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두 번째 포스트시즌(2)
메이저리그에서의 두 번째 포스트시즌.
강송구의 출발은 상당히 좋았다.
깔끔하게 이닝을 정리한 그에게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이 하이파이브를 해주며 같이 기뻐해 주었다.
그리고 1회 말이 시작되었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99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든 뒤.
97마일의 싱커가 낮게 깔렸다.
따악!
“파울!”
-마이크 암스트롱의 싱커가 정말 매섭네요.
-그 예전 조던 힉스가 떠오르는 싱커입니다. 정말 빠르고 꺾이는 각도 굉장합니다. 물론, 조던 힉스가 던진 105마일의 싱커와 비교하면 구속이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던 힉스처럼 볼넷을 남발하는 유형의 투수는 아닙니다. 거기다 체력도 선발로 뛸 만큼 좋은 선수죠.
-말씀드리는 순간 3구째.
-낮게 떨어지는 커브!
-좋네요. 최고 80마일까지 나오는 커브.
-4구째는 다시 싱커입니다.
-순식간에 2-2의 카운트.
라스베이거스의 선두타자.
조쉬 마이어스가 모처럼 경외 어린 표정으로 마운드에선 마이크 암스트롱을 바라봤다.
‘진짜 죽여주는 싱커네.’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싱커.
이런 공은 쉽게 칠 수 없다.
슈우우욱! 따악!
-유격수 앞으로 굴러가는 공!
-그대로 잡아서! 1루로! 그리고 아웃!
-정말 끝내주네요. 98마일의 싱커를 보여주다가 그것보다 더 낮게 휘는 92마일짜리 싱커를 던졌습니다.
-이게 마이크 암스트롱의 위력이거든요?
“죽여주는 공이네.”
“98마일짜리 싱커랑 92마일짜리 싱커를 나눠서 던진다고? 저 녀석 무슨 야구의 신이라도 되는 거야?”
“그나마 제구력이 좋지 않아서 다행이지. 저런 공을 4분할로 나눠서 던진다고 생각하면…….”
“그런 선수가 여기에 있잖아.”
켄 크로윈의 말에 모두가 강송구를 바라봤다.
‘하긴……. 캉은 저런 공을 던지면서 제구도 끝내주지.’
‘거기다 체력적으로 부족한 것도 없고. 이안 엘런처럼 던지는데 부상을 달고 사는 것도 아니고.’
‘캉은 그야말로 완벽한 투구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송구는 그만큼 대단한 투수였다.
이윽고 아웃을 당한 조쉬 마이어스가 더그아웃에 들어오면서 씩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잘 던지는데……. 캉만큼은 못 던지더라.”
* * *
박준호는 생각했다.
이번 시즌 제법 알찼다고.
0.268의 타율과 10개의 홈런.
뜨문뜨문 선발로 등판하며 쌓은 기록치고는 제법 훌륭하게 쌓을 수 있었던 기록이었다.
아마 이번 시즌에 플래툰이 아니라 풀로 뛰었다면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했다.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라고.
내년이면 버틸 수 없다고.
서른셋의 나이.
메이저리그의 넘치는 재능을 상대로 이제는 삐걱거리는 자신의 몸으로는 이겨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간절했다.
한국시리즈에서 기록한 2번의 우승.
그 2번의 우승이 남긴 아쉬움 때문에 그는 더욱 이번 포스트시즌에 갈증을 느꼈다.
1회 말이 끝났다.
카디안 스타우트도.
호세 피자로도 땅볼을 때리며 아웃을 당했다.
2회 초.
강송구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박준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기회는 분명히 온다.’
야구는 꼴찌도 3할의 승률을 보장하는 스포츠다.
동시에 아무리 상대 투수보다 실력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10번 중에서 1번은 타자에게 안타를 때려낼 기회를 주는 것이 야구라는 스포츠였다.
‘그 안타를 만들어내느냐 못 만들어내느냐는 타석에 선 타자의 집중력에 따라 달라진다.’
박준호가 눈을 감았다.
앞선 이닝.
타자들을 상대로 싱커를 던지는 마이크 암스트롱의 공을 계속해서 떠올리며 타이밍을 더듬었다.
그러는 사이에 끝이 난 2회 초.
다시금 마운드에 오르는 마이크 암스트롱.
-무시무시한 싱커입니다.
-벌써 5타자 연속 범타를 유도하고 있는 마이크 암스트롱! 오늘 그의 싱커가 미친 듯이 춤을 춥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제프 브레넌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마이크 암스트롱!
-2회 말이 깔끔히 끝납니다!
그야말로 투수전이었다.
3선발임에도 에이스 못지않은 피칭을 보여주고 있는 마이크 암스트롱의 피칭에 원정까지 따라온 몇몇 화이트삭스의 팬들이 크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역시! 마이크야!”
“제발 오늘 7이닝까지 무실점으로 이어줘!”
“큰 거 안 바란다. 딱 7이닝만 버텨주라!”
하지만 3회 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오르자 화이트삭스의 원정팬들이 질색하는 표정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송구가 3회 초를 모두 삼구삼진으로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놀랍습니다! 캉! 그야말로 압도적인 피칭!
-이게 AL 최고의 투수인 캉입니다.
-메이저리그 최초로 규정이닝을 무실점으로 소화한 투수의 힘입니다.
-오늘 정말로 멋진 투수전입니다.
“저 미친놈은 지치지 않나?”
“이러다가 마이크가 먼저 무너지겠어.”
“제발…… 제발!”
과거 RPG 게임에 나오는 흉악한 라스트 보스처럼 화이트삭스의 타선을 틀어막고 있는 강송구였다.
원정팬은 물론이고.
더그아웃에서 강송구를 지켜보던 화이트삭스의 선수들도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갤 흔들었다.
박준호는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마운드를 바라봤다.
3회 말.
마이크 암스트롱이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그가 던지는 싱커의 타이밍을 계속해서 속으로 되뇌던 박준호가 다시금 두 눈을 감았다.
* * *
우효가 체리를 한입 물었다.
오물오물.
-이제 왼손으로 던지려고?
‘슬슬 오른손에 익숙해졌으니까.’
-잔인한 자식.
3회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송구가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고는 천천히 마운드에 올랐다.
앞선 3이닝 동안 오른손으로 공을 던진 그가 이제는 왼손으로 공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상대 타자들의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왼손을 꺼낸다고?”
“Fxxk!”
“겨우 90마일 중반의 구속에 익숙해졌는데……. 100마일 근처의 강속구를 때려내라고? X같은 상황이군.”
4회 초.
타순이 한 바퀴 돈 상황.
두 투수 모두 0의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타석에는 에릭 롱마이어가 들어섰다.
앞선 타석에서는 썩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출루를 할 생각이었다.
-초구는 바깥쪽 컷 패스트볼.
-99마일의 컷 패스트볼입니다.
-놀랍네요. 마이크가 던지는 98마일의 싱커도 놀라운데……. 이번에는 캉이 99마일의 커터를 던집니다.
-오늘 경기에서 가장 불쌍한 이들은 저 두 투수의 변형 패스트볼을 상대하는 두 팀의 타선인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3구째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이번에는 스플리터였네요.
-96마일의 스플리터가 작렬합니다!
99마일의 커터.
103마일의 포심.
96마일의 스플리터.
단 3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멍한 표정의 에릭 롱마이어.
앞선 타석에서 얻어맞았을 때보다 정신적으로 더 충격에 받은 모습이었다.
[중계창]
-긴마쉑ㅋㅋㅋㅋ
-긴마이어 수듄ㅋㅋㅋㅋ
-와; 진짜 오늘 투수전 X되네;
-진짜 타자들 죽어 나간다; 강속구 투수 둘 사이에서 그냥 나락까지 가버리네;
-오늘 점수가 나오긴 할까?
-한 6~7회쯤에 나올 듯.
-캬! 진짜 죽인다. 오늘 타자들 다 죽었다.
지독한 투수전이 계속 이어졌다.
에릭 롱마이어 다음으로 타석에 들어선 타자.
크리스 모건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
‘아까 오른손으로 던질 때도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100마일에 근접한 구속을 가진 왼손을 상대하라고?’
새로운 투수를 상대하는 기분을 느낀 그가 초구부터 시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물론, 결과는 썩 좋지 않았지만.
따악!
“파울!”
배트에서 전해지는 저릿한 통증.
강송구의 압도적인 구위에 밀린 크리스 모건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었다.
2구째.
낮게 파고드는 너클 커브.
생각도 못 한 구종에 허무하게 스트라이크를 내준 그는 이어진 강송구의 위닝샷에 삼진을 내주었다.
-헛스윙! 삼진!
-캉의 위닝샷은 하이 패스트볼이었습니다.
-여기서 너클 커브를 던지고 바로 하이 패스트볼을 던지며 크리스 모건의 타이밍을 빼앗았어요.
이어진 크리스 도우링과 승부.
제법 끈질긴 크리스 도우링이 8구까지 버티며 풀카운트 승부까지 이끌었으나, 강송구가 던진 94마일의 고속 슬라이더에 헛스윙하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깔끔히 4회 초를 지운 강송구.
이어서 4회 말을 막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마이크 암스트롱이 100마일의 포심을 던지며 타자를 압박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우효가 중얼거렸다.
-오늘 타자들이 죽어 나가겠네.
이 작은 고슴도치의 말처럼 두 팀의 타자들은 두 투수에게 그야말로 ‘도륙’을 당하고 있었다.
그나마 라스베이거스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볼넷을 얻어내며 조금씩 마이크 암스트롱에게 체력적인 부담을 안기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화이트삭스의 타선은 달랐다.
1루를 아무도 밟지 못했다.
5회 초.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가 삼자범퇴로 이닝을 깔끔히 지운 순간까지도 그들은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도대체 저 공을 어떻게 때려낼까?
“X같네.”
“저러다가 7회부터 너클볼만 던지면 미칠 것 같아.”
“부정 탄다. 그런 말 하지 마.”
“진짜 7회부터 너클볼만 던진다면, 네 얼굴에 해바라기 씨를 던져버릴 거야. 램지.”
“진짜 그럴 것 같아서 무섭네.”
-화이트삭스의 5번 타자. 오찌 알베스의 스윙!
-날카로운 타이밍이었지만 캉의 슬라이더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카운트는 3-1의 상황. 앞선 타석과 다르게 캉이 상당히 신중하게 승부하고 있습니다.
-5구째, 낮게 꽂힌 싱커!
-풀카운트까지 가는군요.
‘선구안이 좋은 타자다. 주의해야겠어.’
강송구는 자신의 유인구 대부분을 거른 오찌 알베스의 정보를 머릿속에 정리했다.
그리고 꺼내든 위닝샷은 바깥쪽 체인지업.
패스트볼 계열의 구종만 떠올리던 오찌 알베스의 허를 제대로 찌른 마구였다.
따악!
“아웃!”
그대로 일루수 앞으로 굴러간 공.
엘빈 하인리히가 가볍게 공을 잡고 1루 베이스를 밟으며 5회 초의 두 번째 아웃을 잡아냈다.
다음 타자는 6번 타자 바디 하우스.
-투타 겸업으로 타자로는 0.283의 타율과 13개의 홈런을 때렸고, 불펜으로는 17경기에 등판해서 2승 2패 6홀드 ERA 3.29를 기록했습니다.
투타 겸업.
오타니 이후로 메이저리그에 투타 겸업으로 살아남은 유일한 선수가 바디 하우스였다.
물론, 성적은 조금 아쉬웠다.
그렇다고 마냥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화이트삭스에서 부족한 불펜을 채워주기도 하고, 준수한 수준의 내야 수비능력을 갖춘 만능 유틸리티 선수였으니까.
아마 메이저리그의 모든 감독이 하나쯤은 데리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선수가 바디 하우스였다.
‘거기다 내구성도 뛰어나서 잔 부상도 없었지.’
저런 유형이 제법 길게 롱런하는 편이다.
물론, 지금은 강송구의 밥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낮게 떨어지는 커브였다.
바디 하우스는 분하다는 듯이 배트로 자신의 헬멧을 툭툭 치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5회 초도 무실점!
-계속해서 0의 행진이 이어지는 두 팀입니다.
5회 말.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에 변화가 생겼다.
5번 타자부터 시작하는 라스베이거스의 공격.
원래 제프 브레넌이 들어서야 할 타석에 한 동양인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자세를 잡았다.
-여기서 라스베이거스가 대타자를 내보냅니다.
-주노 팍! 올해 라스베이거스에서 플래툰으로 뛰며 좌투수를 상대로 제법 준수한 실적을 올린 타자입니다.
-우타자를 상대로도 기본은 해주는 타자죠. 아무래도 미키 스토리 감독은 베테랑의 경험을 우선으로 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젊은 제프 브레넌보다는 주노 팍이 포스트시즌의 경험은 훨씬 많으니까요.
-그렇죠. 아무리 한국 프로야구의 포스트시즌이었다지만, 그 경험을 우습게 볼 수 없습니다.
-문제는 주노 팍이 강속구에 약하다는 점입니다.
-97마일 이상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를 상대로 타율이 1할을 넘지 않습니다. 9푼밖에 되질 않아요.
-과연 한국에서 온 베테랑인 주노 팍이 어떤 결과를 만들 건지 지켜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키 스토리 감독은 생각했다.
이건 도박에 가까운 행동이라고.
하지만 박준호의 눈을 본 순간.
그는 작년이 떠올랐다. 저런 눈을 한 타자는 항상 기대 이상의 결과를 만들었다.
포스트시즌에는 저런 선수가 필요하다.
그래, 미친 선수.
스타플레이어가 아님에도 가을야구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며 질주하는 선수.
올해는 저 선수가 키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고.
이성보다 직감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들려오는 큰 타구음.
미키 스토리 감독의 직감을 맞아떨어졌다.
2루 베이스를 밟고 주먹을 움켜쥔 박준호.
오늘 경기.
드디어 처음으로 주자가 득점권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