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22화 (22/208)

# 22

22화. 영웅은 배신하지 않는다 (3)

“허! 웃기지도 않는군.”

개운한 기분이 한순간에 잡쳤다.

다시 목욕을 할까? 아니, 그래 봐야 이 더러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진 않았다.

마르스라니!

제국 놈들이 그토록 읊어 대던 마르스라니!

“그 작자를 만나면 내가 찢어 죽여 버릴 테다!”

으르렁거리며 분노를 토했다. 메르키와 이그나르가 나를 말린다.

“까악까악! 알았다! 알았어! 그만해랏! 거절할 테니까!”

“어휴, 이 자식은 신을 딱치 치기로 따는 줄 아나? 신을 어떻게 찢어 죽여? 엉?”

습습후. 숨을 고르고 메르키에게 말한다.

“확실히 거절해. 나는 제국 놈들이 모시는 그 어떤 신과도 엮일 생각이 없으니.”

“쯧, 알겠다. 사실 이쪽은 네가 말하는 그 제국과 크게 관련이 없기야 하지만…….”

“메르키!”

“아니, 됐다. 확실히 거절하겠다! 그럼! 잘 있어라악!”

퍼득퍼득! 메르키가 이제껏 본 모습 중 가장 빠릿하게 움직였다. 원래 저렇게 빨랐나 싶을 정도로 빨랐다.

“뭐… 네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냐. 나도 브리튼 놈들이 정말 싫거든.”

이그나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런가, 이그나르의 부족은 왕국 쪽과 부딪혔나? 그 이상한 놈들.

쯧쯧, 혀를 차고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이상한 놈들만 있는 건지 모르겠군.”

“뭐, 다들 먹고 살기 힘드니 그렇겠지……. 그나저나 배고프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흠, 그럴까?”

“아아, 오늘 승리 수당도 많이 받았겠다, 좀 좋은 거 먹을까?”

쩔렁쩔렁 울리는 돈 주머니.

묵직하기 짝이 없는 금화 주머니는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었다.

승리 수당이 무려 600만 크로나. 거기다 승급 보너스 300만 크로나가 더 붙었다. 그리고 난 뒤에 5%가 더 붙어 45만 크로나가 추가된다.

그걸 셋으로 나눴다. 야른시다 몫을 줄 필요는 없지만, 이번 경기로 한 번 죽었으니… 위로금이라도 내놓는 게 맞겠지.

그래 봐야 5천만 크로나의 일각도 되지 않겠지만.

결국, 내 몫은 345만 크로나.

이전에 가지고 있던 금액을 합치면 대충 400만 크로나다.

이걸로 뭘 할까?

즐거운 상상들이 머릿속에 마구 펼쳐졌다.

발할라에 올라온 뒤 한 번도 마시지 않은 술을 마실까?

슬슬 헤이드룬 미드를 마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제는 대기실 훈련장에 있는 가장 큰 돌덩이도 내 몸을 키워 주지 못한다.

슬그머니, 목욕탕 탈의실에 있는 거울을 보고 근육에 힘을 주었다. 울룩불룩, 요동치는 근육에는 거력이 담겨 있었다.

흐뭇하게 거울을 보고 있자니, 이그나르가 날 툭 친다.

“몸 자랑하지 말고, 나가자. 밥 먹어야지? 뭐 먹을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돈을 허투로 쓸 생각은 없다.

“네 식당으로 가지.”

“…망할 놈.”

이그나르가 투덜댔다. 여전히 고기 무료 제공이다.

나는 잽싸게 웃옷을 입고, 사우나에서 세탁한 가름의 망토를 걸쳤다.

목욕탕 영감이 단망토를 보고 슬쩍 눈치를 줬다.

[목욕탕 내 세탁]

[절대 엄금!]

…음. 이상한 규칙이다.

도대체 목욕을 하면서 빨지 않으면, 옷을 언제 빤단 말인가? 기왕 사우나가 있으니, 빤 옷을 말리는 것도 딱 좋다.

뭔가 여러모로 빨래를 위한 공간이건만.

쯧쯧, 혀를 찼다.

그때, 이그나르가 절그럭거리는 쇳덩이를 손에 들었다.

“…흠.”

“뭐야, 왜 그래? 다 입었으면 나가자.”

“그거. 얼마나 줬나?”

“어… 이거?”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들고 있는 것은 사슬 갑옷이다. 쇠사슬을 엮어 조끼를 만들고, 심장 부위에는 철판을 덧댄 갑옷.

물론, 내가 바라는 건 저런 갑옷이 아니다.

몸을 무겁게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약지의 반지.

그 반지가 담고 있는 능력에 대해 확실히 알진 못한다.

하지만 하나는 명확하다.

전신이 변이하는 게 아니라, 왼손만이 가름의 털로 뒤덮힌다. 그 힘 자체는 전신에 요동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건틀릿을 차면 어떨까?

“방심을 이끌어 내기 좋겠지.”

히죽 웃었다.

내 변이 타이밍을 알아채지 못한 놈들이 예상을 넘어선 힘에 깜짝 놀라는 꼴을 보고 싶다.

* * *

[브라기 중고 상점]

[무기/갑옷/마법서 1천 크로나부터!]

상점 간판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중고?”

“그래, 어차피 신품이나 중고나 성능 차이는 거의 없으니까. 가격 차이는 심하면 다섯 배가 넘게 난다고.”

“…음, 전 주인이 죽어 버린 물건은 재수가 없는데…….”

“쯧쯧, 그런 미신을 믿다니.”

“미신이든 뭐든 기분 나쁜 물건이지 않은가?”

이그나르가 어깨를 으쓱이며 걱정 말라 말한다.

“대부분 투사 은퇴를 하면서 내놓는 물건이야.”

이그나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U500에 등록한 뒤, 투사를 그만둔 녀석이 5명이 넘는다. 그 정도 숫자가 새로 등록을 하긴 하지만… 대부분 두어 번 싸우다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둔다고.

전 주인이 죽어 버리면서 풀린 물건이 아니라면야 상관없다.

“그런데 왜 하필 상점 이름이 브라기지? 브라기께서는 시가(詩歌)의 신이 아니셨던가?”

지하에 있는 상점인지라, 계단을 통해 내려가며 물었다. 그 말에 이그나르가 대충 대꾸했다.

“요즘 세상에 시만 써서 어떻게 먹고 살겠냐? 뭐라도 하시려고 하겠지.”

적어도 아내보다는 많이 벌어야 남자가 기가 사는 법이야.

이그나르가 덧붙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브라기 신의 아내는 청춘의 여신, 이둔. 영원한 청춘을 주는 사과를 키우는 여신이다.

그 여신보다 많이 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자, 골라 봐!”

계단을 모두 내려오고, 이그나르가 말했다.

내 궁금증은 해소되지 못하고, 머릿속 깊숙한 곳에 처박혔다. 지금 당장은 눈앞에 펼쳐진 상점을 보기에도 바빴다.

“허.”

중고 상점이라 해서 허름한 꼴을 떠올렸건만!

실제로는 다이스와 크게 차이도 없다. 아니, 오히려 다이스보다도 많은 물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나는 감탄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번쩍거리는 날붙이들의 상태가 다이스와 비교해 질이 낮은 것 같지 않다.

개중에는 내 창과 같은 창도 있었다.

[스테인리스 장창]

[Kr 1,500]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5천 크로나를 주고 산 창이 겨우 이 가격이라니?

비열한 로키……!

눈을 끔뻑이고 있을 때, 이그나르가 옆에서 한 소리 했다.

“괜히 또 후회하지 마. 솔직히 신품 살 여유 있으면 신품 사는 게 기분이 더 좋잖아.”

“으음, 그건 그렇지만…….”

“솔직히 방어구는 비싸서 중고로 쓴다지만, 무기까지 중고로 쓸래? 전사한테 무기는 애인이나 다름없다며?”

이그나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연인에게 있어,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 애인이길 바란다. 그걸 생각하면야 뭐.

한참을 구경했다.

번쩍이는 전신 철갑옷을 보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제국 수도에 갔을 때, 기사 놈들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다.

“…이런 전신 갑옷은 거의 집값이나 다름없다고 하던데…….”

슬쩍 가격표를 보니, 무려 500만 크로나.

혀를 내둘렀다. 이게 싸게 나온 중고라고? 진저리를 쳤다. 상위 리그의 투사들은 이런 것보다 더 비싼 무기와 방어구를 쓰겠지.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약해진 마음을 다잡는다. 싸워 이길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이 아니라, 싸워 이겨야만 한다- 라는 다짐을 새겼다.

나는 이 발할라의 최고 전사가 될 생각이니까.

“음?”

검은 빛이 진하게 감도는 건틀릿.

은근한 멋이 있는 검회색 가죽으로 이뤄진 반 장갑이다. 하지만 짧지는 않았다. 아래팔의 중간쯤까지 오는 길이.

손등부터 아래팔 부분에는 검은 금속으로 뒤덮혀 있다.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인다.

<한정 특가 상품!>

[긴눙가가프에서 건져온 건틀릿]

[Kr 2,000,000]

태초의 공허에서 건져온 물건이라…….

꽤 비싸다. 중고인데도 2백만 크로나라니.

검회색 가죽은 신축성이 꽤나 있어 보였고, 검은 금속은 묵직하고 단단해 보였다.

다른 걸 볼까- 생각했지만, 좋은 걸 본 탓일까? 다른 물건이 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꾸만 건틀릿이 마음을 잡아당긴다. 저 검은 자태에 눈이 간다.

결국,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을 정했다.

돈을 쌓아 놔서 뭘 할 텐가? 부족민을 하나만 구한다고 해도, 억 단위의 크로나가 필요하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 가진 400만 크로나는 모두 나의 발전을 위해 쓰여야 한다.

더 좋은 무기, 더 좋은 방어구를 가지고서 더 강한 적을 쓰러뜨리고, 더 큰 돈을 벌어야 한다.

“이거, 껴 봐도 되나?”

무슨 책인지 모를 책을 읽고 있던 점원이 내 물음에 손가락으로 대꾸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팻말이 하나 있다.

[시착 가능!]

[※오염되거나 망가졌을 경우, 배상해야 합니다. 조심스럽게 시착해 주세요.]

슬쩍 손을 보니, 더러워질 가능성은 없었다.

방금 목욕을 하고 나왔으니 당연한 일인가? 건틀릿을 들어 올렸다.

꽤나 묵직하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조심스레 건틀릿을 꼈다.

반 장갑 형태로 된 덕에 창대가 미끄러질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착 달라붙은 장갑은 내 손가락 움직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라면야…….

하지만 변이 후에도 편한지 확인해야 한다. 아니라면 이 건틀릿을 끼는 의미가 없어지니까.

잠깐 힘을 쓰기로 했다.

“흐으음…….”

정신을 집중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늑대. 아니, 내게 달려들던 가름이다. 그 샛노란 눈동자에 서린 야성이 등골을 서늘하게 하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찌릿- 약지가 따끔했다.

왼손이 살짝 커지고 두꺼워진다. 털이 숭숭 돋고, 손톱이 길고 날카롭게 변했다.

-끄그극.

그 상태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살짝 쇳소리가 나긴 하지만, 불편한 점은 없었다.

“허.”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손이 변한 것도 모를 정도다.

나는 변이를 풀고, 결정했다.

“음? 뭐야? 그걸로 하려고?”

“비싸긴 하지만, 이것처럼 좋아 보이는 게 없군.”

“비싸다고? 헉! 진짜 비싸네……. 중고가가 2백만 크로나가 넘다니… 뭘로 만들어진 거지?”

이그나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나도 이런 가죽은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계산을 하지.”

카운터로 다가서자 점원이 그제야 책에서 눈을 떼고 날 보았다. 살짝 커지는 눈동자.

“어? 오디슨 아니에요?”

“음? 날 어떻게 알지?”

“그야, 경기를 봤으니까요. 이야, 대단하던데요?”

점원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 칭찬에 웃음을 지었다.

싸움이 멋졌다는 칭찬은 전사에게 있어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아, 그 물건 사시려구요? 우리 사장님께서 직접 가져오신 물건이라, 굉장히 좋은 거예요.”

“가격만 봐도 좋아 보이더군.”

“좀 비싸긴 하죠. 누가 사 갈까 했는데… 오디슨이라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숨겨진 능력이 한둘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건틀릿이다.

중고 매장에서 파는 물건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지만.

“일단 벗어서 주세요. 계산하게.”

“알겠다.”

건틀릿을 벗으려는 순간, 잠깐- 하는 외침이 들렸다.

뭐지?

고개를 틀자,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안경을 낀 남자가 보였다. 검은 장발을 한 그가 턱짓을 하자, 옆에서 서 있던 거인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진짜 거인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안경을 낀 거인은 5미터에 가까운 키로 날 내려다보았다.

흠칫 몸을 떨었다. 나도 모르게 전투를 준비했다.

하지만 거인은 그저 말을 꺼낼 뿐.

“두목께서 너 보자 한다.”

“일단은 계산부터 하고…….”

점원이 거인에게 말했지만, 거인은 고개를 저었다.

상황을 보던 검은 머리 사내가 쯧- 혀를 차고 말한다.

“계산은 나랑 먼저 해야 돼. 안 그래? 채무자 양반?”

검은 안경을 벗는 사내.

그 눈이 늑대를 닮았다. 노란 야성이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싸늘하다.

“…늑대?”

“오. 단번에 내 정체를 맞췄다 이거지? 눈썰미가 꽤 좋은데?”

히죽- 웃음 짓는 입술 사이로 뾰족한 이빨이 보였다.

섬찟한 감각에 아군인 이그나르를 확인했다.

만일 무슨 일이 생긴다면, 함께 대항해야 하리라.

“…으음.”

이그나르는 잔뜩 움츠린 채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는 중이었다. 겁먹은 게 분명했다.

저 덩치가 평범한 늑대에게 겁을 먹지는 않을 테고…….

설마?

“…펜리르(Fenrir)?”

머리를 굴려서 도달한 정답을 말하자, 사내가 씨익 웃음 짓는다.

압도적인 존재감이 뿜어져 나왔다. 심장이 쾅쾅 난동을 부리며 도망가라 소리친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었다.

도망치지 않겠다.

난 펜리르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가 오- 하고 감탄하더니 나지막이 말한다.

“그래. 내가 ‘가장 유명한 늑대’이며, ‘반 강의 괴물’이자 ‘늪지대의 주민’이며, 늪지머니의 대표인 펜리르다.”

“…세계를 멸망케 하는 늑대…….”

꿀꺽 침을 삼켰다. 점점 거세지는 위압감에 무릎이 떨린다. 풀리려는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라그나로크와 관계없는 자가 되었다 들었소. 그런데 어찌하여 오딘의 전사인 나를 핍박하는 게요?”

“흐흐, 말투가 참 특이한 친구네. 확실히 괜찮아. 오기도 있고, 독기도 있고, 간이 참 커.”

새빨간 혀로 입술을 핥은 펜리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머리는 별로 안 좋은가 봐. 아까 말했잖아, 채무자 양반.”

채무자? 설마?

미간을 찌푸릴 때, 펜리르가 말한다.

“빚 받으러 왔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빌어먹을 마르스의 후원을 받을걸.

약간이지만 후회했다.

* * *

며칠 전, 늪지머니.

채무는 인생의 늪이다. 그런 생각에 만들어진 사업체다.

하지만 교훈적인 의미와는 여러모로 차이가 났다.

왜냐면 그곳은 대부업체니까.

“흐음. 이놈이 내 매형이 될 녀석이라고?”

사장인 펜리르가 슬쩍 서류를 살폈다.

멀끔하게 잘생긴 모습이긴 하지만, 역시나 누나에게는 한참 부족하다.

특히 발할라에 진 빚과 에이르 병원에 진 빚이 거슬린다. 지금이야 이자 면제 기간이지만, 그것도 매우 짧다.

겨우 한 달.

이자 면제 기간이 끝이 나면, 빚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불어나리라.

“…누이의 남편이 빚쟁이라니.”

펜리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야! 가서 오디슨 채권 다 사 와!”

명령을 내리고, 그에 관한 자료를 더 찾아보았다.

투사로 일하고 있다는 정보에 신계 연맹 자료실에서 투기장 경기까지 찾아보았다.

약하다.

약해빠졌다.

엄청나게 약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건 좋은데……. 음.”

꽤 마음에 든다.

아까 전에 내린 명령이 완수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채권 자료를 살폈다.

“쯧.”

펜리르는 혀를 찼다.

운명값이 50억. 하지만 운명값은 10억으로 할인되었다. 50억이라는 빚은 죽을 운명을 뒤틀었다 해도, 빚더미에 눌려 죽을 정도의 금액이니까.

거기에 발키리 출장비와 치료비가 1억 부과되었다.

“독이라. 쯧, 그것도 지독한 독이었나 본데?”

그냥 죽이고 새 육신을 주면 더 싸게 먹혔으리라.

하지만 에이르 병원에서 환자를 일부러 죽이는 건 여러모로 골치 아프다. 몇 번이고 죽다 보면 영혼이 마모되어 버리니까.

적당한 마모는 별 이상이 없지만, 지나친 마모는 전사의 송곳니를 뭉툭하게 만든다.

그 책임 소재를 피하고자, 에이르 병원에서는 일부러 환자를 죽이는 일이 없다. 더 큰 치료비가 부과될지라도.

“게다가 사망 한 번, 중상 한 번으로 부과된 게 8천만.”

총 11억 8천만 크로나의 빚.

연이율 3%라는 낮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295만 크로나라는 이자가 붙는다.

나중에야 저 금액이 별것 아니겠지만, 지금 당장은 힘들 게 뻔하다.

“야! 오디슨 이놈, 어디 있는지 알아 와!”

“두목, 오디슨, 왜?”

“이 자식이 시키면 할 것이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응? 그리고 존댓말 하라 했잖아!”

“존댓말 어렵다. 요툰, 어려운 거 못 한다.”

펜리르는 진지하게 부하를 바꿀까 고민했다.

거인(요툰)이라고 해도 똑똑한 놈들이 수두룩한데, 왜 이런 놈들을 써야 할까?

사실 그도 이유를 안다.

똑똑한 거인들은 죄다 거인족 사회의 귀족층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인족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키스 패밀리 그룹이라 해도, 그들을 고용하는 건 힘들다.

펜리르는 사무실을 나서는 거인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새끼들, 진짜… 채무자들 압박용이 아니면 쓸 필요도 없는데…….”

한숨을 내쉬는 펜리르.

그는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U500 경기임에도 절반이나 찬 관객이 보였다. 오디슨을 보기 위해 자리한 사람들이었다.

“…아직 누이의 남편감으로는 부족해.”

부족하다면, 키워 주면 그만이리라.

“이자 대신에 광고나 찍으라 하지, 뭐.”

늪지머니는 악랄한 대부업체다.

빚을 진 사람들에게 이자보다 더 비싼 월급을 주는 직장을 소개해 주고, 이자를 받아 내는 곳.

채무자들의 재능과 적성을 따져 직장을 잡아 주는 탓에, 이직률은 0%에 수렴한다.

단기간에 원금을 받아 낸다? 순간적인 이득은 클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따지면 손해다.

금방 빚을 갚아 버릴 테니까.

그리고 펜리르가 보기에 오디슨은…….

“스타성이 있어. 저도 모르게 사람들이 홀릴 정도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었다.

다만, 펜리르는 착각했다. 오디슨은 그냥 스타가 될 재능을 가진 게 아니었다.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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