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29화. 영웅은 쉴 줄 모른다 (1)
[이번 경기는, 드디어! ‘그 선수’가 돌아왔습니다!]
[치료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다행이군요. 그 독이 꽤 유명해졌죠?]
[예, 오디슨 선수 덕분이죠.]
해설자가 내가 당했던 독에 대해 설명했다.
영혼을 갉아먹기 때문에 그 누구도 견딜 수 없는 통증을 유발하는 끔찍한 독이라고.
게다가 묻지 않아 몰랐는데…….
“그 제국 노예 놈이 끔찍한 벌을 받았군.”
레티아르에게 극형이 내려졌다고 한다.
사형? 아니다. 이곳에서는 죽음이 큰 의미가 없으니.
소멸형? 아니, 그것도 너무 유순한 처벌이지.
[산 채로 영혼을 추출해 황금으로 만들어 내는 처벌, 생금 추출이라고 하는 벌이죠. 아무튼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꽤나 오싹하네요.]
[뭐, 그 어떤 고통도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하니까요. 한번 받고 나면 대부분 영혼이 미쳐 버린답니다.]
“그 정도 처벌은 해야, 보통 사람들이 배신이 무섭다는 걸 알겠지.”
중얼거리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기 앉아 있는 관객들. 그들처럼 전사가 아닌 이들도 배신의 무거움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으악! 꺄악! 하고 소리 지르는 걸 보자니…….
헛웃음이 나온다.
좋은 의미로 시선을 마주친 건 아닌데.
멋쩍게 손을 흔들었다.
와아아아아!
[하하, 오디슨 선수, 정말 인기가 대단하네요.]
[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죠. 정말 화끈하게 싸우니까요. 게다가 항복을 한다거나 하는 일도 없죠?]
[그렇죠. U500 초기에는 많이 약했죠. 그런데도 항복은 절대 안 했어요.]
해설자와 아나운서가 날 칭찬한다.
머쓱하니 머리를 긁적이고 목에 건 룬스톤을 만지작거렸다. 피를 묻혀 주인 등록을 한 룬스톤이다.
〈늑대가죽을 쓰고 늑대가 되어,〉
〈오딘께 2만 산 제물을 바치니.〉
〈죽어 전사는 에인헤랴르로서,〉
〈사백 육십 여섯째 자리 앉는다.〉
멋을 잔뜩 부린 스칼드(skáld, 시)가 새겨진 룬스톤.
이라호드의 말에 따르자면, 업적이 늘어날수록 내용이 늘어난다고.
지금 내가 가진 룬스톤에는 겨우 4줄짜리 스칼드가 적혀 있지만, 대단한 전사들은 그야말로 책을 써도 될 정도로 긴 스칼드를 가지고 있단다.
“뭘 그렇게 봐?”
옆구리에 투구를 낀 이그나르가 나를 툭 건드렸다.
나는 잽싸게 상의 안으로 룬스톤을 집어넣었다. 내 업적을 칭송하는 스칼드를 보여 주기 싫었다.
그건 꽤 낯뜨거운 일이다.
“별것 아니다.”
“아니긴, 자식. 그 목걸이는 발키리가 주든?”
나는 이그나르의 헛소리를 무시했다.
상대를 살폈다.
포르디에르라고 했던가? 요술쟁이.
지팡이를 든 채 오연한 표정을 짓는 게 마음에 안 든다.
하계에서 주술사 영감이 요술이랍시고 보여 준 것들은 죄다 하찮기 그지없었다.
“오디슨, 너도 방심하지 마라. 요술은 쉽게 볼 게 아냐.”
“…안다.”
포르디에르의 요술은 아마 주술사 영감의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리라. 온갖 신기한 능력을 지닌 투기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게 그 증거다.
그리고 또 다른 상대는…….
“…야른시다.”
“쯧, 저 망할 새끼. 한 방에 뻗은 놈한테 300만 크로나를 줬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치네.”
“이그나르, 네가 할 일은 야른시다를 막는 거다. 잊지 마라.”
퉷. 이그나르가 침을 뱉고는 투구를 고쳐 썼다.
그 투구에서 흘러내린 가죽이 목까지 가렸다. 꽤나 방어력이 좋아 보였다.
해설자와 아나운서의 선수 소개가 막 끝이 났다.
[경기, 시작합니다!]
싸움이 시작됐다.
* * *
콰르르릉!
[엇! 야른시다, ‘천둥소리’!]
[저번과 똑같은 전개죠?!]
“시작하자마자 또!”
전에 쓴 방법을 그대로 쓴다니, 정말 창의성이 없는 놈이다.
바닥에 순식간에 찍히는 발자국을 보고 파악했다. 놈이 노리는 것은 또 저번과 같았다.
“이그나르으!”
“으아아앗!”
부우우웅! 이그나르가 전력을 다해 도끼를 휘둘렀다. 제자리에서 한 번 팽 돌 정도로 묵직한 일격이었다.
그 탓에 야른시다는 차마 이그나르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칫!”
[투박하지만 좋은 견제였습니다!]
[그렇죠, 공격은 최선의 방어 아니겠습니까?]
야른시다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관객들이 환호했다.
“이거 기분 꽤 좋은데?”
함성 속에서 이그나르가 히죽 웃었다.
야른시다가 눈살을 구기며 말했다.
“준비한 작전이 고작 그거냐? 도끼를 들고 팽이처럼 도는 거?”
“쯧, 망해 쳐 먹을 새끼. 불쌍해서 300만 크로나나 줬더니…….”
“으드득! 이 개 같은 자식!”
야른시다가 단검을 앞세워 달려들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창을 내질렀다. 자루를 길게 잡을 필요는 없었다.
거의 야른시다의 단검처럼 짧게 쥔 창을 연이어 녀석에게 찔러들었다.
쉭쉭쉭!
“큭! 망할!”
[창을 굉장히 짧게 잡았죠?]
[야른시다가 빠르기 때문입니다. 길게 쥔 창은 한번 빗나가면 회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단검을 상대하는 데에는 짧게 잡아도 리치가 유리하죠!]
[아, 정말 똑똑한 선수입니다, 오디슨!]
야른시다가 쩔쩔 맬 때, 이그나르가 끼어들었다.
“으라차차!”
부웅! 부웅!
이그나르의 도끼는 위협적으로 허공을 갈랐다. 멍청한 짓거리 같지만, 이그나르는 꽤나 똑똑하다.
저런 식으로 위협만을 해 줘도 된다. 야른시다가 피할 곳이 줄어드니까.
그때, 걸걸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흉내쟁이를 깨부숴라! 퓌리스발라 프레(Fýrisvalla fræ)!”
저게 요술인가?
힐끗 바라보니, 포르디에르가 팅- 하고 금화를 튕겼다.
[엇? 요술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황금에 담긴 마력을 이용하는군요!]
[금화가 빛 덩어리가 되어 날아듭니다!]
그 빛 덩어리가 향하는 곳은…….
“이그나르! 피해라!”
“어어어어!”
이그나르였다. 이그나르는 허둥지둥 후다닥 빛 덩어리를 피했고, 그 빛 덩어리가 야른시다에게 부딪혔다.
뭐야? 실수인가?
[야른시다 선수! 둘이 되었습니다!]
[환영 요술이었습니다! 적을 위협하는 게 아니었어요!]
“흐흐흐, 멍청한 놈들.”
야른시다가 나와 이그나르를 비웃었다. 그 웃음에 이그나르가 버럭한다.
“야! 쟤는 몰라도 난 아니거든!”
“흥! 웃기고 있군! 이만 죽어라, 멍청한 놈아!”
“아니! 내가 안 멍청하다니까! 이 빌어 쳐 먹을 자식!”
이그나르가 흥분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맹렬한 도끼질! 마치 폭풍이 불어닥치는 것 같은 도끼질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지만, 미세하게 공격 사이의 틈이 빨라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한다.
실제로 무기를 맞대면, 도끼질에 휘청거리다가 공격의 틈을 잡을 수 없으리라.
[이그나르, 이그나르! 폭풍 같은 공격입니다!]
[아! 야른시다, 잽싸게 빠져요! 상성이 영 안 좋은데요?]
[묵직하고 느린 이그나르와 날랜 야른시다. 아무래도 영 좋지 않… 엇!]
쿠르르릉!
‘천둥소리’가 울렸다.
야른시다의 몸이 사라진다.
이그나르는 히죽 웃으며 도끼를 잡고서 강렬한 회전공격을 했다. 그러곤 외친다.
“작전 같은 건 필요 없다니까!”
너무 흥분했는데?
그러나 결과는 좋았다.
[어어어! 야른시다! 너무 서둘렀어요!]
[이그나르의 도끼가 야른시다를 쓰러트립니다!]
붕붕붕! 이그나르의 도끼질이 야른시다를 수차례 찢어발겼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멍청한 짓거리가 효과가 있다고?
그러나…….
“그건 환영이다, 멍청아!”
“엇!”
푸욱!
야른시다의 단검이 이그나르의 사슬 갑옷 틈을 파고들었다. 싸구려 사슬 갑옷은 단검처럼 작은 무기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이그나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좀 까다로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멍청하군.”
킬킬킬, 야른시다가 웃었다.
요술과 함께한 ‘천둥소리’는 그야말로 ‘천둥소리’ 같았다. 실체가 없어 막을 수가 없었다. 귀를 막고 있자면, 벼락이 내리치리라.
“그럼 이제, 다음은 네 차례다.”
비릿하게 웃으며 말하는 야른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픽 웃고 말았다.
“내 차례는 아직인 듯싶군.”
“뭐?”
덥석.
“잡았다.”
* * *
[맛탐방, 스콜하티에.]
발할라에서는 꽤 유명한 잡지다. 그리고 발할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유용하다 소문난 잡지다.
본래의 역사에서 라그나로크의 때에 해와 달을 집어삼킨다는 스콜과 하티가 낸 잡지. 해와 달을 먹을 정도로 식탐이 어마어마한 두 사람은 미식에 있어서는 최고로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번호에서는 꽤 특이한 콘셉트로 잡지를 꾸렸다.
[유명세를 이용한 한철 장사인가, 아니면 뒤늦게 알려진 맛집인가? 스콜하티에에서 확실하게 밝힙니다!]
음식 외적인 걸로 유명한 가게들을 찾아가 평가를 내리는 기획.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딱 좋았다.
나도 한번 가볼까? 하던 곳이 많았으니까.
개중에서도 이번에는 화제의 투사, 오디슨과 듀오를 맺었기에 유명해진 가게를 찾았다.
[숯불 세흐림니르 구이].
이그나르의 가게였다.
서두는 좋지 않았다.
[유명 투사의 파트너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그 파트너는 조롱의 대상이 되는 투사, 얼음미끼 이그나르. 본 잡지의 코메인 에디터, 스콜과 하티는 그곳을 방문하고 굉장한 불쾌감을 느꼈다.]
(사진)
[보이는가? 직원이 우리를 안내한 곳이 이곳이다. 손님이 많다는 이유로 정리조차 되지 않은 테이블로 안내한 것이다.(생략)]
스콜하티에는 부분에 따른 평가를 한 뒤 종합평가를 날리는 곳이다.
첫 번째 평가는 처참했다.
[평가1. 접객.]
(★☆☆☆☆)
[손님이 가득하지만, 손님을 신경 쓰지 않는다. 손님들끼리 서로 부대끼는 광경은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정리도 안 된 자리로 본 잡지의 메인 에디터 둘을 안내하기까지! 오, 세상에… 0점을 주고 싶었지만, 최소점인 1점을 준다.]
두 번째 평가? 대상이 밑반찬이다.
동네 고깃집에서 밑반찬 수준이 높아 봐야 얼마나 높겠나?
[평가2. 밑반찬.]
(★☆☆☆☆)
[대부분의 밑반찬이 절임류라 너무 짜고 셨다. 게다가 플레이팅에 신경 쓰지 않아, 엉망으로 튄 음식 국물이 꼭 살해 현장의 핏자국을 보는 것만 같았다. 0점을 주고 싶었지만, 최소점인 1점을 준다.]
역시나 평가가 처참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확 달라졌다.
메인 메뉴에 대한 평가였기 때문이다.
보통의 유명세를 이용한 식당들은 단골이 잘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그나르의 가게는 달랐다.
한 번 온 손님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왜 그럴까?
그야 맛이 있으니까.
[평가3. 메인메뉴.]
(★★★★★)
[최고다. 더 이상 말해 뭐하겠는가? 사장이 수십 마리의 세흐림니르를 잡아먹으면서 만들어 냈다는 양념과 양념장은 오케스트라의 전율을 혀에 전해 준다. 그야말로 맛의 폭발이요, 요리의 최고봉이다.]
이그나르는 기본에 충실했다.
손님이 없었기에 메뉴를 계속해서 개량했다.
문제가 맛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종합 평가.]
(★★★★★+)
[숯불 세흐림니르 구이에 가 보지 않은 당신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한 것이다. 당장 가 봐라. 주인의 험상궂은 외모 탓에 오디슨이라는 투사의 유명세가 있기 전까지 손님이 거의 없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우리 요리계가 성장함에 있어서…….(이하 생략)]
자신의 외모 탓에 들어왔던 손님들이 놀라 도망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계속해서 세흐림니르를 먹고, 또 먹어 가면서 개량했다.
그렇다면 이그나르의 회복력은 과연 얼마나 될까?
* * *
으흐흐흐- 멍청한 웃음을 흘리던 이그나르가 야른시다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야른시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심장을 찔렀는데……?”
“목을 벴어야지. 안 그래?”
이전, 이그나르는 야른시다와의 경기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다. 하지만 결코 죽지는 않았다.
목덜미에 칼이 꽂히고도 죽지 않은 이그나르. 그는 경동맥이 잘리며 의식을 잃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가슴팍을 노려? 멍청한 짓이었다.
이그나르가 으흐흐- 음흉하게 웃고는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럼 잘 가라고.”
“제, 젠장!”
야른시다가 입술을 깨물고 정신을 집중하려 했지만, 이그나르가 한발 빨랐다.
퍼걱! 야른시다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히죽 웃었다.
내 작전이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고깃집 사장임에도 묘하게 허약한 인상을 가진 이그나르다. 그걸 역이용한 것이다.
그 착각을 만들어 낸 것이 야른시다이다 보니, 확실히 잘 통했다.
으스대며 주위를 둘러보니…….
우와아아아아아아아! 광란의 도가니다.
[이변입니다! 이변!]
[얼음미끼라는 오명을 단박에 벗어던집니다! 심장을 찔리고도 상대를 잡아채는 무식한 전술!]
[하하하, 전술이라 하기도 좀…….]
[그렇죠? 아무래도 이 작전은 이그나르 선수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해설자가 말했다.
이그나르가 인상을 구겼다.
나 역시 인상을 구겼다.
“내 작전이거늘!”
“내가 왜 무식해? 이 새끼 말대로 한 건데! 투구를 써서 목만 보호하고 몸을 대라는 걸 작전이라고 으스대던 새낀데, 이게!”
둘이서 방방 뛰며 분통을 터트렸지만…….
와아아아아아! 함성 소리에 가려져 티브이로 나갈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남은 건…….
“저 요술쟁이뿐이군.”
“환영 한 번 쓰고서 멍하니 있는 거 보니까, 별거 아닌가 본데?”
이그나르의 말에 나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슬쩍 포르디에르를 보았더니, 정신이 나간 건가?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흐흐흐, 얼음미끼니 뭐니 헛소리를 하더니… 거기에 당해? 야른시다, 놈. 정말이지 쓸모가 없군!”
어이가 없다.
“이봐, 영감쟁이. 금화를 쌓고 놀던 양반이 할 말은 아닌데?”
“뭐? 프하하하!”
껄껄 웃는 꼴이 정상은 아니었다. 포르디에르가 눈빛을 번뜩였다.
“내가 놀고 있었다 생각하느냐!”
놀고 있는 게 아니라면?
포르디에르가 길고 긴 주문을 외웠다.
“퓌리스발라 프레! 퓌리스벨리르에 뿌려진 씨앗! 번쩍이는 금화야, 적들의 시선을 돌리라! 황금에 눈 먼 자들이 자멸할 터이니! 퓌리스발라 프레!”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번쩍! 휘황찬란한 빛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이그나르가 으윽! 하고 눈을 가린다.
그리고 투기장이 인외마경으로 탈바꿈했다.
[어, 어어어! 뭐, 뭐, 뭔가요! 이게 요술입니까? 네?!]
[허, 정말 대단하네요! 저게 바로 요술의 비기 중 하나인 ‘겹쳐 쌓기’입니다! 요술들을 수없이 겹쳐서 출력 부족을 극복하고, 마법을 이루는 기술입니다!]
[그,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어렵죠, 어려우니 비기 아니겠습니까?]
해설자와 아나운서가 폭포처럼 말을 쏟아부었다.
“이, 이게 뭐야…….”
이그나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태초의 공허라는 긴눙가가프(Ginnungagap)가 이러했을까?
바닥에서는 삐죽삐죽 얼음 조각이 솟아올랐고, 바람은 그 칼날 같은 얼음을 실어 날랐다. 기괴하게도 얼음에는 불이 붙어 있었다.
“흐흐흐, 흐흐흐! 이 한 번의 마법을 위해 1천만 크로나 이상이 들었다! 야른시다는 멍청했지만, 제 역할을 다 했지! 그럼 죽어라! 죽어서 나의 거름이 되어라!”
포르디에르가 외쳤다. 그와 동시에 쌩쌩 불던 칼바람이 내 쪽을 향했다.
“으윽, 큭! 젠장할! 으아아악!”
이그나르가 날아드는 얼음 송곳에 몸을 뒤틀며 비명을 내질렀다. 관객들은 멍하니 넋을 놓았다.
포르디에르는 낄낄낄 웃어 댔다.
나? 나는,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지?”
눈만 끔뻑였다.
우웅- 웃옷 안에 넣어둔 룬스톤이 부르르 떨었다.
룬스톤의 힘이 발휘된 건가? 어떻게? 왜?
분명, 룬스톤은 사용자의 업적을 읽어 들여 위그드라실에 호소하는 물건이라 했는데…….
슬쩍 룬스톤을 꺼내 보았다.
〈오딘께 2만 산 제물을 바치니.〉
스칼드의 두 번째 줄이 번쩍거리고 있다.
그 글자가 실타래처럼 천천히 풀리더니, 다른 글자로 모습을 바꾸었다.
〈마(魔)의 종주, 오딘의 총애 받으라.〉
제국 놈들이 도움이 될 때가 다 있다니!
나는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