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34화 (34/208)

# 34

34화. 영웅은 거짓말할 줄 모른다 (3)

명계 협동 조합, 명협은 신계 연맹의 결성과 동시에 조직된 하급 기관이다. 신계 연맹의 영혼 관련 갈등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영혼.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신조차도 감히 세계의 기본 요소인 영혼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각 신계에서는 영혼을 전략 자원이며 동시에 인구로 취급한다.

귀중품에는 갈등이 서리는 법.

영혼 관련 갈등? 생소할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들을 일이 거의 없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허나, 사실 굉장히 흔한 갈등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바이킹 전사가 제국과의 전쟁에서 그 영토에서 죽었다. 그러면 그 바이킹 전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모두가 발할라로 간다면 좋겠지만, 발할라에 도달하는 전사는 극소수.

그의 믿음에 따라 니플헤임으로 가는가? 그도 아니면 제국의 명계를 다스리는 하데스(플루토)의 땅으로 가는가?

명협은 바로 그에 대한 법을 제정하고, 그에 관한 갈등을 상호 협력 하에 해소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신계 연맹 내에서도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각 신계의 최고신들조차 함부로 간섭할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고 늘상 명계의 지배자들이 모여 논쟁과 논의를 벌이는 모임은 아니다.

사실, 설립 초창기에 이미 영혼법 제정은 끝이 났다.

지금에 와서는 그저 친목 모임일 뿐이다. 신계 연맹 내의 의원회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친목 모임.

“그녀가 내 구혼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이시스에게도 복수할 수 있을 터인데…….”

전대 이집트 최고신이자, 이집트의 명계 두아트(Duat)를 다스리는 신이자, 살해당해 미라가 된 신.

오시리스(Asar).

그는 명계 협동 조합이 마음에 들었다.

누이이자 아내인 이시스에게 복수할 힘을 키우기에 딱 좋은 곳이었으니까.

오시리스가 동생인 세트에게 살해당했을 때, 아내인 이시스는 홀로 호루스를 낳았다. 그리고 그를 왕좌에 올리고는 오시리스를 부활시켰다.

오시리스는 당황했다. 가만히 있으면 신성의 작용으로 부활했을 터, 그런데 미라라니?

이시스가 경고했다.

‘나와 호루스의 명예를 더럽혔다가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도록 모닥불의 장작으로 던져 버리겠어요. 그러니 그 지하 세계에서 임금님 놀이나 하고 있어요. 알겠죠?’

신성한 어머니, 이시스.

그녀는 자애와 헌신, 순결로 유명한 여신이지만, 사실은 신비로운 마법을 극한까지 익힌 괴물이다.

자애라는 가면을 쓰고 권력욕에 눈이 먼 찬탈자.

“수치도 모르는 것들이도다.”

까드득! 오시리스가 나일 강 유역의 질 좋은 진흙을 구워 만든 이를 갈았다.

쩌적, 사기로 된 이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미라인 그에게는 새로 해 넣으면 되는 것일 뿐이었다.

“나의 것을 다시 돌려받겠도다. 다시 그 왕좌를 돌려받아야만 하노라.”

그를 위한 것이 헬과의 혼담이었다.

미혼인데다 아름답고, 강력한 망자의 군대를 보유한 헬.

그녀와 결합할 수만 있다면, 이시스를 내쫓고 호루스가 차지한 왕좌를 빼앗는 것도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헬이 완강하게 거절하고 있다. 하지만 오시리스는 풍요의 신이기도 하다. 그 차갑고 매마른 땅에 약속한 풍요를 언제까지 거절할 수 있으랴?

오시리스가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음? 아, 그러고 보니.”

시계를 보고 아, 차.

바로 그 헬이 TV에 출연한다는 날이 오늘이었다.

처음 그 소식이 신계 연맹 전체에 퍼졌을 때엔 모두가 경악했다. 감히 신의 모습을 방송 따위로?

불경한 짓이라 여겼다. 하지만 헬이 허가를 한 데다가 편집한 방송분을 검수까지 했다 들었다.

딱히 뭐라 할 명분이 없었다.

오시리스가 TV를 켰다. 이미 시작한 지 꽤 지난 시간.

그는 운 좋게도, 혹은 재수없게도 딱 시간을 맞췄다. 싸움에는 관심도 없는 오시리스다.

그가 이 방송에서 기대하는 것은 단 하나.

헬뿐이었다.

“오. 오늘도 아름답도다.”

화면 속, 헬이 비쳤다.

싸늘한 한기를 풀풀 뿜으며 마차 문을 열고 나온 그녀는 강렬한 한마디를 던졌다.

[오시리- 삐이이이-! 삐이이이이이-! 말라비틀어진 미- 삐이이이-! 뭐? 결혼? 삐삐삐- 같으니!]

삐 소리가 가득한 화면과 차가운 분노를 내뿜는 헬의 눈동자.

그게 헬 분량의 끝이었다. 그녀가 방송에 모습을 드러낸 건, 오시리스에 대한 강경한 거절이었다.

이 꼴을 보고도 다시 혼담을 넣는다? 이시스가 그리도 싫어하던 명예를 더럽히는 짓이 되리라.

툭.

방송을 보던 오시리스가 리모컨을 떨어뜨렸다.

“저, 저, 저… 고얀!”

버럭 소리친 오시리스.

분노에 부들부들 떨며 주변 집기들을 마구 던지고 박살 냈다. 씩씩 거친 숨을 흘리며 다시 TV로 눈을 돌렸다.

“당장, 저 방송에 관계된 모두의 내장을 끄집어낼 것이도다!”

분노한 그와는 별개로, 방송은 물 흐르듯 흘러갔다.

말라비틀어진 미라, 오시리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잘생긴 사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헬? 그분께서 이 반지를 주셨지.]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들이대며 흐뭇하게 웃는 오디슨. 헬이 아무에게나 약지에 반지를 끼워 주진 않으리라.

오시리스의 눈에 눈꽃이 튀었다.

“저놈이, 내 것이 되어야 할 헬의 마음을 빼앗았도다? 용서할 수 없도다.”

부글부글, 오시리스가 분노했다.

여봐라-! 밖에서 대기하던 신관을 불렀다. 오시리스는 이 수치를 되갚아 줄 음모를 꾸몄다.

그것이 제 파멸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짓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 * *

오시리스만이 ‘싸움의 법칙’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니었다.

그날 ‘싸움의 법칙’은 발할라 TV프로그램 중 최초로 연맹 시청률 30%를 돌파했다.

즉, 다른 신들도 그 방송을 주시하고 있었다.

발할라 방송의 새 역사를 쓴 ‘싸움의 법칙’에도 끝이 다가왔다.

스노리가 오디슨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어째서인지 스노리의 표정은 애원하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요……?]

잔뜩 지친 스노리의 말.

뚱한 표정을 짓던 오디슨이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제 가슴팍을 퉁퉁 쳤다.

[난 하랄다처럼 비겁한 짓거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몸을 사리는 겁쟁이들아, 도전해라! 투기장에서 만나자!]

당당한 포부.

화면이 검게 암전된다. 아니, 암전되려 했다.

잠깐- 오디슨의 목소리가 들리고 화면이 확 밝아졌다.

떨떠름한 얼굴의 오디슨이 대뜸 말했다.

[난 늪지머니의 지원을 받았다.]

스노리가 당황했다.

[예, 예? 어… 그 소리를 왜 갑자기?]

[아, 펜리르가 꼭 말하라고 하더군.]

오디슨이 어깨를 으쓱이고, 이번에는 정말로 화면이 암전되었다.

방송이 끝났다.

“저, 저게 무슨 소리야?!”

발할라에 기거하는 한 신이 분통을 토했다.

“왜, 왜 로키스 패밀리가 저놈을 지원하냐고! 젠장할! 이 더러운 자식들이!”

복수의 신, 비다르가 고함을 꽥 내질렀다.

헬의 경고에 ‘신발맨’이라는 모욕적인 별명을 얻는 걸 감수하고, 후원 규모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 덕에 축복을 내려 주고도 욕만 들어먹었거늘, 뭐?

로키의 욕을 해서 쌓인 운명값이 크다?

헛소리였다.

만일 그런 소리가 없었어도 영입하진 않았으리라.

그 당시에는 가성비가 영 별로였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신발맨 소리를 들을 만큼 싸구려 후원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비열한 자식들… 원망치 마라! 너희들이 먼저 시작한 것이다!”

비다르가 으드득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그런가 하면 옆동네에서는 반색하는 이가 있었다.

“역시 그랬군!”

아폴론이 흐뭇하게 웃었다. 자신의 생각과 확실히 들어맞았다.

역시나 오디슨의 배후에는 로키가 있었다.

그러니…….

“이그나르에게 좀 더 선심을 베푸는 게 좋겠어.”

조심스러운 화해 제스처를 좀 더 크게 보이도록 이그나르를 지원할 셈이었다. 그 후 이그나르의 연줄을 타고 오디슨과도 화해한다면?

“아르테미스! 이 오빠가 이렇게 애쓴단다!”

다시 아르테미스 축산이 반등할 계기가 되리라.

아폴론이 히죽히죽 웃으며 메르키에게 보낼 메일을 작성했다.

이렇듯, 말 한마디가 어마어마한 오해들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개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인 이가 있는 곳은 고즈넉한 비취 구름이 깔린 산 속.

“뭐야? 로키 자식의 후원을 받았다고?!”

바로 손오공이었다.

우끼끽! 그가 방방 뛰며 난동을 부렸다. 저팔계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방금 전까지 신나 하며 TV를 보던 원숭이가 맞는 걸까? 잠깐 사이 분신으로 바뀐 게 아닐까?

저팔계가 손오공을 말렸다.

“꿀꿀, 사형! 진정행!”

“진정하게 생겼냐, 이 돼지야!”

“내가 돼지면 사형은 원숭이양!”

“당연한 소리는 하지 마라! 그보다…….”

손오공이 씩씩거리는 숨을 고르며 물었다.

“팔괘로의 위치를 알아 놨다고 했지?”

손오공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렸다. 저팔계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흐, 제대로 된 후원이 뭔지, 이 제천대성께서 보여 주도록 하지! 흐흐흐흐!”

저팔계에게는 이 미친 원숭이를 말릴 방법은 없었다.

문득, 삼장법사가 그리워지는 저녁이었다.

모두가 오해였다. 하지만 그 당사자는 그런 오해가 생긴 줄도 몰랐다.

그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면…….

* * *

언제나처럼 당당하게 메르키를 찾았다. 그리고 요구했다.

“싸움을 주선해 주게!”

“그건 곤란하다, 까악.”

뭐? 예상치 못한 거절이다.

나는 눈을 꿈뻑였다. 투기장 관리인이 하는 일이 싸움의 주선이건만, 어째서 곤란하다는 것인가?

그에게 자세한 사정을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곤란하다니?”

“까아악. 이번에 ‘싸움의 법칙’에서 지나치게 잘 싸우지 않았나! 그래서…….”

메르키가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았다.

이전부터 승격이 논의되는 찰나에 ‘싸움의 법칙’이 방영되었다고. 그리고 거기에서 내가 보인 활약이 문제가 됐단다.

“잘 싸우는 게 뭐가 문젠가!”

“까아악… 너무 잘 싸워서 문제닥!”

나와 싸우려는 투사가 없단다. 게다가 괴물과 싸움을 붙인다 한들, O500 수준의 괴물은 디케로스보다 훨씬 약하다고.

“승격에 대한 논의가 끝나면 아마 승격될 거다. 그때까지는 경기를 잡아 줄 수가 없다. 까악까악.”

승격? 좋다. 더 강한 적이 뭐가 싫을까?

하지만 나는 헛숨을 내쉬었다.

“…도전자를 구하려고 나간 것이거늘.”

더 많은 싸움을 더 빨리 하고 싶었다.

크로나가 더 많이 필요했다. 더 빨리 필요했다.

니플헤임을 떠나올 때, 토르손의 쳐진 어깨가 떠올랐다.

‘대장, 내가 발할라에 가면 정말 도움이 될까? 대장은 점점 강해지는데 난 곰으로 변하는 거 말고는 성장하질 못했어. 아… 니플헤임이라 당연한 건가? 하하, 하하하.’

축 늘어진 녀석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전사답지 못한 나약한 태도에 뭐라 한마디 하려다 말았다.

타박 대신 다짐을 했다.

한시라도 빨리 토르손을 괴리에서 건지자고.

그 다짐을 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건만, 계획이 암초에 걸렸다. 짜증이 확 치솟았다.

“겁쟁이들 같으니!”

이라호드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니플헤임에 있는 동안 3번이나 사냥을 나간 거, 잊었어요?”

나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오래 니플헤임에 머물렀다.

그 시간 낭비가 떠올라 이가 갈렸다.

“…빌어먹을 놈의 법 같으니! 도대체 겁쟁이들을 죽이는 게 왜 처벌의 대상이냔 말이다!”

“그것 참… 참신한 원망이네요. 이번에 하랄다를 죽이고도 겨우 일주일간의 사회봉사로 끝난 걸 잊지 말라구요.”

이라호드가 계속해서 말했다.

하랄다를 죽인 건, 이전 야른시다를 죽인 것과 질적으로 다른 문제라고.

투사는 전사가 아니지만, 다른 이들은 전사에서 훨씬 더 멀다고 한다. 그건 모두 하랄다의 비겁한 행위가 증거로 남았기 때문이며, 어쩌고저쩌고.

난 그녀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더 빠르게 돈을 벌려면…….”

문득 떠올린 이름.

톨킬드.

헬께서 투자를 하고 계신다는 할랴헤랴르라는 용병단의 단장.

나는 그에게 받을 것이 있었다.

3번 부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그렇다면…….

“응? 어딜 가요?”

“이놈의 위력을 시험해 봐야 할 거 아닌가?”

“그 창을요?”

내 손에 들린 것은 새로운 창이다. 베르&에타로 가서 하랄다의 활을 건네고 받은 물건.

본래는 브라기 중고 상점에 팔아치울 생각이었지만, 이라호드가 말렸다.

드베르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무기에 자부심이 크기에 중고로 파는 순간 원수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고.

그리하여 그곳에 활을 가져다 주고, 창을 받았다.

공방제 창이라… 얼마나 뛰어난 위력을 가졌을까?

히죽 웃음 지을 때, 이라호드가 당황해 말했다.

“위력 시험이라면 이 안쪽에 있는 훈련장에서 하면 되잖아요!”

훈련장이라니.

피식 웃었다.

“무기의 위력 시험에는 실전이 최고지.”

그것도 전쟁이라면야, 더할 나위가 없다.

기왕 전쟁을 벌이는 김에 익숙한 얼굴을 보고 싶다.

“제국놈들과 싸울 수 있다면 좋겠건만.”

겁에 질린 제국놈들의 얼굴.

둥둥둥- 심장 소리가 마치 전장의 북소리처럼 들렸다.

잊고 있던 전장의 북소리가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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