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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발할라-19화 (19/208)

# 19

19화. 영웅은 쉬지 않는다 (3)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냣!”

“분명 야른시다보다 강한 괴물이 있다지 않았나!”

내 말에 메르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고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거야 그렇지만… 지금 봉사 활동이 끝나고 바로 온 건가악?”

“음, 그렇지. 서둘러 경기를 해야 서둘러 돈을 벌 것 아닌가?”

“…그냥 싸우는 게 좋다더니?”

메르키의 말에 히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싸움? 물론 좋다.

하지만 전사는 싸움의 흥분에 젖더라도 수호의 의무를 잊어선 안 된다.

이번에 니플헤임에서 부족민들을 보고 온 게 내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서둘러 그들을 평화롭고 풍족한 이곳으로 데리고 오고 싶다.

그걸 위해서는 크로나가 잔뜩 필요하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곤란하다! 깍깍!”

“그런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메르키가 눈을 끔뻑였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승 리수당. 내 승리 수당을 내놔라. 이라호드가 날 곧장 잡아가는 판국에 못 받지 않았나.”

“아, 그래. 승리 수당……. 그 승리 수당은 네 파트너에게 전달했다. 봉사 활동을 마치고 곧장 이쪽으로 올 거라곤 생각도 않았으니.”

“이그나르에게?”

음, 그 장사치 놈에게 돈을 맡기다니.

메르키 이 녀석도 일 처리가 영 부실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황급히 몸을 돌렸다.

가게를 접고 도망쳤다면, 내 승리 수당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거 아닌가!

“까악까악! 파트너에게 가나?”

“그래, 장사치라 아무래도 불안하군.”

“그런가악?”

고개를 끄덕이고 투기장 대기실을 나서는데, 메르키가 내 등에 대고 소리쳤다.

“아! 싸움을 하고 싶다면, 셋이 필요하다! 너, 그리고 네 파트너…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는? 발걸음을 멈춘 순간, 메르키가 말을 이었다.

“알아서 구해라! 까악까악! 그놈이랑 싸우고 싶어 하는 U500 투사는 없으니까악!”

망할 놈의 까마귀.

나는 쯧- 혀를 차고 이그나르의 가게로 향했다.

* * *

[숯불 세흐림니르 구이]

낯익은 간판이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이그나르와 훈련을 하면서 몇 번이나 들른 가게니까.

그런데 그때와는 꽤나 다르다. 언제나 텅텅 비어 있거나 드문드문 손님이 있었는데…….

“어서 옵쇼! 넵! 양념 셋! 벌꿀 하나!”

이그나르가 신나게 주문을 받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수준은 아니지만, 확실히 장사가 잘되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어째, 저렇게 사람이 많으니 들어가기 부담스러운데…….

뭐, 그냥 들어가자.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라드게리타와 닮은 아가씨가 황급히 달려와 주변을 살핀다.

“몇 분이세요?”

“혼잔데.”

“아… 지금 혼자는 좀…….”

약간 떨떠름하게 말하는 아가씨의 어깨를 툭 치고, 이그나르에게 다가갔다.

“이그나르.”

“엇? 이게 누구야! 오디슨이잖아!”

과장되게 말하는 이그나르. 주변의 시선이 확 쏠린다.

눈살을 구겼다.

뭐야? 왜 날 보지? 뭐가 됐든, 딱히 신경 쓸 필요는 없으리라.

“내 승리 수당은?”

“아, 그거? 기다려 봐. 꽤 많이 나왔거든.”

흐흐- 웃으며 카운터로 향하는 이그나르.

그 와중에도 시선은 날 따라붙는다. 살갗이 간질간질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U500의 최강자와 U500의 루키의 싸움이라 그런가? 추가 수당이 크더라고.”

“그래? 보통 수당이 10만 크로나 정도 아닌가?”

“아아, 그건 기본 수당이야, 기본. 시청자가 많고 그러면 추가로 더 지급되지.”

그러고 보니, 가름과 싸웠을 때도 20만 크로나가 넘게 들어왔었지.

이그나르가 내 손에 돈 주머니를 올린다.

“메르키 공한테서 받은 금액은 총 74만 크로나야. 개중에 네가 후원금으로 받는 게 4만 크로나고, 나머지 중에서 50만 크로나가 네 몫이야.”

“…음? 왜 이렇게 크지?”

흠칫 놀랐다. 4만 크로나야 비다르의 후원으로 받는 돈이라 쳐도, 나머지 70만 중 20만 크로나를 뺀 금액이라니?

둘이 함께 싸웠으니, 당연히 반으로 나눠야 하는 거 아닌가?

인상을 살풋 찡그리고 고개를 갸웃하자, 이그나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난 활약을 제대로 못 했으니까. 그 덕에 얼음도끼 대신 얼음미끼라는 별명이 붙어 버렸다니까.”

얼음미끼라. 확실히 그때 이그나르는 미끼 역할밖에 못 했다.

오히려 단방에 무력화되면서 치료비가 많이 나온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움이 안 된 건 아니었다.

“…그래도 너무 적게 가져갔는데.”

“에이, 이 정도로는 나눠야지. 오디슨 네가 거의 혼자 처리했잖아.”

적응이 안 된다. 이 녀석이 이렇게 착한 놈이었던가?

아니, 착하고 나발이고, 이건 아니다.

나는 언제나 티르의 공정함을 동경한다. 그렇기에 얼굴에 티와즈 루 룬을 새긴 것이고.

“넌 충분히 역할을 했다. 만일 기습의 대상이 나였더라면, 나도 바로 쓰러졌을지도 몰라. 게다가 그 공격을 한 번 봤기 때문에 야른시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만약은 없지. 신세를 진 건 확실하니까.”

“하지만…….”

“누구에게 물어도, 내가 많이 가져갔다고 할걸?”

이그나르가 히죽 웃으며 식당에 크게 외쳤다.

안 그렇습니까? 이 친구가 다 했죠!

그 외침에 사람들이 와- 소리친다.

“그래! 주인장, 너무했구만! 10만 크로나만 받았어도 됐을 텐데!”

“꺅! 오디슨 오빠! 너무 멋져요! 꺅!”

이상한 소리가 섞여 있긴 하지만, 여전히 찝찝하다.

이그나르가 친한 척 내게 어깨동무를 하고 귓가에 속삭인다.

“야, 솔직히 그거 한 번 나갔다고, 우리 가게가 완전 대박 났거든? 지금 손님이 줄어든 거야.”

“응……?”

“그러니까 네가 더 가져가는 것도 괜찮다고. 나는 이미 장사한 걸로 네 승리 수당보다 더 벌었으니까.”

…역시나, 장사치다.

지금 이렇게 친한 척하는 것도, 죄다 인기를 끌기 위한 수법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고,

퍽!

이그나르의 옆구리에 주먹을 내질렀다.

“컥! 이, 이 자식이……?”

“따라 나와라, 할 말이 있으니.”

내가 그 녀석을 질질 끌고 식당 밖으로 나가자, 휘익- 휘파람 소리와 자지러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오오! 역시 남자다워!”

“꺄아악! 어뜩해, 어뜩해! 완전 상남자야! 꺅!”

이 분위기는 영 이해가 안 된다.

드르륵, 탁! 식당 문을 닫고, 이그나르를 벽에 밀쳤다.

“어우, 배야. 갑자기 왜 사람을 때려?”

“쯧… 그사이에 배에 살이 붙었군.”

“뭐, 나름 운동을 하긴 했는데… 장사에 신경을 좀 쓰다 보니…….”

고개를 휘휘 저었다.

투사로서 이름을 날린 뒤 가족을 불러오겠다는 독기는 어디로 간 건지.

“조만간 싸울 거다.”

“…싸운다고? 누구랑? 너한테 도전하겠다는 놈이 있어? 야른시다랑 싸우고 난 뒤에 U500 투사들이 나도 피하던데…….”

“음, 승급을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더군.”

“…어, 설마.”

이그나르의 얼굴에 불안이 서렸다.

제발 아니라고 말해 줘, 라는 표정으로 그가 묻는다.

“목쿨칼피(Mokkurkalfi)와 싸울 생각이냐?”

목쿨칼피? 설마. 농담이겠지.

“목쿨칼피 같은 괴물이 U500에 있을 리가 없잖냐.”

“아니, 있어.”

“…정말?”

“그래, 정말. U500투사 셋이 붙어서 싸우는 경기긴 한데… 보통 야른시다와 목쿨칼피를 이기면 Over 500으로 승격시켜 줘.”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지만.

이그나르의 말에 눈살을 구겼다. 3대 1이라고 한들, 목쿨칼피에게는 택도 없다.

머리가 구름을 뚫고 나왔다고 할 정도로 거대한 진흙 거인. 그 비상식적인 크기에 비해 심장은 겨우 암말의 심장. 그 덕에 신화 속에서는 토르의 고함에 겁을 먹고 오줌을 지린다. 그 틈을 이용해 토르와 토르의 시종인 티알피가 그놈을 쓰러뜨린다.

그런데…….

“토르의 고함에 겁을 먹지 않는 이가 누가 있을까.”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머리가 아프다. 말도 안 되는 과제를 내주다니… 빌어먹을 메르키 놈.

인상을 구기고 있자니, 이그나르가 조심스레 묻는다.

“어차피 야른시다도 이겼으니까, 몇 번 더 싸우면 O500으로 승격될 수 있어. 괜히 목쿨칼피와 싸울 필요는 없다고.”

이그나르가 피해 갈 것을 종용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우린 둘이잖아! 누가 목쿨칼피와 싸우고 싶어 하겠어?”

“으음, 키가 산보다 큰 거인이라…….”

“아니, 음… 그 정도로 크진 않아.”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이그나르를 바라보자, 녀석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구겼다.

아무래도 저도 모르게 진실을 이야기한 모양이다.

“얼른 말해 봐.”

녀석을 닦달하자, 한숨을 내쉬며 설명한다.

목쿨칼피는 신화속의 그 거대 진흙 거인이 아니란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거인(요툰)들이 만들어 로키스 패밀리를 통해 판매하는 건설 거인이라고.

그래서 실제 크기는 구름 위로 머리가 삐져나오긴커녕, 10미터 정도 된다고 한다.

“괜히 걱정했군.”

“괜히라니. 건물 해체하는 걸 못 봐서 그래. 힘이 얼마나 좋은지, 내 가게 정도는 그냥 번쩍 들어서 치워 버릴 정도라고.”

“…흠, 남은 하나를 어디에서 구하느냐가 문젠데.”

“아니, 지금 남은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니까! 나도 하기 싫단 말이야! 야! 너 내 말 안 듣지? 어?”

이그나르가 뭐라 지껄였지만, 들을 필요는 없었다.

10미터짜리 거인이라. 꽤나 짜릿한 싸움이 될 것 같다.

“어후! 내가 한다고 해도, 하나를 더 채우질 못한다니까 그러네!”

가슴팍을 탕탕 치며 답답해하는 이그나르.

나는 그 말에 그를 바라보았다.

“하나 더 채우면 되는 건가?”

“젠장할… 그래. 네 멋대로 해라! 한 명 더 구해 오면 나도 즐겁게 목쿨칼피와 싸워 주지!”

그렇다면야… 뭐.

한 사람 정도는 어떻게 구할 수 있다.

* * *

며칠이 지났다. 메르키가 공지한 목쿨칼피와의 싸움을 직전에 앞둔 시각.

셋이 대기실에 모두 모였다.

“…젠장할.”

“설마, 이 녀석을 같은 팀에 끼우려고?”

이그나르가 질색했다. 그에 궁시렁거리던 녀석도 인상을 구겼다.

“빌어먹을. 내가 어쩌다 이 꼴이 된 거지……?”

“뭐, 평범한 농부의 아들도 한 일이다. 그만큼 빠른 너라면 가능하겠지.”

“…아, 젠장할. ‘천둥소리’ 같은 걸 사는 게 아니었는데…….”

세상이 무너질 듯 한숨을 내쉬는 야른시다.

목쿨칼피에 맞서는 3명의 투사 중, 마지막 자리는 바로 그 야른시다였다.

비실비실하긴 하지만, 그 속도는 충분히 도움이 되리라.

“궁시렁대는 건 그만하지.”

딱 잘라 말하자, 야른시다와 이그나르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창을 만지작거리고 있기 때문일까? 두 녀석 다 불만이 가득한 모습이지만, 딱히 입을 놀리진 않았다.

후우- 야른시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걸로 끝인 거겠지?”

“물론. 나는 전사다.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아.”

너처럼.

작게 덧붙이자, 야른시다가 얼굴을 붉혔다.

녀석은 봉사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발할라 구석에 있는 허름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덕에 한참이나 찾아야 했다. 의리를 지키는 놈은 딱히 없었다. 몇 명이 나에게 두들겨 맞긴 했지만.

‘니플헤임에서 뭐라고 했더라?’

술을 마시던 야른시다가 기겁했다. 제대로 꼬장 부리면 자신의 삶이 매우 퍽퍽해진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나는 그 건방진 소리를 잊어 주는 대가로, 이 경기의 참여를 종용했다.

퍼덕퍼덕퍼덕!

“곧 경기가 시작된다! 준비를 단단히 해라! 까악까악!”

메르키가 목 놓아 울었다.

그 울음소리는 마치 전장에서 듣던 것과 같아 오금을 저리게 했다.

싸움의 흥분이 내 몸을 휘감았다.

“작전, 잊지 않았겠지?”

“그래. 안 잊었다.”

야른시다가 툴툴대며 말하고, 이그나르가 ‘아이고, 오딘이시여……’ 하고 기도를 올렸다.

덩치가 크고 겁이 많은 놈을 잡는 데는 필수적인 작전이다.

나는 투기장에서 제공하는 물품 중, 방패를 집어 들었다.

“즐거운 연주 시간이다.”

끼이익, 철이 긁히는 소음과 함께 투기장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바깥의 밝은 햇살이 대기실로 스며든다.

승급하기 참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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