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32화 (32/208)

# 32

32화. 영웅은 거짓말할 줄 모른다 (1)

니플헤임으로 가는 비프로스트 안. 언제 타도 울렁거리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바라던 무지개다리는 이런 꼴이 아니었는데.

인상을 찡그리고 있자니, 옆자리에 앉은 이라호드가 투덜댄다.

“정말, 이런 일을 벌일 거면 진작 말을 해 줬어야죠.”

“메르키가 많이 화내던가?”

니플헤임행이 결정되고, 나는 곧장 이라호드를 부렸다. 메르키에게 경기 주선을 취소해 달라 전달케 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만에 하나 경기가 이미 잡혔다면 어쩔 뻔했어요?”

“뭐, 그래도 취소했어야지.”

이라호드가 입술을 삐죽이고 뭐라 하려 할 때,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전에 분명 전속 발키리는 매니저라는 것도 겸한다 했지 않나? 매니저의 업무가 이런 귀찮은 걸 대신해 주는 것, 아니었나?”

이라호드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투덜대는 건 좀 받아 줄 수 있는 거 아니예요?”

“글쎄, 날 발할라에 그냥 내던진 사람이 누구였더라.”

“치… 그땐 진짜 바빴다구요.”

미안하긴 했던지, 그녀가 슬쩍 껍질을 깐 달걀을 건넸다. 속이 울렁거릴 것 같은데…….

뭐, 어떤가.

와구와구, 달걀을 한입에 털어넣었다.

이라호드가 뭔가 말을 꺼내려는 찰나, 카메라라는 걸 든 남자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 곁에는 스노리와 괴르가 함께였다.

“잠깐 인터뷰 괜찮은가요?”

스노리의 말에 이라호드가 잽싸게 머리를 정돈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노리가 묻는다.

“안녕하세요? 싸움의 법칙 MC 스노리입니다.”

“호호, 안녕하세요. 발키리인 이라호드예요. 평소에 ‘싸움의 법칙’ 잘 보고 있어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이라호드는 전에…….

“싸움의 법칙은 뭣도 모르는 놈들이나 보는… 으음?”

“오호호, 오디슨? 목 메이죠? 이것 좀 마셔요.”

이라호드가 톡톡 튀는 단물을 내 입에 쑤셔 넣었다.

그 모습에 스노리가 빙그레 웃으며 질문했다.

“오디슨 선수의 담당 발키리신가요? 담당 발키리는 보통 1만 명이 넘는 이들을 관리하느라 힘들다고 들었는데…….”

“전속 발키리예요.”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에 괴르가 와-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톨킬드와 하랄다가 움찔 몸을 떤다. 속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왜 하급 투사한테 전속 발키리가……?”

“전속은 T100에나 붙는 거 아니었나?”

흠, 그런가?

생각보다 독 사건 이후 신들의 보상이 푸짐했다.

당시에는 1억 크로나를 받고 입을 쩍 벌렸지만, 실상은 룬스톤과 전속 발키리 배치가 훨씬 더 좋은 보상이었다.

신들께서 내게 그만큼 기대하신다는 거겠지?

흐뭇하게 웃으며 가슴팍을 폈다.

“우와, 이라호드, 너 승진 되게 빠르다! 벌써 전속이야? 난 아직도 투기장 관리인이 못 됐는데…….”

“그러세요? 호호, 운이 좋았죠.”

“…뭐야, 나한테 말투가 왜 그래? 혹시 아직도 그 일 때문에 삐친 거야?”

그 말에 이라호드가 손을 뻗어 카메라의 눈 부분을 붙잡았다. 카메라를 든 남자가 어어- 하고 당황했다.

이라호드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크메라 즘 끄져?”

이를 악문 상태라 발음이 기괴했다.

카메라를 든 이가 카메라를 쓰다듬자, 붉게 빛나던 빛이 사라졌다. 신기하다.

“이라호드? 응? 우리 발키리 학교 동기잖아. 편하게 말해.”

“허, 동기면 다 편한가요? 불편한 사람도 있는 법이죠.”

“뭐야, 진짜 삐쳤네? 솔직히 그때 이상한 만화나 보고 있었잖아.”

이라호드가 눈썹을 씰룩였다.

“이상한 만화라뇨! ‘프리키리’는 사랑과 우정을 그린 명작이라구요!”

“아니… 여자애들이 갑자기 발키리로 변신해서 싸우는 건 좀… 어린애들 보는 거 아냐? 게다가 발키리가 장난이야? 학교 과정만 몇 년인데…….”

“명작에 현실성은 관계없잖아요!”

이라호드가 이를 까드득 갈았다.

괴르는 제 의견이 맞지 않냐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모두가 그녀를 외면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 눈을 꿈뻑였다.

“…변신이라.”

툭 내뱉은 말에 괴르와 이라호드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괴르가 내게 물었다.

“애들이나 좋아하는 거 맞지? 응? 그렇잖아!”

동의를 강요하는 듯한 물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전사다. 강요에 지지 않고, 내 의견을 관철하는 전사.

“글쎄, 그건 전사의 로망 아닌가? 나도 좋아하오만.”

“어……?”

괴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이라호드가 반색하며 내 손을 덥썩 잡았다.

“오디슨이라면 이해할 줄 알았어요!”

“뭐, 대단한 거라고.”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변신이라면, 나도 할 줄 아는데 말이야.”

비프로스트 안이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덜컹덜컹 거리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올 때, 누군가가 속삭였다.

“…진짜 미친놈인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눈살을 구겼다. 하지만 모두가 나를 외면한 상태라 찾을 수가 없었다.

* * *

니플헤임은 언제나처럼 차가운 땅이었다. 서늘한 한기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에 오해를 했는지, 톨킬드가 히죽 웃었다.

“바로 엘류드니르로 갈 건가? 할랴헤랴르는 헬께서 투자하신 용병단, 언제라도 엘류드니르로 갈 수 있다.”

으스대며 말하는 톨킬드.

나는 의아했다. 저게 지금 자랑인가? 주변을 살피니, 아무래도 자랑인 것 같다.

“크, 역시 요즘 제일 핫한 용병단답네.”

“맞아. 죽음이 기거하는 곳에 저렇게 쉽게 갈 수 있다니.”

속닥거리는 목소리에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엘류드니르는 좀 있다 가지. 사냥을 마치면 더러워질 터이니.”

“흐흐흐, 핑계는 좋군.”

비릿하게 웃는 톨킬드를 보자니, 부아가 치솟는다.

하지만 참았다.

언제였던가? 비열한 제국과 더러운 마르스에게 분통을 터트리는 내게 메르키가 말했다.

‘까악! 동방에는 이런 말이 있다.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 대단한 사람들은 복수는 하는 데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이야기다. 까악까악!’

그 당시에는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꽥꽥 소리 질렀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저까짓 놈이야 언제든지 엿을 먹여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좀 더 큰 엿을 먹여 주는 게 좋지 않겠는가?

“사냥부터? 흥! 사냥터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나?”

이번에는 하랄다가 시비를 걸어왔다.

그 작자의 말에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내게는 토르손이 가르쳐 준 사냥터가 있었다.

“곧장 가지.”

분노를 삼키며 말했다.

이 분노가 터져 나오는 순간, 저 자식들의 목숨은 없으리라.

분노가 터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라호드가 슬쩍 내 망토의 끝을 잡았다.

“잘했어요.”

“뭘 말인가? 참는 것?”

“네, 여기는 하계와 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니까요. 참아서 나쁠 게 없죠.”

피식 웃음 지었다.

하계와 다르다? 아니, 발할라에 온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 나는 이곳의 본질을 깨우쳤다.

“그다지 다른 것 같지도 않더군.”

어디나 똑같은 법칙이 있었다.

약육강식(弱肉强食).

발할라는 짐승들의 법칙이 황금으로 포장되어 있는 곳이다.

“도착했군.”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토르손이 일러 준 사냥터다. 그 녀석이 말하기를, 뛰어난 사냥꾼도 잘 모르는 곳이라고.

…음, 그런 곳을 방송에 내보내도 되는 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피디를 보았다.

“이곳의 위치는 될 수 있으면 안 들키게 해 주시오. 내 옛 부하가 사냥하는 곳이니.”

“아, 네! 알겠습니다.”

피디의 대답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랄다가 내 모습에 피식 웃는다.

“꽤 좋은 곳을 알고 있군? 그렇다고 해도, 사냥의 기본조차 되지 않았어. 이 깊은 숲에서 찌꺼기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잘난 척하며 이런저런 소리를 늘어놓는 놈이다.

나는 코를 킁킁댔다. 녀석이 낄낄 웃는다.

“냄새로 찌꺼기를 찾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닥쳐라, 하랄다. 사냥을 방해하지 말고, 내가 하는 걸 잘 봐라.”

슬쩍 단창을 꺼내 들었다. 장창에 비해서 쓸 일이 많지 않는 무기였다.

이전에 맡아 본 퀴퀴하고 불쾌한 냄새. 찌꺼기의 냄새다.

그리고 그 냄새가 풍기는 쪽은?

북쪽이다.

“흐읍!”

숨을 들이켜고, 단창을 내던진다.

쉬우우우우- 퍽!

“껙!”

숨을 들이켜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그 모습에 하랄다가 눈살을 구겼다.

“뭐하는 짓이냐! 냄새로 녀석을 찾은 건 대단하지만, 그런 식으로 찌꺼기를 자극하다니! 당장에 수십 마리가 몰려올 거라고!”

조잘조잘 말도 많은 놈이다.

나는 괴르와 이라호드를 보고 입을 열었다.

“다른 이들을 보호하시오.”

괴르가 고개를 끄덕였고, 이라호드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호위? 필요없다.

간만의 싸움이다.

남에게 양보할까 보냐.

잽싸게 장창을 들고 달렸다.

사삭, 사사삭. 풀잎 스치는 소리가 났다.

딱히 조심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기습은 재미가 없다.

내가 찌꺼기가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찌꺼기들은 모두 전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네상스를 죽이다니!”

“당장 호루라기를 불어라! 적이다! 적!”

“어떻게 마을 근처까지 온 거지? 죽어!”

삑삑삑! 시끄러운 소리와 호들갑을 떠는 찌꺼기들. 아마 이 자식들이 병사 계급에 속하는 녀석들이리라.

병사 계급 다섯이 전사 계급 하나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나는 병사 계급을 몇 마리나 상대할 수 있을까?

히죽, 웃음을 흘리고 창을 꽉 쥐었다.

“덤벼라! 세계를 갉아먹는 벌레들아!”

“놈은 혼자다! 양쪽에서 덮쳐!”

찌꺼기들이 덤벼들었다.

제대로 된 생산 시설이 없는 듯, 낡은 무기들.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무기를 든 것이 훔치거나 빼앗은 것들이리라.

쓰레기 같은 것들!

“히야아아!”

“네상스의 원수!”

낡은 도끼, 그리고 낡은 창.

나는 내 몸을 찌르려는 창을 낚아챘다.

“어어?”

그리고 쭉 당겼다.

푸욱!

“케, 케엑… 너, 너…….”

눈을 부릅뜬 도끼가 중얼거렸다. 창을 든 찌꺼기는 자신의 창으로 아군을 찌른 감촉에 부르르 떨었다.

“나, 나는……!”

“죽음을 각오치도 않고, 전장에 섰느냐!”

빠각! 녀석의 코를 들이박았다.

창대를 놓치고 뒹구는 찌꺼기.

약하다, 약해 빠졌다!

“으, 으으!”

“전장의 까마귀들이여! 그대들을 위한 만찬이다!”

푹! 꽈드득!

빼앗은 창을 녀석의 척추에 박아 넣었다.

“이 괴물 같은 놈!”

“하하하! 많이 듣던 소리구나!”

제국놈들이 늘상 하던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 칼을 치켜드는 녀석에게 창을 내질렀다.

푸욱!

뻔히 보고 있는데, 빈틈을 보이다니!

어리석기 그지없다.

“괴, 괴물이야!”

“왜, 왜, 그냥… 그냥 신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을 뿐인데……. 왜!”

허! 겁쟁이 같으니.

“신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면, 신을 죽일 만큼 강해져라! 그것이 이 세상의 법칙이니!”

나는 양 떼 사이로 달려든 늑대처럼 설쳤다.

송곳니 대신 창을 들이밀어 살점을 뜯어냈다.

녀석들은 숫자만 많을 뿐, 내 상대가 되질 못했다.

“죽어, 죽어, 죽어!”

“큰소리를 친들, 속지 않는다!”

도끼를 크게 치켜들고 달려드는 놈. 나는 그 품으로 스미듯 파고들었다. 그리고 당황하는 녀석의 눈동자를 보고, 헉- 하고 숨을 삼키는 녀석의 입 냄새를 맡았다.

“입 냄새가 지독하군.”

눈살을 찌푸리고, 녀석의 허리를 감아 빙 돌렸다.

순식간에 반전된 나와 녀석의 위치.

푹푹푹!

“끄아아…….”

도끼를 든 녀석의 등짝에 화살이 박혔다.

부르르 떠는 녀석의 턱을 붙잡아 돌렸다.

꽈드드득-

목이 부러진다.

씩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전긍긍하던 녀석들의 눈에는 공포가 서렸다. 꼭 겁 많은 제국 놈들 같구나! 히죽 웃음 짓고 소리쳤다.

“나와 겨룰 전사는 없는가!”

쩌렁쩌렁, 숲을 울리는 외침.

찌꺼기들을 자극하겠지만, 뭐 어떤가? 일행은 어차피 발키리들이 지키겠지.

괴르가 만일 이라호드만큼이나 강하다면, 이곳의 찌꺼기들이 모두 덤벼들어도 어쩔 방도가 없으리라.

“아, 아으… 악마야, 악마!”

“수, 순식간에… 다들…….”

겁을 먹고 벌벌 떠는 놈들.

나는 겁쟁이가 싫다. 전사의 반대는 보호받는 이들이 아니다.

전사의 반대는 겁쟁이다.

“죽어라, 세계를 더럽히는 것들아!”

창을 휘둘렀다.

채앵! 수풀 속에서 튀어나온 덩치가 내 창을 막았다.

“흐흐흐, 꽤나 자신만만하구만, 그래.”

“…넌?”

“전사를 찾았는가? 나와 겨뤄 보자, 신의 개야!”

“허… 확실히, 너는 개는 아니군.”

나는 찌꺼기 전사들이 모두 개머리를 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의 꼴을 보아하니, 제각각인 모양이었다.

장대한 덩치를 지닌 코뿔소 인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팔은 고작 둘. 하지만 힘이 예사롭지 않다.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이제야 즐겨 볼 수 있겠군.”

“흐흐흐, 이거 참… 미친놈이구만? 나는 위대한 인간의 전사, 디케로스. 너의 이름은 뭔가, 신의 개?”

코뿔소 머리가 인간의 전사라니. 꽤나 우스꽝스럽다.

허나, 이름을 밝히는 찌꺼기라? 전사의 예를 갖췄으니, 나 역시 전사의 예를 갖추리.

창을 거두고 이름을 밝혔다.

“물푸레나무 부족의 붉은 늑대, 오디슨이다.”

“그래, 오디슨… 네놈의 몸을 찢어발겨 유족들에게 전해 주며 그 이름을 말해 주도록 하지.”

“그것 참 친절한 이야기구나. 그럼, 나는 네놈의 시체로 황금을 빚어 술을 마시는 데 쓰도록 하지. 술자리 안주로 네놈과의 싸움을 곁들일 수 있다면 좋겠군.”

“…담이 크군.”

통성명이 끝났다. 우리는 서로를 노려본다.

예의를 차린 전사들에게 남은 건 하나다.

피가 튀고, 살이 뜯어지고, 뼈가 박살 나는 뜨거운 싸움!

“크어어엉!”

“후아아아앗!”

창을 들고 달려들었고, 녀석이 거대한 뿔을 앞세우고 돌진했다. 디케로스의 무기는 커다란 망치.

그 거대한 쇳덩이가 허공을 가른다.

부웅!

거인의 일격 같은 궤적. 하지만 단순하고 느리다.

어마어마한 힘으로 그 속도를 메꾸고는 있지만…….

“느리구나!”

휘잉- 허리를 숙여 피해 냈다.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싹한 전투의 흥분 속에서 창을 내질렀다.

솜털 하나까지도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 창격은 완벽한 궤도로 날았다.

목표는 녀석의 겨드랑이. 단단해 보이는 가죽으로 감싸인 몸이라 할지라도, 겨드랑이는 약할 수 밖에 없으리라!

챙강!

내 창이 부러졌다.

“뭣?!”

“크흐흐흐! 너 같은 놈들은 모두 겨드랑이를 노리더군!”

놈은 겨드랑이에 창날을 끼우더니 몸을 비틀었다. 발할라에서 수많은 싸움을 함께한 내 창은 썩은 나뭇가지처럼 쉽게 박살 났다.

입을 쩍 벌리고 있자니 디케로스가 외친다.

“적을 평범하게 보지 마라, 신의 개! 이곳은 상식이 붕괴되는 곳이나니!”

부우우우웅!

묵직한 망치 머리가 땅을 박살 낼 듯 추락했다.

목표는 내 머리통.

상식이 붕괴되는 곳이라.

나는 새로운 걸 배웠다.

* * *

“확실히, 전사 계급도 못 된 녀석들은 약하구만. 숫자만 많지 않다면, 당장에 다 쓸어버리는 건데… 쯧.”

괴르가 발을 털며 말했다. 무기조차 지니지 않은 그녀였지만, 허공을 박차며 날리는 발차기는 끔찍한 위력을 지녔다.

이라호드 역시 괴르에 비해 뒤지지 않는 활약을 해냈다.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일행을 노리는 적들을 모조리 찔러 죽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황.

모두의 시선은 오디슨의 전투로 향했다.

PD가 흥분해 외쳤다.

“찍고 있지? 응? 찍고 있지?!”

“젠장할, 오디오 섞이니까 소리치지 마쇼!”

카메라맨이 질색했다. 그 역시 지금 이 장면이 굉장한 반향을 일으키리라는 걸 알았다.

“죽어라! 세계를 더럽히는 것들아!”

오디슨이 소리쳤고, PD가 캬- 하고 감탄했다.

“대사 죽이네!”

“칫, 무계급 아니면 병사 계급 따위를 사냥하면서 호들갑은 무슨…….”

그때, 챙! 하는 소리와 함께 오디슨의 창이 막혔다.

하랄다가 흠칫 몸을 떨었다.

“저, 저 녀석은……!”

사냥꾼들 사이에서 상당한 악명을 지닌 녀석이었다.

“철갑, 디케로스!”

“유명한 찌꺼깁니까?”

“…화살이 박히지도 않는 괴물입니다.”

“그럼 저 녀석을 오디슨이 잡으면 패배를 인정하시는 건가요?”

PD의 질문에 하랄다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하랄다가 보기에도 오디슨의 싸움은 대단했다. 정면으로 쳐들어가 순식간에 찌꺼기를 참살하는 꼴이라니.

하지만 더크리프를 잡았다는 허풍은 믿어 줄 수가 없었다.

하랄다 자신도 더크리프에게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저 녀석보다 못하다고? 광대놀음이나 해 대는 놈보다 못하다? 말도 안 돼!’

하랄다가 복잡한 마음으로 얼굴을 구기고 있을 때, 스노리가 슬쩍 끼어들어 PD에게 핀잔을 날렸다.

“PD님, 제가 MC 아닙니까? 왜 그렇게 PD님이 나서요? 혹시, MC자리 탐내십니까?”

“하하, 그건 아니고…….”

가벼운 너스레. 긴박한 싸움 사이에 긴장을 풀기 위해 넣기 좋은 장면이었다.

그때, 챙강-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헉!”

카메라맨이 숨을 들이켰고, 모두의 시선이 오디슨에게로 향했다.

창이 부러지고, 멍하니 있는 오디슨. 망치를 치켜드는 디케로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괴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후다다닥 말을 쏟아 냈다.

“야야야! 찌꺼기한테 당하면 영혼 파손율이 엄청나잖아! 얼른 구해! 내기고 뭐고, 쟤가 여기서 죽으면 너도 벌점 엄청이야!”

괴르의 말에 하랄다가 슬그머니 웃었다. 역시나 창 따위를 가지고 평범한 전사 이상의 괴물들인 찌꺼기를 잡을 순 없었다.

이라호드가 끼어드는 순간, 내기는 자신의 승리였다.

‘가라! 구하러 가!’

하랄다가 바랐다.

하지만 이라호드는 다른 이들과 달리 여유만만한 태도였다.

“다들 너무 오디슨을 무시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 지금 그런 소리할 때가 아냐!”

괴르가 눈썹을 팔자로 구기며 말했다.

이라호드는 피식 웃었다.

“오디슨식으로 말해 볼까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전사는 무기를 들지 않아도, 전사예요.”

그와 동시에 콰드드득!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윽- 하고 신음을 흘리면서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덜너덜해진 오디슨의 시체를 떠올리며 바라본 곳.

그곳에는…….

“커, 커억……!”

“크르릉… 어떤가? 상식이 좀 붕괴되었나?”

“크, 크크크… 그, 그래… 대단하군. 부, 붉은 늑대… 저, 정말로… 늑대, 라니이…….”

심장이 꿰뚫린 디케로스가 늑대 인간의 품에서 스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모두들 문득, 버스 안에서 오디슨이 한 말을 떠올렸다.

‘변신이라면, 나도 할 줄 아는데 말이야.’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하랄다의 눈동자가 부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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