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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발할라-11화 (11/208)

# 11

11화. 영웅은 피하지 않는다 (1)

“멍청한 놈! 가슴팍에 달고 있는 건, 근육이 아니라 젖인가?”

“덩치가 그렇게 커서 시집이나 가겠나? 남자라고? 난 계집앤 줄 알았지 뭔가!”

“아내? 아들? 웃기고 있군, 그깟 근성을 가지고 가족을 되찾겠다? 때려치워라!”

연이은 폭언에 이그나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몇백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아내를 못 구해? 아내가 다른 놈이랑 바람이 나도 수십 번은 났겠군!”

“이 자식이?!”

쿵! 돌을 던져 버린 이그나르.

나는 그 모습에 쯧쯧 혀를 찼다.

“겨우 폭언도 못 견디면서 싸움을 견디겠다고? 웃기고 있군.”

“젠장할! 이 새끼, 왜 이렇게 입이 걸어? 엉?”

“난 대장이었다. 너 같은 놈들을 훈련시키는 것쯤이야 쉬운 일이지.”

“미친! 어떤 새끼들이 너 같은 놈을 대장으로 임명했대? 부하들이 쿠테타 안 일으켰나?”

쿠테타? 일으켰다.

하지만 나는 그 쿠테타를 쉽게 제압하고, 발키리가 데리러 오기 직전까지 놈들을 쥐어 팼다.

그 후에는 부하들이 내 말이라면 끔뻑 넘어갔다.

“쿠테타야 흔히 있는 일이지. 그리고 이거 안 보이나?”

메르키가 건네 준 가름의 가죽을 펄럭이며 말했다.

늑대 가죽은 약간 작은 느낌이었는데, 가름의 가죽은 넉넉해서 아주 마음에 든다.

“가름의 가죽? 허! 잘 싸우는 순으로 뽑히는 울프헤딘이라고 우길 셈은 아니겠지? 울프헤딘은 전통적으로 늑대 가죽을 뒤집어썼거든?”

어깨를 으쓱였다.

“늑대보다 가름이 사납지.”

“그건… 젠장할! 후우.”

이그나르가 한숨을 푹 내쉰다.

놈은 사실 내 부하가 아니기에 처음 시작하기 전에 충분한 설명을 해 줬다. 근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거친 말을 할 거라고.

그런데 이렇게 떽떽거리다니, 역시 좀 패야 하나?

깡이 없다고 해도, 놈의 기술을 생각하면 일방적으로 패기도 힘든데…….

생각에 잠겨 있자니, 이그나르가 낌새를 맡았는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니, 다 참겠는데, 가족은 건드리지 마라.”

“흥, 그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건만.”

“아니, 씁… 생각만 해도 빡친다고!”

뭐, 그럴 수도 있지.

확실히 전사장이 전투 전에 아내나 딸을 언급하고, 그러면 전사들이 적보다는 전사장을 죽이고 싶어 했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해해 줘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뭐, 그러도록 하지.”

“으휴, 젠장. 너네 부족 전통 훈련법이 이 따위라니… 너희 부족을 친 놈들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미친놈들이랑은 상종하는 게 아닌데…….”

“그래서 그놈들의 도시 두 개를 모조리 작살냈지.”

“…시민들은?”

“꼬챙이에 꿰어 오딘께 바쳤다.”

이그나르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나는 눈살을 구겼다.

“너네 부족은 그렇게 안 했다고?”

“음, 우리 쪽은 대부족이었으니… 근처에 있는 나라 역시 같은 민족이었고.”

이놈이 왜 이렇게 빠르게 발할라에 젖어 버린 건지 알 것 같다.

위대한 전사라고 할지라도, 상대의 씨를 말려 버리려는 싸움을 겪은 일은 드문 모양이다.

우리 부족이 이상한 건가?

주변에는 모두 이민족뿐이었으니까. 자연스레 싸움에서 지는 순간, 씨몰살을 당한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그보다 다시 훈련을 시작하지. 군살이 너무 붙었어.”

“제길… 고깃집 주인한테 뭘 바래?”

“…흠, 잠깐 쉴까?”

이그나르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서 고기 가져와.”

“제길. 가게까지 한참 걸리는 거 알지?”

“1각 주지.”

“…15분? 미친! 서둘러도 20분은 걸리는 거리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싸늘한 눈으로 이그나르를 보며 말했다.

“뛰어가.”

“빌어먹을.”

말이 안 통한다는 걸 알아챈 건지, 이그나르가 황급히 달려 나갔다. 커다란 엉덩이가 뒤뚱거리는 꼴이 우습다.

저 몸을 최대한 빨리 전사다운 몸으로 바꿔야 하는데…….

쯧, 혀를 차고 있자니 투기장의 투사들이 다가왔다.

썩은 눈을 한 놈들이라 별로 마음에 들진 않는다.

“이딴 거지 같은 훈련을 왜 하는 거지?”

“역시 정신이 이상한가? 그 냄새나는 가죽을 뒤집어쓴 것만 해도 그래.”

“촌스럽긴!”

시비를 거는 건가?

왜? 왜 말로 시비를 거는 거지?

이해할 수 없지만, 걸려온 시비를 피하는 건 전사의 태도가 아니다.

푸욱!

“끄, 끄아아아악! 뭐, 뭐야아악!”

다이스에서 산 창이 한 놈의 배를 꿰뚫었다.

이를 드러내며 물었다.

“뭐지? 왜 입을 털고 있지? 안 덤비나?”

“미, 미친 새끼! 대기실 내에서 싸움은 금지인 거 몰라?!”

이게 무슨 소리야?

눈을 끔뻑이다 허- 하고 헛숨을 흘렸다.

“대기실 내? 여긴 훈련장인데.”

“끄으… 끄으으… 후, 훈련장은 대기실 내, 내부다.…”

“아, 그래? 그럼 미안하군.”

휙, 푸우우!

창을 빼내자마자 피가 뿜어져 나왔다.

비명을 지르던 놈은 제 배를 막고서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그리고 그놈과 같이 온 멍청이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도 멀찍이 떨어져 욕을 할 따름이었다.

“미친놈! 발키리가 무섭지도 않냐?!”

“정신이 나갔어! 너, 메르키 공한테 말하면 바로 징벌이라고!”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나는 놈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안 덤빌 텐가? 계집애처럼 입만 나불거리지 말고, 결투를 하자. 자! 어서 와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창을 들고 말하니, 놈들이 주춤주춤 물러선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눈살을 구기고 있자니, 쯧쯧-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계집애처럼, 이라니. 성차별 발언은 하지 마시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라호드? 그리고, 그 옆엔……?”

“뭐… 이 멍청이의 담당 발키리다.”

끄윽- 피거품을 문 놈을 툭 걷어차며 말하는 발키리.

이라호드와 달리 풍만한 몸매를 지닌 발키리였다. 사자 갈기를 닮은 붉은 적발, 얼굴에 새겨진 토르를 의미하는 쑤리싸즈 룬을 볼에 새긴 여자는 강자 특유의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그럴 만한 전사였다.

단단한 근육이 섬세하게 박힌 팔과 풍만한 가슴, 그리고 단단해 보이는 복근까지.

허- 저토록 단련한 여전사는 처음 본다.

“여자의 몸으로 그렇게까지 단련하다니… 대단하구려.”

“큭큭, 진짜 말투가 이상하네? 그것보다 꽤 마음에 들어. 이 바보 멍청이와 달리 말이야. 난 토ㄹ… 아니, 토냐르다.”

“오, 이름마저도 토르와 비슷하군.”

그야말로 토르가 여자의 몸을 타고나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여자였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팔뚝에 알통을 만들며 히죽 웃는 그녀를 보자니, 한번 겨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라호드가 끼어들었다.

“어, 음… 서, 선배, 그보다 이거 어떻게 할 건가요?”

“음? 뭐… 딱 보면 각 나오는 부분 아니냐?”

“…그런 이상한 말투 쓰시지 마시구요.”

“쯧, 어쨌든 이 멍청이가 시비를 걸었고, 이쪽 빨간 머리 미남이 배때기를 쑤신 거 아냐?”

명쾌한 해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 비겁한 자들은 입으로 싸울 셈인지, 덤비지도 않더군.”

“큭큭큭, 그래. 전사답게 입만 털 게 아니라 차라리 덤볐어야지.”

나와 토냐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라호드가 관자놀이를 꾹꾸 누르며 말했다.

“발할라 법에 따르면, 투기장을 제외하면 전투가 금지라구요?”

“그렇지만 여긴 훈련장 아닌가?”

“훈련장인 게 무슨 상관이죠?”

“훈련장에서 실전 대련을 싸움으로 볼 텐가?”

토냐르의 말에 이라호드가 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래서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전사에게 싸움을 걸었으면 당할 각오가 된 거 아닌가?

“하지만…….”

“음, 이라호드?”

“네?”

“너는 네 전사를 보호해야 하는 발키리 아닌가?”

“어… 그런 토, 아니, 선배는 선배의 전사를 보호해야 하시는 거구요.”

두 사람이 볼을 긁적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요? 내가 그 벌이라는 걸 받아야 한다고?”

“어, 그게…….”

“아니, 신경 쓸 필요 없어. 이 멍청이는 전사답지 않게 행동했으니까.”

빙긋,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게 멋지다.

나 역시 토냐르를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뚝을 부딪쳤다.

“토르의 용기와 티르의 정당함으로 오딘의 승리를 위하여!”

전사들의 구호.

나와 토냐르는 서로를 보며 히죽거렸다.

이라호드가 한숨을 내쉬며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지만,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그저 뒤로 멀찍이 물러난 놈들이 수군거릴 뿐.

“뭐지? 뭐야… 왜?”

“어째서 저, 저 녀석의 발키리가 빨간 거지의 편을 드는 거야!”

그 목소리에 토냐르가 혀를 차고 놈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발키리들은 발할라의 경찰관이 아니다. 발할라가 낯선 전사를 보조해 줄 뿐이지.”

“하지만… 저 빨간 거지가 먼저…….”

“난, 말했다. 전사를 보조한다고.”

토냐르가 히죽 웃었다.

“그런데, 여기 전사라고는 하나뿐이군.”

“쯧, 토ㄹ… 토냐르 선배는 너무 규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신다니까요……. 시그룬 님께서 또 뭐라 잔소리를 하실지…….”

“흥! 난 규칙대로 했을 뿐이다.”

조잘대는 두 발키리.

시비를 걸던 놈들은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저놈들을 다 찔러도 상관없단 소리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다 피식 웃었다.

“전사도 아닌 것들의 피를 묻힐 순 없지.”

창에 묻은 피를 가름의 가죽으로 닦으며 말하자, 토냐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어쨌든, 죽기 전에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쯧. 이딴 놈은 그냥 니플헤임으로 보내야 하는 건데…….”

투덜대면서도 토냐르는 기절한 놈을 짊어졌다. 그리고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기대하고 있다고, 루키.”

“음, 그거 고마운 소리군.”

“흐흐, 화끈한 싸움 부탁해.”

이라호드가 혀를 차며 토냐르를 재촉하자, 토냐르가 슬쩍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사라졌다.

놀란 마음에 눈을 끔뻑이자, 이라호드가 날 향해 잔소리를 해 댔다.

“여기는 하계가 아니에요. 내가 준 책자, 꼼꼼하게 읽어 봐요. 그럼… 다음에는 좋은 일로 봐요.”

이라호드 역시 손을 휘휘 흔들더니 사라졌다.

눈을 비볐지만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흔적은 바닥에 흐른 피가 전부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과연 발키리라는 건가.”

오딘의 휘하에서 무수히 많은 전사자들을 데리고 발할라로 올라오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지.

히죽 웃고 있을 때, 헉헉헉- 하는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오, 이그나르. 왔나? 고기는?”

“헉헉헉, 젠장……. 지금 고기가 중요한 게 아냐!”

버럭 소리치는 이그나르.

고기가 중하지 않으면 대체 뭐가 중할까?

저 비겁한 장사치가 또 제 고기를 아낀답시고 날 속이는 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그나르를 노려보자, 이그나르가 후우- 숨을 고르고 말했다.

“우리, 첫 상대가 정해졌다.”

“상대가 정해져?”

이제까지 메르키에게 그냥 말하면 투기장에 나서서야 상대를 알 수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미리 정해진다고? 눈을 끔뻑이고 있자, 이그나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U500의 수문장이다.”

“…수문장?”

“그래, 야른시다라고 하는 U500에서 가장 잘 싸우는 투사지.”

“오! 괴물이 상대가 아니란 건가?”

심장이 쿵쾅거린다.

괴물과 싸우는 것도 흥분되는 일이지만, 아무래도 전사 특유의 날카로운 움직임은 없다.

야성적인 힘과 체격, 그리고 체력으로 밀어붙일 뿐인 놈들에게 기대되는 게 있을 리 없다.

“지금 좋아할 때가 아니라고. 야른시다 그놈은 이 U500에서 그야말로 반칙 같은 놈이다.”

“반칙 같다?”

“그래… 내가 투사로 있을 때도, U500의 최강자였으니까.”

눈을 끔뻑였다.

이그나르가 투사로 있던 건 적어도 몇 년 전. 그때 최강자가 아직도 U500에 있다고?

U500을 넘어, 400번대 방인 Over500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놈은 일부러 O500에 안 가고, U500에 남은 놈이야.”

이그나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를 하겠다 이거지. 제길.”

“그렇게 실력이 뛰어난가? 그대가 그리 걱정할 정도로?”

이그나르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실력은… 뛰어나지, 근데……. 실력보다는 U500 투사들의 대장 노릇을 한다는 게 문제다. 아마 온갖 시비를 걸어올 텐데…….”

이그나르의 말에 나는 눈을 끔뻑였다.

아까 그놈들이 설마, 야른시다의 하수인이었나?

“제길, 어떻게든 시비를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해. 너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시비가 걸린다 해도 싸우기 힘들거든. 아주 속이 터질 거다.”

“음…….”

“차라리 훈련을 밖에서 할까……?”

“음, 저기, 이그나르.”

내 부름에 이그나르가 눈을 끔뻑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바닥의 핏자국을 가리켰다.

“내가 벌써, 야른시다인가 뭔가 하는 놈이 보낸 놈들 중 하나를 찔렀는데?”

“미, 미친! 그놈이 우릴 귀찮게 하려면, 얼마나 짜증나게 할 수 있는지 몰라서 그래?!”

당연히 모르지.

눈을 끔뻑일 때, 쾅! 소리와 함께 훈련장 문이 열렸다.

우르르, 수많은 투사들이 칼자국이 난 비실비실한 멸치를 앞세워 우리에게 다가왔다.

“야! 네가 우리 애 건드렸냐?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어? 당장 투기장으로 가 볼까?”

비실비실한 놈이 왜 이렇게 말이 길어?

푸욱!

나는 입보다 빠른 손으로 창을 찔렀다.

야른시다의 입가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이, 미친…….”

“혓바닥이 왜 그리 길어? 입 털지 말고 붙자.”

“씨발… 찔러 놓고, 부, 붙자니… 비겁한…….”

여전히 혀가 길다.

재차 찔렀다.

푸욱!

“꺼어억……!”

주변의 경악이 느껴졌지만, 진짜 전사는 어떤 때라도 할 일에 충실하다.

적이 있다면 적을 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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