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오래 기다렸지?(1)
-결국! 승리를! 따냅니다!
-역시……. 대단합니다! 캉! 시즌 18승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181이닝 무실점도 이어나갑니다.
-놀랍습니다. 현대 야구에서 이런 기록이 나올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데드볼 시대에도 나오지 않았던 기록이죠?
-맞습니다. 아마추어 경기에서도 이런 기록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9이닝 16K 무실점 완봉승.
강송구가 9회 말을 깔끔히 지우는 순간.
양키스의 홈이 조용해졌다.
막을 수 없는 재해와 같은 수준이었다.
“하……. 진짜 저런 투수를 어떻게 이겨내라고.”
“작년이 오히려 해볼 만했어. 그래도 그때는 실점이라도 했으니 말이야.”
“저 괴물을 상대로 이기려면 무조건 9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티면서 연장까지 끌고 가야 한다는 뜻이네. 그게 가능해?”
“투구수를 최대한 잡아먹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아.”
양키스의 선수들은 물론.
오늘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생각했다.
강송구를 잡기란 정말 힘들겠다고.
그래도 마냥 포기할 수 없었다.
포스트시즌에 어떻게든 만날 팀이고.
라스베이거스를 꺾어야만.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다.
강송구의 완봉승을 앞세워 양키스를 상대로 스윕승을 거둔 라스베이거스는 이어서 인터리그에서 워싱턴 내셔널스를 만나게 되었다.
첫 번째 경기에서는 패배.
모처럼 2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던 윌리 알비드레즈가 이 경기에서 크게 무너졌다.
덕분에 평균자책점이 2점대 중후반까지 치솟았다.
그래도 인터리그의 남은 경기에서 타격의 힘으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위닝시리즈를 가져갔다.
[라스베이거스! 20홈런을 때린 타자 7명의 힘으로 7월까지 7할 승률 유지! 그야말로 ‘777’에 어울리는 팀!]
[여름에도 퍼지지 않는 투수. 강송구는 도대체 어떤 선수이기에 지치지 않는가?]
[점점 타자들의 타격감이 올라올 시기. 과연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도 폭발할 수 있을까?]
[다음 상대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라스베이거스의 홈에서 펼쳐진 홈 3연전의 두 번째 경기에 강송구의 시즌 23번째 등판이 예약되었다.
시즌 19승에 도전하는 강송구.
앞선 첫 번째 경기에서 연장까지 간 승부 끝에 승리를 거둔 라스베이거스는 두 번째 경기에서도 강송구를 내세우며 당연하다는 듯이 승리를 강탈했다.
“X같네! 저건 반칙 아니야?”
“우리도 캉이 있었으면 5경기 중 한 경기는 무조건 승리했을 거라고!”
“도대체 우리 단장은 대가리에 뭐가 들었기에 캉을 우리 구단으로 데려오지 못했던 거야?”
“우우우우우!”
로열스의 원정팬들이 야유를 내뱉었다.
그 야유 속에서 강송구가 다시 8이닝 무실점을 소화하면 189이닝 연속 무실점을 계속 이어나갔다.
이전 59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던 오렐 허샤이저는 ‘도대체 내 기록과 차이를 얼마나 벌려야 만족할 생각인지 모르겠다.’라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몇몇 전문가들은 아직 8월 초임에도 벌써 190이닝을 가량을 소화한 강송구의 어깨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소리지.
우효가 고갤 흔들었다.
저 괴물 같은 육체에 부상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40살가량 먹으면 좀 골골거리겠지.
거기다 어깨도 쌩쌩했다.
기가 막히게 왼쪽과 오른쪽 모두를 사용하면서 어깨만큼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체력일 뿐이지만…….
인간 탱크에 가까운 강송구에겐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8월에 접어들면서 더 더워지기 시작했다.
마운드에 오르면 등이 흥건히 젖는 것은 당연한 일.
전반기에 좋은 성적을 거두던 투수들이 8월에 접어들면서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자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8월에 접어들면서 폭발하는 홈런!]
[홈런 타자들의 경쟁은 지금부터!]
[홈런 숫자는 내셔널리그가 강세! 투수들의 수준이 높은 아메리칸리그 소속 구단은 MLB 투수지표에서 상위권을 차지!]
[화끈한 타격전의 연속! 8월부터 터지는 홈런쇼!]
8월에 접어들기 무섭게 타자들이 지친 투수들을 신나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상당히 늘어난 홈런의 개수가 증명했다.
투수들이 더위에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동시에 몇몇 선수들은 생각했다.
‘혹시 캉도 슬슬 지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아무리 캉이 대단해도 신은 아니야.’
‘분명히 8월부터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줄지도 몰라.’
이 괴물도 흔들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팀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지구의 팀.
LA 에인절스도 그런 생각을 했다.
슬슬 강송구가 무너질 때가 되지 않았나.
앞선 시애틀전에서도 8이닝 무실점을 기록 시즌 20승을 기록한 강송구였지만, 앞선 경기와 다르게 시애틀과 경기에서 7피안타를 맞으며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번의 더블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날 경기에서 강송구는 시즌 첫 실점을 했을 것이다.
그걸 봤기에 에인절스의 선수들은 기대했다.
자신들이 저 괴물의 대기록을 깰 팀이 될 수 있다는 큰 기대를 하게 된 것이었다.
“어차피 이번 시즌은 망했어. 와일드카드랑 14경기 차이면 이미 많이 늦었다고 볼 수 있지.”
“최대한 탱킹을 하면서 버텨야 할 시즌이야.”
“승리를 중요하지 않으니 더더욱 저 괴물을 잡기 위해서 모든 것을 던져넣을 수 있다.”
“어차피 꼴찌니까 질러보자니까?”
에인절스 선수단의 눈에 욕심이 생겼다.
새하얀 도화지 같은 강송구의 기록에 오점을 남기고 싶다는 큰 욕심이 말이다. 물론, 앞선 다른 팀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에인절스는 다른 팀과 달랐다.
여력이 있었다.
한 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낼 여력 말이다.
탱킹시즌에 들어간 에인절스라면 가능했다.
다른 팀들은 와일드카드를 신경 쓰느라 강송구를 상대로 일찍 포기하는 경향도 조금 있었으나, 현재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에인절스라면 달랐다.
두 눈을 반짝이는 선수들.
그들은 강송구의 깔끔한 기록에 흠을 남기고 싶어 했다.
* * *
LA 에인절스.
AL 서부지구의 강자.
이번 시즌은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지만, 새로운 2개의 팀이 생긴 뒤로는 자주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팀이었다.
그런 에인절스가 올해는 썩 좋지 못했다.
장타를 빼면 아무것도 없는 타선.
1선발을 제외하면 일단 3실점으로 시작하는 선발진.
그나마 필승조만 제 몫을 해주고 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불펜진의 어깨가 강철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아무튼.
32년 8월 18일.
에인절스는 자신들의 홈으로 라스베이거스를 불러들였다.
첫 번째 경기에서 불펜의 힘과 타선의 장타력으로 아슬아슬한 역전승리를 거둔 상황.
오늘 경기.
그 기세를 이어가고 싶은 에인절스와 반대로 강송구라는 필승카드를 내민 라스베이거스.
1회 초.
B22
마운드에 오른 에인절스의 선발투수.
데이브 아멘트루트가 올라섰다.
손톱이 깨진 다이러스를 대신해서 마운드에 오른 그는 평소보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로진백을 만졌다.
‘어떻게든 5이닝만 버텨보자.’
이기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딱 5이닝만 2실점 이내로 끝내자.
그런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그게 데이브 본인이 생각하는 한계였다.
타석에 조쉬 마이어스가 올라섰다.
길게 숨을 내뱉는 데이브 아멘트루트.
그런 투수를 보며 타석에 선 조쉬가 에인절스의 포수인 가브리엘 모레노를 보며 웃음을 보였다.
“너희 팀 투수가 크게 긴장한 것 같은데?”
“그래, 긴장해서 네 머리로 공을 던질지도 몰라.”
“그건 좀 무섭네.”
초구.
89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들었다.
“스트라이크!”
절묘한 코스에 걸친 공.
조쉬 마이어스는 생각보다 공이 좋은 데이브를 보며 조금 경기가 힘들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강송구가 있는 이상 질 확률은 정말 희박했으니까.
‘거기다 캉은 오늘 일찍 내려가지도 않을 것 같으니…….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되겠지.’
2구째.
날카로운 슬라이더가 날아들었다.
타자의 바깥쪽으로 빠진 공이었는데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보며 그가 혀를 내둘렀다.
“좋은 공이네.”
3구째.
1-1의 카운트에서 투수가 꺼낸 공은 몸쪽 체인지업이었다.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는 구종이지만, 지금 데이브가 가진 구종 중에서 그나마 가장 쓸만한 공이었다.
따악!
-쳤습니다!
-1루로 달리는 조쉬 마이어스! 하지만 중견수에게 타구가 잡히면서 그대로 아웃입니다!
-타구의 코스는 정말 좋았는데……. 여기서 에인절스의 중견수인 루이즈 로버츠의 호수비가 나왔습니다.
빠르게 달려 몸을 날린 루이스 로버츠가 글러브를 번쩍 들며 자신의 호수비를 자랑했다.
두 번째 타자는 카디안 스타우트.
작년보다 장타력은 조금 아쉽지만, 0.306의 타율과 0.393의 출루율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따악!
초구부터 맹렬히 배트를 휘두른 카디안.
외야까지 쭉 뻗어 나가는 타구.
이번에도 루이즈 로버츠가 길쭉한 팔을 내밀며 좋은 코스로 빠지던 타구를 잡아냈다.
-어메이징!
-해냅니다! 여기서 그가 또 해냅니다!
-루이스 로버츠! 그가 활활 타오릅니다!
두 번이나 안타가 될 공을 잡아낸 루이스를 보며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이 눈을 찌푸렸다.
“오늘따라 수비 집중력이 남다르네.”
“에인절스의 외야는 항상 기본 이상은 해줬잖아.”
“내야진은 어떠려나.”
따악!
선수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다시금 타구음이 들려왔다.
전반기 극심한 부진을 이겨내고 후반기에 타율을 0.247까지 끌어올린 엘빈 하인리히의 타구였다.
벌써 30개의 홈런을 때리며 작년에 때린 37개의 홈런까지 7개를 남겨두고 있었다.
-안타! 그대로 2루까지!
-2루에서 세이브! 엘빈 하인리히가 데이브의 포심 패스트볼을 제대로 때려냈습니다.
-좋았네요. 역시 엘빈 하인리히입니다. 어설픈 공을 절대 놓치지 않아요.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호세 피자로.
ML 홈런 순위 4위.
AL 홈런 순위 2위.
라스베이거스 최고의 거포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타석에 들어섰다.
압도적인 존재감.
에인절스의 선발투수인 데이브의 손도 살짝 떨렸다.
‘어디로 던져야 하지?’
어디로 던지든 다 맞을 것 같은 느낌.
그래도 데이브는 좋은 투수였다.
상대에게 압박감을 느끼고 있음에도 그가 던져야 할 코스에 떨지 않고 침착하게 공을 던졌다.
빠악!
초구부터 맹타를 휘두른 호세 피자로.
높게 뜬 공을 보며 데이브가 급히 고갤 돌렸다.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 타구.
아마도 아슬하게 홈런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루이스 로버츠가 달렸다.
-오! 마이! 갓! 루이스! 루이스가 해냅니다!
-호세 피자로의 홈런을 빼앗았습니다! 그가 호세의 홈런타구를 잡아냈습니다!
담장을 밟고 힘겹게 뻗은 글러브에 쏙 들어가는 타구.
공을 잡기 무섭게 루이스 로버츠가 소리를 내질렀다.
“커모오오오온! 할 수 있어!”
-1회 초가 루이스 로버츠 선수의 호수비 스페셜로 마무리가 되면서 점수는 0 대 0으로 에인절스가 1회 초를 잘 넘깁니다.
-정말 환상적인 수비였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1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압도적인 존재감.
에인절스의 타자들이 고갤 절레 흔들었다.
“저 괴물을 어떻게 잡으라고…….”
“연습 투구만 봐도 살이 떨리네.”
“벌써 200이닝을 넘게 던졌다며? 그런데 저렇게 몸이 쌩쌩할 수 있지? 진짜 괴물인 거야?”
타석에는 앞선 1회 초에 호수비를 펼친 루이스 로버츠가 긴장 어린 표정으로 타격 자세를 잡고 있었다.
-호수비 뒤에는 항상 좋은 타격이 따라붙지.
우효의 말에 적당히 로진을 바르던 강송구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경우가 많았지.
아마도 초구를 노리고 있겠지만.
강송구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강송구.
이윽고 그의 왼손에서 공이 쏘아져 나갔다.
초구를 노린 루이스 로버츠가 배트를 휘둘렀으나.
압도적인 구속의 폭력에 무너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스-윙! 스트라이크!”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3구 연속 103마일짜리 포심.
멍한 표정의 루이스 로버츠.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강송구가 압도적인 삼구삼진으로.
루이스 로버츠를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