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한계는 없다!(4)
7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저놈은 한계가 없는 건가?”
“제발 좀 무너져라!”
“누가 안타 한 방만 때려줘!”
홈팬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마운드까지 들려왔다.
팀의 중견수인 토미 스티스는 자신의 가족이 ‘토미가 공을 흘리게 해주세요.’라는 외침을 듣고 허탈하게 웃었다.
아무튼.
볼티모어의 홈팬들이 강송구가 무너지길 원했다.
하지만 강송구는 무너지지 않았다.
7회 말의 선두타자를 가볍게 삼진으로 잡아낸 그가 다음 타자를 상대하기 전 가볍게 로진백을 들었다.
“왔다!”
“제발! 제발! 제발!”
“너만 믿는다! 에릭 커!”
“커! 커! 커! 커!”
2번 타자인 에릭 커가 타석에 들어서기 무섭게 간절한 표정의 홈팬들이 들끓었다.
그나마 볼티모어에서 강송구의 공을 때려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타자가 바로 ‘에릭 커’였다.
간절한 홈팬들의 외침.
그리고 초조한 표정의 볼티모어 선수단.
타석에 들어선 에릭 커는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타격자세를 잡았다.
‘어떻게든 하나 때린다.’
그의 두 눈이 번뜩였다.
여기서 지는 순간.
4, 5차전도 쉽지 않았다.
아니, 지더라도 이렇게 허무하게 지면 안 된다.
퍼펙트게임을 허용하는 순간.
볼티모어의 가을야구는 여기서 끝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에릭 커의 두 눈이 번뜩였다.
순간 초구가 날아들었다.
-초구는 97마일의 포심입니다.
-역시, 좋은 패스트볼이 있으니 초구부터 시원시원하게 원하는 코스로 꽂아 넣는군요.
-우타자인 에릭 커 선수에게 다시금 오른손을 꺼내며 상대하는 캉입니다. 이어지는 피치잉! 2구째는 낮게 떨어지는 너클 커브! 그대로 헛스윙! 스트라이크!
-좋네요. 좋은 코스의 공이었어요.
에릭 커는 생각했다.
마운드에 있는 투수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다고.
고작 한 명의 투수일 뿐이다.
그것도 동양에서 온 이방인.
하지만 그 이방인은 올해 약 240이닝을 소화하면서 단 하나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몬스터라고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만원 관중을 이룬 캠든 야즈의 홈팬들이 응원을 보낸다.
그들은 어떻게든 그가 안타를 치길 원한다.
그 분위기가 더욱 에릭 커의 심장을 흔들었다.
투수의 분위기는 물론이고.
경기장을 가득 채운 홈팬들의 기대까지.
에릭 커의 두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 순간에 강송구가 타이밍을 빼앗았다.
슈우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88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체인지업도 아니었다.
그저 느린 똥볼이었다.
그런 공이 에릭 커의 빈틈을 노려 날아들었고.
그대로 에릭 커의 배트를 피해 포수의 미트에 안착했다.
‘오늘은 진짜 글렀네.’
그가 고갤 흔들었다.
오늘 경기는 이미 끝났다.
이 88마일의 패스트볼을 보는 순간.
그는 경기를 포기했다.
타자의 빈틈을 찌르는 비수와 같은 피칭.
그는 저 괴물을 잡아낼 방법이 없었다.
거기다 볼티모어의 가을야구도 끝났다.
에릭 커는 확신했다.
오늘 경기에서 저 악마에게 안타를 빼앗을 타자가 볼티모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곧이어 7회 말의 마지막 타자.
데이비드 코르테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강송구는 좌타석에 들어선 그를 보며 주심에게 글러브를 보여주며 다시금 왼손을 꺼내 들었다.
데이비드는 최대한 강송구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두 눈을 크게 뜨고 마운드를 노려봤다.
‘최대한 외야와 내야 사이에 떨어트린다는 느낌으로 타구를 때려내자.’
그는 이미 장타를 포기했다.
그저 출루만 하자는 마음가짐이었다.
‘어차피 경기는 많이 기울었어. 그저 다음 경기를 위해서 저 괴물의 퍼펙트만 깨자.’
긴장한 표정의 데이비드.
마운드에 선 강송구는 차분하게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이윽고 초구를 지켜보겠단 데이비드 코르테스의 눈에 강송구의 왼손에서 빠져나오는 공이 보였다.
‘초구는 뭐지?’
이게 제일 중요했다.
초구의 구종에 따라 볼 배합의 패턴이 바뀐다.
이윽고 초구가 스트라이크 존에 파고들었다.
“야! 이런 X같인 새끼야!”
“한 가운데잖아! 그것도 92마일짜리!”
“저런 허접한 공을 보고 가만히 있어? 치라고 준 공이잖아! 치라고 준 고오오오옹!”
홈팬들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터졌다.
데이비드의 얼굴도 붉어졌다.
‘제길!’
마치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피칭이었다.
그가 강송구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2미터에 가까운 거인이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었다.
스윽.
알게 모르게 눈을 살짝 내린 데이비드 코르테스.
그는 생각했다.
‘절대 쫄아서 먼저 시선을 피한 게 아니야.’
그저 조명이 너무 환해서 그런 거야.
데이비드가 자기합리화에 들어갔다.
그가 타석에서 살짝 빠져나와 정신을 가다듬었다.
다시금 타석에 들어선 그가 마운드를 바라봤다.
‘하나 친다.’
이번에는 꼭 하나 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바짝 홈플레이트에 붙었다.
조던 델가도는 그런 데이비드를 보며 비웃었다.
‘진짜 조급한가 보네. 그 데이비드 코르테스가 온몸으로 초조함을 드러내는 거 보니.’
2구째.
강송구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의 왼손에서 불이 뿜어졌다.
슈우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92마일의 포심 뒤로 날아든 103마일의 포심.
데이비드 코르테스가 이를 꽉 물었다.
“XXX같은 XXX새끼.”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런 욕을 내뱉을까?
조던 델가도가 킬킬 비웃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데이비드 코르테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새끼가?’
조던 델가도를 노려보는 데이비드.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그의 눈에 초조함이 서렸다.
마운드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거인의 시선이 더욱 그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이어지는 3구째.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볼!”
그는 참아냈고.
강송구가 던진 공이 존에서 살짝 빠졌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불리한 카운트.
데이비드의 두 눈이 굳어졌다.
‘배트를 내밀까?’
공 하나를 더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지켜보기엔 강송구의 제구력이 걸렸다.
아무리 오른손보다 떨어지는 제구력을 갖춘 왼손이라지만, 적어도 존에서 넣고 빼는 것은 가능한 수준이었다.
‘참자.’
그래, 참자.
하지만 강송구의 다음 공이 날아든 순간.
그의 배트가 벼락같이 튀어나왔다.
본능이었다.
따악!
“파울!”
아슬하게 공을 때려낸 데이비드 코르테스.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 배트를 내밀지 않았으면 볼인데!’
이건 실수였다.
그냥 참았으면 카운트는 2-2까지 가는 거였다.
아쉬움이 가득한 데이비드.
그는 완전히 말렸다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강송구의 5구째가 날아들었다.
‘어떻게든 최대한 커트한다!’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배트를 휘두른 데이비드.
하지만 공은 그가 원하는 코스로 날아들지 않았다.
정말로 상대 투수와 포수가 얄미웠다.
슈우우우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헛스윙 삼진.
데이비드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동시에 중계진이 큰소리로 외쳤다.
-세 타자 연속 삼진! 캉이 오늘도 어마어마한 쇼를 오늘 경기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그레이트 쇼’에 어울리는 경기.
강송구가 모자를 고쳐 쓰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 * *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8회 말.
타석에 선 선두타자.
코리 시거가 혀를 내둘렀다.
그는 주심을 슬쩍 바라봤다.
하지만 주심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저 스트라이크 콜을 외칠 뿐.
그만큼 정교한 투구였다.
-경이로운 피칭입니다.
-캉이 8회 말의 선두타자인 코리 시거를 상대로 초구부터 정말로 매서운 고을 던지고 있습니다.
-코리 시거가 타석에서 신중하게 배트를 휘두르고 있지만……. 솔직히 상대되질 않네요.
-말씀드리는 순간 3구째!
-아! 이번 공은 살짝 빠집니다.
-투 스트라이크 원 볼.
-캉이 자세를 잡습니다.
-4구째! 그대로 스트라이크 아웃! 캉의 스플리터에 그대로 삼진을 허용하는 코리 시거!
그걸로 끝이었다.
코리 시거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 이닝의 두 번째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4명의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낸 강송구를 보며 침을 꼴깍 삼키는 헬리엇 라모스.
그가 우타석에 들어섰다.
-철저하네요.
-캉이 또 글러브를 바꿉니다.
-좌타자에겐 무조건 왼손, 우타자에게는 오른손을 꺼내며 캉이 경기를 지배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헬리엇 라모스가 4구 승부 만에 삼진을 헌납합니다.
순식간에 지워진 아웃 하나.
8회 말도 이제 단 하나의 아웃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번 이닝의 마지막이 될 타자.
트리스탄 카사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다시금 왼손으로 바꾸는 강송구.
그의 철저한 모습에 캠든 야즈를 찾은 홈팬들이 질린다는 기색으로 야유를 보냈다.
-와……. 진짜 오늘 볼티모어를 작살낼 생각이구나!
우효도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갤 흔들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타석에 들어선 트리스탄 카사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그는 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조건 하나 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니 당연히 몸도 되려 홈플레이트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더그아웃에 앉아 있은 볼티모어의 크리스 리차드 감독은 그야말로 똥을 씹는 표정을 하며 ‘위대한……. 위대한 감독의 꿈이……!’를 반복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슈우우우욱! 펑!
강렬한 포심이 날아든 뒤.
바로 슬라이더가 날아들었다.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가 되었고.
곧이어 강송구가 위닝샷을 던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깔끔하게 헛스윙을 하며 물러나는 트리스탄 카사스의 표정은 오히려 개운해 보였다.
더는 저 괴물을 보지 않는다는 안도감.
그 사실이 그의 표정을 밝게 만들었다.
물론, 그 표정을 보고 몇몇 볼티모어의 진성 팬들은 ‘패기도 없고, 이길 생각도 없는 한심한 놈!’이라며 불탔지만…….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팬들은 이해했다.
상대가 누구인가?
정규시즌 내내 무실점이었던 투수다.
동양인이 아니었다면 전미가 지금보다 더 난리였을 기록을 보유한 투수가 바로 저 강송구란 투수였다.
이제 남은 이닝은 단 1이닝.
더그아웃에 들어온 선수들을 보며 주장인 랜디 에드워즈가 환히 웃었다.
“곧 삼진이 22개라고?”
* * *
9회 말이 드디어 찾아 왔다.
남은 아웃은 단 3개.
강송구가 마운드에 오르니 모두가 입을 닫았다.
캠든 야즈를 찾은 볼티모어의 팬들은 기도했다.
누군가 실수하기를 말이다.
중견수가 있는 근처의 외야에서는 ‘토미야! 한 번만 공을 놓쳐줘!’라는 말이 간간이 들려왔다.
그때마다 토미 리브스의 표정은 묘하게 바뀌었다.
아무튼.
강송구가 타자를 바라봤다.
타석에는 7번 타자.
헤이든 멜란디즈가 들어섰다.
그의 두 눈에는 독기가 서렸다.
어떻게든 출루를 하겠단 의지가 강력했다.
하지만 그런 헤이든도 2구 연속으로 날아든 너클볼 다음으로 날아든 99마일의 포심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캉! 또 삼진! 또 삼진입니다!
-7명의 타자를 연속으로 잡아냅니다! 그것도 삼진으로!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다음 타자는 대타자 스테판 아포스텔.
셔턴 아포스텔의 형인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동생보다 타격 능력이 떨어지지만.
장타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물론, 대타자가 나왔음에도 어려울 것이 없었다.
포심-커터-포심-슬라이더.
이렇게 공을 던져 2-2의 카운트를 만든 뒤.
오늘 경기에서 던지지 않은 포크볼을 던져서 너무나도 깔끔하게 삼진을 잡아냈다.
이제는 진짜 퍼펙트까지 하나의 아웃만이 남은 상황.
“저 괴물은 진짜 한계가 없는 건가?”
“또 퍼펙트? 질리지도 않아?”
“제발! 제발! 하나만 맞아줘!”
마지막 타자는 조쉬 카맥.
이번에도 대타자였다.
그의 몸은 드릴처럼 덜덜 떨렸다.
그걸 보는 순간 우효는 생각했다.
-끝났네.
그래, 끝났다고.
이윽고 강송구고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93마일의 포심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97마일의 포심 패스트볼.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99마일의 포심 패스트볼.
타자가 헛스윙 삼진으로 무너지는 순간.
라스베이거스의 더그아웃에 있던 모두가 마운드에 있는 강송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주먹을 불끈 쥔 조던 델가도.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다른 외야수들과 하이파이브하는 토미 리브스.
시큰둥한 표정의 우효까지.
강송구가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에서 다시금 퍼펙트게임을 기록하며 자신에게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