고?”

도크알브가 콧방귀를 뀔 때, 나를 잽싸게 그림자를 덮쳤다. 그림자가 킥킥 웃었다.

“난 그림자라고!”

그 말에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난 영혼이다.”

“어, 어어! 꺄아아악!”

와락! 그림자의 머리채를 잡고 끄집어냈다.

바닥에서 떨어진 그림자는 도크알브가 되었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빠직!

“꺄으으윽!”

도크알브의 앙증맞은 코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나는 그걸로 만족하지 않는다.

손톱을 세우고 그대로 그었다.

촤악!

“끄아아아아악!”

도크알브의 얼굴에 고랑이 파였다. 예쁜 얼굴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비명을 지르는 도크알브.

나는 여자를 괴롭히며 기뻐하는 변태는 아니다.

“죽어라.”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손톱을 세워 그 머리통을 꿰뚫는다.

서걱!

그 순간, 도크알브는 제 머리칼을 잘라 내고 도주했다. 얼굴에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끄으… 개자식! 여자 얼굴을……! 명예로운 전사라는 놈이 이딴 짓을 해?”

어깨를 으쓱였다.

“전사에는 성별이 없다. 무기를 들고 싸움을 시작했다면,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노인이든 전사다. 최선을 다해 상대해 주는 것이 전사의 긍지지.”

“…으, 으으……. 두, 두고 보자!”

도망치겠다?

내가 그걸 두고 볼 리가 없지 않은가.

크르릉- 이를 악물고 도크알브에게 덤벼들었다.

그년의 목을 손톱으로 찢어발기려 할 때, 도크알브가 둥근 공 같은 걸 바닥에 던졌다.

펑!

“큭!”

갑자기 연기가 터져 나왔다.

어두운 밤, 가로등에 의지한 채 그림자와 싸우는 것만 해도 귀찮기 그지없건만!

이 빌어먹을 연기는 또 뭔가!

“비열한 년아! 네년도 전사라면, 당당하게 싸워라!”

“크히히, 나는 전사가 아니야, 암살자지. 언젠가 네 목을 끊어 놓을 날을 기다리겠어.”

어둠 속에서 말이야- 도크알브가 킥킥킥 날 비웃으며 말했다. 지금 그년을 놓치면 온갖 귀찮은 일이 생길 게 뻔하다.

당장 잡아야 한다.

하지만 무슨 수로?

아드득,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때, 묘한 소리가 들렸다.

꽈드드득!

“꺄, 꺄아아아아악!”

쩝쩝, 와드득! 까득!

“끄아아악! 뭐, 뭐야! 이 괴물은! 꺼, 꺼져! 꺼지라고오오! 아, 아… 아, 안 돼……!”

와작! 와작와작! 쩝쩝쩝.

도크알브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쩝쩝대는 습한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쫑긋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도망치던 도크알브가 괴물을 만나 죽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 괴물은 도크알브를 뜯어먹고 있고 말이다.

꿀꺽 침을 삼켰다.

도크알브를 처리했더니 또 다른 뭔가가 튀어나왔다고?

후우, 오늘은 정말 재수 없는 날이군.

긴장한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을 때, 천천히 연기가 걷혔다.

그리고 무언가가 웅크린 채 쩝쩝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익숙한 옷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 몸?”

도크알브를 뜯어먹고 있던 게 내 몸이었으니까.

내 목소리에 내 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입가를 피로 물들인 ‘내’가 히죽 웃었다.

“키히리키히헤케케헤이히익…….”

어딘가 익숙한 웃음소리다.

눈살을 구기고 그 웃음소리의 근원지를 살폈다. 내 왼손. 지금 내 왼손에는 헬께서 내리신 금반지 하나뿐.

그렇다면 내 몸의 왼손에는?

검은 연기가 팔뚝으로 스며들고 있는 게 보였다.

“…악령?”

“케케케케!”

녀석이 웃었다.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도크알브 다음에는 악령인가? 싸움을 준비했다.

손톱을 바짝 세우고, 자세를 낮췄다. 창을 놓고 왔다는 게 이토록 후회될 줄이야.

앞으로는 반드시 무기를 챙겨 다니리.

“이 빌어먹을 악령아! 내 몸으로 무슨 짓거리냐!”

버럭 소리치고 악령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악령이 휙! 바닥에 누웠다.

“…으음?”

배를 까뒤집고 헥헥- 거친 숨을 흘리는 내 몸.

꽤 소름 돋는 광경이었다. 떨떠름한 시선을 보내자, 악령이 히죽히죽 웃으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끼히이케이히리께이!”

“…싸우지 말자는 거냐?”

“케케!”

고개를 끄덕이는 악령.

나는 착잡한 기분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럼 일단 엉덩이를 흔들지 마라.”

뒤틀렸다지만, 내 모습을 하고 그런 짓을 하면 영 기분이 나쁘다.

한숨 돌렸다.

악령과 드잡이질을 하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안 그래도 비다르 클랜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이 빌어먹게 넓은 발할라에서 비다르 클랜의 위치를 알려 줄 사람이 필요했다.

메르키에게 가서 물어봐야 하나?

턱을 쓰다듬을 때, 부스럭- 인기척이 났다.

음? 시선을 돌렸다. 악령 역시 입가에 피를 덕지덕지 묻힌 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초라한 꼴을 한 남자가 하나 있었다.

“으어, 으어어! 나, 나, 난 아무것도 못, 못 봤어요…….”

바지를 축축이 적신 노숙자가 손사래를 치며 덜덜 떨었다.

…귀찮은 일을 덜었다.

“봤든 못 봤든 그다지 상관없다.”

“제, 제발! 살려 주세요! 도, 돈이라면… 여, 여기…….”

주머니를 내미는 노숙자.

고개를 저었다.

“비다르 클랜의 본부가 어디에 있는지 아나?”

“…예, 예? 비다르 클랜요……?”

고개를 끄덕였다.

비열한 자들에게 진짜 복수를 보여 줄 시간이다.

* * *

발할라 상부에 있는 발키리 본부는 아름답다기보다는 딱딱한 건물이었다.

회색 건물은 둥둥 떠 있다는 걸 제외하면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건물의 미추를 판단할 사람은 없었다.

발할라에서는 마법이 걸린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그 건물을 사용하는 발키리들은?

굉장히 바쁘다.

특히나 담당 발키리는 엄청난 숫자의 전사들을 보조하고 관리하면서도 발할라 전체의 치안까지 떠맡아야 했다.

대부분 전사가 얽힌 사건 사고들에는 그 담당 발키리가 출동한다. 하지만 발키리라고 24시간 깨어 있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밤중에 일어나는 사건은 당번을 맡은 발키리가 처리한다.

오늘의 신고 전화를 맡은 이는 헤르표두르라는 이름을 지닌 발키리다.

언제나처럼 별일이 없었다.

딱 0시가 되기 전까지.

0시가 되고 날짜가 바뀌기 무섭게 전화기가 울렸다.

신고 전화들이 엄청나게 걸려왔다.

“네? 네! 알겠습니다. 잠깐만요…….”

수십 통의 신고. 혼자서 모조리 처리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는 원칙에 따라, 먼저 신고의 진실 여부를 판단해야 했다.

까마귀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예! 지금 전송했어요. 빨리 알아보고 연락 주세요.”

이제 까마귀들은 발할라 곳곳에 깔린 CCTV를 통해 신고의 진실 여부를 살핀 뒤, 다시 연락을 줄 터이다.

그렇게 처리를 하면서도, 헤르표두르는 장난 전화라고 생각했다.

“사냥제가 얼마 안 남아서 그런가? 왜 이래,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신고들이었다.

발할라에 여자의 머리를 들고 활보하는 남자가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헤르표두르는 신고 전화에 건성으로 대꾸했다.

“오디슨은 무슨. 그렇게 잘생긴 남자가 흔한 줄 아나. 쯧쯧.”

특히나 어이없는 건, 그 머리통을 들고 다니는 남자가 요즘 한참 인기인 투사 오디슨이라는 신고였다.

“아, 이라호드는 좋겠다…….”

헤르표두르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댔다.

이라호드보다 먼저 발키리가 된 헤르표두르다. 하지만 그녀는 이라호드를 부러워했다.

아니, 대부분의 발키리들이 이라호드를 부러워했다.

수십 년을 담당 발키리로 고생해도 전속 발키리 발령을 못 받는 이들이 수두룩했으니까.

전속 발키리는 담당 발키리보다 훨씬 널널하다.

담당 발키리의 담당 전사는 무려 1만 명. 그에 반해 전속 발키리는 단 한 명을 관리한다.

1만 명과 한 명.

어느 쪽이 편할지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전속 발키리는 새벽 치안 당번도 제외다. 전속으로 케어해야 하는 전사가 활동하는 시간대에 맞춰 움직이면 그만이다.

부러울 수밖에.

헤르표두르가 한숨을 푹 내쉴 때, 당번인 괴르가 낄낄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

“선배, 왜 그렇게 축 늘어졌어요?”

“신고가 갑자기 너무 많이 들어와. 그게 무슨 신고인지 아니? 오디슨이 글쎄, 여자 머리통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거야.”

“…어, 오디슨이면, 걔요?”

“그래, 이라호드 담당인 걔.”

괴르가 꿀꺽 침을 삼켰다. 그녀는 오디슨이라는 놈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잘 안다.

대부분의 전사는 발할라에 올라와 딱 일주일을 지내면 전사의 야만성을 잊는다.

그런데 오디슨은?

벌써 3달이 넘었건만, 야만적인 행동이 그대로다.

“…저, 선배. 그거…….”

“잠깐만.”

뚜르르르- 까마귀들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헤르표두르가 그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네? 네… 네? 그러니까… 그게 사실이라고요? 예, 예…….”

괴르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미친 새끼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꿀꺽 침을 삼키고,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헤르표두르가 전화를 끊고 버럭 소리쳤다.

“출동! 출동! 클랜 하우스 거리, 비다르 클랜 앞! 출동!”

괴르를 비롯한 출동조 발키리가 황급히 채비를 갖추고, 청동 날개를 휘저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마어마한 기동력을 지닌 발키리들이 발할라의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도착한 비다르 클랜 하우스의 앞.

괴르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미친!”

피칠갑이 된 여자 머리통. 혀를 길게 늘어뜨린 도크알브의 머리. 오디슨이 그 머리카락을 쥔 채 서 있었다.

우악스레 뜯긴 목에서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괴르가 질색하며 소리쳤다.

“오디슨!”

“음? 발키리? 괴르… 였던가?”

오디슨은 태연했다. 괴르는 순간 ‘내가 이상한 건가?’ 생각했다. 허나 이 자리에서 가장 비정상인 건 오디슨이었다.

괴르가 고개를 휘휘 저어 의심을 떨쳐 내고 추궁했다.

“이,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오디슨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다르 클랜 하우스를 공격하는 건 바보짓 아니겠소?”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그에 오디슨이 씩 웃으며 이야기를 늘어놨다.

“소수병력으로 대군을 상대할 때의 원칙을 떠올렸다오. 다들 날 무식하다 하는데, 사실 난 군략에도 정통하다오. 대장이란 그런 자리지.”

“그게 무슨…….”

오디슨이 어깨를 으쓱였다.

“화공(火攻)이오.”

괴르는 그제야 주변에서 묘한 냄새가 난다는 걸 알아챘다.

코를 통해 뇌를 쿡쿡 쑤시는 듯한 냄새. 기름 냄새. 그리고 오디슨의 손에 들린 게 무엇인지도 알았다.

“그건!”

“아, 발할라는 참 좋소. 이렇게 좋은 물건을 싸게 파니 말이오.”

다이스에서 겨우 3크로나를 주고 샀다오- 오디슨이 흐뭇하게 웃었다. 괴르는 기겁했다.

‘그 머리통을 들고 다이스에 들어갔다고? 그보다 라이터?’

혀를 내두를 때, 칙칙- 오디슨이 라이터를 켰다.

설마하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질 참이다.

괴르가 꽥 소리 질렀다.

“이 미친 자식아!”

그 소리에 맞춰, 오디슨이 라이터를 비다르 클랜 하우스에 던졌다.

화르륵! 불꽃이 치솟았다.

발할라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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