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강송구가 쓰러지질 않아!(3)
점수는 2 대 0.
카디안 스타우트의 홈런으로 점수가 벌어졌다.
평소라면 ‘아, 강송구를 상대로 2점? 졌네.’라는 생각으로 경기를 풀어나갔을 화이트삭스의 선수들은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 5차전이었다.
2 대 2의 상황에서 한 경기만 이기면 챔피언십시리즈로 진출할 수 있는데, 그 어떤 프로가 2점이 나왔다고 포기하겠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화이트삭스의 선수들은 이 2점을 따라잡기 위해 온갖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이유는 오늘 강송구의 컨디션이 썩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매 이닝 주자를 내보낸다.
심지어 득점권까지 나간 주자도 있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을 것 같던 완벽한 투수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행복회로를 돌리지 않을까?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화이트삭스의 선수들도 비슷했다.
그들은 강송구를 무너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투심이었지?”
“특별한 수준의 공은 아니었어. 조금만 익숙해지면 금방 때려낼 수 있을 거야.”
“집중하자. 오늘이라면 저 괴물을 상대로 2점을 빼앗는 것도 가능할 것 같으니까.”
4회 초.
강송구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선두타자는 2번 타자인 크리스 모건.
앞선 타석에서 안타를 친 경험을 떠올린 그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배트를 붕붕 휘둘렀다.
‘고작 투심 패스트볼 하나 생겼을 뿐이야.’
달라질 것은 없었다. 거기다 그는 이번 타석에서는 초구를 노릴 생각이었다.
이렇게 말이다.
빠악!
-쳤습니다!
-초구를 노려친 크리스 모건!
-장타코스! 그대로 2루까지 달리는 크리스 모건!
-그대로 세이프!
-크리스 모건이 초구를 잘 노렸습니다.
좋은 타구였다.
앞선 타석과 다르게 제대로 맞은 타구였다.
크리스 모건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곧 굳어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3번 타자인 크리스 도우링이 삼구삼진.
따악!
“아웃!”
4번 타자인 오스틴 메도스가 내야 뜬공으로 아웃.
순식간에 2개의 아웃을 잡아낸 강송구였다.
무사 2루에서 2사 2루가 되는 순간.
크리스 모건의 표정은 와락 구겨졌다.
따악!
-다시 높게 뜨는 공!
-그래도 중견수가 잡으면서 4회 초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캉입니다.
-매 이닝 주자를 출루시키고 있지만……. 역시 재능이 있는 투수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대체로 감독들이 이런 투수를 좋아하죠. 쉽게 무너지지 않아서 견적을 내기 쉽게 만들어주는 투수를 말이죠.
-화이트삭스. 정말 쉽지 않습니다. 분명히 골리앗이 휘청거리고 있는데 결정타를 계속 놓치고 있는 다윗 같아요.
4회 초를 깔끔히 막고 마운드를 내려온 강송구.
그는 생각보다 야수들의 집중력이 좋다는 사실을 이번 이닝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범타를 유도해야지.’
야구는 투수 혼자 할 수 없는 법.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 * *
분명히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강송구는 무너지지 않았다.
매 이닝 타자를 출루시킨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까지 무실점을 지켰다.
화이트삭스의 타자들은 생각했다.
왜 우린 저 괴물을 못 쓰러트릴까.
동시에 걱정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지금의 강송구도 무너트리지 못한다면…….
다음 시즌 컨디션이 좋은 강송구를 상대로는 제대로 안타 하나나 만들 수 있을까?
이윽고 5회 초가 찾아왔다.
점수는 계속해서 2 대 0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
타석에는 5번 타자 오찌 알베스.
강송구가 초구를 던졌다.
따악!
“파울!”
이닝을 소화할수록 좋지 않았던 컨디션이 어느 정도 선까지 다시금 올라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구위도 아까보다는 제법 좋았다.
‘초구만 제대로 들어가도 반은 먹고 들어간 거지.’
만족스러웠다.
이제야 원하는 피칭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어지는 2구째.
이번에는 바깥쪽 커브였다.
부우우웅!
힘차게 배트를 휘두른 오찌 알베스의 배트가 시원하게 허공을 갈랐다.
마지막 3구째는 몸쪽 투심 패스트볼.
따악!
-높게 뜨는 공!
-그대로 캉이 공을 잡아내면서 오늘 경기에서 오랜만에 선두타자를 깔끔히 잡아낸 캉입니다.
-경기 초반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거기다 오늘 경기에서 꺼내든 투심 패스트볼이 어느 정도 분석된 캉의 피칭에 조금 더 다양한 레퍼토리를 만들어주고 있고요.
-말씀드리는 순간, 첫 타자를 깔끔히 잡아낸 캉이 5회 초의 두 번째 타자를 맞이합니다.
-화이트삭스의 5번 타자인 바디 하우스.
현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한 투타 겸업 선수.
바디 하우스가 타석에 서서 이를 꽉 물었다.
‘차라리 큰 타구를 노리자.’
그는 생각했다.
팀 배팅으로는 저 괴물을 무너트릴 수 없다고.
상대방을 무너트릴 한방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초구를 던진 강송구.
그의 오른손에서 빠져나온 포심 패스트볼이 빠르게 높은 코스로 날아들었다.
이윽고 바디 하우스가 배트를 휘둘렀다.
빠악!
“파울!”
초구는 파울이었다.
2구째는 낮게 떨어지는 커브.
바디 하우스의 배트가 또 크게 돌아갔다.
이번에는 아까와 조금 달랐다.
제법 높게 뜨는 공.
중계진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높게 뜨는 공!
-멀리 갑니다! 멀리 갑니다!
-그대로! 아! 파울입니다!
-어마어마한 파울 홈런이 나왔습니다. 바디 하우스 선수에게는 정말로 아쉬운 타구일 것 같아요.
중계진의 말처럼.
바디 하우스는 눈을 질끈 감았을 정도로 아쉬워했다.
‘하필이면 왜 저쪽으로……!’
조금만 오른쪽으로 쏠렸다면 홈런이 되었을 타구였기에 그 아쉬움은 더 깊게 바디의 심장에 새겨졌다.
그리고 강송구는 그런 바디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빠르게 조던 델가도와 사인을 교환했다.
-뭐야? 두 번째 비밀무기를 여기서 꺼내게?
‘지금 꺼내도 상관없다.’
강송구가 지난 2년간 준비한 두 번째 비밀무기를 이번 승부에서 꺼내 들었다.
와인드업에 들어간 투수.
바디 하우스가 자세를 잡았다.
그는 어떤 공이 날아들어도 자신이 있었다.
앞선 2개의 타구가 모두 장타였다.
물론, 파울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윽고 강송구의 손을 떠난 공.
그가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체인지업이다!’
체인지업이라고 확신하면서.
그의 생각처럼 강송구가 던진 구종은 체인지업이었고, 그가 생각했던 타이밍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공의 궤적이 그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아!’
그래, 이 공은 마치 그 구종과 같았다.
미튜브에 존재하는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써클 체인지업 스폐셜 영상에서 보여주던 궤적과 흡사했다.
‘써클 체인지업!’
부우웅!
시원하게 헛스윙을 한 바디 하우스.
동시에 주심이 시원스럽게 콜을 외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 * *
[중계창]
-뭐? 역배가 뜬다고?ㅋㅋㅋㅋㅋ
-애국배팅은 항상 승리한다.
-강송구! 강송구! 강송구! 강송구! 강송구!
-타이탄! 타이탄! 타이탄! 타이탄! 타이탄!
-위풍당당하던 역배충을 어디 갔음? 갑자기 채팅창이 넘모넘모 조용해졌는데용?
-왜 조용해졌겠어? 다 한강으로 갔으니 그렇짘ㅋㅋㅋ
-침팬지보다 배팅을 못 하는 사람이 있다? 뿌슝빠슝!
-또 삼진! 좋구요!
-진짜 오늘 강송구 컨디션도 좋지 않고 볼 배합도 패턴이 읽힌 느낌이었는데; 이걸 야수들 수비랑 새롭게 장착한 투심, 써클 체인지업으로 무실점으로 막아내네;
-화이트삭스의 타선은 이제 어떠려나 몰라; 컨디션 좋지 않은 강송구도 못 터는데; 다음 시즌에 컨디션 좋은 강송구를 상대로는 1점도 못 만들겠네.
-그게 문젠갘ㅋㅋㅋ 역배가 졌다구욬ㅋㅋ
-미쳐버린 놈들;;
-거인펀치!거인펀치!거인펀치!거인펀치!거인펀치!거인펀치!거인펀치!거인펀치!거인펀치!거인펀치!
-도대체 왜 인터넷 중계창에는 정상인이 없는 거야?
-그건 당신이 정상인이 아니기 때문이지.
써클 체인지업이 나왔다.
그것도 중요한 순간에.
당연히 화이트삭스의 분위기는 축 가라앉았다.
컨디션이 좋지 못한 강송구를 상대로 아직 잠수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8회 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아마도 이번 이닝이 마지막 이닝일 것이다.
-벌써 경기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놀랍게도 점수는 계속해서 2 대 0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전 캉이 7회 초도 못 버티겠거니 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경기 피안타만 8개를 기록한 투수가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있다는 부분이 흥미롭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분명히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캉의 피칭이 엉망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늘 경기 더블플레이가 3번 트리플플레이가 1번 나왔었죠?
-맞습니다.
병살타가 3개 나오면 이기기 쉽지 않다는 야구계의 속설이 제대로 들어 맞는듯한 경기였다.
거기다 오늘 경기에서는 삼중살.
트리플플레이도 나왔었다.
그만큼 화이트삭스의 타선이 꽉 막혔다는 뜻이고.
클러치 상황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보여줬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표정은 더욱 좋지 못했다.
고작 2점이었다.
그 2점의 차이를 줄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화이트삭스의 더그아웃을 더욱 참담하게 만들고 있었다.
슈우우욱! 펑!
-삼진! 경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캉이 삼진을 잡아나가고 있습니다.
-좋지 않았던 컨디션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이 아까보다 훨씬 묵직한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8회 초의 두 번째 타자를 상대로 외야 플라이로 잡아내는 캉!
-순식간에 2개의 아웃을 잡아내는 캉입니다.
순식간에 지워진 2개의 아웃.
강송구는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를 바라봤다.
-이번 타자가 마지막 타자네.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벌써 111구나 던졌다.
이번 이닝이 끝나고 9회 초.
마무리가 올라설 것이다.
타석에는 대타자인 오웬 디오다티가 들어섰다.
케나다 출신의 좌타자로, 이번 시즌 0.241의 타율과 10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거포다.
플래툰으로 뛰며 그리 많은 경기에서 뛰지 못했지만, 저 10개의 홈런 모두가 클러치 상황에서 때려낸 홈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큰 경기에 강한 타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강송구가 왼손을 꺼내 들었다.
타자에게 글러브를 낀 오른손을 보여주자 오웬 디오다티의 표정이 바짝 굳어졌다.
‘좌타자에 강한 날 상대로 좌완을 꺼낸다고?’
얼마나 자신을 얕본단 말인가?
으드드득.
절로 이가 갈렸다.
이윽고 초구가 날아들었다.
날선 제구력을 보여주던 100마일의 공이 아닌 조금 가운데로 몰리는 공이었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따악!
“파울!”
배트가 웅웅- 하고 울렸다.
구위에 밀린 것이다.
2구째는 좌타자 바깥쪽 슬라이더.
빠지는 유인구였기에 그는 배트를 내밀지 않았다.
“볼!”
역시나 공은 크게 빠졌다.
‘역시……. 제구력이 흔들린다.’
그래, 이 괴물도 사람다운 부분이 있었다.
오웬의 두 눈이 번뜩였다.
하나만 제대로 노리겠다고 다짐한 순간.
그가 노릴 만한 먹음직한 공이 날아들었다.
그것도 그가 좋아하는 코스로 말이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오웬의 배트가 시원하게 휘둘러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타구음.
틱!
제대로 빗맞은 타구음이 들려오는 순간.
오웬은 생각했다.
‘아! 투심 패스트볼이었구나.’
이 괴물은 왼손으로도 투심을 던질 수 있구나.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이미 늦었다.
공은 이미 강송구의 글러브로 쏙 들어갔으니까.
결과는 내야 뜬공.
강송구가 8회 초를 깔끔히 막아냈다.
그리고 9회 초에 마운드에 오른 바비 홀.
그가 모처럼 안정감 있는 피칭을 하며 마지막 1이닝을 깔끔하게 지워냈다.
-경기 끝났습니다!
-캉이 쓰러지질 않았습니다! 화이트삭스가 어떻게든 캉을 무너트리려 했지만! 그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라스베이거스가 디비전시리즈 5차전에서 승리하며 힘겹게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합니다!
라스베이거스의 승리로 끝난 경기.
모두가 승리를 만끽했다.
그리고 오늘 고생한 강송구가 조던 델가도와 가볍게 포옹을 한 뒤에 야수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강송구가 험난했던 2032시즌 포스트시즌의 두 번째 등판을 승리로 끝낼 수 있었다.
8이닝 8피안타 2볼넷 6K 무실점.
강송구의 무실점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