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38화 (38/208)

# 38

38화. 영웅은 사양할 줄 모른다 (4)

발할라로 돌아왔다.

발키리가 이끄는 수레에 잔뜩 끼여 탔더니, 발키리가 투덜댔다.

허나 뭐 어쩌랴? 어차피 이 수레를 끌고 왔다 갔다 하는 걸로 1억 크로나를 주는 게 아닌가?

톨킬드에게 말했다.

“다음에도 데너리즈 쪽 일이 있으면 알려다오.”

“…다음에 또?”

“이번 일로 꽤나 벌지 않았나? 내 솜씨가 영 별로였던가?”

내 몫으로 받은 주머니만 해도 상당히 묵직하다.

톨킬드는 대꾸하지 않고 입을 꾹 닫았다.

역시나, 내 솜씨는 괜찮았던 모양이다. 처음 내게 덤벼들고 얼굴이 달덩이가 될 정도로 얻어맞은 덩치가 킬킬거렸다.

“대단한 놈이잖아? 용병단에 가입하지 않는 건 좀 그렇다 쳐도…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래, 이번에 솔직히 죄다 죽을 줄 알았는데, 겨우 하나 죽었잖냐.”

하나가 죽었던가?

갈 때와 올 때, 수레가 좁은 건 변함이 없었거늘.

용병들의 말에 고개를 숙여 묵례하고 사과했다.

“…전우가 죽은 것도 몰랐군.”

툭툭, 덩치가 내 어깨를 쳤다.

“댁 잘못이 아니야. 투석기에 꽥 하고 죽어 버렸으니. 솔직히 이 발할라에서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투석기 날아오는 돌을 어느 정도는 피했을 텐데…….”

아무래도 그냥 먹고 마시고 논 모양이야- 덩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들은 내가 발할라에 올라와 본 이들 중 가장 전사다운 이였다. 나는 그런가- 수긍하고 덩치와 아래팔을 부딪쳤다.

“다음에 잘 부탁하지.”

“오, 그래! 다음에 또 같이 놀자고.”

덩치가 큭큭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손짓에 나는 톨킬드를 한번 슥 쳐다보고 거리로 나섰다.

비프로스트가 출발하는 커다란 곳, 터미널이라고 하던가? 그곳을 빠져나가는데 톨킬드가 외쳤다.

“젠장할! 알았으니까 부르면 바로바로 오라고!”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터미널을 나서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기다리고 있었던가?”

이라호드였다.

“전속 발키리잖아요.”

“거, 쓸데없는 전속 소리는…….”

“쓸데가 없다뇨. 전속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같이 다닐 시간도 없었을 텐데.”

그녀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같이 다닐 일이 없었을 거라곤 안 하는군.”

“윽! 그건 그러니까 전속이 아니어도 담당 발키리로서 여러 가지 일을 도와주게 되어 있거든요? 전에 니플헤임에 처음 갔을 때도 같이 갔잖아요? 그리고 도대체, 발키리의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내가 오디슨을 처음 담당했을 때만 해도 거의 1만 명을 담당하고 있었다구요!”

알겠어요? 후다닥 말을 쏟아 내는 이라호드.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치웠다. 지금 그녀의 변명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마을에서부터 덜덜- 잘게 떨던 룬스톤. 미약한 빛을 뿜는 목걸이를 꺼내 살폈다.

스칼드의 구절이 하나 늘었다.

〈늑대가죽을 쓰고 늑대가 되어,〉

〈홀로 군단을 찢어 죽이는 사내.〉

〈오딘께 2만 산 제물을 바치니.〉

〈죽어 전사는 에인헤랴르로서,〉

〈삼백 구십 일곱째 자리 앉는다.〉

힘든 싸움이었지만, 그건 죽음의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가까웠던 부족의 부족민들이 죽어 나가는 광경. 인간 같지도 않은 제국군 놈들이 설치는 꼴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오히려 놈들과의 싸움은 싱겁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군단장의 호위였던 두 녀석은 쓸 만했지만.

그 녀석들도 오래 버티진 못했다.

룬스톤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이라호드가 경고했다.

“오디슨. 이런 말을 하면 싫어할 건 알지만… 한동안 몸을 사리는 게 좋아요.”

이라호드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몸을 사리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어째서지?”

“올림포스에서 공문이 날아왔대요. 데너리즈 지방에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 발할라 소속이 아니냐고.”

이라호드가 한숨을 푹 쉬었다.

“물론, 올림포스에서도 알면서 묻는 거예요. 우리 쪽에서도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증거 없으면 소설이라고 발뺌하는 거죠.”

뭔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고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소문에 의하면 제국 쪽에는 무슨 신의 아들이니 하는 작자들이 굉장히 많던데? 그건 문제가 안 되는 건가?”

“반 정도는 거짓말이에요. 그런 소리를 해서 신의 권위를 빌리겠다는 거죠. 꽤 위험한 짓인데도 그런 짓은 끊이질 않더라구요.”

반은 진실이란 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이라호드가 피식 웃었다.

“신계 간의 불가침 원칙은 하계에 대한 간섭을 못 하게 하는 게 아니에요.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발키리들이 어떻게 전사들을 발할라로 데리고 오겠어요?”

“그럼?”

“다툼이 생겼을 때.”

서로 다른 신을 믿는 이들이 싸움을 벌일 때가 되면, 각 신계에서는 그 하계에 간섭을 하지 못한단다.

“그러니까 신혈이 섞인 영웅들은 하계 소속이라 별 상관 없이 활동하죠.”

“그렇다면, 우리도 신혈이 섞인 이들을 많이 만들어 내면 될 것 아닌가?”

“신들의 정체를 밝힌다면 그 아이는 성장하기까지 엄청난 시련을 겪겠죠. 차후에 권력을 빼앗기기 싫은 자들이 그 아이를 그냥 둘까요? 그렇다고 정체를 안 밝힌다면? 과연 금방 떠날 이방인에게 안기고 싶어 할 여자가 있을까요?”

음, 침음을 삼켰다.

싫어하는 여자를 겁탈한다? 티르의 정담함이 그 목덜미를 꺾어 놓을 짓이다.

물론, 오딘께서는 동쪽 얼음의 땅의 공주인 린드(Rindr)를 겁탈해 발리를 배게 하셨다. 그는 발두르를 죽인 회드르에게 피의 복수를 선사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오딘께서 회귀하신 지금에서는 그런 복수자의 운명은 없다.

나는 그 사건에 대해 오딘을 변호할 생각이 없다. 허나 오딘께서는 분명 그녀의 아버지에게 대가를 치렀고, 린드의 불치병도 고쳐 주셨다 들었다.

그걸 나름의 반성이라 생각하는 건, 내가 그분의 신실한 종이라 그렇겠지.

그 외에 내가 신들께서 인간을 겁탈한 사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내 배움이 짧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사답지 못한 짓 아닌가?

훨씬 약한 인간을 노리개로 삼다니.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이라호드가 눈썹을 구기고 귓속말을 속삭였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개망나니예요.”

그건 나도 잘 아는 일이다.

그러니까, 온갖 놈들이 싸질러 놓은 사생아들이 하계를 배회하고 있다는 건가?

“…추악한 짓거리로 태어난 이들이 제국을 이뤘으니, 그놈들이 똥 무더기만 못한 게로군.”

짜증을 듬뿍 담아 말했다. 이라호드는 슬쩍 시선을 피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문득, 시선에 보이는 간판이 있었다.

화려하게 빛나던 간판은 불이 꺼진 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휘감고 있다.

[여성전용 힐라스 목욕탕]

[임대 문의]

…크레네는 올림포스로 돌아간 건가?

망해 버린 창관을 보고 있자니, 이라호드가 쯧- 혀를 찬다.

“저건 정말 시장 조사가 안 된 사업이었죠. 그 섬나라나 제국처럼 문란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이라호드가 진저리를 쳤다.

“…아, 그리고 오디슨.”

나는 이라호드가 부름에도 크레네를 떠올리고 있었다.

분명 그녀는 남창들을 부리며 창관을 운영하는 여자였지만, 알 수 없는 청초함이 있었다. 속물스러움과 매혹적인 향기에 섞인 그 맑은 물 냄새.

“오디슨?”

이라호드가 재차 불렀을 때, 나는 크레네의 기억을 떨칠 수 있었다.

“음? 불렀나?”

“무슨 생각을 그리 해요?”

고개를 저었다.

창관의 여주인을 생각했다 하기엔 전사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보다 무슨 일이지?”

“하계에 당신을 섬기는 볼바가 생겼어요.”

“…날, 섬겨?”

눈을 끔뻑였다.

상상도 하지 못한 소리였다.

* * *

올림포스의 가장 강력한 신을 꼽으라면 대부분이 둘 중 하나를 꼽는다.

신왕(神王) 제우스. 그리고 지하세계의 지배자, 하데스.

천공을 다스리는 제우스라 할지라도 감히 지하 세계를 범할 수는 없었고, 지하 세계를 다스리는 하데스는 지상으로 나가 동생의 휘하에 들 생각이 없었다.

삼 형제 중 가장 맏이가 하데스다. 제우스는 막내였다.

그들의 아버지인 농경신 크로노스에게 하데스와 포세이돈이 잡아먹히고 난 뒤에야 태어난 것이 제우스니까.

동생의 명령을 듣는 건 영 마뜩찮았던 하데스는 지하 세계에 쭉 머물렀다. 하지만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은 어쩔 수 없이 동생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 막내가 ‘내가 더 많이 성장했으니, 내가 형’이라 소리치는 것까지도 말이다.

“흐음.”

포세이돈은 푸른 수염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요즘 조카인 아레스가 얌전하다.

보통의 백부라면 개차반이 사람이 되려나- 생각하겠지만, 포세이돈은 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우스 녀석에게서 왕좌를 빼앗긴 힘들다.’

그리하여 포세이돈이 노리는 것이 아레스였다.

아레스가 왕좌를 이어받고 실정을 벌이면, 섭정으로 활약하다 그를 내칠 셈이었다.

아레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불륜 건을 나서서 덮어 주지 않았던가? 과도한 위로금을 책정해 아레스의 지갑을 마르게 했다.

그러고서 은근히 돈을 지원해 주었다.

아무리 왕자라고 할지라도,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보다 쪼들릴 수밖에.

포세이돈은 이제까지 그런 식으로 아레스를 길들였다.

제 아비와 제 어미에게 혼쭐이 난 아레스를 달랜 것도 포세이돈의 역할이었다. 그 덕에 아레스는 이미 포세이돈을 좋은 백부로 생각했다.

“…흐음, 녀석이 좀 더 설쳐 줄 필요가 있는데.”

그리해야 왕좌를 이어받은 아레스의 섭정으로 활약할 기회가 열리리라.

아폴론? 태양의 신이랍시고 설치는 서출은 포세이돈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멀리 있는 태양 따위.’

아레스를 자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세이돈은 고민했다. 그리고 문득, 님프들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바다의 신인 그의 휘하에는 강의 신들이 있었고, 그 강의 신들의 밑에 있는 최하급 신이 바로 님프였다. 그네들의 이야기가 은근히 들려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님프들이 하는 사업이 분명 발할라에 진출했던가? 오디슨이라는 놈은… 전형적인 전사.”

포세이돈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고전적이지만, 가장 훌륭한 미끼가 있지 않은가?”

미인계.

오디슨이라는 놈에게 아리따운 님프를 붙이고, 베갯머리송사로 녀석을 자극한다면?

‘아니, 님프들은 마음을 너무 쉽게 주지. 몸도 주지 말라 하는 게 낫겠군.’

그저 살살 꼬드기는 정도로 충분하리라. 본래부터 아레스를 싫어하는 녀석이니까.

분명 큰 자극도 필요치 않으리라.

“여봐라!”

포세이돈이 크게 소리쳤다.

바다가 출렁였다.

* * *

어두운 밤. 망토로 상체를 가린 한 여자가 투기장 대기실로 들어섰다.

메르키가 그녀를 보았다. 여자는 슬쩍 훈련장을 가리켰다.

“깍깍, 오디슨 녀석… 어린놈이 밝히긴!”

메르키가 홀로 낄낄 웃었다. 여자는 머쓱하게 어깨를 으쓱이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메르키는 딱히 말리지 않았다.

오디슨의 나이가 적다 한들, 그도 남자다. 이런 것까지 말릴 필요가 있을까?

‘음, 내일 아침에 이쪽으로 여자를 부르지는 말라고 해야겠군.’

투사들은 술과 여자를 탐하는 경우가 많았다. 싸움으로 쌓인 긴장과 피로를 술과 여자로 푸는 것이다.

여자가 훈련장의 문을 열었다. 그 소리에 잠을 청하던 오디슨이 눈살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지?”

“…저예요, 오디슨.”

오디슨이 눈을 끔뻑였다. 그 모습이 제 나이 또래와 잘 어울려 여자가 킥킥 웃었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발키리는……?”

“퇴근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늘 집에 간다. 그보다…….”

오디슨이 창을 들었다.

여자가 움찔 떨었다. 오디슨은 창을 그녀에게 겨누며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지, 크레네?”

“…나인 줄 알면서도 창을 들었다고요?”

“그야, 너도 올림포스에 소속되었으니까.”

오디슨의 날 선 반응에 크레네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서는 가지고 온 상자를 좌우로 흔들었다.

철컹철컹 거리는 소리가 났다.

“싸움의 법칙을 보니까, 머리가 많이 길었더라구요. 깎아 주러 왔어요.”

“…올림포스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크레네가 움찔 몸을 떨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님프에요. 님프가 뭔지 알죠?”

“…샘이나 호수에 있다는 요정?”

“그렇죠, 뭐. 물이 없으면 제대로 된 힘도 못 쓰는 반쪽짜리 신이라구요.”

그런데도 무섭나요? 크레네가 망토를 벗었다.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여전히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가 눈을 사로잡았다. 부서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얇은 허리 역시, 남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어차피 투기장 관리인… 아니, 관리조(-鳥)가 절 봤어요. 오디슨을 공격하고 도망친다? 가능할 것 같아요?”

오디슨이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메르키는 어마어마하게 강하다. 그가 숨기고 있는 힘이 얼마나 되는지 오디슨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크레네에게 당할 거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머리를 깎아 주겠다고? 겨우 그것 때문에 왔단 말인가?”

“…뭐, 그럴 수도 있죠. 목욕탕이 망했거든요. 아마, 조만간 복귀 명령이 떨어질 것 같아요.”

후우- 한숨을 내쉬는 크레네.

그녀가 슬그머니 다가와 오디슨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오디슨은 가슴팍에 닿는 물컹한 감촉에 흠칫 놀랐다.

“…정말 많이 길었네.”

스르륵, 부드러운 손길에 오디슨이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뭐하는 짓이지?”

“치, 이 정도도 못해요? 앞으로는 못 볼지도 모르는데…….”

크레네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오디슨은 그녀에게서 나는 물 향기에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정신을 똑바로 챙겼다. 눈앞에 있는 여자가 올림포스 소속이라는 걸 절대 잊지 않았다.

“그것과 이게 무슨 상관이지?”

“…그걸 제 입으로 말하게 할 셈인가요?”

“난 지레짐작하지 않아.”

크레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오디슨은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처량한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사업이 망했다 한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뭐가 문젤까?

은근히 올림포스를 그리워하는 티를 냈었다. 그렇기에 오디슨은 그녀에게 뭔가 숨은 의도가 있다 느꼈다.

크레네가 한숨을 내쉬고 의도를 밝혔다.

“…첫눈에 반한 남자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서 그래요.”

“반했다?”

“…아이 참. 바보 같으니!”

크레네가 덥석 안겨왔다. 목석같은 오디슨이라 해도, 울먹이는 여자를 밀칠 만큼 야박하진 못했다.

오디슨은 생각했다.

‘어쩐지 오늘은 여자가 안겨 오는 일이 잦군.’

파르르 떨고 있는 크레네와 시그뉘가 겹쳤다.

그 안타까운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손길에 살짝 떤 크레네였지만, 여전히 오디슨에게 안겨 있을 뿐.

그녀가 나지막이 말한다.

“올림포스로 돌아가면, 전 끝장이에요.”

“…사업이 실패해서?”

크레네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전 도망친 거예요. 절 탐내는 신에게 대적하지 못해, 발할라라면 괜찮겠지- 생각했어요.”

“…탐내는 신?”

“아레스가 저더러 밤 시중을… 흑.”

오디슨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 개 같은 놈은 도대체가 안 끼는 곳이 없었다.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꽉 안았다. 그리고 오디슨이 말했다.

“가지 마시오.”

“하지만…….”

“그 개 같은 놈은 언젠가 내가 찢어 죽일 터이니. 가지 마시오.”

“어, 어어… 자, 잠깐!”

크레네가 당황했다.

오디슨의 손이 옷 안으로 파고든 탓이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오디슨의 몸을 밀쳐 냈다.

“너, 너무 급하지 않아요?”

“강한 전사에게 반하는 아가씨들은 많은 법이지.”

“네? 그게 무슨…….”

어깨를 으쓱인 오디슨이 눈을 끔뻑이는 크레네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으읍……!”

크레네는 부르르 떨었지만 차마 그를 밀쳐내진 못했다.

‘아직 어리니까, 키스만 해도 좌지우지할 수 있겠지?’

포세이돈의 명령 때문이라 스스로 되뇌었다.

하지만 크레네는 자신의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이런 남자라면, 괜찮지 않을까?

님프는 본래가 쉽게 사랑에 빠지는 이들이다. 괜히 여성 색정증을 두고 님포마니아(nymphomania)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그녀들은 유혹에 약하고, 사랑을 갈구하며, 감정기복이 꽤나 심한 편이었다.

‘아냐, 난 포세이돈 님의 말씀을…….’

고개를 휘휘 저었다.

“어? 어어?”

정신을 차렸을 때, 크레네는 알몸이었다.

오디슨은 씩 웃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예쁘군.”

크레네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다.

오디슨은 전사 중의 전사였고, 이런 식의 접근이 아주 익숙한 남자였다.

젊고 강하고 잘생긴 전사.

그 전사는 사양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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