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누가 최고인가?(6)
드디어 성사되었다.
누가 최고의 투수인가를 가릴 수 있는 매치업이 드디어 성사된 것이다.
강송구와 이안 엘런.
두 투수가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맞붙는다.
[강송구 하루 휴식 후 6차전 등판 확정!]
[5차전에서 34구만을 던지며 체력을 비축!]
[AL 최고와 NL 최고가 붙는다.]
[강송구에게 붉어진 혹사논란!]
[미키 스토리 감독, ‘강송구의 등판은 문제없다. 매디컬 팀에서도 캉의 몸에서 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6차전은 무조건 본다.
-아! 이미 연차 박아뒀다궄ㅋㅋㅋ
-X팔! 부장님이 먼저 연차 써서 난 밀려버림.
-아! 미리 치킨도 예약하고, 월차도 쓰고! 마누라도 친정에 간 나는 신이고 무적이다!
-부럽다. 난 그날 마누라가 아침드라마 본다고 분명히 리모컨을 쥐고 있겠지.
-아저씨……. 왜 그렇게 살아……?
-전생에 웬수를 너무 많이 괴롭혔나 봐.
-전생의 원수가 현생의 배우자가 된다구? 그러니 다음 생에 마누라가 생기고 싶으면 이쁜 여자에 열심히 괴롭혀라. 아! 참고로 난 이미 깜빵에 10년 갔다 왔다.
-진짜 미치셨어요?
-혼란하다. 진짜 혼란해.
-아! 나도 보고 싶다! 6차전! 6차전!
-ㅋㅋㅋㅋㅋ 이럴 줄 알고 난 이미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이 말이야!
-응, 현실은 방구석 백수.
-이번만큼은 월드시리즈 6차전을 볼 수 있는 ‘백수’들의 승리가 아닐까?
-ㅋㅋㅋㅋㅋㅋ 이번 토토만큼은 다르다! 매국배팅에 걸어도 해볼 만하다구!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애국이 진리다.
-응, 강송구 6차전 1이닝 50실점 강판.
-애초에 4~5실점 하면 강판하지, 굳이 50실점까지 갈 필요가 없단다.
-이안 엘런도 확실히 나쁘지 않은 투수인데; 이 쉑 너무 유리 몸이라 걱정인데.
-그래도 올해 인저리 이슈는 2달 정도밖에 없었음.
-ㅇㅇ 올해만큼 컨디션 좋았던 시기도 몇 없었다.
-작년에 200이닝 근처까지 던졌던 이안이 올해 150이닝 정도 소화했으니 문제는 없을 듯.
-난 전반기 다 날릴 거라고 봤는데 그래도 150이닝을 소화한 걸 보니 이번 시즌 컨디션은 좋은가 봐.
언론.
그리고 야구팬들.
모두의 시선이 이번 6차전으로 쏠렸다.
어마어마한 관심이 쏠릴 만했다.
‘최고의 투수가 누구인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이번 6차전의 광고를 만들었을 정도였다.
모두에게 관심이 쏠린 만큼.
두 투수도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경기에서 결판 난다.
이안 엘런은 경기 전.
자신을 바라보는 기자들을 보며 웃었다.
원래라면 절대로 응하지 않았을 인터뷰다.
누가 개념이 없게 등판 당일의 투수에게 경기 전부터 인터뷰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안 엘런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컨디션은 완벽했다.
“캉을 이길 자신이 있습니까?”
이길 자신은 언제나 있었다.
“네, 자신 있습니다.”
작은 키를 가진 에이스.
신의 재능과 인간의 육체를 가진 불운한 투수.
이안 엘런은 확신했다.
그건 강송구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경기 이길 수 있겠어?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2미터에 가까운 거한.
라스베이거스의 거인.
골리앗, 미스터 제로, 몬스터.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는 이 괴물은 이미 자신만의 역사를 쓰고 있는 전설이다.
작년보다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인 올해.
그는 새로운 역사를 썼으며, 이번 포스트시즌에도 라스베이거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많은 이바지를 했다.
그가 천천히 마운드에 올랐다.
이미 사람으로 꽉 찬 된 ‘777 베가스 그라운드’의 관중들이 그런 강송구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같이 마운드로 향하던 우효가 뭔가 고양감을 느꼈는지 괜히 가시를 세우며 좋아했다.
1회 초.
컵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투수가 오른손에 적당히 로진을 바르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초구는 97마일의 포심.
선두타자인 펫 펏호프가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으나 썩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1차전과 5차전.
두 번의 경기에서 모두 아웃을 헌납한 펫 펏호프의 두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결과는 4구 만에 헛스윙 삼진.
강송구가 가볍게 아웃 하나를 잡아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강송구는 단 11구 만에 이닝을 끝냈다.
그것도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캉의 컨디션이 유난히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 공 끝이 정말 날카롭네요.
-컵스의 타자들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운드를 내려간 강송구.
곧이어 이안 엘런이 마운드를 밟았다.
그는 관중석을 쭉 둘러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드디어…….”
그리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 * *
우효는 깨달았다.
그냥 강송구에서 구속만 5마일 정도 느리게 만들면 이안 엘런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평균 92마일.
최고 95마일.
이안 엘런의 구속은 그리 좋지 않았다.
스터프도 구속과 비교하면 제법 훌륭했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이라는 느낌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났다.
-제구가 칼이야. 칼.
강송구보다도 제구만큼은 더 뛰어났다.
강송구가 6분할의 제구력을 갖췄다면.
저 괴물은 진짜 9분할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매덕스만이 6분할로 제구를 하며 공을 던졌다고 하는데……. 저 녀석은 도대체 뭐야?
이해할 수 없었다.
삼진은 없었다.
모두 땅볼 아웃.
하지만 라스베이거스 전원이 느꼈다.
이안 엘런이라는 투수의 존재감을 말이다.
“오늘 컨디션이 제대로 날이 섰어.”
“대기록을 세울 때의 이안 엘런이란 뜻이야?”
앞서 상대했을 때와 수준이 달랐다.
그냥 ‘올 마이티’였다.
원하는 코스로.
원하는 공을.
원하는 타이밍에.
몇몇 라스베이거스의 투수들은 그런 이안 엘런을 보며 불평을 내뱉었다.
“저런 공을 던질 수 있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바칠 수 있을 거야.”
“부럽군. 정말 부러워.”
“도대체 컵스는 어떤 팀이야? 저런 투수를 데리고 월드시리즈에서 딱 1회밖에 우승을 못 했다고?”
“또 아웃이야.”
물론, 감상은 여기까지였다.
2회 초.
강송구가 다시금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줬다.
컵스의 타자들은 강송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미친 새끼. 82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을 던진 뒤에 50마일짜리 슬로우 커브를 던지고 100마일짜리 포심을 던져?”
“그냥 강속구로 밀어붙여도 치기 힘든데 구속을 조절하고 공의 궤적과 타이밍도 조절한다고? 야구의 신이야?”
그들도 불만이 가득하였다.
하지만 입을 닫았다.
2회 말.
그들의 에이스가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을 상대로 그야말로 압도적인 삼진쇼를 보여주었다.
-대단합니다! 2회 말을 순식간에 지워낸 이안 엘런! 그가 환히 웃으며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이거죠! 오늘 경기를 보기 위해서 회사에 휴가를 낸 직장인들이 정말 부럽네요. 두 투수가 오늘 역사적인 경기를 보여줄 것 같습니다.
-거기다 치킨까지 시켜 먹는다? 이건……. 나중에 자식들에게 자랑해도 좋은 이야깃거리일 겁니다.
심각하게 이야기하면, 두 투수가 허수아비를 타석에 세우고 자신들의 구종을 자랑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역시……. 다르다.’
이안 엘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절로 흥이 났다.
왜 자신은 저런 투수를 지금 만났을까?
더 일찍 매치업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만족했다.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이었으니까.
3회 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자신과 외형적인 부분에서 상대적인 투수가 자신이 추구하는 야구를 보여준다.
물론, 자신보다 구속도 빠르고 구위도 압도적이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야구관은 똑같아.’
그래서 더 즐거웠다.
아마도 저 투수도 마찬가지겠지.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순식간에 타자 하나를 지워낸 강송구.
다음 타자를 상대로 내야 뜬공.
그리고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유격수 땅볼을 유도하면서 순식간에 3회 초를 지워냈다.
생각보다 경기의 템포가 빨랐다.
평소의 이안 엘런이라면 조금 피곤하다며 투덜거렸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누구보다 빨리 마운드로 향했다.
야구가 이렇게 즐거울 때가 있었을까?
팀 린스컴의 투구폼을 갖춘 작은 신장의 투수가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던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두 투수가 그야말로 학살극을 벌입니다! 순식간에 지워지는 이닝! 이렇게 빨리 3회 말까지 이어진 경기는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야구경기의 속도가 항상 이렇다면 아마 미국 4대 스포츠에서 야구가 가장 인기가 많았을 겁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이안 엘런의 위닝샷! 완벽한 체인지업으로 삼진을 잡아냅니다!
-3회 말에 2명의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는 이안 엘런! 그가 주먹을 쥐고 포효합니다!
-그는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마지막 타자를 내야 뜬공으로 지운 이안 엘런.
두 투수의 페이스가 경기 초반부터 심상치 않았다.
덕분에 고생하는 쪽은 두 팀의 타선이었다.
“토할 것 같아.”
“캉이 두 명? 이런 경기에서 타자들은 그냥 들러리가 되는 거야. 들러리가.”
“어떻게 공략하지?”
“방법이 없어.”
라스베이거스의 더그아웃은 더욱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가라앉지 않았다.
컵스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캉의 커터를 노린다.”
타순이 한 바퀴 돈 상황.
4회 초의 선두타자인 펫 펏호프가 마운드를 바라봤다.
그는 몸쪽으로 날아드는 커터를 노렸다.
슈우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99마일의 커터가 몸쪽으로 날아든 순간.
펫 펏호프는 편안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응, 커터는 버리자.’
빠른 포기.
이어진 2구째에 그가 고갤 흔들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그냥 타석에 인형을 세우고 누가 더 많이 삼진을 잡는지로 승부를 가리라고.’
그게 더 승부를 가리기에 편할 것이다.
3구째.
펫 펏호프는 시원하게 선풍기를 돌렸다.
그리고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라스베이거스의 더그아웃을 바라보며 돌아갔다.
‘나도 힘들지만……. 너희들도 비슷하구나.’
컵스의 타자들이 강송구에게 질린 것처럼.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도 이안 엘런에게 질렸다.
다음 상대는 2번 타자 바디 스큐즈.
그는 이미 반쯤 포기한 표정이었다.
초구에 무지성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빠아악!
“파울!”
힘껏 배트를 휘둘렀음에도 타구는 파울이 되었다.
더욱 의욕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생각 없이 휘둘렀다지만……. 저 괴물의 구위에 내 배트가 밀렸다고?’
조금은 자존심도 상했다.
2구째에도 파울.
바디 스큐즈가 금이 간 배트를 바꾸며 생각했다.
‘차라리 계속 번트만 시도할까?’
그러기엔 100마일의 구속이 두렵게 느껴졌다.
같은 100마일이라고 구위가 다른 강송구의 공에 팔이 맞는다면 진짜 선수 생활이 끝날지도 몰랐다.
‘그건 좀…….’
3구째.
87마일의 써클 체인지업이 환상적이게 떨어졌다.
당연히 바디 스큐즈는 삼진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을 헌납한 바디 스큐즈가 타석을 떠나며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그냥 NBA에 도전할 걸 그랬어.’
터덜터덜.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그가 선수들을 보며 말했다.
“나 은퇴하면 NBA로 도망쳤다고 생각해.”
“X랄하지 말고 수비나 하러 가자.”
“뭐?”
“너 내려오고 데미안이 1구 만에 내야 뜬공으로 죽었어. 이제 우리가 수비하러 가야 해.”
다시 수비를 위해 필드로 향해야 하는 시간.
글러브를 집어 든 바디 스큐즈가 1구 만에 아웃을 헌납한 데미안을 보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