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176화 (176/198)

#176. 오래 기다렸지?(3)

7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오르자 에인절스의 홈인 스타디움 오브 애너하임을 가득 채운 홈팬들이 입을 꾹 닫았다.

상대 팀 투수임에도 오늘 경기에서 정말 멋진 피칭을 보여준 강송구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타석에는 1번 타자 루이스 로버츠가 들어섰다.

오늘 경기에서 멋진 호수비를 보여준 그는 아직 타석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퍼펙트게임은 안 돼. 무조건 막아야 해.’

아무리 팀이 탱킹을 하고 있어도 이런 경기에서 압도적으로 지게 되면 다음 시즌에도 영향을 끼친다.

정말이다.

고작 한 경기라고 생각할 선수도 있지만.

몇몇 어린 선수들은 이 경기에서 겪은 패배를 머릿속으로 기억하며 다음 시즌에 또 라스베이거스를 상대했을 때 크게 흔들리며 무너질 확률이 높았다.

그걸 어떻게 잘 아느냐고?

루이스 로버츠도 그랬으니까.

자기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니까.

그렇기에 어떻게든 끊어야 했다.

그는 순간 번트까지 생각했다.

‘욕을 먹어도 출루가 중요해.’

하지만 강송구는 그에게 번트를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101마일짜리 포심을 몸쪽 근처로 던졌다.

-기습번트!

-하지만 번트가 실패합니다.

-너무 빠른 공이었어요. 거기다 루이스 로버츠 선수도 스스로 망설인 것 같았습니다. 자세가 조금 좋지 않았어요.

우우우!

스타디움 오브 애너하임까지 따라온 몇몇 라스베이거스의 원정팬들이 야유를 내뱉었다.

2구째는 몸쪽으로 파고드는 컷 패스트볼.

이번에는 힘껏 배트를 휘두른 루이스는 높게 떠오른 타구를 보며 이를 악물고 1루로 달렸다.

물론,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아웃!”

-내야 뜬공!

-캉의 커터를 노렸지만 높게 뜨는 공!

-그대로 이루수가 처리하면서 아웃!

-캉이 7회 말의 첫 번째 아웃을 깔끔히 잡아냅니다.

벌써 15개의 삼진을 잡아낸 강송구다.

여기서 삼진에 더 욕심을 낸다면 충분히 역사에 남을 기록을 세울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강송구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7회 말부터 그의 피칭은 변했다.

굳이 삼진을 잡으려 들지 않았다.

‘그 어떤 선수도 8월의 무더위 속에서 계속해서 삼진을 잡는 피칭을 이어나갈 수는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야수들의 도움을 받을 때였다.

-오늘 캉의 공이 더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대로 각오를 다진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2번 타자인 JJ 빌리데이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내야 뜬공으로 타석에서 물러난 루이스가 터덜터덜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타석에는 2번 타자 JJ 빌리데이가 들어섰다.

곧이어 투수와 타자의 승부가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인절스의 선수 하나가 시선을 돌려 더그아웃에 들어온 루이스에게 물었다.

“루이스! 뭔가 버릇 같은 거 못 봤어?”

“못 봤어.”

“주의해야 할 구종은? 나 8회 말에 대타로 출전할 것 같은데……. 도저히 방법이 없는 것 같네.”

“왼손으로 던질 때 우타자 바깥쪽으로 빠지는 커터가 너무 치명적이야. 각도 제법 좋아서 고속 슬라이더처럼 느껴지더라.”

“미치겠군.”

“제구는 어때?”

“그걸 물어서 뭐해? 저길 봐.”

루이스가 턱짓을 한 곳을 바라보니 강송구가 끈질긴 바깥쪽 승부 끝에 16번째 삼진을 잡아내는 장면이 보였다.

“Fxxk.”

“오늘따라 더 미쳤네.”

“잡을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자신도 있지.”

“영혼만? 난 내 땅콩도 내줄 수 있어.”

“미친놈.”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7회 말의 마지막 타자인 벤 린드가 불리한 카운트에 몰리며 위기에 빠졌다.

이번 시즌 37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는 강타자인 벤 린드의 표정을 썩 좋지 않았다.

자신을 상대로 오른손을 꺼내든 강송구.

고작 94마일 근처의 포심 패스트볼에 그는 볼썽사납게 배트를 허공에 휘두를 뿐이었다.

‘제길……!’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자신을 상대로 17번째 삼진을 잡으면서도 표정에 변화가 없다는 점이었다.

자신을 잡아냈을 때.

다른 투수들은 작게나마 주먹을 움켜쥐며 좋아하는데, 저 망할 괴물은 당연하다는 듯이 마운드를 내려가고 있었다.

-캉이 7회 말도 깔끔이 끝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인 것 같습니다. 오늘 캉이 역사를 쓸 것처럼 보입니다. 캉의 컨디션이 정말 좋아 보입니다.

중계진은 호들갑을 떨었다.

아직 6개의 아웃을 남은 상황.

8회 초.

에인절스의 불펜투수가 마운드를 밟았다.

* * *

[중계창]

-ㅋㅋㅋㅋㅋ 왔다.

-오래 기다렸지? 이게 퍼.펙.트.게.임이라고?

-역배에 배당 박은 흑우 없제?

-아무렴ㅋㅋㅋ 역배에 건 흑우가 어떻게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X새끼들...

-엌ㅋㅋㅋㅋㅋㅋㅋ

-토토충 아웃ㅋㅋㅋㅋㅋㅋ

-아! 넘모넘모 달달하구욘ㅋㅋㅋ

-오래기다렸다궄ㅋㅋㅋ 시즌 2번째 퍼펙트게임이자 MLB 진출 후 통산 4번째 퍼펙트게임 달성하겠넼ㅋㅋ

-진짜 대한민국에 이런 선수가 나올 줄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저런 육체를 타고났지?

-진짜 개쩌네;

-와 하이라이트 봤냐? 103마일 포심이 날아드니까. 에인절스 루이스가 쫄아서 움츠러드는 거?ㅋㅋㅋ

8회 말.

강송구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타석에는 4번 타자.

대니 하트필드가 타석에 들어섰다.

올해 메이저에 콜업된 젊은 애송이.

더블A 시절.

28개의 홈런을 기록한 대니는 콜업된 이번 시즌에 17개의 홈런을 때리며 메이저리그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탱킹에 들어간 에인절스의 희망이라 불리고 있었다.

아! 물론 지금은 애송이일 뿐이다.

슈우우욱! 펑!

“홀리 카우.”

강송구의 초구를 본 순간.

대니 하트필드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오른손으로 던져 구속이 90마일 중반대가 나옴에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공이었다.

-캬! 진짜 공이 춤을 추네.

우효도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였다.

특히 컷 패스트볼의 움직임이 환상적이었다.

강송구도 그 사실을 어렴풋이 느껴서 그런지는 몰라도 7회 말을 시작으로 천천히 컷 패스트볼의 비중을 늘렸다.

따악!

“파울!”

2구째는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힘겹게 스플리터를 퍼 올린 대니 하트필드는 1루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공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타이밍은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공이 떨어지는 타이밍이 다른 것 같았다.

3구째.

바깥쪽 컷 패스트볼.

따악!

“파울!”

어떻게든 공을 커트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4구째.

강송구가 던진 체인지업에 대니 하트필드가 시원하게 헛스윙을 하고는 타석에서 물러났다.

벌써 18번째 삼진을 잡아낸 강송구.

범타를 유도하려 했었지만.

상대 타자들의 조급함 덕분인지 생각보다 경기 막판까지 시원하게 삼진을 잡아낼 수 있었다.

-다음 타자는 네이트 스타우딩거.

-이번 시즌 0.288의 타율과 27개의 홈런을 때린 젊은 좌익수입니다.

-수비가 조금 아쉬운 것을 제외하면 정말로 뜨거운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는 네이트 스타우딩거를 상대로 캉이 과연 어떤 식으로 승부를 이어나갈지 궁금합니다.

원래라면 상위타순에 배치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타자가 5번 타순에 배치되었다.

‘문제 될 건 없지.’

강송구가 자세를 잡았다.

와인드업.

초구부터 날카로운 공이 날아들었다.

거기다 오늘 경기에서 꺼내 들지 않았던 포크볼과 너클볼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미친 새끼.’

네이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여기서 이런 공을 던질 줄 꿈에도 몰랐다.

포크볼이라니?

그리고 너클볼이라니?

이게 끝이 아니었다.

두 구종 다음에 날아든 95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에 네이트 스타우딩거가 삼진을 허용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우우웃!”

오늘 경기 19번째 삼진.

완전히 녹아웃된 타자.

강송구가 모처럼 주먹을 움켜쥐었다.

6번 타자 데이비드 플레처.

젊은 투수들 다음에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는 제법 경력이 쌓인 베테랑이었다.

투 아웃 상황.

강송구는 타석에 들어서는 노장을 보며 다시 오른손에 글러브를 꼈다.

-캉이 왼손을 꺼내 듭니다.

-이번 승부가 8회 말에 가장 중요한 승부처라고 생각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다.

그저 노장이기에 주의한 것뿐이다.

강송구가 초구를 던졌다.

날카롭게 꺾이는 컷 패스트볼.

98마일의 커터가 날아들었다.

잠깐 공을 지켜본 데이비드 플레처.

그가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틱!

“파울!”

묵직한 구위.

데이비드가 눈을 찌푸렸다.

‘이제 좀 지칠 때가 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아직도 이렇게 구위가 쌩쌩해?’

피가 바짝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금 바깥쪽으로 날아드는 공.

따악!

“파울!”

쌩쌩하다.

이러다가는 진짜 대기록의 희생양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걱정처럼 강송구는 깔끔히 떨어지는 커브를 던져 20번째 삼진을 잡아냈다.

8회 말이 삼진 3개로 끝이 난 것이다.

-삼진! 삼진입니다!

-캉이 이제 대기록까지 단 3개의 아웃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어메이징합니다!

호들갑을 떠는 중계진들.

9회 초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도 타석에서 제대로 집중하질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9회 말.

마지막 이닝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첫 번째 타자를 7구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아낸 강송구가 다음 타자를 상대로 초구를 던졌다.

날카롭게 꺾이는 커브.

오렐비스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다시금 날아드는 공.

이번에는 슬라이더였다.

따악!

“파울!”

기계처럼 공을 던지는 강송구.

타석에 선 오렐비스의 입이 바짝 마르고 있었다.

‘제발……. 출루만 하자!’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높게 떠오르는 타구.

중견수인 토미 리브스가 침착하게 타구를 잡았다.

이제 남은 아웃은 단 하나.

모두의 시선이 마운드로 향했다.

타석에는 대타자가 들어섰다.

데이브 누노.

“데이브 하나만 때려줘!”

“네 한 방을 보여줘! 절대 대기록을 내주지 마!”

“Fxxking!”

“출루만 하자!”

홈팬들의 간절한 외침.

강송구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데이브 누노를 바라보다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뛰어난 공을 던지는 투수다. 천천히 기다리자.’

데이브 누노는 그런 강송구를 보며 우선 공을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슈우우욱! 퍼엉!

“스트라이크!”

초구가 날아들었다.

데이브 누노의 눈썹이 움찔하고 떨렸다.

‘91마일짜리 포심?’

여기서 갑자기 왜 89마일의 공이 날아들까?

상대가 아무리 오른손으로 던지고 있다지만.

이 정도 구속을 던지는 투수는 아니었다.

‘속임수일 확률이 있다.’

그는 더욱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바깥쪽으로 날아드는 패스트볼 계열의 공을 노린다. 나라면 큰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어.’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데이브.

하지만 강송구의 2구째는 몸쪽으로 날아들었다.

“볼!”

깊게 틀어박힌 컷 패스트볼.

그다음은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커브였다.

데이브가 원하는 공은 날아들지 않았다.

따악!

“파울!”

“볼!”

“파울!”

끈질긴 승부가 이어졌다.

강송구는 숨을 크게 내쉬며 다시금 손에 충분히 송진을 바르며 다음 투구를 준비했다.

점점 몸쪽 코스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타자.

상대는 조금씩 바깥쪽 코스와 체인지업이라는 구종을 머릿속에서 잊기 시작했다.

물론, 의식은 하고 있을 것이다.

바깥쪽으로 위닝샷이 날아들 것이라고.

하지만 그 구종이 체인지업이라는 것은 모를 것이다.

적당히 카운트가 쌓이자 조던 델가도가 사인을 보냈다.

여기서 끝내자는 뜻이었다.

고갤 끄덕이는 강송구.

이윽고 그의 오른손에서 빠져나온 공이 우타자의 바깥쪽 낮은 코스로 날아들었다.

패스트볼과 다를 것이 없는 투구폼.

데이브 누노가 확신을 하고 배트를 휘둘렀다.

슈우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주심의 21번째 삼진 콜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경기의 끝을 알리는 콜도 함께 외쳐졌다.

그 순간 조던 델가도가 마운드로 달려들었다.

-삼진! 삼지이이인!

-해냈습니다! 캉! 캉! 캉이 시즌 2번째 퍼펙트게임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에 또 다른 역사를 썼습니다!

-캉이 21K 퍼펙트게임을 기록합니다!

홈팬들도 강송구의 퍼펙트게임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오늘 경기의 주인공인 강송구.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제법 오래 걸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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