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18화. 영웅은 쉬지 않는다 (2)
“커흠, 이 기술은 아무에게나 가르쳐 주는 게 아닌데…….”
“토르손, 또 맞고 싶지 않으면 당장 말해라.”
“또?”
고개를 갸웃하는 토르손.
그건 실수였다.
“어쨌든, 당장 가르쳐 줘.”
“크흐, 그럼 일단 이 기술의 연원부터 알려 줘야겠군.”
연원이라. 별로 듣고 싶지 않다.
하지만 토르손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기술은 바로 전설 속의 바이킹들이 쓰던 그거야.”
전설 속의 바이킹들이?
솔깃했다. 전설의 바이킹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어릴 적부터 들었다.
겨울 밤, 애들이 지루해할 때마다 불 앞에 모여 앉아, 부족의 어른들이 바이킹의 전설에 대해 말했다.
팔이 쭉쭉 늘어나는 바이킹도 있었고, 불을 내뿜는 바이킹도 있었다. 바다를 얼려 버린다는 바이킹도 있고, 불을 삼키는 용암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전설을 듣고 자란 이들은 모두 바이킹이 되고 싶어 했다.
나 역시 그랬다.
어느 정도 크고 난 뒤에는 우리 부족이 내륙 깊숙한 곳에 있다는 걸 알아채고 포기했지만.
그때 놓아 버린 줄 알았던 꿈이 여기에서 되살아났다.
“…그것들은 허구 아니었나? 주술사들이 허구라 했던 것 같은데…….”
“허구가 아니야. 내가 이렇게 변신했잖아?”
토르손을 보면 확실히.
그냥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왜 너는 곰이 된 거지? 넌 언제나 올루프 디몬케이를 가장 좋아하지 않았나?”
“음, 바이킹 왕이 될 거라던 올루프가 좋긴 한데… 이게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오는 기술이라서 말이야.”
토르손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고 말하기를, 능력이 익숙해지면 다른 능력들도 쓸 수 있게 된다고.
“나에게 이 힘을 가르쳐 준 사람은 팔도 늘어나고, 새로 변신도 하고 그랬어.”
“허, 대단하군.”
팔이 늘어나는 건 창잡이들에게 굉장히 유용하다.
창이라는 것이 원래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를 이용하는 무기다. 그런 무기를 든 사람의 팔이 갑자기 늘어나면?
예상치 못한 공격이 된다. 공격을 예상치 못했다는 건 막거나 피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나는 팔이 늘어나는 쪽이었으면 좋겠는데…….”
“흐흐, 두고 봐야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일단은 명상을 해야 해.”
명상?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명상이라는 건 주술사들이 낮잠을 고상하게 부르는 말이 아닌가.
“낮잠이 아니라, 정신을 집중하는 거야. 나는 처음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상상하는 데까지 무려 일주일이나 걸렸다구.”
“으음, 진짜로 그냥 상상을 하면 된다고?”
“물론이야. 내가 이런 꼴이 된 것도 주변에서 자꾸 날 곰탱이라고 불러서 그래. 상상하기 가장 쉬운 모습인 거지.”
토르손의 말에 나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늑대, 난 늑대가 된다.”
곰보다는 늑대가 낫다.
미련스러운 곰탱이는 토르손이면 충분하다. 나까지 곰이 되라고?
웃긴 소리.
나는 물푸레나무 부족의 ‘붉은 늑대’, 오디슨이다.
날렵하고 강인하며, 무리를 지키는 늑대.
“늑대가 된다. 늑대가 된다…….”
내가 붉은 늑대라는 별명을 얻었을 때를 떠올렸다. 부족에 굉장한 기근이 들었을 때의 일이었다.
품을 판다고 해도 제대로 된 대가를 받기 어려운 시절. 품삯을 주겠다는 이조차 없었다.
나는 숲으로 들어갔다. 어른들이 숲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먹을 것이 필요했다.
길게 뻗은 침엽수들. 대낮에도 짙은 그림자가 자리한 숲은 동네 꼬마들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늑대 한 마리를 마주쳤다.
흰 털을 가진 늑대는 바짝 말라 있었다. 놈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입맛을 다시고 누런 눈을 번뜩였다.
처절한 싸움이었다.
늑대의 발톱이 어깨를 후벼 팠고, 늑대의 이빨이 내 종아리를 뭉텅 뜯어냈다.
나는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늑대의 눈을 뽑아내고, 늑대의 목덜미에 매달려 목을 졸랐다. 늑대의 입을 돌멩이로 수없이 내려찍었다.
시뻘겋게 물든 늑대의 시체를 가지고 마을로 돌아왔을 때, 나는…….
“늑대가 되었다.”
기묘한 감각이 내 속에서 뿜어져 나온다.
새가 알을 깨고 세상을 바라보듯, 무언가가 나의 몸을 넘어서 튀어나오는 느낌.
부르르 몸을 떨었다.
* * *
오디슨이 눈을 감고 주문을 읊듯 중얼거릴 때, 이라호드는 혀를 찼다.
“정말로 오디슨한테 그걸 가르쳐 주려고요?”
“어… 발키리님? 대장이라면 충분히 해낼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주변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집중하는 데에 시간이 한참 걸렸는데……. 봐요. 대장은 벌써 그렇잖아요.”
토르손의 말에 이라호드가 오디슨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중얼거리는 중이다.
“늑대, 난 늑대가 된다.”
이라호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거, 니플헤임에서만 먹히는 거예요.”
“네? 왜죠?”
“그야, 니플헤임의 망자들은 육신이 없는 상태니까요. 영혼체는 사실, 의지에 큰 영향을 받거든요.”
이라호드의 말에 토르손이 눈을 끔뻑였다.
영혼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은 토르손에게 어려웠다. 대충의 맥락만을 파악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토르손이 반박한다.
“어… 하지만 전설 속의 바이킹들은 하계에서도 이런 기술을 썼는데요?”
“아까 그 올루픈가 하는 사람 이름… 올루프 디몬케이를 말하는 건가요?”
“아, 발키리님도 아시는구나! 올루프!”
토르손이 반색했지만, 이라호드는 더욱더 짙은 한숨을 내쉴 뿐.
“그는 팔이 늘어나는 재주 따위 없어요. 그저 창을 짧게 잡고 싸우다,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길게 잡고 찌르는 게 와전된 거예요.”
“…어, 그럴 리가…….”
“전 창잡이들의 담당 발키리예요. 그 올루프도 제가 담당했었죠.”
이라호드는 올루프를 떠올렸다.
꼭 낚시꾼 같은 모습이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낚싯줄을 묶어 둔 창을 들고 능글맞게 웃던 남자.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지금 올루프가 뭐하는지 알아요?”
“어… 대장처럼 투기장에서 싸우나요? 니플헤임은 투기장 리그를 보기 힘들어서요.”
“생전의 항해 경험을 제대로 살렸죠.”
“항해 경험이라면……?”
이라호드가 어깨를 으쓱이고 말한다.
“발할라 유원지에서 유람선 몰아요. 유람선을 사자마자 싸우길 그만뒀죠.”
“어… 하지만… 분명 제 스승님이 올루프의 사형의 제자의 제자의 사제와 같은 곳에서 수련했다고 했는데…….”
곰의 모습을 한 채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에 이라호드가 움찔 떨었다. 꽤나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그 본모습이 털이 수북한 덩치라는 걸 잊진 않았다.
그녀는 ‘흠흠!’ 헛기침을 하고서 차갑게 반박했다.
“남이잖아요, 그거.”
“어… 그건 그런데…….”
“애초에 영혼체 변이는 니플헤임의 좀 오래된 망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이에요.”
토르손이 입을 쩍 벌렸다.
그는 이 기술을 배우기 위해 스승을 정성껏 모셔야 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스승이었지만, 그를 위해 급식을 받아다 주거나, 그의 일을 대신해 주는 고생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냥 흔한 기술이라니!
충격을 받은 토르손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라호드는 그 모습에 쯧쯧 혀를 찼다.
“그나저나, 오디슨의 집중력은 정말 대단한 수준… 어?”
이라호드가 흠칫 놀랐다.
“늑대가 되었다.”
중얼거리던 말의 끝에 선명하게 들리는 말.
그와 함께 오디슨의 몸에서 갈색 털이 비죽비죽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라호드는 입을 쩍 벌렸다.
‘어떻게?’
오디슨의 얼굴에 털이 숭숭 났고, 입이 길게 튀어나오며 주둥이가 되어 간다.
그리고 가슴팍에 시뻘건 털이 숭숭 솟았다.
“…크르릉? 된 건가……?”
오디슨이 나지막이 말할 때, 이라호드는 차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탓이다.
영혼체도 아닌, 육신을 지닌 이가 변이술을 저렇게 쉽게 쓰다니?
“…발키리님? 대장이 성공했는데요? 뭐, 늑대가 아니라 늑대처럼 생긴 대장이 됐지만…….”
토르손의 말처럼, 오디슨은 늑대가 아니라 늑대인간과 같은 꼴이 되었다.
“킁, 가죽은 두꺼워졌고, 손발톱은 날카로워졌으니까 됐나……? 차라리 이게 늑대가 되는 것보다 나을지도.”
“뭐, 늑대는 무기를 못 쓰잖아. 대장은 창이 주 무긴데, 갑자기 손발로 싸울 것도 아니고.”
“그렇지?”
별일 아니라는 듯 오가는 대화.
이라호드는 그때까지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이게, 오디슨이 타고난 기괴한 능력이 뒤늦게 발현된 것인가, 아니면 오디슨의 육체에 문제가 생기면서 유체이탈과 비슷한 꼴이 된 것인가.
둘 중 하나인 듯하지만…….
“…둘 다 보통 일이 아닌데…….”
이라호드는 입술을 짓씹었다.
토르손이 오디슨의 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대장. 그건 늑대가 아니라, 가름인 거 같은데?”
“어… 그래? 뭐, 늑대보다 가름이 세니까 됐어.”
토르손과 오디슨의 대화.
그 말을 들은 이라호드가 꽥하고 외쳤다.
“비다르의 축복!”
그녀는 오디슨이 변이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 * *
요 며칠, 내가 사냥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탓일까?
봉사 활동 기간을 마치고 비프로스트를 타러 가는 길. 그간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듯, 이라호드가 계속해서 수다를 떨어 댔다.
개중 가장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내가 새로이 얻은 능력에 대한 말이다.
“‘복수의 피’ 때문이라고?”
“맞아요. ‘복수의 피’로 흡수한 피에 녹아 있던 영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육체보다 영혼이 더 큰 상태인 거예요. 그러니까 변이가 겉으로만, 일부분만 일어나는 거구요.”
이라호드의 설명에 나는 코를 긁적였다.
피에는 영혼이 어쩌고저쩌고, 육신이니 영혼체니 토르손이 사기를 당했니,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아! 그래도 제대로 알아들은 건 하나있다.
“얼마 전에도 물은 것 같은데… 좋은 거지?”
“…후우, 네. 좋은 거예요. 이런 식으로 발현하는 게 차라리 자아 붕괴 위험이 적으니까요.”
이라호드의 말에 나는 씩 웃었다.
“그럼 됐어.”
“솔직히 그냥 이해하기 싫은 거죠? 네?”
“뭐,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이럴 때만 못 알아들은 척하는 것 같아서 짜증 난다구요.”
투덜대는 이라호드.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어쩐지 봉사 활동을 하는 동안, 이라호드와 많이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다.
“…음, 근데 이거 또 타야 하나? 속이 울렁거리던데.”
“어쩌겠어요? 이걸 안 타면 발할라까지 걸어가야 해요.”
“걸어간다고……? 흠.”
부릉부릉, 묘한 진동음을 내는 비프로스트를 앞에 두고 고민했다.
걸어가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어진 이라호드의 말에 깔끔하게 포기했다.
“년 단위로 걷고 싶으면 안 타도 되구요.”
“어서 타지.”
비프로스트에 올라타려고 할 때, 조용히 따라오던 강글로트가 나를 막았다.
“잠깐, 오디슨 님.”
“음?”
“여왕님께서 보내신 선물입니다.”
그녀가 내민 것은 작은 상자. 슬쩍 그 눈치를 보자, 강글로트가 열어 보라는 듯한 손짓을 했다.
저승에서 받은 상자를 다른 데서 열고 갑자기 폭삭 늙거나, 깨어나지 못하는 잠에 빠질까 걱정했던 게 사라졌다.
“…반지?”
“예, 여왕님께서 보내신 거예요.”
“난 전사다.”
짧은 대꾸에 강글로트가 킥킥 웃었다.
“전사시니까, 드리는 거예요.”
“응? 그게 무슨 소리지?”
“왼손 약지에 끼면 활력이 증가하는 마법이 걸린 반지거든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귀한 물건을 나에게? 꿀꺽 침을 삼켰다.
“난,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데…….”
“그리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여왕님께서 오디슨 님의… 팬이셔서 그런 거니까요.”
팬이라. 팬이라는 개념은 아직도 낯설다.
날 보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라는 건 알겠지만, 나는 나 좋자고 싸우는 건데…….
여러 가지로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그래도 반지는 꼈다.
반지에는 물푸레나무와 그 나무를 올려다보는 가름이 한 마리 양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름의 시선의 끝에는 마름모꼴로 표현된 달이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다운 반지다. 그보다는…….
“정말로 힘이 나는군.”
“빼면 안 돼요. 여왕님께서 서운해하실 테니까.”
“뺄 이유가 없지. 헬께 감사한다고 전해 주게.”
“그럼, 다음 방문을 기다릴게요. 봉사 활동 같은 게 아니라 편히 쉬러 오세요.”
쉬러? 차가운 얼음의 땅이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헬의 호의로 편히 지낼 수도 있는 데다, 부족민들도 볼 수 있다.
이번에 본 부족민이라고는 토르손과 아슬라 아줌마, 라드게리타뿐이다. 하지만 토르손과 강글로트가 한 목소리로 약속했다.
다음에는 더 많은 부족민들을 모으겠노라고.
그리고 한 가지 더.
“…어머니와 삼촌인가.”
아버지도 찾아 두겠다 했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도 안 난다.
다음에는 그리운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꼭 찾아 둘게요.”
“…고맙다.”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그에 강글로트가 안절부절못했지만, 나는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인사했다.
토르손과 강글로트, 그리고 헬에게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휑한 니플헤임의 정경을 눈에 담았다. 춥고 쓸쓸한 곳이지만, 싫지 않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발할라보다 이곳이 훨씬 정감 갔다.
…휴식이라.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할 일이 잔뜩이니까.
나는 비프로스트를 타고 발할라로 향했다.
싸움이 있는 곳으로.
* * *
쾅!
문을 걷어차고 대기실로 뛰어들었다.
깜짝 놀란 표정의 까마귀. 안경을 걸친 그 까마귀를 보며 히죽 웃었다.
“메르키!”
내 부름에 깜짝 놀라 날갯짓하는 녀석이 말했다.
“까아악?! 오디슨? 무슨 일인가!”
“무슨 일? 전사가 할 일은 언제나 명확하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가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창 자루 끝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동시에 발을 굴렀다.
쿵! 소리와 함께 메르키의 안경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싸움! 싸움을 내놔라! 난 싸울 준비가 됐다!”
크게 외쳤다.
그러니 야른시다보다 나에게 까다롭다던 상대를 당장 내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