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39화. 영웅은 타협할 줄 모른다 (1)
“흐응…….”
사각사각사각.
부드러운 가위 소리와 함께 크레네의 콧노래 소리가 들린다.
어쩐지 머쓱해져 피식 웃었다.
“왜 그래요?”
“아니, 아까 그 여자가 맞나 싶어서.”
“치! 오디슨이 그렇게 만들었잖아요.”
입술을 삐죽이던 크레네가 됐다- 말하고 눈을 부드럽게 휘었다. 달콤한 눈웃음에 아랫도리가 뻐끈해졌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세흐림니르의 회복력이 못 따라갈 정도다.
“아구구, 잘생겼다. 이렇게 깔끔하게 하고 다니면 얼마나 좋아요?”
“전사는 적에게 공포를 주는 존재여야 한다. 멀끔한 모습보다는 짐승처럼 야만스러운 모습이 더 알맞지.”
내 말에 크레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전사가 아니라 투사인 걸요. 기세와 공포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보다는 화려한 기술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게 중요해요.”
“너처럼 말이지?”
“윽, 그건 좀 싫을지도.”
잘린 머리카락을 털어낸 크레네가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댄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서렸다.
크레네가 나지막이 말한다.
“…왜 안 물어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풍기는 냄새가 달라졌으니까.”
“…냄새로 알 수 있어요?”
글쎄. 사람의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때때로 그런 기묘한 감각이 들 때가 있다. 내 눈이 좋기 때문이리라. 내가 판단하기보다 앞서 보이는 것들.
때문에 나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가 말해 줄 게 뻔했다.
빤히 크레네를 쳐다보자,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저는 포세이돈 님의 명령을 받았어요.”
“포세이돈? 넵투누스 말인가?”
“예, 포세이돈 님께서는 사업 실패의 손해를 메워 줄 테니, 오디슨을 유혹하라 하셨죠.”
크레네가 내 어깨에 볼을 비비며 흥흥- 하고 웃었다.
“뭐, 이제 와서는 누가 유혹당했는지 잘 모르겠지만요.”
나는 씩 웃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넵투누스에 대해 이를 갈았다. 그 작자가 날 유혹해 뭘 하게 만들 셈이었을까?
음흉한 제국 놈들이 믿는 신이라는 작자들은 어찌 하나같이 이렇게 짜증 난단 말인가.
“뭘 시킬 거라 하던가?”
“아… 사실, 별거 아니었어요. 오디슨을 자극해서 아레스를 좀 더 거슬리게 하라는 이야기였거든요. 사실 오디슨은 그냥 둬도 아레스를 거슬리게 할 것 같아서…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죠.”
솔직히- 크레네가 말을 이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무섭잖아요. 오디슨한테 거슬리는 소리를 했다간 당장에 사이가 틀어질 텐데.”
“…그런가?”
내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대체 왜 넵투누스는 제 조카인 마르스를 괴롭히려는 걸까? 제국 놈들이 넵투누스를 무시하고 마르스를 좋아해서?
자존심 센 신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같지만…….
“포세이돈 님은 올림포스의 왕좌를 노리고 계세요.”
크레네가 설명했다.
넵투누스는 유피테르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지만, 유피테르는 강력한 신이다. 천공을 다스리는 그가 바다에게 질 리가 없다.
그리하여 왕좌를 물려받을 마르스를 노리는 것이라고 한다. 개차반인 마르스를 살살 달래는 식으로 섭정위를 얻어 낸 뒤, 마르스를 쳐내고 직접 왕위를 가질 셈이라고.
추악한 권력욕이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물었다.
“마르스가 널 노린다는 건……?”
“…그건, 사실이에요. 그 마수에 걸리면 순결을 잃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아프로디테 님과 에리스 님이 절 살려 둘 리가 없어요. 그래서 아르테미스 님의 도움을 받아서 발할라로 도망쳤죠.”
시무룩한 표정의 크레네.
비겁하기 짝이 없는 신들이다. 연약한 요정을 겁탈하려 하지 않나, 피해를 입은 이를 해치려 하지 않나.
역시나 나는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몸을 돌려 그녀를 껴안았다. 말캉한 가슴이 내 몸에 뭉개진다.
“걱정 마라. 내가 마르스를 찢어 죽일 테니.”
“…오디슨이 다칠까 걱정돼요. 아레스는 분명 나쁜 놈이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크레네다. 나는 그녀의 볼을 쓰다듬고 앙증맞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네 덕에 그 쓰레기들을 괴롭힐 방법이 떠올랐다.”
크레네가 울먹였다. 그리고 그녀가 물 흐르듯 내 품에서 벗어나며 물었다.
“오디슨은 화나지 않았나요? 뭐가 어떻게 됐든, 오디슨을 이용하려 했잖아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전사의 마음은 그리 좁지 않다. 특히나 가련한 아가씨에게 빌려 줄 가슴은 넓디넓지.”
“…으응, 오디슨…….”
크레네를 끌어당겨 꽉 안았다. 그녀가 날 유혹하듯 엉겨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달콤한 휴식은 끝이다.
“그리고 날 이용하려 했다면, 이용당할 생각도 했어야지.”
크레네를 떼어 내며 히죽 웃었다.
그를 위해서는 경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 * *
오늘의 훈련은 평소에 비해 훨씬 고됐다. 이라호드는 마치 성난 곰처럼 사납게 날 몰아붙였다.
아무래도 삐친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늘상 함께하던 점심 식사 자리에도 빠졌다. 나는 이그나르와 둘이서 식사했다.
이그나르가 슬쩍 질문을 던졌다.
“오늘은 그 발키리 아가씨가 없네?”
이그나르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였다.
“점심은 따로 먹겠다더군.”
“응? 뭐야, 내 솜씨가 별로라 이거야?”
이그나르가 눈살을 구겼다.
이 녀석은 싸움은 투박하지만 음식은 잘한다. 이라호드도 이그나르의 요리를 좋아했으니, 그런 이유는 아니리라.
“아무래도 내가 어젯밤 다른 여자와 잔 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더군.”
“…뭐?”
“날 좋다는 여자가 있어서 안았다.”
짧은 대꾸에 이그나르가 눈을 끔뻑였다.
“…애인?”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군.”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크레네도 딱히 그런 소리를 한 바 없으니, 확실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저 다른 부족에 지원을 갔을 때, 날 보고 반한 아가씨들과 같은 태도였다.
그런 이야기를 두루뭉술하게 꺼냈다. 내가 크레네와 잤다는 이야기를 자랑할 정도로 입이 가볍진 않았다.
이그나르가 혀를 내둘렀다.
“…어린놈의 새끼가 벌써부터…….”
고기를 집어 삼켰다.
“17살이면 어른이다.”
“그야, 부족에서야 그렇지만… 아니, 설마 오디슨손이 벌써 수십 명인 거 아냐?”
언제 들어도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다.
나는 인상을 구기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마디 툭 던졌다.
“어제, 용병 일이 궁금하다 했던가?”
“쉿, 소문나면 골치 아파.”
검지를 입술에 대며 말하는 이그나르.
둘뿐인 이곳에 누가 듣겠나?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가 살던 지역의 마지막 부족을 방어했다.”
“…이런.”
이그나르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좋다며 몸을 던지던 아가씨들은 대부분 죽었거나, 제국의 성노가 되었으리라.
씁쓸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제국 놈들을 박살 내 복수하는 것뿐이다.
그녀들의 원한을 갚아 주리라.
“그러니 빨리 승격하도록 해라.”
“…그게 쉽나, 뭐. O500만 해도 벅차.”
한숨을 내쉬는 이그나르.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싸움의 법칙’에서 한바탕 한 탓에 나 홀로 Mid300Room으로 승격되었다.
“좀 더 훈련을 해.”
“제기랄. 알겠다고.”
이그나르가 투덜대고, 나는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이라호드는 아직인가?”
혼잣말을 하고 창을 잡았다.
팔각형으로 깎인 아름다운 창대, 나뭇잎처럼 생긴 창촉. 그리고 묵직하게 무게 중심을 잡아 주는 창준.
반발력을 줄이는 마법이 걸린 창.
공방제 무기를 쓰면 다른 걸 못 쓸 거라고 이라호드가 장담했던가? 확실히 좋은 물건이다.
“…복수.”
식사 이후 기분이 축 쳐진 상태다.
제국을 무너뜨리기엔 내가 아직 너무 나약했다. 하계에서 시그뉘가 날 모신다고?
그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강력한 전사가 되어야만 한다.
제국을 박살 낼 정도로 강력한 전사가.
창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훈련장 문이 열렸다.
이라호드인가?
“까악까악! Mid300Room으로 승격한 녀석이 왜 자꾸 여기에 있는 것이냐악!”
메르키였다.
어깨를 으쓱였다.
“그쪽은 뭐에 쓰는지도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더군. 이쪽이 더 편하다, 난.”
“깍깍! 편하고말고 문제가 아니지 않나! 그리고 여자를 여기에 부르는 것도 곤란하다! 네가 찾아가도록 해랏!”
그러고 보니 크레네가 들어올 때 메르키와 마주쳤겠군.
메르키는 대체 언제 자는지 모를 정도로 밤새도록 여러 가지 서류 업무를 보니까.
머쓱한 마음에 볼을 긁적였다.
“다음부터 조심하지. 그보다,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건가?”
“아니닥! 까악까악!”
그럼?
“경기가 잡혔닥! M300R 데뷔전이닥!”
울적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투쟁심으로 물든다. 나도 모르게 히죽 올라가는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다.
슬픔을 모조리 쏟아부을 일이 생겨났다.
* * *
M300R 대기실.
“왔나? 흥.”
내가 여전히 O500 훈련장에서 지내는 데에는 이 관리인 탓도 있었다. 퉁명스러운 드베르그 관리인.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본론을 꺼내들었다.
“경기가 잡혔다고 들었소.”
“음. 그렇지. 네 첫 경기 상대는…….”
첫 상대는?
“미드가르드오름(Midgarðsormr)이다.”
뭐? 미드가르드오름이라면…….
“…세계뱀, 요르문간드?”
“알고 있다니, 설명은 안 해도 되겠군.”
“요르문간드라면, 토르께서도 동귀어진한 괴물 아니오? 그런 놈이 겨우 M300R에 나온다고? 게다가 로키의 아들이니,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일 아니오?”
라그나로크의 때, 세계의 바다를 감싸고 있던 요르문간드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리고 그때에 온 세상에 독액을 내뿜으리라 예언되어 있다.
그걸 막아서는 이가 바로 인류의 수호신이신 토르이시다.
토르께서는 요르문간드를 때려 죽이시지만, 독에 중독되어 아홉 걸음을 걸으시고 죽는다.
그런 괴물을 M300R 경기에 내보내겠다고?
“아아, 아냐, 아냐. 요르문간드 님이라면야, 로키스 패밀리 그룹의 임원이신데… 감히 이런 데 나오실 분이 아니시지.”
드베르그가 손사래를 쳤다.
고개를 갸웃할 때, 그가 말을 이었다.
“하계에는 유명한 세계뱀이 그분밖에 전해지지 않았지만, 실상 그분은 세계뱀의 왕이시다. 다른 미드가르드오름도 당연히 있지.”
관리인의 말에 흠- 침음을 흘렸다.
그래도 M300R 수준으로 대적할 수 있는 괴물일까? 투쟁심이 치솟았다.
토르께서 세계뱀의 왕을 때려 죽이셨으니, 나도 세계뱀 정도는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자만이 심장을 가득 채웠다.
드베르그 관리인이 쯧쯧- 혀를 차고 말했다.
“물론, 그 수준이라고 해도 네가 혼자서 대적하긴 무리지.”
이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상을 와락 구기고 이를 드러냈다. 불만을 토했다.
“…붙어 보지도 않았건만! 함부로 그런 소리를 하는가?”
“흥, 거인족도 애를 먹는 녀석인데 뭘. 어쨌든 이번은 트리오를 이뤄서 치르는 경기다.”
여전히 제 말에 사과하진 않는군.
뚱한 표정으로 머리를 굴렸다.
‘트리오’라. 셋이서 세계뱀 하나를 상대한다 이건가?
드베르그가 툭 내뱉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같은 편이 되었으면 하는 투사가 있나? 뭐, 아는 투사가 없겠지만…….”
“알프.”
“응?”
나는 트리오를 꾸릴 만큼 여럿을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감사 인사를 전할 사람은 있었다.
그 실력을 생각하면 트리오에 들어온다 한들 충분히 활약해 주겠지.
“엄청나게 빠른 검술을 쓰는 알프가 있지 않소?”
“쾌검수라면… 광검(光劍) 료나디를 말하는 건가? 안타깝지만 그 알프는 지금 휴식기다. 보석점을 운영하고 있을 걸, 아마.”
그토록 빠른 검술을 가진 이가 보석점이라니. 어울리지 않지만, 알프인 걸 생각하면 크게 이상하진 않다.
료스알프는 빛의 요정. 태양처럼 아름답다 전해지던 그들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님프, 크레네에 비해서도 크게 빠지지 않는 외모였다.
또한 그들은 반짝이는 걸 좋아한다고.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 알프를 제외하면 딱히 아는 이는 없는데.”
내가 아는 투사라고 한들, 이그나르를 제외하면 없다. 내 뒤통수를 치려던 야른시다? 그 녀석도 아직 O500이다.
사실 그 경기 이후, 녀석의 행방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다.
드베르그 관리인이 제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럼… 저 둘은 어떤가? 이봐! 바라르, 가라르!”
관리인이 대기실에서 시시덕대고 있던 드베르그 둘을 불렀다.
* * *
경기 시간은 금방이었다.
내 성격을 메르키에게 들은 건가? 바로 당일 저녁 경기로 잡혔다.
좋다. 싸움 전 이 긴장감이 살아 있음을 알게 한다.
바라르와 가라르가 커다란 도끼를 들고서 시시덕거렸다.
“파죽지세인 오디슨과 함께라니. 이번에도 이기면 몇 연승이지?”
“몰라. 그런 건 해설자한테 물어보라구. 어쨌든 세계뱀이 꽤 세긴 하지만, 우리 셋이라면 문제없지!”
바라르와 가라르는 굉장히 유쾌한 형제였다.
둘은 날 보더니 호들갑을 떨고 곧장 트리오 제안을 받아들였다.
베르&에타에서 본 드베르그들은 은근히 딱딱한 느낌이었는데, 이 녀석들은 그런 게 없다.
과연, 드베르그라고 해도 다 같은 성격은 아닌 모양이었다.
“긴장되지 않는가?”
내 물음에 형제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 하고 바보 도트는 소리를 뱉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형의 특제 소시지를 안 먹었구나.”
“흐흐흐, 한번 맛보면 다음에 또 달라고 할걸?”
특제 소시지? 눈을 끔뻑이고 있자니, 바라르가 소시지 하나를 내민다.
검은색 소시지는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났다.
“이건?”
“흐흐, 무려 아우둠블라의 피를 넣어 만든 소시지라구.”
아우둠블라? 태초의 암소다.
태초의 거인인 위미르가 아우둠블라의 젖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그 태초의 암소가 아직도 살아 있단 말인가?
놀라 눈을 부릅뜨자, 바라르가 낄낄 웃었다.
“세흐림니르처럼 회복력을 올려주는 물건은 아니지만, 영양분이 듬뿍이야.”
“맞아, 먹으면 힘이 쑥쑥 솟는다고.”
두 사람의 말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전투 전 먹던 버섯처럼 끔찍한 맛에 지독한 부작용이 뒤따르는 물건이 아닌가 싶었다.
“마약 같은 건 아냐.”
“맞아, 마약류는 아니지.”
형제의 표정을 보니, 거짓말 같진 않았다.
게다가 사실 어지간한 독으로는 날 해칠 수도 없다. 이제껏 먹은 세흐림니르 고기가 얼만데.
이 형제가 미치지 않았다면 감히 위협적인 영혼 독을 쓰지도 않으리라.
우적우적. 소시지를 씹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풍겼지만, 그 맛은 풍성했다.
이그나르 놈이 한 것 외에 이렇게나 맛있는 건 처음이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는데?”
“흐흐, 내 특제 레시피거든.”
어깨를 으쓱이는 바라르. 그 곁에서 가라르가 껄껄 웃으며 제 형을 툭툭 쳤다.
관리인이 외친다.
“곧 경기 시작이다!”
우걱우걱. 남은 소시지를 모조리 입에 털어 넣었다.
배가 든든해지자, 확실히 힘이 나는 기분이다.
해설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다음 경기는… 모두가 기대하던 바로 그 선수죠!]
[U500, O500에서 화제를 일으킨 전사! 오디슨 선수가 M300R에 발을 딛습니다!]
철컹! 철창이 열리고 나와 드베르그 형제는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와아아아!
함성이 나를 반긴다. 저쪽 편에는 족쇄에 묶인 거대한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쉭쉭, 혀를 낼름이는 세계뱀.
미드가르드를 칭칭 감는다 해서 붙은 이름, 미드가르드오름이 부족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대체 몇 미터가 되는 걸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 작전 기억하지?”
“우리 셋이 손발을 맞춰야 하는 작전이야. 알지?”
“자! 실력 한번 보자구!”
형제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화끈한 싸움을 보여 줄지 기대가 됩니다!]
펑, 축포가 울렸다.
[아! 경기, 시작합니다!]
[시작과 동시에 창을 들어 올리는 오디슨! 투창인가요? 투창?]
[어, 어어어어?!]
푸욱!
난 시작과 동시에 짜릿한 손맛을 느꼈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바라르.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떤가, 내 실력이?”
“끄, 끄르륵… 끄엑……!”
기습에 방비를 못한 바라르다.
녀석은 제 목에 박힌 창을 뽑아내려 버둥거리지만, 놓아줄 순 없지.
나는 창을 회전시켰다.
카가각!
그 목에서 피가 튀고, 도끼를 잡으려던 바라르의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이윽고 그의 손이 툭 떨어졌다.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털썩, 바라르의 몸이 바닥에 널브러진다.
[뭐, 뭔가요! 오디슨 선수! 아군인 바라르 선수를 찔렀습니다!]
[오디슨 선수가 뭐라고 말을 하는데요?!]
나는 눈동자가 흔들리는 가라르에게 말했다.
“토르께서 휘미르와 낚시를 가시메, 가장 큰 황소의 머리를 뜯어 미끼로 쓰시었다. 그러자 낚인 것은 요르문간드라. 세상을 둘러싸고 똬리를 트는 거대한 뱀. 토르께서 그 머리를 묠니르로 부수려 하자, 휘미르가 놀라 낚싯줄을 끊으시었다.”
가라르가 침을 꼴깍 삼켰다.
난 바라르의 피가 묻어 붉어진 반지를 닦았다.
잘 닦이지 않는지, 여전히 붉다. 황금이 변색이 되던가? 잘 모르겠다.
나중에 깨끗하게 닦자.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주술사 영감이 이야기보따리를 풀 때, 참 열심히 들었단 말이지.”
까드득, 이를 가는 가라르.
녀석을 보며 살짝 더 긁었다.
“소의 피. 그게 정말로 아우둠블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세계뱀이 좋아하는 냄새임이 틀림없지. 안 그런가?”
“어, 어… 이, 이 자식! 죽어라!”
늘상 생글생글 웃던 가라르가 악귀 같은 표정으로 달려들었다.
이제야 적아가 확실해졌다.
[어어! 가라르 선수, 오디슨 선수에게 덤벼듭니다!]
[대체 뭔가요! 경기가 완전히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내 등을 노리는 아군만큼 불편한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