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20화 (20/208)

# 20

20화. 영웅은 배신하지 않는다 (1)

“젠장할… 나, 죽겠지? 어? 죽겠지?”

대기실에서 투기장으로 이어지는 짧은 통로.

이그나르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불안감에 덜덜 떠는 꼴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그놈을 보고 쯧- 혀를 찼다.

“죽음에 맞서는 자는 살고, 죽음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자는 죽는다. 그 말 모르나?”

“제기랄, 그런 말을 내가 어떻게 알아. 제길.”

딱딱, 손톱을 물어뜯는 이그나르.

야른시다가 슬쩍 못 미덥다는 표정을 내게 보낸다.

그 눈빛만 봐도 뭐라고 말하고 싶은지 뻔하다.

‘이 자식을 데리고 이길 수 있겠어?’

부끄럽다.

마치 내가 허접하기 이를 데 없던, 니플헤임의 야른시다 패거리가 된 것 같지 않은가.

후우- 한숨을 크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었다.

이그나르가 안절부절못하는 꼴을 보고, 녀석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뭐야, 응원이라도 해 줄 셈이야? 제기랄!”

“아니, 그런 건 성미에 맞지 않아.”

“그럼……?”

퍼억! 이그나르의 배를 세게 때렸다.

“꺽!”

갑작스러운 공격에 꺾이는 이그나르.

나는 그 멱살을 잡았다.

“정신 차려라, 이그나르.”

“끄억, 끅, 끄으…….”

“가족을 데리고 오고 싶다는 건 거짓말이었나? 비열한 장사치로 굽실거리다가 라그나로크의 때가 오면, 가족을 보지도 못하고 소멸되고 싶은 건가? 응?”

거친 말에 이그나르가 끅끅대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짝! 나는 녀석의 뺨을 때렸다.

이그나르가 고개를 휘휘 젓고 푸- 한숨을 내쉰다.

“끄흐… 망할 새끼. 정신이 번쩍 드는군.”

“똑바로 해. 이 싸움터에 다시 뛰어든 건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었다.”

“…그렇지, 내 선택이었지. 이 싸움은 내 선택이 아니지만… 뭐. 어쩌겠어.”

입술을 짓씹으며 전의를 다시는 이그나르.

나는 야른시다를 슬쩍 보았다. 질린 표정을 한 녀석이 움찔 몸을 떨었다.

“난… 필요 없다.”

“보면 안다.”

히죽 웃어 보이고는 짜악! 내 뺨을 쳤다.

전투를 앞두고 지나치게 흥분한 모양이었다.

“딱 좋군.”

볼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차가워진다.

언젠가 전사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전사는 창과 같아야 한다.’

삼촌이 해 준 말이다.

‘목표를 향해 올곧게 뻗는 창 자루처럼 나아가야 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루를 쥔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독기를 품어야 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뜨끈한 피를 뒤집어쓸 때도 쇠붙이마냥 차가워야 하지. 그걸 모두 지킨다면 너는 최고의 전사가 될 거다, 오디슨.’

당신께서는 그 말에 따라 살지 못하셨지만, 나는 그렇게 살리라.

투기장으로 나섰다.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볕, 순간 눈이 부시다. 귓가에 시끌벅적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오오! 오디슨! 오늘도 화끈하게 해 달라고!”

“야른시다! U500의 최강자가 허명이 아니라는 걸 보여 줘!”

실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관객이 꽤나 있었다.

야른시다가 허- 하고 숨을 내쉰다.

“U500리그에서 관중석이 절반이나 차다니.”

“…오늘 이기면 식당에, 진짜… 번호표 도입해야 하는 거 아냐?”

두 사람이 당황스럽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고 떨떠름해했다. 나도 조금 당황했다.

곧장 생각을 정리했다.

저들은 전장의 까마귀 같은 이들이다.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까악까악 울부짖는 까마귀.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가름의 털가죽으로 머리를 덮었다. 뜨거운 햇살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눈가에 그늘이 생기자, 눈이 훨씬 편해졌다.

단 한 방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만큼, 더위보다 시야가 훨씬 중요했다.

괴물을 쳐다보았다.

관객의 함성에 움찔움찔 떠는 괴물.

“…저게 목쿨켈피인가.”

생각보다 우스꽝스레 생긴 진흙 인형이다.

대충 뭉쳐 놓은 듯한 둔탁한 몸통에 긴 팔과 지나치게 짧은 다리. 하지만 그 크기가 10미터를 넘으니 웃음보다는 감탄이 나왔다.

진흙으로 쌓아 올린 탓일까? 몸이 꽤나 옆으로 풍성한 느낌이다. 저런 구조가 아니라면 저렇게 설 수도 없겠지.

거대한 건물이 한 채 서 있는 듯하다.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는 녀석이지만, 살짝 발을 움직일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렸다.

코끼리를 닮은 뭉툭하고 짧은 다리에 밟히는 순간, 피떡이 되리라.

“후우.”

숨을 가다듬었다.

정말로 단 한 방에 싸움이 끝날 수도 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그간 U500리그가 꽤나 조용했죠?]

[예, U500의 떠오르는 루키, 오디슨과 U500최강이라는 야른시다가 동시에 규정을 어기는 바람에 한적했죠.]

[사실대로 말하자면, 오디슨 선수가 등장하기 전에는 늘 한적했는데요. 아,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음,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면 승격이죠, 오디슨 선수?]

[예, 그렇다고 지는 걸 바란다는 건 아니구요.]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말. 그들의 말에 관객들이 저마다 뭐라 지껄여 댔다.

큰 소리가 들릴 때마다 움찔대는 목쿨켈피.

저건 써먹을 수 있겠는데?

나는 방패를 번쩍 들었다.

캉캉캉!

와아아아아아! 오디슨! 오디슨! 오디슨!

창과 방패가 부딪히는 소리에 관중들이 환호한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는 해도 한목소리가 되자, 귓가가 아플 지경이다.

그래도 역시나다.

나는 히죽 웃었다.

“꽤 좋은데 그래.”

“…어휴, 이 자식은 무식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은근히 얌체짓을 한다니까.”

이그나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함성이 커질 때마다 목쿨켈피가 움츠러든다.

내가 노린 바다.

[하하, 팬 서비스인가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확실히 많이 익숙해졌죠?]

해설자와 아나운서가 내 행동에 대해 무어라 말했다. 반칙인가 싶었지만 그런 뉘앙스는 아니었다.

그들이 목쿨켈피에 대해 설명한다.

건설현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소형 목쿨켈피.

10미터가 넘는 저 무식한 거인이 ‘소형’이다. 어이가 없어 웃음을 흘렸다.

한 번에 톤 단위를 들어 옮길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리고 몸무게는 무려 10톤.

저런 것과 정말 정면에서 싸워 이긴 투사가 있나?

삑삑삐이이익!

귀를 찌르는 호각 소리와 함께 아나운서의 외쳤다.

[아! 드디어 경기 시작됩니다!]

* * *

“야른시다!”

소리 질렀다. 그와 동시에 콰르릉! 굉음이 터져 나왔다.

목쿨켈피가 히이이잉- 울었다.

정말로 암말의 심장을 박았나? 덩치와 목소리가 따로 논다.

“이그나르!”

“젠장! 알았어!”

커다란 카이트 쉴드에 한 손으로 들기 힘들 정도로 큰 도끼. 이그나르가 그 도끼를 거꾸로 잡고, 방패를 때린다.

캉캉캉!

“이 괴물 자식아! 여기다! 여기!”

캉캉캉!

“이쪽도 있다아!”

‘천둥소리’로 기선을 잡은 야른시다지만, 공격에 나서진 않았다.

‘천둥소리’는 강력한 축복이다. 그러나 그 한계도 명확했다. 사용자의 몸을 지키기 위해 공기를 무시한다.

공기를 무시하는 만큼, 그 속도를 이용해서 강력한 공격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야른시다가 O500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O500의 투사들에게 통할 정도의 공격력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캉캉캉!

“추잡한 진흙 놈아! 덤벼라!”

나도 창으로 방패를 때렸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쇳소리. 귀를 찢는 듯 시끄러운 소리에 목쿨켈피가 허둥댔다.

전통적인 방식이다.

[어어, 목쿨켈피의 겁 많은 성격을 노립니다!]

[아! 똑똑한 방법이죠? 아마 계획적인 오디슨 선수가 제안한 작전이 아닐까 싶은데요? 목쿨켈피는 피를 흘리지 않죠! 오디슨 선수의 독기로도 이길 수 없거든요!]

[와! 정말 대단합니다, 오디슨 선수!]

아니다. 이 작전을 제안한 것은 이그나르였다.

나는 솔직히 그냥 들이박고 싸우는 쪽을 바랐지만, 이그나르는 결사반대했다.

쉬운 길을 두고 왜 어려운 길을 걷냐고.

수긍했다. 전략은 싸움의 일부다.

이렇게 잘 통하는 전략이라면야 거절할 필요가 없다.

“이그나르!”

캉캉캉! 방패를 두드리며 소리 질렀다.

이그나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패를 내던졌다. 그리고 커다란 대부(大斧)를 양손으로 잡았다.

“흐아압!”

달려가는 이그나르.

역시나 전통적 방법이다. 티알피가 쓴 방식. 놀라게 한 뒤에 그 덩치를 지탱하는 다리를 도끼로 찍어 쓰러뜨린다.

하지만 토르의 시종인 티알피는 우리와 달랐다.

그는 평범한 농부의 자식이었지만, ‘생각’을 구현화한 거인과 맞붙어 무승부를 두 번이나 낼 정도로 빠르다.

상기한 방법은 티알피기에 할 수 있던 짓이다.

우리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속도를 내지 못한다면, 속도를 낸 것과 같은 효과를 주기로.

빠르다는 것의 무서운 점이 뭔가? 대응하기 전에 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응하지 못하게 하면 될 것 아닌가?

“이 괴물 자식아!”

콰르르릉! 야른시다가 ‘천둥소리’를 사용했다. 빛살처럼 빠른 야른시다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의 발자국이 목쿨켈피의 팔을 따라 찍힌다. 그리고…….

“죽어라! 죽어!”

히이이이잉! 히잉!

어깨에 올라선 야른시다가 목쿨켈피의 얼굴을 난도질한다. 덩치에 비해 작은 얼굴이다.

게다가 사실상 충격도 없는 부위다.

그러나,

히이이잉!

목쿨켈피를 놀라게 하긴 충분했다.

부우웅! 부웅!

목쿨켈피의 커다란 손이 파리를 쫓듯 허공을 갈랐다. 야른시다는 그 손을 요령껏 피하며 녀석을 놀렸다.

“하하하! 느리구나, 이 자식!”

퍼억!

회피 중에도 발차기를 한 번씩 먹여 댔다.

그렇게 시선을 끈 뒤에는?

“흐으읍!”

부우웅! 쿵!

이그나르가 대부를 휘둘러 목쿨켈피의 다리를 찍었다. 쿵쿵쿵! 마치 나무를 베듯 투박한 동작들이다.

캉캉캉!

“이 덩치만 큰 진흙 자식아!”

나는 계속해서 방패를 두드리며, 꽥꽥 소리를 지르며, 이그나르의 존재감을 지웠다.

[목쿨켈피가 감각이 없다는 걸 확실히 이용한 전략이죠?!]

[네! 맞습니다! 목쿨켈피는 심장 외의 다른 부분에 타격을 받지 않지만, 심장이 너무 높이 있죠. 대충 8미터쯤 높이에 있으니까요.]

[아! 야른시다! 잽싸요! 잽싸! 그리고 이그나르! 얼음미끼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씻어 내려는 듯, 도끼를 휘두릅니다!]

쿵쿵쿵쿵!

이그나르의 도끼질. 다리의 3분의 1이 움푹 파였다.

저쯤이면 쓰러질 법도…….

“으음?”

짜증이 난 걸까? 목쿨켈피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행동을 보였다.

퍼억! 제 몸이 다치는 걸 무시했다. 손을 허공이 아닌 몸에 휘둘렀다.

“으악! 깜짝 놀랐네!”

다행히 야른시다가 피하긴 했다. 하지만 진흙으로 이뤄진 몸에 거대한 타격이 생기니, 몸이 출렁인다.

“어, 어어? 으윽! 제, 젠장할!”

히이이이잉!

포효하는 목쿨켈피. 녀석의 손바닥이 기어코 야른시다를 때렸다.

퍼- 억!

야른시다의 몸이 화살처럼 날아간다. 그리고 퍽! 투기장 벽에 부딪히고는 그대로 쓰러진다.

관객들이 내지르던 함성이 뚝 그쳤다.

단 한 방이었다.

방패를 치켜 들었으나, 그걸로는 등 뒤의 투기장 벽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그나르.

푸르르!

“썩을.”

목쿨켈피가 그를 눈치챘다.

다리를 번쩍 든다. 기우뚱하나 싶었지만, 그 발이 정확히 이그나르의 위로 떨어진다.

이그나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딱딱하게 굳었다. 그저 입을 쩍 벌릴 따름.

“저 멍청한 자식!”

바닥을 박찼다.

묵직하기 이를 데 없는 목쿨켈피의 발이 땅에 닿기 전, 이그나르를 구해야 한다.

달렸다.

변신 능력을 발할라에서도 쓸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으아아아악!”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내질렀다.

이라호드의 말에 따르면, 니플헤임은 영혼마저 얼어붙을 정도로 춥기에 영혼체의 발현이 쉽다고. 그렇기에 발할라에서는 그 기술을 못 쓰는 게 당연하다 했다.

하지만 난 지금 늑대의 힘이 필요했다.

몸이 지나치게 가벼워 주체하기 힘든 그 속도가 필요했다.

늑대! 늑대의 힘이 있다면!

입술을 짓씹으며 생각했다.

문득, 뇌리를 채우는 것은 역시나 늑대였다. 설원을 가로지르듯 눈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는 늑대의 모습.

“윽?”

그와 함께 왼손 약지에 따끔- 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아아! 안 돼요!]

[피해야죠! 저대로 있으면 안 됩니다!]

목소리들에 느껴지는 안타까움. 여성 관객들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

꺄아아아아악!

점점 진해지는 발 그림자.

“어, 어어……! 으, 으아악!”

굳었던 이그나르가 뒤늦게 도끼를 내던지고 몸을 튼다. 바닥을 박차고, 모래 때문에 살짝 미끄러진다.

별것 아닌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1초도 지나치게 긴 시간이다.

히이이이잉!

쿠- 웅!

목쿨켈피가 발로 바닥을 박살 내듯 내려찍었다.

부르르르르, 진동이 투기장 전체를 덜덜 떨게 만들었다. 국지적인 지진을 일으킬 정도로 힘이 좋다니.

정말 끔찍한 놈이다.

그래도, 늦지 않았다.

“괜찮나?”

“…오디슨? 너, 어떻게……?”

지금 상황을 설명할 시간은 없다.

“내가 야른시다의 역할을 맡는다.”

“아니,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 항복을 해야…….”

“그만.”

으르렁- 이를 드러내며 그 말을 막았다.

항복? 웃긴 소리.

나는 전사다. 그리고 전사는 물러서지 않는다.

적을 앞두고서는 더욱더.

“내가 놈을 막는다.”

창을 꽉 쥐었다.

왼손에만 가름의 털이 숭숭 났다. 왜? 아니,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입을 꾹 다물고, 몸을 움츠린다. 언제든 튀어나갈 수 있도록.

흙먼지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아아, 이대로 경기 끝나나요?]

[오디슨 선수 혼자서는… 엇? 어어? 오디슨 선수가 왜 저기 있죠?]

[어… 이그나르 선수, 안 깔렸어요!]

목소리들이 우렁차게 외쳤다.

꺄아아아악! 오디슨!

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

함성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나는 히죽 웃고서, 튕기듯 바닥을 박차고 달렸다.

설원을 가로지르는 늑대처럼, 흙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움직였다.

히이이이이잉!

슈우우우웅! 주먹이 내게 날아들었다. 몸을 틀었다. 다리는 멈추지 않는다.

쿠웅!

바닥이 폭발하듯 튀었다.

흔들거리는 지면? 이제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아우우우우우!”

목 놓아 울며 다리를 재촉했다.

부- 웅!

재차 주먹을 내지르는 목쿨켈피.

덜컥! 몸을 멈췄다. 녀석의 주먹이 내 앞에 떨어진다.

쿠웅!

묵직한 주먹이 떨어졌다. 목쿨켈피는 연이어 공격이 실패했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났다.

푸르르르릉!

콧김을 내뿜고 주먹을 회수한다.

둔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제 주먹이 무거워졌다는 것도 모르다니.

“멍청한 놈!”

꽥 소리를 지르자, 목쿨켈피가 깜짝 놀라 손을 털었다.

손등에 올라앉은 나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손등에서 팔꿈치로, 팔꿈치에서 어깨로 이동했다. 목쿨켈피가 벌집을 건드린 양 마구 몸서리친다.

오른손으로 어깨를 붙잡았다.

“크릉!”

콧김을 내뿜고, 왼손 하나를 이용해 창을 휘둘렀다.

번쩍! 은빛 통짜 쇠로 된 창은 단검보다 훨씬 더 무서울 터!

히이이잉!

퍽퍽퍽! 목쿨켈피가 목 놓아 울며 마구 제 머리를 때렸다.

나는 그 손짓을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피했다.

“칫!”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공격이 날아온다.

나는 훌쩍 뛰어내렸다.

등 뒤로 뛰어내리는 날 보고 깜짝 놀라 몸을 돌리지만, 그곳에 나는 없다.

“흐흐! 아주 활기찬 놈이구나!”

등짝에 창을 꽂고 매달린 나는 다시 어깨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구 창을 휘둘러 댔다. 녀석의 머리가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진다.

[와… 저게 대체…….]

[증명이 됐네요. 증명이 됐어요.]

[네? 무슨 증명이…….]

[이 경기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저 목쿨켈피를 상대로 저렇게 싸우겠습니까? 네? 오디슨 선수는 U500에 남을 선수가 아니에요!]

와아아아아!

함성이 날 취하게 한다.

내 마지막 전장이 문득 떠오른다.

앳된 소년병의 가슴팍에 박아 넣었던 창.

그리고 거친 숨을 토하며 앞을 막는 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을 때가 떠올랐다.

분노와 광기가 날 지배했던 때.

“오딘이시여! 지켜보소서!”

번쩍! 창을 들어 올리고, 그대로 내리꽂는다.

푸우우욱!

히이이잉! 히에에에엥!

아기가 우는 듯한 소리.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울려 퍼지고, 그 몸이 휘청인다.

우르르르!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녀석은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팔을 휘저었다.

추락이 두려운 새처럼.

목쿨켈피의 몸이 쓰러진다.

나는 잽싸게 그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쿠우우웅!

굉음이 들렸고, 흐흐-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때? 쓸 만하지? 응?”

대부를 어깨에 걸친 이그나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이놈은 내가 시선을 끄는 동안, 다리 하나를 확실히 박살 냈다.

나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잘했다.”

“흥, 뭐. 지금은 그냥 넘어가지. 그럼… 이제 목쿨켈피를 도축해 볼까?”

고개를 끄덕였다.

넘어지면서 바닥을 짚은 목쿨켈피의 팔은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가슴팍을 마구 헤집으면서 암말의 심장을 찾기만 하면 끝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을 발견했다.

음? 이건?

눈살을 찌푸리자, 이그나르가 묻는다.

“어? 심장 찾았어?”

“그래.”

나는 그 심장을 쥐어 터트렸다.

심장에는 창에 찔린 자국이 선명했다.

“흐흐흐, 난 얼음미끼가 아니라 얼음도끼라고, 얼음도끼. 흐흐…….”

저렇게 좋아하고 있는데, 사실 다리를 가만뒀어도 이겼으리라는 말을 어찌할까?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약지에 낀 반지를 살짝 쓰다듬었다.

이 반지, 활력을 올려 주는 것 외에도 뭔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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