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강송구가 쓰러지질 않아!(1)
한번 탄 기세는 무섭다.
2차전에서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은 마이크 암스트롱에게 막혀 있던 혈을 뚫기라도 하듯이 맹렬히 배트를 휘둘렀다.
빠아아아악!
-넘어갑니다!
-이걸로 점수는 7 대 0까지 벌어집니다!
-이거죠! 이게 라스베이거스의 공격력이거든요?
2차전 선발로 등판한 화이트삭스의 4선발 투수인 파블로 로페즈의 눈에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는 자비 없이 투수를 두들겨 팼다.
한 번의 만루 홈런 뒤.
다시 쓰리런을 허용한 파블로 로페즈는 2.1이닝 7실점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가지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라스베이거스의 분노는 계속 이어졌다.
-또 쳤습니다!
-카디안 스타우트의 맹타!
-다시 점수는 11 대 1까지 벌어집니다!
4회에 또 터진 장타.
카디안 스타우트를 시작으로 뒤를 이어 라스베이거스의 강타자들이 무섭게 배트를 휘둘렀다.
[라스베이거스 디비전시리즈 2차전을 19 대 5로 가져오다!]
[벼랑 끝에 몰린 화이트삭스! 믿을 수 있는 건 홈에서 치러지는 3, 4차전에 등판하는 에이스 원투펀치뿐!]
[프란치스코 감독, ‘3, 4차전에 총력을 다할 것!’]
[화이트삭스는 프란치스코 감독의 말처럼 3, 4차전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까?]
홈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라스베이거스.
하지만 화이트삭스의 홈.
그것도 에이스 원투펀치가 등판한 경기에서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없었다.
-룬 쟈오! 대만 출신의 이 투수가 기어코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을 8이닝 동안 4점으로 묶으며 팀의 승리를 이끕니다!
-윌리 알비드레즈가 7이닝 4실점으로 룬 쟈오만큼의 호투를 보여줬지만……. 결국 바비 홀이 4대4의 상황에서 솔로포를 맞으며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3차전은 상대 1선발의 호투와 화이트삭스의 막판 집중력에 마무리인 바비 홀이 솔로 홈런을 맞으며 패배.
-켄 크로윈이 1.1이닝 7실점으로 무너집니다.
-아……. 라스베이거스엔 좋지 않은 소식인데요.
4차전 선발인 켄 크로윈이 제구력 난조로 강판.
물론, 상대 선발인 라몬 도큐도 2.1이닝 6실점으로 조기 강판당하면서 경기의 흐름은 타격전으로 흘렀다.
7 대 7이라는 점수 차이로 10회 연장까지 간 승부.
하지만 마지막에 웃은 팀은 화이트삭스였다.
-끝내기 만루포오오오오오!
-이걸 해냅니다! 이걸 에릭 롱마이어가 해냈습니다!
박준호가 2번의 호수비로 투수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주었으나, 마운드에 오른 데이비드 리빙스톤의 멘탈이 크게 흔들린 상태에서 나온 끝내기 만루포였다.
4차전까지 승리하며 경기는 2대2까지 온 상황.
화이트삭스의 분위기는 활활 끓어올랐다.
반대로 연이은 패배로 라스베이거스는 가라앉았고.
하지만 묘하게 분위기는 라스베이거스가 여유로웠다.
[5차전 선발은 강송구.]
[2대2의 상황에 나온 파이널 포스! 화이트삭스는 과연 강송구를 무너트릴 수 있을까?]
[에릭 롱마이어, ‘5차전에서는 꼭 승리할 것!’]
[강송구, ‘팀을 위해 노력할 것.’]
그리고 디비전시리즈 5차전이 있는 날.
라스베이거스의 홈.
777 베가스 그라운드에 관중이 몰렸다.
홈구장 여러 곳에는 5차전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가운데 최종 보스의 모습으로 우뚝 선 강송구.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화이트삭스 선수들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무슨 포스터가 이렇게 잘 빠졌지?
5차전 포스터에 나온 강송구의 모습은 그야말로 파이널 보스라는 말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화이트삭스 팬 포럼]
-야, 오늘 이길 수 있을까?
-무조건 이겨야지. 아무리 캉이 괴물이라도 결국 사람인 이상 틈이 존재할 수밖에 없어.
-제발! 제발! 마이크 암스트롱! 8이닝까지 무실점으로 버텨줘! 1차전처럼만 던져줘!
-Plz! 이제 무너질 때가 됐잖아!
-너희 작년에 우승했잖아! 올해는 좀 봐줘라!
우효가 고갤 끄덕였다.
스마트폰으로 본 화이트삭스 팬 포럼의 분위기를 보면 포스터에 그려진 강송구의 모습이 이해가 갔다.
-진짜 최종 보스잖아.
등판을 준비하는 강송구의 등 뒤로 느껴지는 기이할 정도의 집념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우효는 한입 가득 사과를 물어뜯고는 생각했다.
오늘 경기.
화이트삭스가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하려면 강송구라는 최종 보스를 쓰러트려야 하겠지만.
어쩌면 그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우효의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 * *
마이크 암스트롱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다.
5차전까지 말이다.
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만 잘하면 이길 수 있다.’
3, 4차전의 승리로 화이트삭스의 선수단은 제법 자신감을 채우며 여기까지 왔다.
거기다 이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드디어 저 괴물을 어느 정도 분석했으니까.
강송구는 정규시즌 약 240이닝을 던졌다. 당연히 몇몇 약점이나 특징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앞선 1차전에서는 상대의 폼이 심상치 않아 이런 분석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다를 것이다.
더그아웃에 들어서는 화이트삭스의 타자들도 오늘만큼은 저 괴물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오늘 꼭 이겨서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한다.”
프란치스코 감독의 말에 선수들이 고갤 끄덕였다.
그들의 눈에 자신감이 흘렀다.
야구가 왜 통계의 스포츠라 불리겠는가?
“저 괴물도 무너질 때가 됐지.”
“할 수 있어. 분석도 잘 됐고.”
“우리도 충분히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야.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챔피언십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어.”
“볼티모어랑 텍사스도 2 대 2라며?”
“저쪽도 우리처럼 5차전까지 왔네.”
“자! 모두 오늘 경기에서 이겨서 저쪽 승자랑 붙어보자고! 저 괴물을 무너트리기 위해 준비한 것도 많잖아!”
잠시 뒤.
국민의례와 시구가 끝났다.
마운드에 천천히 오르는 강송구.
홈경기장에 가득 찬 라스베이거스의 팬들이 힘찬 박수를 보내며 그들의 에이스를 반겼다.
타석에 들어서는 1번 타자.
에릭 롱마이어.
그의 두 눈이 번뜩였다.
‘전력분석관의 도움과 피칭머신을 활용해서 패스트볼 계열 구종의 궤적은 눈에 익혀놨다.’
이게 화이트삭스가 자신감을 가진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자신감의 두 번째는 분석을 통해서 조던 델가도의 볼 배합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는 점이었다.
‘최근 조던 델가도의 경기 초반 리드는 몸쪽 포심 패스트볼로 시작한다. 그 뒤의 구사 비율은 스플리터와 커터, 싱커순이지. 마지막으로 너클 커브와 체인지업도 생각해야 한다.’
물론, 강송구의 공을 알아도 때리기 어렵다.
하지만 뭐가 날아올지 모르던 때와 적어도 어떤 공이 날아오리라 예상이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결과를 만든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쳤습니다!
-3구째에 날아든 스플리터를 때려낸 에릭 롱마이어가 가볍게 1루를 밟습니다.
-화이트삭스가 정말 많이 준비한 것 같습니다!
-이번 시즌 거의 처음이죠? 캉이 1회 초……. 그것도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맞는 모습을 저는 처음 보거든요?
-저도 처음 봅니다. 그만큼 캉이 대단한 투수라는 거겠죠. 말씀드리는 순간 화이트삭스의 2번 타자인 크리스 모건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에릭 롱마이어의 안타를 본 크리스 모건의 두 눈에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들의 준비가 틀리지 않았으니까.
무사 1루.
강송구의 초구가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바깥으로 빠지는 초구 커브였다.
‘역시! 분석은 틀리지 않았다.’
초구를 지켜본 크리스 모건이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은 그는 다음 공을 기다리며 짧게 배트를 잡았다.
‘어떻게든 주자를 진루시킨다.’
아무리 상대가 분석되었어도 괴물은 괴물이다.
왜 저 괴물이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이나, 괴물, 파이널 보스라는 수식어로 불리는지 기억해야 했다.
2구도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3구는 몸쪽 체인지업이었다.
‘체인지업 다음에 대체로 하이 패스트볼이 날아든다. 이건 조던 델가도가 볼 배합을 할 때 가져가는 패턴이다.’
차분히 기다리고 배트를 휘둘러야 했다.
4구째.
그의 예상처럼 하이 패스트볼이 날아들었다.
따아악!
제대로 맞은 타구.
장타 코스는 아니었지만, 1루 주자인 에릭 롱마이어를 득점권인 2루로 보내기에는 적절한 타구였다.
순식간에 무사 1, 2루가 된 상황.
라스베이거스의 홈팬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캉이 갑자기 왜 저래?”
“진짜 무너질 때가 됐다고 했는데…….”
“그게 오늘 경기라고?”
-캉이 1회 초부터 힘든 승부를 이어나갑니다.
-어느 정도 볼 배합을 읽은 것 같습니다. 거기다 캉이 던지는 공의 궤적에 익숙해진 느낌이고요.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도 동요했다.
저 괴물이 흔들리는 모습을 처음 봤으니까.
하지만 강송구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는 침착하게 다음 타자를 맞이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우효도 무사 1, 2루의 상황임에도 딱히 감흥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언제 보여줄 거야?
‘뭘?’
-새로운 무기.
‘알고 있었나?’
-네가 뭔가를 준비하지 않을 놈이 아니니까.
오래 붙어 있어서일까.
강송구가 우효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우효도 어느 정도 강송구를 파악했다.
“지금 보여줘야지.”
-너무 빨리 보여주는 거 아니야?
“아버지가 말씀하셨지. 원래 비밀무기란 것은 빠르게 보여준 뒤에 그걸 활용해서 상대를 박살을 내는 게 비밀무기라고.”
-그거 내가 알던 비밀무기랑 좀 다른데?
초구는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볼!”
오랜만에 보는 강송구의 도망가는 피칭.
화이트삭스의 3번 타자인 크리스 도우링은 강송구의 도망가는 피칭에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래, 너도 당황스럽겠지.’
1회 초에 이렇게 위기에 빠진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혹스럽겠지.
크리스 도우링의 두 눈이 반짝였다.
2구째는 몸쪽 컷 패스트볼.
따악!
“파울!”
“흐…….”
아쉬웠다.
이건 충분히 때려낼 만한 공이었다.
하지만 크리스 도우링은 확신했다.
1차전과 다르게 오늘은 때려낼 자신이 있다고.
3구째.
‘싱커다. 무조건 싱커다.’
상대는 무조건 싱커를 던질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삼진을 잡거나 병살을 유도하기에 가장 적합한 구종이 싱커였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싱커를 기다렸다.
이윽고 강송구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의 오른손을 떠난 공이 우타자인 크리스 도우링의 몸쪽으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싱커다!’
확실했다.
그는 몸쪽으로 공이 날아든 순간.
강송구의 싱커 궤적에 맞춰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공이 조금 빠른데?’
그가 생각했던 싱커 구속보다 빠르다.
거기다 더 이상한 것은 싱커처럼 종으로 가라앉지 않고 좀 더 횡적인 무브먼트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따악!
제대로 빗맞은 공.
그 공이 유격수인 카디안 스카우트의 앞으로 굴러갔다.
그대로 3루로 던져진 공.
삼루수인 알프레도가 잡아서 다시 2루로.
그리고 2루에서 조쉬 마이어스가 1루로.
-아웃! 아웃! 아웃!
-캉이 1회 초의 무사 1,2루의 위기를 삼중살로 막아냅니다! 캉이 무실점으로 1회 초를 끝냅니다!
-캉의 침착한 피칭도 빛났지만, 역시 라스베이거스의 내야진도 굉장히 탄탄합니다!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
삼중살을 때린 크리스 도우링이 멍한 표정으로 그런 강송구를 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그 공은 무슨 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