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33화. 영웅은 거짓말할 줄 모른다 (2)
“반- 칙- 이다!”
하랄다의 목소리에 눈살을 구겼다.
“반칙?”
쿵! 묵직한 코뿔소의 시체를 팽개쳤다.
으르릉- 이를 드러내고 놈에게 물었다.
“지금 반칙이라 했나?”
“그, 그야 당연한 것이다! 강력한 신의 축복이나 말도 안 되는 마법의 도움을 받으면 누가 저깟 찌꺼기를 못 잡는단 말인가!”
어이가 없어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톨킬드가 간사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래! 그렇고말고! 축복이나 마법은 좀 아니지!”
허!
놈들이 눈알을 굴려 주변에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비겁자의 말에는 무게가 없는 법.
누구도 이 둘의 편에 서려 하지 않았다.
이라호드가 쯧쯧- 혀를 찼다.
“저건 오래된 영혼체라면 다들 할 수 있는 기술이에요. 축복이나 마법 따위가 아니거든요? 오디슨의 영혼이 큰 탓에 육신을 가지고도 쓸 수 있지만요.”
반칙이라니. 너무 진부한 변명 아닌가요?
발키리의 비웃음에 하랄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톨킬드는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
저벅저벅저벅, 하랄다에게 다가갔다.
떨리는 눈동자에 비치는 내 모습은 반인반수. 늑대 인간인지, 가름 인간인지 모르겠다.
음… 가름 인간은 어감이 영 별로군.
어쨌든,
“이건 내 본연의 능력이다.”
으르릉,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하랄다가 안절부절못하며 반박했다.
“그, 그렇다고 해도, 그건…….”
이 녀석도 제 말이 개소리라는 걸 알리라.
나는 어이가 없어 콧김을 푹- 내뿜고 말을 내뱉었다.
“활과 함정을 이용한 사냥이 예술이라 주장하던 게 누구였지? 응? 활과 함정을 이용한 건 괜찮고, 맨손으로 심장을 뜯어내는 건 안 괜찮나?”
피로 물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변이든 뭐든…….
이 손으로, 내 손으로 해낸 일이다.
그걸 부정하는가!
-끼히이끼히히히히히!
니플헤임이라 그런 걸까? 오른손임에도 악령이 건틀릿 밖으로 빠져나왔다.
검은 연기가 몽실몽실 풍기는 광경은 좋지 못하다.
꼭 내가 사악한 주술로 하랄다를 겁박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
칫, 비겁자를 타박하는 것이건만.
변이를 풀었다.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온다. 키가 작아지고 몸에서 들끓던 힘이 사라졌다.
나는 고까운 눈으로 하랄다를 보며 말했다.
“사나이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건, 꼴사납다 여기지 않나? 응?”
“그, 그건!”
덥석, 녀석의 멱살을 잡아챘다.
하랄다는 내 손을 떨치려 했지만, 힘이 영 아니다. 활을 쏜다는 놈이 이 정도 악력도 떨치지 못하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는 녀석에게 재차 물었다.
“말해 봐라, 활과 함정은 괜찮다는 것이더냐! 응?”
“다, 당연한 거다! 그건 사냥꾼의 방식이니까!”
스읍, 하랄다의 변명에 헛숨을 삼켰다.
“…사냥꾼의 방식이라.”
어이가 없다.
하랄다가 버둥대며 덧붙였다.
“그러니 너도 투사의 방식으로 처리했어야 했다!”
“투사의 방식이라고?”
“그러니 네 반칙을 인정하고…….”
인정? 웃기고 있군.
덥석, 나는 녀석의 목을 잡았다.
“케겍……! 이, 이게 무슨……!”
하랄다가 내 손을 풀고자 발버둥을 쳐 댔다. 나는 한층 더 힘을 끌어올려 녀석의 목을 졸랐다.
놈의 얼굴이 붉어졌고, 입가에서는 게거품이 질질 흘러나왔다.
“으, 으켁… 사, 사려…….”
붉은 얼굴이 파랗게 변할 때가 되자 하랄다가 눈물을 질질 흘렸다.
나는 녀석에게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알려 주었다.
“난 투사가 아니라, 전사다. 그리고…….”
꽈드드득! 녀석의 목을 꺾었다. 하랄다의 고개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어, 어어…….”
벌벌 떠는 톨킬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명심해라, 이게 전사의 방식이다.”
비겁자를 살려 두지 않는 것.
나는 톨킬드가 내깃돈 위에 목숨까지 걸지 않길 바란다.
그건 쓸데가 없으니까.
* * *
PD는 확신했다.
‘이번 편은 완전 미쳤어!’
부르르-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였다.
오디슨의 싸움? 대단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사냥꾼 중 루키로 손꼽히던 하랄다의 죽음이다.
그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이 일은 두고두고 회자되리라.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일 게 틀림없다.
투사 대 사냥꾼 대 용병.
언제나 논란이 되는 이야기였다. 제각각의 논리로 무장한 이들이 투사가 더 세니, 사냥꾼이 더 세니, 용병이 더 세니- 하며 논쟁을 벌여 왔다.
제각기 활동 영역이 달라 실제로 싸움이 붙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싸움의 법칙’에서 그에 대한 모습을 확실히 찍었다.
이 정도라면, 시청률 대박은 따 놓은 당상이다.
PD가 히죽히죽 웃으며 카메라맨에게 물었다.
“찍었지?”
“…그걸 안 찍으면 제가 사람 새낍니까?”
“흐흐흐, 흐흐흐… 이번에 빵 터질 거야, 그치?”
“그거야 그런데… 진짜 괜찮습니까? 아무래도 사적 제재고, 살인인데요?”
PD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투기장 리그에서 심심하면 나오는 게 살인인데, 뭐. 그렇다고 하랄다가 완전히 죽은 건 아니잖아?”
부활하리라. 물론, 니플헤임에서의 죽음은 영혼의 마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여론은 아마 오디슨의 편을 들리라. 심지어 그와 같은 사냥꾼들마저도 오디슨을 옹호할 것이다.
하랄다의 반칙 주장은 PD의 눈에도 낯뜨거운 장면이었다.
‘…오디슨이 몰락할 줄 알았더니, 하랄다가 몰락하다니. 참… 세상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허언증인 것 같던 허세가 사실일 확률이 매우 커졌다.
‘근데 저 자식은 이번에 얼마나 번 거지?’
문득 든 의문에 PD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디케로스에 대해 검색해 보니, 사냥꾼만 10회 이상 죽인 괴물이었다. 당연히 현상금이 붙어 있었다.
그 사체의 가격에 현상금까지 더하면?
상당한 금액이다.
“게다가 하랄다의 활도 주웠지.”
“네?”
“아니, 그냥…….”
다이스에서 산 싸구려 스테인리스 창을 가지고서 O500을 충격에 빠트리고, 찌꺼기들을 싹 청소하던 오디슨이다.
만일 하랄다의 활을 팔고서 공방에서 만들어진 창을 구입한다면?
“허…….”
부르르, PD가 전율에 떨었다.
그의 눈은 오디슨을 향했다. 비프로스트 안에서 미친놈이라고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눈이었다.
오디슨을 보는 그의 눈은 애틋했다.
“저것 좀 봐. 저기, 시청률의 요정이다.”
“누구, 쟤요?”
카메라맨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상한 소리지만, PD가 말하니 딱히 이상하지 않았다.
그가 이상한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 * *
엘류드니르에 닿았을 때, 톨킬드가 으스대며 경비에게 말했다.
“나는 할랴헤랴르의 단장인 톨킬드다. 죽음의 주인을 알현코자 하니, 총집사님께 알려라!”
경비는 톨킬드를 보고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 없다.”
“어……?”
짧은 한마디에 톨킬드의 자존심이 와장창 박살 났다.
톨킬드가 당황했고, 피디를 비롯한 다른 일행도 당황했다.
언제든지 엘류드니르를 방문할 수 있다더니? 웃긴 놈이다.
경비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여왕 폐하께서는 명계 협동 조합 정기 회의에 가셨다. 총집사님은 여왕 폐하를 보필하기 위해 함께 가셨고.”
둘 모두 자리를 비웠단다.
톨킬드가 슬쩍 나를 보더니, 경비에게 손짓했다.
“저자를 아는가?”
어이없는 소리다. 저런 식으로 상황을 몰아가겠다고?
내가 눈살을 구길 때, 이라호드가 버럭 소리쳤다.
“내기는 분명 오디슨이 헬께 친절을 받았느냐 아니었냐 문제였는데요?!”
“흥, 위대하신 분께 갈 필요도 없지. 그분을 번거롭게 할 것도 없다! 이 엘류드니르의 경비에게 물으면 그만일 터!”
톨킬드가 가슴을 펴고 재차 물었다.
“그래, 저놈을 아는가?”
경비가 날 쳐다보았다. 나는 본 적 없는 사내다.
그가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저자를 아느냐고? 아니, 모른다. 대체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히죽 웃은 톨킬드가 말한다.
“헬께서 따뜻하고 부드러우시며 친절하다 말하던 놈이다. 감히 헬의 위대한 이름을 들먹이며 제 욕심을 채우려 했지!”
“…건방진!”
경비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의 창이 내게로 향한다.
분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외쳤다.
“허! 나는 강글로티의 환영을 받고, 강글로트의 안내를 받아 헬의 친절을 받았다!”
진실을 토해 냈다.
으드득, 이를 갈며 톨킬드를 노려보았다.
“비겁한 놈아, 성의 경비가 어찌 모든 사람의 얼굴을 알겠는가!”
이 정도 규모의 성이라면 하루에 드나드는 이들의 수도 적지 않을 터.
경비가 날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하하하! 네가 헬께서 총애하는 자라면, 총집사가 모두에게 주의를 줬을 터! 그렇지 않다는 게 네 거짓말을 증명하지 않는가!”
으드득, 이를 갈았다.
“전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넌 거짓말쟁이지, 오디슨!”
아까 하랄다의 죽음에 벌벌 떨던 녀석이 니플헤임의 이름을 등에 엎고 설치는 꼴이라니!
이 작자들은 어찌도 이리 비겁한가.
부르르- 분노에 몸을 떨 때, 소리 없는 마차가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죽음처럼, 예고 없이 다가오는 헬의 마차다.
“…음? 오디슨 님?”
마부석에 앉아 있던 강글라티의 목소리.
경비가 황급히 자세를 바로하고 경례를 올렸다.
“오셨습니까?!”
“그래, 그런데 이게 지금 무슨 일이지? 왜 오디슨 님께서 여길…….”
강글라티가 물었다. 경비가 슬쩍 눈치를 살폈다. 그 눈에는 당황이 가득했고, 입이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오디슨? 오디슨이라면 분명…….’
경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때, 벌컥- 문이 열렸다.
“오시리스, 그 개자식! 내 몇 번을 거절했는데! 말라비틀어진 미라 주제에! 뭐? 결혼? 미친 자식 같으니!”
헬께서 화를 내시며 마차에서 내렸다.
“아이고, 여왕님! 진정하세요, 아랫것들이 본다구요.”
“진정하게 생겼느냐, 강글로트? 그 청록색 미라 놈이 내게 한 말을 생각… 음?”
분노를 펑펑 터트리던 헬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떨떠름하게 시선을 슬쩍 돌렸다.
어째, 시기가 좋지 못했다.
쉬이잉. 차가운 바람 소리가 궁전 앞을 가로질렀다. 바람을 타고 온 어색한 침묵이 궁전 앞에 똬리를 틀었다.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살짝 고민을 하는 찰나, 눈치 없는 톨킬드가 그녀의 발치에 부복하며 소리쳤다.
“헬이시여! 죽음의 주인이시여! 저, 할랴헤랴르의 단장인 톨킬드이옵니다아!”
헬께서는 흠흠- 헛기침을 하고서 물으셨다.
“…무슨 일이더냐, 톨킬드. 지금 너는 분명 훈련 중이어야 할 터. 어찌하여 죽음의 앞을 가로막는단 말인가!”
헬께서 싸늘하게 물으셨다.
그에 톨킬드가 고개를 조아리고 외친다.
“감히 헬의 위엄을 해치려는 간악한 작자를 고발하러 왔사옵니다아!”
강글로트가 눈썹을 찡그린다.
“뭐라? 감히, 어떤 작자가!”
그에 톨킬드가 나를 삿대질한다.
“저자이옵니다! 저자가 말하기를 헬께서는 아름답고 친절하신 분이라 하였습니다! 죽음의 위엄을 훼손하는 작자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아!”
강글로트의 시선이 손가락을 따라 움직인다.
나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눈을 깜빡이던 강글로트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강글로트가 톨킬드를 삿대질하며 외쳤다.
“어머머! 여보! 이 새끼 말하는 것 좀 봐!”
“어……?”
톨킬드가 당황했다. 하지만 그 당황은 더 큰 당황으로 뒤덮혔다.
강글라티가 그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할랴헤랴르 단장? 우리, 이야기 좀 하지.”
어어어- 하던 톨킬드가 강글라티에게 끌려갔다. 강글라티는 싸늘한 눈으로 경비를 보았고, 경비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그 뒤를 따랐다.
피디가 당황해 외쳤다.
“뭐, 뭔가요?! 톨킬드 씨를 어디로……?”
“남편이 잘 타일러서 데리고 올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호호.”
강글로트 웃으며 헬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헬께서 움찔 몸을 떠셨다.
“그나저나 오디슨 님이 글쎄~ 여왕님더러 아름답고 친절하다고 말했대요. 어머어머!”
헬의 입꼬리가 씰룩이신다.
읽기 힘든 표정이다. 화가 나신 겐가?
황급히 외쳤다.
“난 사실을 말했을 따름이외다!”
강글로트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
“사실요?”
“그렇소. 헬께서 아름답고 친절하신 것은 사실 아니오? 난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았소!”
당당하게 말했다.
만에 하나 내 말에 헬의 위엄을 손상시킬 수도 있다 한들, 난 사실을 말했다.
전사가 되어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강글로트가 흐흐흐- 하고 나지막이 웃었다.
헬의 용안이 꼭 한 송이 장미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진노하신 겐가? 변명하듯 덧붙였다.
“헬의 위엄을 해쳤을지언정, 난 사실을 말했소. 본래 헬이 어떠신지는 모르나, 내게는 아름답고 친절하신 분이오.”
“이, 이제 그만!”
헬께서 소리치셨다. 그 목소리에 주변에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그분께서는 후우, 숨을 고르시고 날 외면하셨다.
소곤소곤 말을 건네신다.
“…같이 식사나 해.”
그 귓볼이 새빨갛다.
내기의 승패가 명확하게 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