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누가 최고인가?(4)
점수가 1 대 0이 되었다.
그 순간 벤치에 수건을 덮고 누워 있던 이안 엘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야구를 위해 태어난 괴짜.
신의 재능을 타고 났지만,
인간의 육체를 가진 선수.
그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네.”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샌디 가스통은 그가 없을 때 컵스를 지탱해 준 또 다른 에이스나 다름이 없는 선수였다.
그런 샌디 가스통의 전력을 다한 공을 공략해서 점수를 만들어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5회 말이 끝났습니다.
-점수는 1 대 0! 라스베이거스가 기어코 샌디 가스통을 상대로 점수를 빼앗았습니다.
5회 말을 지워버린 샌디 가스통.
선취점이 된 1점이 옥의 티였지만.
그의 피칭은 아직도 위력적이었다.
그리고 마운드에 오르는 강송구.
이안 엘런의 두 눈이 강송구를 향했다.
“저 선수가…….”
절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신을 뛰어넘는 스탯을 이번 시즌에 아메리칸리그에서 기록한 투수가 바로 저 거인이다.
이안 엘런이 환히 웃었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은 샌디 가스통에게 말했다.
“샌디! 캉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 이건 역시 라이벌을 만나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거겠지?”
그의 말을 듣고 샌디 가스통이 빈정거렸다.
“그게 아니라 부정맥이겠지.”
* * *
6회 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우효는 1 대 0이 걸린 전광판을 보며 고갤 끄덕였다.
-결국……. 컵스도 무리인가?
‘오늘 경기에서 내가 실점한다는 것에 걸었나 보군.’
강송구의 확신이 담긴 말에 우효가 화들짝 놀랐다.
-그걸 어떻게?
‘관심법이다.’
-관심법?
‘그래, 난 마음을 읽을 수 있지.’
우효의 두 눈이 흔들렸다.
‘넌 이렇게 말하겠지.’
강송구의 말에 우효가 빽 하고 소리쳤다.
‘거짓말! 사람은 절대 마음을 읽을 수 없다!
-거짓말! 사람은 절대 마음을 읽을 수 없다!
강송구가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하자 화들짝 놀란 우효가 멍하기 그를 바라봤다.
강송구는 오랜만에 씩 웃고는 조던 델가도와 사인을 교환하고 바로 승부에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우효는 생각했다. ‘혹시 강송구가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이 관심법 때문이지 아닐까?’하고 말이다.
물론, 강송구에게 관심법은 없었다.
그저 우효가 잘 속아 넘어간 것뿐.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면, 아마 강송구는 전 경기 퍼펙트게임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6회 초의 선두타자는 8번 타자인 레오 알바레즈.
젊은 중견수로 올해 콜업한 따끈따끈한 신인이었다.
강송구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초구는 바깥쪽 커터.
레오 알바레즈의 배트가 따라 나왔다.
따악!
“파울!”
타구는 그대로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레오 알바레즈는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강송구를 바라보다가 다시금 승부에 집중했다.
‘젠장……. 뭘 알아볼 수 있어야지.’
똑같은 폼에서 전혀 다른 구종이 튀어나온다.
그나마 커브는 붕 뜨는 느낌이 있어서 가려낼 수 있는데 나머지 구종은 눈으로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거기다 그는 컵스의 최고 타자인 펫 펏호프와 비교해서 그렇게 섬세한 타자도 아니었다.
그는 강력한 힘으로 투수를 찍어누르는 슬러거였다.
‘그렇다고 강한 힘으로 찍어누르기엔 저 괴물의 구위가 샌디와 비교해서 부족한 것도 아니지.’
그렇기에 영 상성이 좋지 못했다.
따악!
2구도 파울.
이번에 튀어나온 것은 너클 커브였다.
‘너클 커브의 구사 비율을 갑자기 늘리다니…….’
앞선 이닝에서 몇 구 던지지 않았던 구종을 갑자기 많이 던지기 시작하니.
레오 알바레즈의 얼굴에 당혹감이 바로 드러났다.
거기다 마무리로 깔끔한 너클볼까지.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시원하게 헛스윙한 레오 알바레즈가 허탈한 표정으로 잠깐 강송구를 바라보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다음 타자는 미키 모레노.
컵스의 주전 이루수.
뛰어난 수비능력과 반대로 올해 0.217의 타율과 4개의 홈런만 때리며 최악의 타격지표를 보여준 타자다.
만약에 컵스가 쓸만한 이루수 자원이 생긴다?
무조건 웨이버 공시로 내놓을 선수 1순위가 바로 미키 모레노였다.
그나마 뛰어난 수비력을 갖추고 있기에 컵스에서 주전을 유지하고 있었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단 3구 만에 끝난 승부.
미키 모레노가 어깨를 축 내리고는 타석에서 물러났다.
그는 타석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우효도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건 좀……. 불쌍한 수준인데?
이윽고 6회 초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타자.
앞선 두 타석에서 강송구에게 꽁꽁 막힌 타자.
펫 펏호프가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워후! 제대로 독이 바짝 올랐는데?
우효는 뱀술을 담가도 되겠다며 중얼거렸다.
왼손을 꺼내든 강송구.
그가 잠깐 펫 펏호프와 시선을 교환한 뒤에 빠르게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초구는 몸쪽 103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빠르게 날아든 공이 조던 델가도의 미트에 깔끔히 안착하면서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스트라이크!”
[중계창]
-와; 어차피 강송구 상대로 점수를 뽑는 놈들이 없으니까; 불법 토토에서는 아예 강송구 피안타로 배팅을 하네;
-그래서 선생님은 몇 피안타에 거셨습니까?
-2피안타.
-안타깝게도 잃으시겠군요.
-ㅋㅋㅋㅋㅋㅋ 2피안타? 잘도 강송구가 오늘 경기에서 2피안타 이상 내주겠닼ㅋㅋㅋ
-오늘 솔직히 5회 초에 맞은 안타 아니었으면 무조건 퍼펙트게임이었음.
-응, 2피안타 넘을 거야.
-강송구를 믿으면 돈이 복사됩니다.
-송멘……!
-정배교여 일어나라!
-아아아! 거룩하신 강송구 님의 예언에 따라 오늘 피안타는 무조건 1피안타로 끝나겠구나!
-송-멘……!
-아니, 토토에 미친 새끼들이 이제 종교까지 만드네;
-국뽕들 상대하기도 바쁜데; 이제 토토에 미친 사이비 교인들도 상대해야 함;
-이제 대한민국은 끝났구나.
-끝나긴 무슨ㅋㅋㅋ 내 역배가 성공할 때까지 대한민국은 절대 안 망한다.
-가불기 개쩌네;
-진짜로 절대 안 망할 듯;
2구째는 바깥쪽 체인지업이었다.
공이 날아든 순간.
펫 펏호프의 배트가 빠르게 휘둘렀다.
따악!
“파울!”
인터넷 중계창을 보던 시청자들의 댓글란이 다시금 시끌시끌해졌다.
이러다가 진짜로 2피안타 나오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5구 승부 끝에 강송구가 기어코 삼진을 잡아내는 순간이 찾아오자 다시금 찬양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중계창]
-우리는 지금 강송구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더 갓엠페러베이스볼지니어스 송.구.캉!
-ㅋㅋㅋㅋㅋ X발! 또 이 새끼들 지랄한다!
-멈춰! 제발 멈춰!
-강송구가 공을 던지니 세상이 갈라지더라.
-그는 야구의 황제다. 그는 야구의 황제다. 그렇기에 콩을 잘 깐다. 그렇기에 콩을 잘 깐다.
-이에에에에에에엥! 삼진 경보! 삼진 경보!
-어휴 X같이 시끄럽네.
-또 이런다! 또!
6회 초가 끝나고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
펫 펏호프를 잡는 순간.
그는 오늘 경기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6회 말부터 컵스가 불펜 투수를 올렸다.
‘컵스의 감독도 경기가 기울었다고 판단했군.’
강송구가 그 모습을 보며 고갤 끄덕였다.
* * *
9회 초.
투 아웃.
오늘 경기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타자인 펫 펏호프가 타석에 들어섰다.
점수는 계속해서 1 대 0이었고.
장타 하나면 작은 기대를 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777 베가스 그라운드’를 찾은 컵스의 원정팬들은 이미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
“저런 투수가 어떻게 동양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야구를 잘하던가?”
“아니야, 우리 마이너리그에 있는 킴은 2개월 전에 더블A에서 싱글A 강등됐거든.”
“거참 개 같은 소리네.”
펫 펏호프는 어떻게든 홈런을 때리거나 득점권까지 나가려고 발악을 했다.
하나.
강송구가 던진 위닝샷에 결국 무너졌다.
-헛스윙 삼진!
-경기 끝났습니다!
-캉이 50마일짜리 슬로우 커브로 펫의 헛스윙을 유도하며 9이닝 완봉승을 거둡니다!
-월드시리즈 1차전의 승자는 라스베이거스입니다!
강송구가 완봉승을 거두는 순간.
‘777 베가스 그라운드’의 외야 쪽에서 폭죽이 터졌다.
월드시리즈 1차전 승리와 강송구의 완봉승을 축하하는 폭죽이었다.
마운드에서 내려온 강송구가 조던 델가도와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한 뒤에 다른 선수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
반대로 컵스의 더그아웃은 푹 가라앉았다.
샌디 가스통은 화를 참을 수 없었는지, 오늘 사용했던 글러브를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는 일찍 더그아웃을 떠났다.
하지만 단 한 선수만큼은 달랐다.
이안 엘런.
그는 정말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른 선수들에게 축하받는 강송구를 바라봤다.
* * *
[라스베이거스 1차전 승리!]
[강송구의 완봉승으로 기선을 제압한 라스베이거스!]
[컵스의 샌디 가스통! 아쉬운 5이닝 1실점 분투!]
[2차전 선발투수 발표! 대니 아비티아 vs 이안 엘런!]
[이안 엘런은 컵스에게 승리를 안겨줄 수 있을까?]
[엇갈린 두 에이스의 만남. 과연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캉과 이안 엘런의 맞대결이 성사될 수 있을까?]
-응, 강송구가 원탑임.
-ㅋㅋㅋㅋ 컵스쉑들 솔직히 안도했쥬? 강송구랑 이안 엘런 맞대결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쥬?
-떽! 어딜 가짜리그 투수가 감히 킹갓제너럴베이스볼엠페러 송.구.캉 님에게 고개를 드느냐?
-아무튼, 강송구가 이김. 아무튼, 강송구가 이김. 아무튼, 강송구가 이김. 아무튼, 강송구가 이김.
-아오! 도배 좀 그만해라!
1차전이 끝나고.
라스베이거스가 승리하자 야구팬들은 이번 시즌도 라스베이거스의 승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2차전이 시작되고.
이안 엘런이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안 엘런 노히터 달성!]
[9이닝 무실점 1볼넷 16K 노히터!]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2차전에서 이안 엘런의 쇼타임으로 승리를 거둔 시카고 컵스!]
[이안 엘런, ‘내 기록보다는 팀의 승리가 기쁘다.’]
-이안신! 이안신! 이안신! 이안신!
-뭐? 안도했쥬? 오히려 강송구가 이안 엘런 안 만난 걸 다행으로 여기라구?
-리포터가 물었다. ‘야구의 신이 강송구라는 야구의 황제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러자 이안 엘런이 답했다. ‘그런 황제 만든 적이 없는데?’
-렛츠고 컵스! 렛츠고 컵스! 렛츠고 컵스!
-뭐? 강송구? 뭐? 강송구? 뭐? 강송구? 뭐? 강송구? 뭐? 강송구? 뭐? 강송구?
-진심ㅋㅋㅋ 설레발 오지게 치넼ㅋㅋ 이래서 국뽕이 욕을 오지게 처먹는 거야.
2차전.
이안 엘런의 노히터가 나왔다.
그의 경악스러운 퍼포먼스에 모두가 놀랐다.
물론,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단은 달랐다.
“그냥……. 구속이 좀 느린 캉이었어.”
“뭔가 충격적이진 않은데……. 뭔가 다른 팀의 타자들이 캉을 상대할 때 어떤 기분인지는 알겠더라.”
“잘하긴 하더라.”
그들은 그저 감탄했을 뿐.
이미 강송구라는 투수를 봐왔기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2차전이 끝났다.
3차전을 위해서 시카고로 원정을 떠나는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단이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비행기에 탑승한 강송구가 조금 분위기가 가라앉은 선수단을 보며 조용히 고갤 끄덕였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