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필리건(2)
2회 초.
에제키엘 벤투라가 마운드를 밟았다.
필리건들은 앞선 이닝.
강송구의 압도적인 피칭을 본 뒤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평소보다 더 걸걸한 목소리로 응원을 내지르고 있었다.
“벤투라! 벤투라!”
“필리스의 에이스라면 이 정도 피칭은 기본이지!”
“커모오오오온!”
그가 선두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자 그들은 에제키엘 벤투라를 무슨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영접했다.
물론.
그다음 타자에게 안타를 맞는 순간.
신이 아니라 천하의 쌍놈이 된 것은 비밀이다.
-야이 XX같은 놈아!
더 웃긴 것은 필리건과 함께 있던 우효도 점점 ‘필리건화’ 되면서 입이 걸걸해지고 있단 점이었다.
강송구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만약에 우효가 호크스의 팬이 아니라 부산에 있는 티탄즈의 팬이었다면 볼 만했겠다고.
-에제키엘 벤투라! 다시 병살을 유도합니다!
-오늘 정말 컨디션이 좋아 보입니다. 특히 체인지업이 잘 떨어지는 날에 많은 땅볼을 유도하는 벤투라거든요?
-말씀드리는 순간 내야 뜬공!
-2회 초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에제키엘 벤투라입니다.
우효가 앞발을 불끈 쥐었다.
-그뤄치이이이이! 그레이트 벤투라! 어나더 벤투라! 도치코인의 원수! 강송구를 때려 눕혀버려!
하지만 그런 우효의 기쁨도 잠깐이었다.
슈우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2회 말의 선두 타자를 삼진으로.
따악!
“아웃!”
두 번째 타자는 내야 뜬공으로.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 타자는 루킹 삼진으로.
순식간에 이닝을 정리한 강송구를 보고는 우효가 하늘을 보며 울부짖었다.
-아아! 어찌하여 야구의 신은 날 고슴도치로 만들고, 저 망할 인간에게 저런 재능을 주었나이까?
그러는 사이 마운드에 다시 오른 에제키엘 벤투라가 1사 2루의 상황에서 9번 타자 강송구를 맞이하게 되었다.
곧이어 들려오는 타격음.
빠아아악!
-넘어갑니다!
-캉이! 에제키엘 벤투라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냅니다! 갑자기 터진 투런포오오오!
-여기서 홈런이 나옵니다!
강송구의 홈런이 나온 순간.
시티즌스 뱅크 파크를 가득 채운 홈팬들이 어마어마한 야유를 홈런을 때린 강송구와 홈런을 맞은 에제키엘 벤투라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게 필리건이지.”
“와……. 귀가 얼얼한 수준이야.”
“진짜 내일 벤투라는 차에 불이 붙을 수 있겠는데?”
“그래도 팀의 에이스인데 홈런 한 방을 맞았다고 차에 불을 지를 미친 팬이 어디 있겠어?”
박준호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으나.
주변에 있는 선수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준호는 그 침묵에서 진실을 느낄 수 있었다.
열성적인 팬들의 야유가 끝나고.
에제키엘 벤투라가 남은 이닝을 깔끔히 잡자 야유를 내뱉던 홈팬들은 언제 욕설과 야유를 내뱉었냐는 듯이 힘겨운 사투를 벌였던 벤투라에게 박수와 환호성을 날려주었다.
“기죽지 마! 벤투라!”
“필리스의 남자는 이런 거에 고개 숙이면 안 된다고! 고갤 들어! 벤투라! 넌 우리의 에이스야!”
“집중하면 잘할 수 있잖아! 커모모온!”
오락가락한 필리건들의 목소리를 들은 라스베이거스의 선수 몇몇은 트레이드나 FA로 팀을 바꿀 때 절대 내셔널리그로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조금 적응이 된다.”
“뭔가 저 오락가락한 홈팬들의 반응만 무시하면 뭐……. 그리 무섭지 않네.”
“난 벌써 한쪽 귀에 귀마개 꽂았어.”
그래도 이제 조금 적응이 되는지 젊은 선수들의 표정에 여유가 담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은 몰랐다. 필리스 원정이 지옥인 이유가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3회 초.
에제키엘 벤투라의 공이 타자의 몸을 맞췄다.
타석에 선 호세 피자로는 알 수 있었다.
저 망할 투수가 일부러 맞췄구나.
앞선 타석에서 외야 뜬공을 홈런으로 착각해서 시원하게 배트 플립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꼰대 새끼.’
일단은 참았다.
그래, 실수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필리스의 선수들이 거친 플레이로 라스베이거스의 젊은 선수들을 흔들기 시작했다.
“진짜 경기 X같이 하네.”
“원래부터 필리스가 좀 그래.”
“하긴, 팬이 저 지랄인데……. 저렇게라도 플레이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풀 수 없겠지.”
“그래도 동업자 정신이 없어.”
“일단 참는다.”
그리고 5회 초에 사건이 터졌다.
5회 초.
2사 1, 3루의 상황.
한없이 흔들리던 에제키엘 벤투라가 이번에도 타석에 선 호세 피자로를 향해 공을 던졌다.
그리고 두 번은 참을 수 없던 호세 피자로가 에제키엘 벤투라에게 항의했다.
에제키엘은 모자를 벗으며 고의가 아니라며 사과를 했지만, 그의 부루퉁한 표정은 거짓을 고하지 않았다.
“헤이! 장난해?”
엉덩이 쪽이어서 벤치 클리어링까지 가지 않았을 뿐이지, 만약 머리로 공이 날아들었으면 크게 싸웠을 상황이었다.
거기다 호세 피자로가 참은 것도 있었다.
주심이 길게 고민하고는 벤투라에게 경고했다.
“한 번만 더 타자의 몸을 맞추면 퇴장이야.”
호세 피자로를 내보내며 만루가 된 상황.
에제키엘 벤투라는 가볍게 삼진을 잡아내며 5회 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계창]
-필리스 개 더럽게 하네.
-원래 저 친구들이 플레이가 거칠어.
-그 팬에 그 선수지ㅋㅋㅋㅋ
-야! 저 필리스의 마스코트인 파나틱이 몸 흔드는 거봐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나틱 쉑ㅋㅋㅋ 엉덩이에 공 맞은 호세 피자로가 보이는 1루 관중석으로 달려가서 트월킹 추고 있넼ㅋㅋㅋ
-진짴ㅋㅋ 필리스 수듄ㅋㅋㅋㅋ
-선수도, 팬도, 마스코트도 미쳐있는 팀.
-앜ㅋㅋㅋㅋ
-진짜 필리스는 미워할 수 없어.
-그래도 강송구한테 빈볼 날리면 뒤진다.
-그날로 바로 필리스 SNS에 국뽕전사들 출동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죽었다구
-필리스 근데 감당할 수 있겠어?
-뭐가?
-강송구의 103마일짜리 포심이 머리로 날라와도 살아나갈 자신이 있는지 진짜 궁금하네.
-???: 아차!
-ㅋㅋㅋㅋㅋ 필리스쉑 ㅈ됐눜ㅋㅋㅋ
-???: 이제부터 서로 죽여라.
좋지 않은 두 팀의 분위기.
언제라도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
그런 가운데 강송구가 마운드로 향했다.
오늘 경기 2개의 피안타와 1개의 볼넷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보여주고 있는 그를 상대로 5회 말의 선두타자는 7번 타자 저지 고메즈였다.
왼손을 꺼내든 강송구.
저지 고메즈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앞선 이닝에서 빈볼이 나왔다.
당연히 보복구가 나와야 할 상황.
그 대상이 자신이 될 수 있기에 저지 고메즈의 입은 더욱 바짝 말라가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몸쪽으로 날아든 103마일짜리 포심.
저지 고메즈는 직접 본 103마일의 구속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생각했다.
‘이거 진짜 X됐다.’
그러고는 에제키엘 벤투라를 원망했다.
고작, 배트 플립 하나 했다고 삐졌다면서.
2구째.
몸쪽 코스로 날아드는 공.
“으어억!”
저지 고메주가 몸을 뒤로 뺐다.
우타자 몸쪽으로 바짝 붙는 공.
하지만 공은 정확히 몸쪽 높은 코스의 끝에 걸치며 다시 한번 주심의 스트라이크 콜을 불러냈다.
“스트라이크!”
저지 고메즈가 침을 삼켰다.
‘103마일짜리 포심도 무섭지만……. 99마일짜리 컷 패스트볼은 그것보다 더 무섭다고.’
그렇다고 빈볼을 맞으면 뛰쳐나갈 자신도 없었다.
마운드에서 압도적인 근육을 뽐내는 투수를 보고 저지 고메즈는 이미 의욕을 잃었다.
그냥.
무사히 이번 타석을 넘기고 싶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캉! 멋지게 삼진을 잡아냅니다!
-역시……. 캉의 왼손은 명불허전이네요. 완벽한 타이밍에 꺾이는 커터와 103마일에 달하는 포심으로 타자를 눌러버렸습니다.
다음 타자는 조쉬 아레돈도.
그도 다를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앞선 저지 고메즈와 달리 그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어차피 다음 타자가 벤투라인데……. 설마 나에게 빈볼을 던지겠어? 그냥 가만히 있다가 아웃이나 당해야지.’
슈우우욱! 펑!
103마일짜리 공이 날아들었다.
그 공을 보며 조쉬 아레돈도는 고갤 끄덕였다.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저 공에 맞으면 무조건 죽는다.
2구째도 101마일짜리 포심이었다.
그는 그저 조용히 공을 바라봤다.
그를 향한 필리건들의 야유가 들려와도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세를 유지했다.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조쉬 아레돈도의 헛스윙 삼진!
-캉의 위닝샷은 스플리터였습니다!
-정말 제대로 꺾인 공이었죠?
-완벽에 가까운 스플리터였습니다.
순식간에 지워진 두 개의 아웃 카운트.
필리건들이 허무하게 삼진을 당한 조쉬 아레돈도를 향해 온갖 욕설과 야유를 내뱉었다.
“아래 거 때라!”
“넌 필리스의 선수가 아니야!”
“우우우우우우우!”
하지만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조쉬 아레돈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두 투수가 만났다.
타석에 들어서는 에제키엘 벤투라.
그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누구보다 지금 덜덜 떨고 있었다.
처음 빈볼을 던질 때.
그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상대가 배트 플립을 하길래 기분이 나빠서 몸쪽으로 공을 던진 것이다.
‘그래도 난 투수니까 머리로 공을 던지지 않겠지.’
[중계창]
-얔ㅋㅋㅋ 벤투라 쫄았는데?
-쫄?ㅋㅋㅋㅋㅋㅋ
-나라도 쫄겠다. 강송구 왼손은 던졌다 하면 100마일인뎈ㅋㅋㅋㅋㅋ 진짜 훅 가지.
-아! 살고 싶으면 알아서 기세요.
-벤투라는 빈볼 던지다가 빈볼로 가게 생겼넼ㅋㅋ
-그래도 강송구가 인격자라서 봐줄 거다.
-하긴……. 강송구가 상남자지. 딱 103마일짜리 포심 엉덩이 쪽으로 던지는 거로 봐줄 듯.
-캬! 싸다! 고작 103마일짜리 포심을 엉덩이로 맞으면 빈볼 2개 맞은 거 잊어준다니!
-미친놈들ㅋㅋㅋㅋㅋ
다행히 강송구의 초구는 바깥쪽이었다.
잔뜩 긴장했던 벤투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하지만 안도감도 잠깐이었다.
그는 강송구가 던진 초구의 구속을 보곤 다시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캉의 초구는 83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입니다.
-포심이 맞나요?
-카메라를 느리게 돌려도 포심입니다.
-와……. 여기서 80마일 초중반의 포심이 나올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글러브를 낀 손은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인 상황에서 나온 83마일의 포심 패스트볼!
-굉장한 오프 스피드입니다.
에제키엘 벤투라는 알 수 있었다.
이건 강송구가 보내는 조롱이라고.
뿌드득.
‘내가 이딴 허접한 공도 못 때릴 것 같아?’
2구째.
어쩌면 벤투라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묘한 공이 강송구의 손끝에서 튀어나왔다.
“스트라이크!”
“X같은 새끼.”
2구째는 51마일짜리 슬로우 커브.
벤투라의 눈썹이 크게 떨렸다.
분노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조던 델가도는 그런 벤투라를 보며 피식 웃었다.
“꼬우면 너도 이렇게 던져보던가.”
“Fxxk you.”
“원한다면 제대로 던져달라고 해야겠지.”
3구째.
단단히 뿔이 난 에제키엘 벤투라를 상대로 강송구가 꺼내 든 것은 몸쪽 깊게 파고드는 94마일짜리 고속 슬라이더였다.
“으아아악!”
갑자기 몸쪽으로 꺾이며 날아드는 슬라이더에 당황한 에제키엘 벤투라가 그대로 타석에서 나자빠졌다.
물론, 강송구가 던진 슬라이더는 완벽했다.
주심은 가볍게 삼진콜을 외쳤다.
“스트라이크 아웃!”
잠깐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벤투라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주심에게 따졌다.
“주심! 저 녀석이 보복구를 던지려고 했다니까요?”
“아니, 스트라이크야. 제대로 들어왔어.”
“Fxxk!”
벤투라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우우우우우!”
“XX같은 새끼야! 그걸 못 때려?”
“마지막 공을 빼곤 ‘제발 쳐주세요!’라며 날아든 공인데 그걸 지켜만 봐? 네가 그러고도 프로야?”
-망할 벤투라! 멍청한 벤투라! 엉망진창 벤투라!
필리건들의 야유와 욕설.
그리고 마지막은 우효의 질책까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벤투라의 수난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