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누가 최고인가?(5)
3차전.
컵스의 홈에서 치러지는 첫 번째 경기에서 라스베이거스는 윌리 알비드레즈를 선발로.
컵스는 퀑 우체를 내보냈다.
홍콩 출신의 선발투수인 퀑 우체는 이번 시즌 16승 6패를 기록하며 컵스 선발진 중에서 유일하게 15승 이상을 거둔 투수이기도 했다.
물론, 세부적인 지표도 나쁘지 않았다.
어떤 부분에서는 이안 엘런보다도 좋았다.
문제는 중요한 상황에서 나오는 새가슴 같은 피칭.
그는 가을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도 이번 경기에서는 달랐다.
6이닝 3실점.
퀄리티스타트를 기록.
그는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아니, 상대 투수의 피칭이 너무 좋았다.
-윌리 알비드레즈가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냅니다!
-점수는 3 대 0으로 라스베이거스가 계속해서 우위를 가져가는 가운데 두 팀의 불펜진이 마운드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윌리 알비드레즈의 7이닝 무실점 호투.
점수는 3 대 0으로 라스베이거스의 리드.
8회 말.
컵스가 2점을 따라붙으며 점수는 3 대 2가 되었으나 9회 초에 다시 3점을 쓸어 담은 라스베이거스가 9회 말을 깔끔히 막아내며 그대로 3차전의 승리를 챙겼다.
[라스베이거스의 3차전 승리! 윌리 알비드레즈의 7이닝 무실점 호투!]
[불리한 상황에 놓인 컵스! 4차전 선발은?]
[라스베이거스의 4차전 선발은 켄 크로윈!]
[4차전 선발 맞대결! 켄 크로윈 vs 필 에릴리!]
“생각보다 컵스의 타선이 그리 강렬하진 않네.”
“그래도 선발진은 탄탄해. 우리 선발진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니까.”
“문제는 불펜이지.”
“확실한 마무리가 없는 우리랑 확실한 마무리만 있는 컵스의 대결이니까.”
4차전이 있는 날 아침.
선수들은 호텔에서 가볍게 아침을 먹으며 오늘 경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송구는 덤덤히 페퍼로니 피자 한 판을 다 먹어치우고 불고기가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를 하나 더 먹었다.
우효도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과일 조각과 밀웜을 먹고 발라당 엎드려 게으름을 만끽했다.
-이러다가 7차전까지 가는 거 아닌지 몰라.
‘그럴지도 모르지.’
4, 5차전에서 모두 승리하면 라스베이거스의 우승으로 경기가 끝나지만, 4차전이나 5차전에서 패배하면 경기는 무조건 7차전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5차전은 강송구가 등판하기에 걱정이 없었다.
그가 패배할 가능성은 없으니까.
문제는 4차전이었다.
켄 크로윈이 무너진다면, 아무리 강송구가 5차전에서 승리해도 6차전까지 가야 승부가 난다.
그리고 6차전에 등판하는 투수는 이안 엘런.
라스베이거스의 강송구처럼, 컵스가 가진 최고의 필승카드가 6차전에 등판한다.
당연히 경기는 7차전까지 이어질 것이고.
어쩌면 컵스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4차전 경기.
켄 크로윈은 무너지지 않았다.
-켄 크로윈이 6이닝을 2실점으로 막아내면서 라스베이거스가 우승에 한 걸음 더 발을 내딛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마운드에 오르는 바비 홀!
-오랜 재활 끝에서 돌아온 그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정규시즌에 21세이브를 기록. ERA는 3.35로 그리 좋은 지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마무리하지 못할 정도로 나쁜 수준의 지표도 아닙니다.
-점수는 3 대 2로 1점 차이.
-9회 말의 마지막 타자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4차전.
라스베이거스의 3 대 2 리드.
모두의 시선이 마운드로 향했다.
라스베이거스의 마무리 투수인 바비 홀은 8회 말 2사 1, 3루의 상황에 등판해서 깔끔히 아웃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등판한 9회 말.
빠르게 2개의 아웃을 지워낸 그는 마지막 남은 타자를 상대로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이제 단 하나의 스트라이크를 잡아내면 끝인 상황.
하지만 야구의 여신은 월드시리즈를 더 보고 싶었는지 상황을 조금 이상하게 만들었다.
-내야에서 높게 뜨는 공!
-이렇게 경기가 끝나나……. 어? 어?
-히 드랍 더 볼! 조쉬 마이어스가 공을 흘립니다!
-빠르게 홈으로 달리는 마이크 로메로!
-그대로 홈인! 경기는! 경기는 다시 연장으로 향합니다!
점수는 3 대 3이 되었고.
투수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임에도 바비 홀은 그 누구보다 깔끔히 남은 아웃을 잡아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장전.
기회를 잡은 컵스가 거세게 몰아쳤다.
그리고 11회 말까지 가는 접전 끝에 4 대 3 승리.
강송구와 우효가 우려하던 상황이 만들어졌다.
* * *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연장까지 간 4차전! 승자는 시카고 컵스!]
[5차전 선발은 강송구! 라스베이거스의 필승카드가 다시 마운드를 밟는다.]
[샌디 가스통, ‘이번 경기에서 승리해서 꼭 컵스의 팬들에게 우승을 안겨주겠다.’]
[1차전의 복수를 원하는 컵스와 5차전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길 원하는 라스베이거스!]
-무조건 7차전까지 가겠네.
-5차전 강송구 등판, 6차전 이안 엘런 등판.
-진짜 4차전이 너무 아쉽네.
-이건 조쉬 마이어스가 너무 큰 실수를 했다.
-???: 아니 1승만 하라고 야막들아!
-으으으……. 1승만 하라고! 1승만!
-강송구도 이제 고통받는 거야?
-모르지. 7차전에 등판하는 투수가 윌리 알비드레즈라 나쁘지 않을 수도 있음.
-컵스도 선발진은 좋아서 누가 이길지 모르겠다.
-일단, 5차전은 애국배팅가고 6차전에 매국배팅으로 제대로 돈을 좀 챙겨야지.
-ㅋㅋㅋㅋ 진짜 미친 토토충들;
-돈이 복사된다니까?
4차전이 끝난 뒤.
라스베이거스의 라커룸은 조금 조용해졌다.
평소 시끌벅적하던 분위기와는 조금 달랐다.
특히, 조쉬 마이어스는 9회 말에 자신이 저지른 실책을 생각하며 자책하고 있었다.
그나마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지 않은 이유는 주장인 랜디 에드워즈이 나선 덕분이었다.
거기다 5차전 등판은 필승카드인 강송구.
그렇게 미키 스토리 감독의 마무리를 끝으로 선수들이 모두 호텔로 향했다.
하지만 강송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키 스토리 감독과 제법 긴 대화를 나눈 뒤에 호텔로 향했다.
뭔가를 고민하던 미키 스토리 감독.
그리고 확신에 찬 표정을 지은 강송구.
두 사람을 보며 우효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게 되려나?
* * *
5차전이 있는 날.
샌디 가스통은 1차전을 기억하고 있었다.
최악의 경기.
강송구와 이안 엘런에게 쏠린 관심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최선을 다해서 공을 던졌지만.
당연히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원정이 아닌 홈 경기장.
벌써 리글리 필드를 가득 채운 홈팬들이 내뿜는 열기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오늘 경기에서 승리해서 보여준다.’
자신이 최고의 투수에 어울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1회 초.
마운드에 오르는 샌디 가스통.
그를 향한 컵스팬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시작된 경기.
샌디 가스통은 더 완벽한 피칭을 보여줬다.
3명의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낸 샌디 가스통.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래, 이거야! 이게 나라고!’
자신을 응원하는 홈팬들이 가득한 리글리 필드에서만큼은 저 동양인보다 못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1회 말.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고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가 단 4구 만에 이닝을 끝내는 모습을 본 뒤.
샌디 가스통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곧이어 활활 투지를 불태운 그는 2회 초에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투구수가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2이닝을 소화하는데 40구.’
좋지 않은 소식이다.
하지만 샌디 가스통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는 확신했다.
오늘 경기에서 6회 초까지.
실점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이어지는 강송구의 피칭.
2회 말의 마운드에 오른 그는 이번에도 왼손으로 압도적인 구위를 뽐내며 이닝을 삭제시켰다.
그가 40구를 던지는 동안.
강송구는 고작 13구를 던졌다.
어마어마한 차이의 투구수 차이.
3회 초.
다시금 마운드에 오른 샌디 가스통은 앞선 이닝에서 소모한 투구수를 만회하기 위해 강하게 공을 던졌다.
문제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일까?
선두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고.
이어진 8번 타자와 승부도 제법 길어졌다.
하지만 깔끔히 8번 타자를 잡아낸 샌디 가스통의 앞에 9번 타자인 강송구가 타석에 들어섰다.
샌디 가스통은 알고 있었다.
저 괴물 같은 투수는 타격도 제법이라고.
‘그래도 별거 없어.’
그는 자신의 공을 믿었다.
특히, 다른 부분은 몰라도 ‘구위’라는 부분 하나만큼은 그 어떤 투수보다 뛰어나다 자부했다.
그렇기에 초구를 망설임 없이 던졌다.
그는 확신했다.
저 덩치만 큰 동양인이 헛스윙으로 물러날 것을.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달랐다.
슈우우우욱! 빠아악!
거대한 타격음.
순간 샌디 가스통이 얼빠진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크게 나아가는 타구는 곧이어 리글리 필드의 담장을 넘어가 버렸다.
-여기서 홈런이 터집니다! 주인공은 오늘 선발로 나선 라스베이거스의 에이스! 캉입니다!
-제대로 때렸네요. 바로 넘어갔습니다.
-바로 2점을 만드는 캉입니다!
순식간에 2점을 만든 강송구.
샌디 가스통은 속으로 절규했다.
왜 하필이면 저 동양인에게 홈런을 맞았을까?
남은 아웃을 잡아낸 뒤.
마운드를 내려가는 샌디 가스통의 어깨가 평소보다 더 축 처진듯한 느낌이었다.
3회 말.
다시 시작된 강송구의 피칭.
그는 평소와 다르게 조금은 빠르게 승부에 들어가면서 극단적으로 투구수를 줄이고 있었다.
컵스의 선수들이 이상함을 느낀 것은 4회 말이었다.
6구 만에 끝이 난 4회 말.
오늘 경기에서 고작 34구로 4이닝을 소화한 강송구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것도 완전히 말이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시카고 컵스의 더그아웃이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부상이야?”
“갑자기 캉이 강판당했다고?”
“설마 퀵후크인가?”
“그럴 리가……. 6차전이랑 7차전을 생각하면, 라스베이거스는 이번 경기에서 최대한 불펜을 아껴야 한다고.”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5회 초.
투수 타석에 대타자로 박준호가 들어섰다.
아까와 상당히 흡사한 상황.
마운드에 선 샌디 가스통이 이를 꽉 물었다.
‘이제는 이놈이나 저놈이라 날 우습게 보는군. 동양인은 다 이런가?’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서슴지 않게 하는 샌디 가스통이 박준호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자신을 상대로 미소를 짓는 박준호가 너무나 거슬렸다.
그렇기에 초구부터 위협구를 던졌다.
슈우우욱! 펑!
타자의 머리 근처로 올라간 공.
박준호가 타석에 자빠지며 아슬하게 공을 피했다.
“이런 X같은 놈이!”
“파크! 그냥 마운드로 뛰어가 저 녀석을 박살 내버리게! 저 망할 X같은 새끼!”
“주노! 한 방 때려!”
라스베이거스의 더그아웃이 끓어올랐다.
동시에 흙을 털며 일어난 박준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샌디 가스통을 바라봤다.
‘다 늙은 내가 무섭기는 한가 봐.’
오늘 경기.
강송구가 일찍 마운드를 내려온다는 말을 들었다.
4이닝까지는 강송구가 그 뒤를 이어서 지난 시즌에 5선발로 제법 나쁘지 않은 피칭을 보여준 스티브 하그레이브가 남은 이닝을 소화하기로 했다.
다만, 선취점이 나오지 않으면 강송구가 오늘 경기를 완전히 책임지기로 이야기가 끝났다.
‘송구도 은근히 승부욕이 있다니까.’
그 이안 엘런과 맞대결을 하고 싶어서 5차전에서 이런 도박을 시도하다니.
만약에 강송구가 정규시즌에 어마어마한 위상을 쌓지 않았다면 미키 스토리 감독은 절대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박준호가 두 눈을 반짝였다.
주자가 한 명 나간 상태.
여기서 점수가 더 나오면 샌디 가스통은 알아서 무너질 게 분명했다.
2구도 몸쪽.
위협구를 던진 다음에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을 보며 박준호는 샌디 가스통의 피칭이 노골적이라 판단했다.
동시에 기화라고 생각했다.
‘하나만 어설픈 공을 던져라.’
그대로 담장을 넘겨줄게.
그리고.
그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샌디 가스통이 조금은 어설픈 공을 던졌다.
박준호가 노리는 코스로 말이다.
부우우우웅! 빠아아악!
다시 크게 떠오르는 타구.
샌디 가스통은 멍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다시는 보기 싫은 장면이 또 눈에 들어왔다.
-넘어갑니다! 또 넘어갑니다!
-오늘 코리안 듀오! 강송구 선수와 박준호 선수가 나란히 투런포를 때려냅니다!
2 대 0이었던 점수는 순식간에 4 대 0으로 늘어났다.
동시에 샌디 가스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그는 연이어 볼넷을 허용하며 순식간에 1, 2루를 채웠다.
어쩔 수 없이 마운드에 오르는 컵스의 감독.
샌디 가스통이 고개를 떨궜다.
이어지는 5회 말.
강송구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스티브 하그레이브가 마운드에 올라 호투를 보여주었다.
4이닝 3실점.
중간에 허용한 3실점이 조금 아쉬웠으나, 먼저 4점을 거둔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이 남은 이닝에 7점을 더 뽑아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9회 말.
큰 점수 차이임에도 바비 홀이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깔끔하게 이닝을 지워 버렸다.
강송구가 고작 34구 던지고 끝난 경기.
모두 궁금해했다.
도대체 왜 강송구를 일찍 강판시켰는지.
“왜 캉을 일찍 강판시키셨습니까?”
그런 기자들의 질문에 미키 스토리 감독이 씩 웃고는 야구팬들이 들썩일만한 대답을 내뱉었다.
“누가 최고인지 보고 싶지 않습니까?”
“설마…….”
기자들의 시선이 미키 스토리감독의 입에 쏠렸다.
미키 스토리 감독이 고갤 끄덕였다.
“6차전 선발은 캉입니다.”
기자회견장에 폭탄이 터졌다.
‘이안 엘런 vs 강송구’라는 거대한 폭탄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