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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발할라-42화 (42/208)

# 42

42화. 영웅은 숙일 줄 모른다 (1)

꿈이다.

그를 순식간에 알아챈 것은 내게 익숙한 이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그뉘.

잠깐 사이에 다시 보는 것이건만, 그녀의 모습은 내 기억과 상당히 달랐다. 언제나 수줍어하던 소녀가 이제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외치고 있었다.

볼바가 되며 바뀐 것일까? 이전 연약하던 소녀가 사라지고 굳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기쁘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붉은 늑대께오서 제국의 바다뱀을 물어 죽이시었다. 그에 제국의 바다가 미쳐 날뛰었지만, 감히 붉은 늑대께서 보우하는 땅은 건드릴 수 없었다 하더라.”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설마, 내가 이번에 세계뱀과 맞서 싸운 이야긴가? 이라호드에게 듣긴 했다.

신계와 하계는 서로 간에 간섭하긴 어렵지만, 완전히 단절된 곳이 아니라고. 예지를 볼 수 있는 볼바는 신계를 약간이나마 살필 수 있다 들었다.

그게 이런 뜻이었던가?

허- 감탄을 토하고 싶지만, 내게는 입도 목도 없다.

손도 발도 없이 둥둥 뜬 채, 나는 시그뉘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듣던 꼬마가 물었다.

“그 붉은 늑대께서 우리 부족을 보우하신다는 걸 어떻게 알아요?”

“붉은 늑대께서는 몇 주 전 군단을 홀로 상대하시지 않았더냐?”

몇 주? 바로 며칠 전이 아니었던가?

내가 지금 대체 얼마나 누워 있는 거지?

문득 불안해졌다. 내가 넵투누스와 마르스 사이에 불화를 일으켰을까?

크레네는 무사할까? 혹여 올림포스로 불려가 고초를 겪는 건 아닐까?

마음이 무거웠다.

허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이 꿈속에서 시그뉘를 보는 것뿐.

꼬마가 다시 질문했다. 참 궁금한 것도 많은 꼬마다.

“그분이 붉은 늑대세요?”

“그렇단다. 그분께서는 아직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분이시라, 붉은 늑대라는 별명으로 불리시는 거란다.”

꼬마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저도 붉은 늑대처럼 훌륭한 전사가 될래요!”

겨우 10살이나 되었을까? 아직은 부족의 여러 가지 일을 배울 나이건만, 그 눈에 또렷하게 새겨진 뜻은 확고했다.

“흥, 허튼소리!”

아이의 꿈을 짓밟은 목소리에 시그뉘가 눈살을 구겼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향한다.

주인공은 손목을 잃은 전사였다. 퀭한 몰골을 한 채 그가 시그뉘에게 삿대질했다.

“네 사촌오빠가 붉은 늑대였다지? 그렇기에 그 이름을 팔아 부족을 좌지우지하려는 것 아닌가!”

“지금 볼바인 나를 의심하는 거요, 히에라키?”

히에라키가 콧방귀를 뀌었다.

“네년이 볼바가 되었다며, 전사한 부족장의 빈자리를 차지하려는 술수임을 모를 줄 알았더냐!”

“내가 그분의 신성한 힘을 다룰 줄 안다는 건 어떻게 왜곡할 거죠?”

시그뉘의 말에 으으릉- 낮은 소리가 들렸다.

나의 힘? 의문에 머리를 굴리는 찰나, 시선이 돌아간다.

그곳에는 늑대 가족 하나가 히에라키라는 전사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시그뉘가 ‘그만’ 하고 부드럽게 말하자, 늑대들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게 늑대를 다루는 힘이 있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만약 내가 몸이 있는 상태였다면 눈을 끔뻑였으리라.

“허튼수작이다! 저 늑대들은 네가 예전부터 기르던 녀석들이겠지!”

“같이 볼바 견습 생활을 하던 자매들의 눈을 피해서 말인가요?”

시그뉘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소녀들이 히에라키를 비난했다.

“시그니료드 님께서는 절대 늑대를 키우지 않으셨어요!”

“볼바를 의심하다니! 신앙이 의심스럽네요!”

덩치가 말했다. 자기가 볼바 견습 생활을 하던 소녀들을 지켰노라고. 그 덕인지 소녀들은 시그뉘를 믿고 따르는 모양이다.

히에라키가 이를 으드득 갈았다.

“증거가 없지 않나, 증거가! 제국의 바다가 요동치는 게 신계의 문제다? 그저 가끔 벌어지는 대자연의 분노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쪽에는 전혀 화가 미치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그, 그건…….”

이쪽은 바다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시그뉘의 말이 약간 이상하다 여겼지만, 히에라키는 대꾸하지 못했다. 뭔가 내륙에도 영향을 끼친 건가?

그 정답은 시그뉘의 말에 담겨 있었다.

“제국의 재침이 무서워 본래 살던 땅을 버리고 북쪽으로 올라와 바닷가에 정착했죠. 하지만 우리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어요. 오직 제국의 바다만이 무섭게 요동쳤을 뿐이죠. 멀리서도 훤히 보이는 일 아닌가요? 바람 한 점 없는데 큰 파도가 제국의 도시들을 집어삼켰잖아요.”

시그뉘의 말에 히에라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보다 살던 곳을 떠나왔다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쩐지 제대로 된 집이 아니라 천막 같은 꼴이더라니.

나는 전후 정리 때문에 이런 곳에 있는 줄로만 알았다.

히에라키가 침묵하자, 다른 전사 하나가 끼어들었다.

“그분의 가호가 있다면, 당장에 저 제국 놈들을 치자!”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인가!

부족장이 전사할 정도로 피해가 큰데 당장 덤비겠다고?

어이가 없다.

시그뉘 역시 어이가 없는지, 헛숨을 토했다.

“그게 지금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 부족의 전사라고 해 봐야 오십도 되지 않는데, 제국군을 치자고요? 제국이 아무리 혼란스럽다고 한들…….”

“겁쟁이 같으니! 네 신도 너처럼 겁쟁이더냐!”

히에라키가 벌떡 일어나 시그뉘를 모욕했다.

나는 분노했다. 저까짓 놈이 감히 날 겁쟁이라 불러?

시그뉘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 제가 겁쟁이라면 이 자리에서 천벌을 받겠지요!”

“천벌을 들먹이는 놈 중에 제대로 된 놈이 없더군!”

“그렇다면, 당신도 하늘에 맹세하세요!”

시그뉘의 말에 히에라키가 끌끌 웃으며 양손을 크게 펼치고 놀리듯 말했다.

“내 말이 틀렸다면 천벌을 받겠소! 봐라, 아무런 일이 없지 않… 컥!”

찌직- 천막이 찢어지고, 얼음덩어리가 히에라키 위로 우르르 쏟아졌다. 하필이면 날카롭게 언 얼음이 그의 목에 턱 하니 꽂혔다.

“끄으으…….”

비틀대던 히에라키가 붉은 피를 내뿜으며 그대로 꼬꾸라졌다.

“꺄아아아악!”

소녀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시그뉘도 흠칫 놀란 모양이었지만,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고 외쳤다.

“그분은 죽음에서도 돌아오시는 분! 얼음 땅의 여왕께서 총애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께서 이 사악한 이단자를 부르셨다!”

시그뉘의 말에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오딘의 아들이여, 적의 목을 물어뜯는 붉은 늑대여, 아직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자여! 상대를 찢어 죽일 용맹과 물러서지 않을 용기를 내리소서!”

모두가 오들오들 떨면서도 엎드려 경배했다.

나는 당황했다. 시그뉘의 말이 정말인가? 그저 우연이 아닌가?

눈을 끔뻑였다.

음? 눈을 끔뻑여?

귓가에 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슨! 오디슨! 이제 정신이 들어요, 오디슨?”

맑은 물의 냄새와 울먹이는 표정의 크레네가 보였다. 그녀의 예쁜 눈이 퉁퉁 불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방금 전 꿈을 생각지도 못하고 껄껄 웃어 젖혔다.

“바보 같으니! 얼마나 걱정했는데!”

퍽퍽퍽! 크레네가 작은 손으로 내 가슴팍을 토닥였다.

나는 그녀를 와락 껴안고 물었다.

“얼마나 지났지?”

당장 가장 걱정되던 것에 대해 말했다.

크레네는 손가락을 2개 펼쳤다.

“2주?”

“이틀요.”

이틀? 그런데 내 꿈속 시그뉘는 몇 주나 지났다고 말했다고?

발할라와 하계의 시간이 다른 건가? 그러고 보니, 전에 갔을 때 본 시그뉘도 내가 알던 모습과는 좀 달랐지.

확실히, 시간의 흐름이 다른 모양이었다.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니 신경 쓰지 말자.

그보다 내가 신경 써야 할 게 있다.

“포세이돈은?”

“…망명하면서 님프들과도 연락이 모조리 끊겼어요.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다만.”

크레네가 검은 석판을 내밀었다.

손바닥 정도 크기의 네모반듯한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이게 뭔가- 하고 있을 때, 석판에 그림이 떠올랐다.

흠칫 놀랐다.

또 마법 물품인가?

“자, 이거 봐요.”

크네레가 글자가 무수히 떠 있도록 마법 물품을 조정한 뒤 내게 보여 주었다.

[아레스, 백부에게 행패?]+152

[하계 영향 지대해… 포세이돈, 처벌 가능성도.]+665

[그날, 포세이돈 궁궐에서는 무슨 일이?]+879

깨알 같은 글씨들이 수두룩하다. 눈살을 좁히고 그걸 읽어 내려갔다. 대충 마르스와 넵투누스가 투닥였다는 소리 같다.

히죽 웃음 지었다.

“이것 참 잘됐군.”

“그렇죠? 헤헤, 아 참! 저, 발할라로 소속이 바뀌었어요.”

“아, 그런가? 이라호드에게 감사해야겠군.”

“안 그래도 몇 번이나 고맙다고 했어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 문이 열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발키리도 고양잇과인가?

앙칼진 표정이며, 틱틱거리는 어조를 보아하니 그럴듯한 이야기다.

“아주 살림을 차리지 그래요? 네?”

여전히 투덜거리는 태도다. 크레네가 볼을 붉히고 몸을 비비 꼬았다. 그 모습을 본 이라호드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리고 내게 작은 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쩔렁! 꽤 묵직한 주머니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나?”

“예, 거기에서 부활 비용을 뺀다면야… 많이 줄겠지만요.”

부활 비용이야 빚으로 달아 놓으면 그만이다.

늪지머니가 어쩌니 저쩌니 헛소리를 해야겠지만.

나는 조심스레 주머니를 열었다.

금화가 번쩍였다. 하나하나 세어 볼까 하다, 이라호드를 쳐다보았다. 이라호드가 금액을 말해 주었다.

“5천만 크로나예요.”

쿵쿵쿵쿵, 심장이 뛰었다.

토르손을 이제 발할라로 데리고 와 제대로 된 투사로 자립하게 해 줄 수 있다.

나는 당장 침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신발, 신발이 어딨지?

“내 신발은?”

“다 녹았잖아요. 버렸죠.”

“후원이 있으니 새 신발을 언제든 받을 수 있다 하지 않았나?”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라호드가 시선을 피했다. 약간 불편한 듯한 태도로 그녀가 말을 꺼낸다.

“저, 오디슨… 이런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그때, 이라호드의 말을 끊으며 문이 벌컥 열렸다.

에이르 신전의 사제? 아니다.

뜻밖의 인물이 병실을 방문했다.

“…오랜만.”

헬이었다. 그다지 오랜만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어찌 여기까지……?”

“그냥 일이 있어서… 아니.”

헬께서 고개를 휘휘 저으셨다.

일이 있던 게 아닌가? 오늘따라 평소와 다른 화장을 하셨다. 강렬해 보이는 눈 화장, 그 눈이 슬쩍 주위를 둘러본다.

헬께서, 그분께서 시선을 돌리시며 말씀하셨다.

“몸 괜찮은가 보러 왔어. 그리고 그쪽이…….”

크레네는 움찔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헬은 지나친 거물이다. 저렇게 깜짝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내게는 친절하신 분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도 않으신 듯했다.

크레네가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미천한 우물지기, 님프 크레네가 위, 위대한 니플헤임의 주인, 모든 망자의 여왕을 뵙습니다!”

“…흐응.”

헬이 나지막한 콧소리를 흘렸다.

나는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니플헤임이 아닌 곳에서 헬을 보게 될 줄이야.

문득, 꿈 내용이 떠올랐다.

‘그분은 죽음에서도 돌아오시는 분! 얼음 땅의 여왕께서 총애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께서 이 사악한 이단자를 부르셨다!’

갑작스레 얼음덩어리가 히에라키를 덮친 걸 떠올리면… 아무래도 기이한 일이긴 했다.

정말로 헬께서 나를?

나는 고민했다. 머리로 생각을 했지만, 영 알 수가 없었다.

헬께서는 분명 나를 아끼시고 나의 팬인가 뭔가라고 하셨지만, 저번 방문에서는 일주일간 몇 번 얼굴을 뵙지도 못했다.

그러고 보면 첫 방문에서도 그다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다.

…아니, 내가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

고민의 해답을 가진 이는 멀리 있지 않았다.

“헬이시여.”

“왜, 오디슨? 내가 온 게 마음에 안 드는 거라면…….”

여전히 딱딱한 표정을 하신 헬께 질문을 했다.

“나를 총애하시오?”

덜컥, 헬께서 굳으셨다.

그분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셨다.

분노하신 것인가? 흠칫 몸을 떨고 무릎 꿇었다.

“제가 기묘한 꿈을 꿔, 드린 말입니다. 노여워하지 마소서.”

“그, 그것이…….”

헬께서 더듬거리시며 말을 고르셨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슬쩍 헬을 올려다보았다.

헬과 눈이 마주쳤다.

“으으으음…….”

역시나 건방진 소리를 한 걸까? 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헬께서는 후우- 한숨을 내쉬고 시선을 돌리셨다.

“괜찮은 것 같으니, 나는 가겠다.”

“벌써 말입니까? 잠깐, 앉으시기라도… 헬이시여?”

“몸조리 잘하도록!”

그분께서 떠나셨다.

정말 다른 일이 있어 그냥 잘 지내나 보러 오신 건가?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멍한 상태였고, 크레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과연 니플헤임의 주인이시네요. 그 위압감이란…….”

“음, 확실히 대단하신 분이시지.”

이라호드가 우리 둘을 보고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녀의 금발이 마구 휘날렸다.

“난장판이 되나 했더니… 이게 뭐야.”

이라호드가 때때로 내뱉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다.

“그보다… 신발이 없군. 아까 하려던 말이 뭐지, 이라호드?”

“아, 그게…….”

이라호드가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비다르께서 후원을 취소하셨어요.”

“…뭐라?”

후원이 취소돼? 갑자기 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눈을 끔뻑였다.

생각해 보니, 승리 수당도 너무 딱 맞아떨어졌다. 후원금 5%가 붙었다면 저렇게까지 깔끔하지 않았으리라.

“게다가 비다르 클랜에서 오디슨을 척결 대상으로 삼았어요.”

연이은 이야기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 흐흐흐흐.”

“오디슨? 웃을 때가 아니에요. 클랜에 소속된 이들이 오디슨과 싸우려고 벼르고 있다니까요?”

왜 웃을 일이 아니지?

나는 가슴을 쭉 펴며 웃었다.

“적어도 O500처럼 싸움이 없어 답답하진 않을 것 아닌가!”

“그, 그건 그렇지만…….”

이라호드의 눈이 떨렸다.

혹시 척결 대상이라는 게 투기장 밖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던가?

눈살을 좁히고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였다.

“클랜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좋은 무기와 좋은 방어구로 온몸을 감싸는 데다가… 비다르의 클랜은 유난히 투기장에서 강한 편이에요.”

“유난히 강하다? 어째서지?”

“…비다르의 축복을 떠올려 보세요.”

‘복수의 눈’, ‘복수의 피’. 유용하게 잘 쓰고 있는 것들이다. 이것들이 대체 뭐가 문제지? 고개를 갸웃했다.

“어휴, 눈치 못 챘나 보네요.”

“정답을 말해다오.”

“복수의 피는, 복수할 대상에게 전부 적용되는 거예요. 오디슨이 비다르 클랜원 하나와 싸워 이긴다? 그럼 비다르 클랜원들은 모두 오디슨을 복수의 대상으로 느끼게 된다구요.”

허, 그런 식이던가?

본인이 아니라 아군의 복수에도 적용되는지는 몰랐다.

이라호드가 거기에 덧붙였다.

“게다가 비다르의 축복은 그 둘이 전부가 아니에요.”

“전부가 아니다?”

“예. 복수심이 커질수록 효과가 강해지는 ‘복수의 혈통’이라는 축복이 있어요.”

처음 듣는 축복이다.

이라호드에게 받은 책자 중 축복에 대한 것은 모조리 읽었음에도 처음 듣는다.

눈살을 찌푸리자 이라호드가 그에 대해 설명한다.

“비다르 클랜 전용 축복이에요. 죽을 때에 그 피를 덮어쓰게 되면 ‘복수의 혈통’을 가진 자들이 복수 대상에게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축복이죠.”

“…흐음, 한번 죽어야 발동되는 축복이라니. 별것 아니지 않은가?”

“중첩이 돼요. 오디슨이 비다르 클랜원과 다섯 번 싸워 이겼다? 그러면 다섯 번 중첩된 ‘복수의 혈통’을 지닌 이와 싸워야 하는 거예요. 상황이 점점 나빠지겠죠.”

그것 참… 골치 아픈 축복이군.

내 축복이 거둬지지 않았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그런 식으로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자들과 아무런 방비 없이 싸운다?

멍청한 짓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일방적으로 패배하리라.

그렇다면?

“…투사를 그만두게 하겠다는 건가?”

“아무래도 그렇죠.”

꽤 골치 아프다.

5%라고 해도 쏠쏠하게 얻어먹던 것이 사라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갑자기 이런 짓을 하는 걸 보자면, 나로 끝나는 문제도 아닌 것 같다.

토르손을 데리고 온들, 비다르 클랜에 찍힌 지금 상태에서는 하위 리그를 전전하게 되리라.

“제기랄.”

전에도 생각했지만, 쪼잔한 신이다.

아마 이번에도 별것 아닌 문제리라. 후원한 신발이 녹아서 그런 게 아닐까? 짜증이 확 치솟았다.

다른 신들은 모르겠지만, 비다르를 향하던 존경심은 마치 신발처럼 싹 녹아내렸다.

끙- 앓는 소리를 낼 때 문이 열렸다.

당당한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네.”

헬이었다.

크레네와 이라호드가 다시 무릎을 꿇었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속에 담긴 의문을 뱉었다.

“…헬이시여? 가신 것 아니셨소?”

헬께서 얼굴을 붉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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