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12화 (12/208)

# 12

12화. 영웅은 피하지 않는다 (2)

“완전히 미친놈이잖아!”

“젠장,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 돌았다고, 저 새끼!”

주변 놈들이 제멋대로 마구 떠들어 댄다. 슬쩍 그놈들을 흘겨보니, 입을 꾹 다문다.

저자들이 전사라고? 이 전사자(戰死者)들의 전당인 발할라에 들어올 자격을 부여받는 놈들이라고?

허, 어이가 없다.

스윽, 창을 뽑자 비실비실한 놈이 그대로 꼬꾸라진다.

근성 없는 놈.

퉷, 침을 뱉자, 이그나르가 황급히 내 팔을 잡는다.

“저, 저 새끼가 야른시다야!”

“음? 누구 말인가?”

“지금 네가 찌른 놈!”

눈을 끔뻑였다. 야른시다가 U500 최강의 투사라고 하지 않았나?

근데 이렇게 비실비실한 놈이라고? 인상을 구겼다.

이그나르, 이 녀석이 날 놀려먹으려는 게 아닐까?

“진짜?”

“그래!”

“그놈이 최강이라며?”

“그야…….”

이그나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말소리는 안 들리지만 입술을 대강 읽을 수 있었다.

네가 완전히 미친놈이니까 그렇지.

“뭐?”

“아, 아니… 기습이었으니까 그렇지.”

허, 헛숨을 내뱉었다.

“전사라는 놈이 혀로 싸우려는 게 정상인가? 전사끼리 싸움을 걸고 싶으면 당연히 칼 맞을 각오를 해야지.”

“그게…….”

이그나르가 질린 표정으로 혀를 내두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이 발할라의 평화에 너무 젖었다.

“오디슨! 규키를 찔렀다며! 대체 투기장에서 무슨 짓을……. 까악?!”

푸드득 소리와 함께 날아오던 메르키가 허공에서 날갯짓을 멈췄다.

그리고 풀썩 바닥에 떨어졌다.

“…날갯짓을 멈추다니 뭐하는 바보짓인가, 메르키.”

“그, 그것보다 너야말로 무슨 짓이냣, 오디슨!”

깍- 소리친 메르키가 황급히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야른시다에게 뿌렸다.

총총 걸음으로 다가온 녀석이 날 올려다보며 안경을 고친다.

“대기실 내에서 싸움은 금지다, 금지!”

“여긴 훈련실인데.”

“…그, 그건… 그래도 대기실에 속한 곳이다!”

어깨를 으쓱였다.

메르키의 말에 겁먹고 눈알만 굴리던 투사들이 편승했다.

“마, 맞다! 저런 놈을 투사로 놔두는 건 위험하다!”

“규키와 야른시다의 복수를 하자!”

“당장 추방해! 니플헤임으로 보내라고!”

이놈들이 진정 전사인가?

인상을 구기고 메르키를 보니, 메르키는 무어라 궁시렁대며 연이어 안경을 고쳐 쓰고 있었다.

부리가 닳을 지경이었다.

“그, 규키라는 놈이 실려 간 놈 맞나?”

“그렇다! 하계에서 상당한 공을 세운 놈인 만큼…….”

“그 규키라는 놈의 발키리가 나한테는 죄가 없다고 하던데. 훈련장에서 무기를 쓰지 않으면 어디에서 쓰냐고.”

“허! 말도 안 되는 소리!”

메르키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토냐르라는 훌륭한 여전사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뭐? 토, 토냐르?”

메르키가 멈칫하자 투사들이 그를 부추겼다.

“아니, 메르키 공! 저런 오만방자한 놈을 그냥 두실 겝니까?!”

“까마귀 공작께 무례하게 말하는 놈입니다! 게다가 다른 투사들을 해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장 니플헤임으로 보냅시다! 그 차가운 서리 바람을 맞아야 정신을 차릴 놈이오!”

와글와글 시끄럽다.

“시끄럿!”

메르키와 마음이 통했다. 피식 웃어 보이자 메르키가 한숨을 푹 내쉰다.

“정말… 토냐르라고 했다고?”

“그렇소이다.”

“하아, 정말… 그분은 왜 또…….”

날개깃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는 메르키.

저 날개깃으로 관자놀이가 눌리긴 하나? 괜한 궁금증에 깃털을 만져 보고 싶다.

“아니, 고민할 여지가 없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당장 추방합시다!”

그냥 저놈들에게도 창을 한 방 먹여 줄까?

슬쩍 고민하는 찰나, 메르키가 퍼더덕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그- 만!”

작은 몸에서 나왔다고는 상상되지 않는 커다란 고함.

만만만- 훈련장에 메아리가 가득 찼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치를 보는 투사들. 비 맞은 강아지처럼 불쌍한 표정을 짓는 이그나르. 아드득, 창에 찔린 상처가 모두 회복된 야른시다가 이를 갈았다.

메르키가 말을 꺼냈다.

“훈련장 내부에서는 무기를 들고 실전 훈련을 할 수 있는 바! 훈련장 내부의 다툼에는 끼어들지 않겠다!”

그 말에 불평불만이 튀어나왔지만, 메르키는 단호했다.

“닥쳐! 까마귀 공작인 나에게 대드는 것이냐! 까악까악!”

투사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고, 메르키가 한숨을 푹 쉬고 다시 안경을 올렸다.

내려오지도 않은 안경을 너무 자주 올리는 거 아니냐.

“규키는 이미 그의 담당 발키리가 데리고 갔고, 야른시다는 회복되었으니…….”

메르키가 퍼덕대다 말을 이었다.

“이 일은 없던 걸로 하겠다.”

투사들이 즉각 반발하려 했지만, 메르키가 그 반발을 막아섰다.

그것도 투사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야른시다의 자존심을 긁으며.

“야른시다, 넌 투기장에서 이 수모를 갚아 줄 자신이 없는가?”

“흥! 그럴 리가……!”

“그렇다면 투기장에서 갚아라. 종알종알 말만 하지 말고!”

“으드득… 알겠다.”

야른시다가 쪽 째진 눈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다시 한 번 내 창 맛을 보여 주려 했지만, 메르키가 낌새를 눈치채고 나를 막았다.

“그만! 이 문제는 오늘 밤, 투기장에서 해결하도록! 해산! 해산해라!”

메르키가 퍼덕퍼덕, 검은 깃털을 흘리며 외쳤다.

그 강경한 태도에 투사들이 모두 궁시렁대면서도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야른시다는 그 와중에도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나?”

“흥! 비열한 기습이라니, 투기장에서 완전히 개박살을 내 주마! 항복할 생각 따위 하지 마라!”

휙 돌아 훈련장을 빠져나가는 야른시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그나르가 가슴을 쓸어내렸고, 메르키가 한숨을 내쉰다.

이그나르에게 물었다.

“고기는?”

“어…….”

이그나르가 눈을 끔뻑였다.

이 자식, 아무리 생각해도 멍청한 놈인데…….

이런 놈을 데리고 야른시다를 이길 수 있을까?

한숨이 절로 나온다.

“후우.”

내 한숨과 메르키의 한숨이 겹쳤다.

쯧, 혀를 찬 내가 메르키를 툭툭 두드려 위로했다.

“한숨을 너무 쉬지 말게. 주술사가 말하기를 한숨을 자주 쉬면 복이 달아난다더군.”

“…후우우우우우우우.”

메르키가 자신의 복을 걷어차는 짓을 했다.

그리고 날 보고 깍깍댄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악! 야른시다가 기습을 당했으니 저렇게 등신같이 쓰러졌지, 투기장에서 야른시다는 아예 다른 사람이란 말이닥!”

“뭐, 몸만 봐도 비실비실한 게 딱히 위협적이진 않던데.”

힘 역시 별로였다.

차라리 규키라는 놈이 헤이드룬 미드를 많이 마셨는지 힘이 더 좋았다.

“발할라에서는 하계의 상식을 버려라! 저런 몸으로도 U500의 최강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그런가? 무슨 능력이 있나 보군.”

“흥! 알아서 조사하거라!”

메르키가 짜증을 부리고 퍼덕퍼덕 날아갔다.

나는 이그나르를 힐끗 보았다. 이그나르가 잽싸게 설명을 시작했다.

“야른시다는 모은 돈을 모두 투자해, 토르의 축복을 받은 놈이다.”

“토르의?”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화 속에서 싸움을 잘하는 신들은 크게 셋이다.

전쟁과 분노의 신, 오딘. 그리고 결투와 법의 신, 티르.

마지막으로 천둥과 농사와 수호자의 신, 토르.

“그래, 확실히 힘은 좀 부족할지 몰라도, 토르의 축복인 ‘천둥소리’를 이용했을 때의 속도는 그야말로 번개 같다.”

“오호, 토르의 축복이 그런 효과가 있군.”

“후우… 그러니까 내가 그런 호들갑을 떨었지. 젠장.”

고개를 푹 숙이는 이그나르.

나는 그를 여전히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그나르가 인상을 구긴다.

“뭐야? 알고 있는 거 다 토했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닌데.”

“그럼?”

후우,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멍청한 이그나르.”

“왜 또!”

“고기를 가지고 오란 말이다!”

조건을 잊은 건 아니겠지? 으르렁대자 이그나르가 세상이 무너진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가 제길- 나지막이 욕하고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쯧, 멍청한 놈 같으니… 저런 놈이 전설 속의 전사라니.

아마 붉은 늑대의 전설은 얼음도끼의 전설보다 더 화려하게 남았겠지?

그것보다…….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속도라……?”

씨익 입가가 절로 들썩인다.

“얼마나 빠를까?”

심장이 두근댄다.

싸움의 흥분이 등골을 타고 내려가 전신으로 퍼진다. 기대감에 소름이 돋았다.

* * *

제천대성(齊天大聖), 손오공.

원숭이 중 가장 유명한 그는 요선(妖仙, 요괴신선)이며, 동시에 투선(鬪仙, 싸움을 잘하는 신선)이었다.

선계인 곤륜에서의 직책은 복숭아 과수원 관리인이다. 하지만 천한 직업은 아니다. 과수원에서 열리는 것이 바로 불노불사를 준다는 선도 복숭아기 때문이다.

싸움을 좋아하는 그는 답답했다. 곤륜 자체가 도를 닦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싸움을 벌일 수가 없었다.

다시 돌에 봉인되고 싶지 않다면야,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뛸 수가 없다.

손오공이 심심함에 몸부림치던 찰나, 신계 연맹이 결성되고 발할라의 투기장 리그가 중계되기 시작했다.

싸움을 좋아하는 손오공은 싸움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곧장 투기장 리그의 팬이 되었다.

본래는 자신과 싸워 볼 법한 대단한 투사들이 나오는 최상위 리그만을 보았다. 허나 심심함에 몸서리치던 그는 점점 미래가 기대되는 투사들로 범위를 넓혀 갔다.

Top100(1~100번째 방)에서 Near100(101~200번째 방), 200Steps(201~300번째 방).

Mid300Room(301~400번째 방)을 거쳐, Over500(401~500).

마침내 최하위 리그인 Under500(501~540번째 방)까지.

그리고 거기에서 제대로 된 싹수를 지닌 선수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발할라의 구라쟁이, 로키에게 속았다 여겼다.

허나 진주 하나를 발견하고는 진흙을 뒤진 보람을 찾았다.

“끽끽, 오늘 그놈의 경기가 있다고?”

턱을 긁적이며 TV 앞에 앉은 손오공. 의자를 돌려 신계 연맹의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모니터에 떠오른 게시글은 분류 따위는 없이 난잡했다.

[언냐들 필독! 쉽게 만드는 브리싱가멘!]+561

[메스트 신계의 독주, 이대로 괜찮은가? 과학 문명 제지해야…….]+87

[단독 입수! 님프 목욕 영상^^! 후방 주의!]+999

브리싱가멘은 미의 여신, 프레이야가 가지고 있다는 무한한 아름다움을 준다는 목걸이다. 그 목걸이를 각 신계에서 만든다? 여신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원숭이인 손오공은 관심도 없었다.

기계장치의 신이 이끄는 메스트 신계의 독주도 딱히 신경 쓸 게 아니었다. 편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과수원 관리인인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님프 목욕 영상은… 으음!’

님프 목욕 영상이 굉장히 끌리긴 했지만, 손오공은 초인, 아니 초원숭이적인 인내심으로 참아 냈다.

사실 글쓴이가 로키였기에 속지 않을 수 있었다.

“우끽끽, 망할 놈! 들어가면 또 힝, 속았지- 라거나 이상한 짤이나 나오겠지.”

글쓰기 버튼을 클릭한 손오공이 독수리 타법으로 글을 작성했다.

[작성자: 손오공]

[제목: 형이 오늘 U500 듀오경기 예측한다]

[내용: U500 최강자 지랄하던 야른시다가 개쳐발림^^

ㅇㄱㄹㅇ ㅂㅂㅂㄱ ㅇㅈ? ㅇ ㅇㅈ.]

완성을 누르자마자 댓글이 달렸다.

손오공은 히죽 웃으며 글을 클릭했고,

“우끼익! 로키 이 새끼가 진짜…….”

짜증을 터트렸다.

[로키: 글설리 ^^]

늘 그렇듯, 로키가 로키했다.

손오공은 짜증으로 가득 찬 댓글을 달았다. 그제야 다른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손오공: 아 ㅆㅂ 미친 개#[email protected]!]

[비다르: 암만 내 축복이 세다 그래도 야른시다가 가지고 있는 천둥소리 못 잡음;;; 뭘 보고 이딴 예측?]

[헤르메스: 신발맨 ㅎㅇ]

[비다르: 심부름꾼 새끼가…….]

[손오공: 투알못 ㅉㅉ 내가 설명해 준다. 오디슨 그놈이 그냥 독하기만 한 놈이 아ㄴ]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릴 때, TV에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손오공은 당장 고개를 돌렸고, 쓰던 댓글은 끊어진 채 올라갔다. 그 덕에 신종 낚시니 뭐니 욕하는 댓글이 달렸지만, 신경 쓸 틈은 없었다.

[많은 분들이 기다리셨죠? 저 역시 기다렸습니다!]

[네, 오늘 U500의 루키와 U500의 최강자가 맞붙습니다!]

[1 대 1이 아니라 듀오전이라는 게 조금 아쉽긴 합니다만…….]

[뭐… 각기 듀오로 나온 쪽이 크게 의미가 없어요.]

“그렇지.”

손오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음도끼 이그나르라는 놈은 제 동네에서는 전설적인 전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기장에서는 3년 만에 복귀하는 투사다.

그것도 상위권에 있다가 복귀하는 게 아닌 U500에 있다가 은퇴했던 선수.

반대편 야른시다의 파트너로 나온 투사 역시 기대할 게 못된다.

“내가 본 경기에서 저 새끼, 네 번 연속 항복했지. 쯧쯧.”

손오공이 한심하다는 투로 말할 때, 삐이익- 커다란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손오공이 눈을 부릅떴다.

[아! 경기 시작합니다!]

[어, 어어?! 시작부터? 시작부터 크게 가나요!]

쿠르릉!

천둥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이그나르라는 덩치가 그대로 꼬꾸라진다.

그의 목덜미에 박힌 건 날카로운 단검.

TV 속 야른시다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한다.

[기습으로 날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해? 응?]

오디슨이 묵묵하게 창을 들어 올린다. 그러면서도 중얼거린다.

[이그나르, 이 멍청한 새끼.]

[흥! 너도 같은 꼴이 될 거다!]

콰르릉!

재차 천둥소리가 울리고, 손오공이 침을 꼴깍 삼켰다.

‘내가 본 오디슨의 잠재력이라면 분명……!’

그는 오디슨이 고블린과 싸울 때를 떠올렸다.

매일같이 TV 앞에 앉아 투기장 리그를 보는 손오공이기에 알아챌 수 있었다.

고블린을 상대할 때에 오디슨이 내지른 창격은 분명…….

“그 직전에 있었던 M300 경기에서 나온 기술이었지.”

손오공은 그렇기에 오디슨을 주목했다.

투지? 독기? 그런 건 전사의 기본이다. 그 기본 위에 쌓인 찬란한 재능은 기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눈이 엄청 좋단 소리지.’

한 번 본 걸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이미 오디슨은 ‘천둥소리’를 이용한 공격을 보았다.

채앵!

쇳소리가 울렸다.

[뭣?]

야른시다의 당황한 목소리가 TV를 통해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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