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천국과 지옥(3)
2회 초.
강송구의 체인지업이 빛난 이닝이었다.
바깥쪽에 걸친 체인지업에 디트로이트의 타자들이 신나게 배트를 휘둘렀다가 알아서 범타로 물러났다.
-삼자범퇴! 캉이 이번 이닝도 깔끔히 막아냅니다.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게 또 막상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5번 타자인 트런트가 1루에서 아웃!
-조쉬 마이어스가 차분하게 잘 잡아내서 1루로 정확히 송구했습니다.
-투 아웃의 상황.
순식간에 지워진 두 개의 아웃.
그리고 타석에 들어서는 이번 이닝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타자.
-굿 피칭.
-캉의 싱커에 헛스윙하는 어커프!
-원 스트라이크.
2구째.
좌타자 몸쪽으로 파고드는 컷 패스트볼.
C.J 어커프가 빠르게 배트를 휘둘렀다.
빠각!
“파울!”
부러진 배트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어커프.
반대로 컷 패스트볼을 던졌음에도 원하는 위치로 땅볼을 유도하지 못한 강송구의 미간도 조금 움찔거렸다.
‘컨디션이 정말 좋지 않군.’
3구째.
바깥쪽 체인지업.
이런 상태일수록 승부를 빠르게 가져가는 것이 편하다.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때려내는 어커프.
따악!
하지만 공을 내야를 빠져나갈 수 없었다.
“아웃!”
순식간에 이닝을 지워낸 강송구.
그가 마운드를 내려가기 무섭게 피곤함이 느껴지는 표정을 한 라이언 펠트너가 마운드에 올랐다.
다를 것은 없었다.
1회 말처럼 그도 공을 던졌다.
삼진을 잡기 위한 피칭을 말이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7번 타자인 브랜든 마쉬를 상대로 7구 승부 끝에 삼진을 잡아내며 기분 좋은 출발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8번 타자인 알프레도 나바로를 내야 땅볼로 잡아낼 수 있는 상황에서 사건이 터졌다.
-또 놓쳤습니다!
-급히 1루로 공을 던지는 션 버로우!
-아아악! 송구가 너무 높아요!
범타로 아웃을 헌납했어야 할 알프레도 나바로는 졸지에 2루 베이스에 발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허탈한 표정의 라이언 펠트너.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전생을 생각했다.
‘동양에서는 전생에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현생의 내가 치른다는 말이 있다던데……. 난 도대체 전생에 뭐였기에 이런 벌을 받는 걸까?’
지옥이었다.
그래도 그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다음 타자는 9번 타자인 토미 리브스.
하위 타선이지만 벌써 14개의 홈런을 잡아낸 타자이기에 조심스럽게 승부에 들어가야 했다.
초구는 포심.
2구째는 바깥쪽 체인지업.
3구째는 다시 몸쪽 포심.
그리고 찾아온 4구째 승부.
라이언 펠트너가 커브 그립을 쥐었다.
‘뚝 떨어지는 커브로 승부를 보자고.’
고갤 끄덕이는 포수.
그가 커브를 던지자 토미 리브스가 헛스윙을 했다.
그래, 이거지.
라이언 펠트너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 경기 5번째 삼진.
모든 아웃을 삼진으로 잡아내고 있는 라이언 펠트너가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냈다.
‘후…….’
타순이 한 바퀴 돌았다.
타석에는 1번 타자.
조쉬 마이어스가 들어섰다.
2회 말의 마지막 아웃이 남은 상황.
라이언 펠트너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초구를 던졌다.
-깔끔한 초구.
-구속이 94마일이 나왔습니다. 라이언 펠트너가 기어를 한 단계 끌어올린 느낌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2구째.
-조쉬 마이어스의 배트가 따라가기 힘든 슬라이더였습니다. 와! 이번 이닝 라이언 펠트너가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내야진을 믿기에는 앞선 이닝에서 보여준 것이 있으니까요.
-그렇겠죠.
5구째.
낮게 떨어지는 커브에 헛스윙하는 조쉬 마이어스를 보며 그가 두 손을 꽉 쥐고 소리를 내질렀다.
“커모오온!”
오늘 경기 6번째 삼진.
모든 아웃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하지만 그만큼 소모된 투구수도 만만찮았다.
벌써 57구.
2이닝을 소화하는데 어마어마한 투구수가 소모되었다.
반대로 강송구는 달랐다.
3회 초.
마운드에 오른 저 괴물은 고작 7구를 던져 이닝을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
허탈한 표정의 라이언 펠트너.
그가 순식간에 끝난 디트로이트의 공격을 뒤로하고 다시 글러브를 들고 마운드로 향했다.
아무래도 정말 전생의 죗값을 치르는 걸지도 모른다고 라이언은 생각했다.
* * *
-넘어! 넘어! 넘어갑니다!
-만루포! 여기서 그랜드슬램이 나옵니다!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은 알프레도 나바로!
-4회 말! 기어코 라이언 펠트너가 무너집니다!
-그대로 강찬되는 라이언 펠트너. 뒤를 이어서 자비온 커리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4회 말.
홈런을 맞기 전까지 라이언 펠트너가 던진 투구수는 88구로 한 이닝 당 22구를 던진 수준으로 많은 투구수를 낭비했다.
그 원인은 엉망진창인 야수들의 실책 덕분이었지만, 라이언 펠트너는 변명을 내뱉지 않았다.
그저 트레이드와 FA만 생각하고 있었다.
‘진짜 XX같은 팀.’
오늘 경기 3.2이닝 4실점.
마운드를 내려가는 그의 표정에는 허탈함만 가득했다.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이 망할 팀의 수준을 보며 허허 웃을 뿐.
그리고 그런 라이언 펠트너를 보며 작은 고슴도치 한 마리가 앞발로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를 내질렀다.
-안돼! 내 도치코인!
우효는 라이언 펠트너를 보며 소리쳤다.
-화를 내! 화를! 저 정도 실수면 네가 내야수한테 주먹질해도 무죄인 수준이라고!
물론, 이 작은 고슴도치의 말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울먹이는 우효.
그가 강송구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비긴 거로 하지 않을래?
물론, 강송구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마운드로 향할 뿐.
5회 초.
앞선 이닝에서 제법 안타를 맞았다.
그리고 이번 이닝이 시작하기 무섭게 또 안타를 맞으며 오늘 경기 3번째 피안타를 기록했다.
무사 1루의 상황.
타석에 7번 타자인 헤이든 던허스트가 들어섰다.
‘포수인 주제에 수비는 형편이 없고 공격력 하나만큼은 일품은 선수다.’
차라리 일루수로 뛰었다면 이렇게 박한 평가를 받지 않았을 선수였지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포수진은 메이저부터 마이너까지 모두 엉망인 수준이라 어쩔 수 없었다.
초구는 바깥쪽 커터.
우타자 바깥에 걸친 컷 패스트볼을 보며 헤이든이 반 발자국 정도 홈플레이트에 가까이 붙었다.
2구째.
홈플레이트 가까이 붙은 헤이든의 몸쪽 낮은 코스로 강송구가 싱커를 바짝 붙여 던졌다.
따악!
“파울!”
3구째.
오늘 경기 처음으로 너클볼이 튀어나왔다.
움찔 몸을 떤 헤이든 던허스트가 당혹감을 드러냈다.
‘여기서 너클볼?’
이해할 수 없는 볼 배합.
4구째.
얼굴에 당혹감을 드러낸 헤이든에게 강송구가 꺼내든 위닝샷은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 경기 첫 번째 삼진.
강송구도 모처럼 주먹을 움켜쥐며 삼진을 기뻐했다.
-캉이 오늘 경기 첫 삼진을 잡아냅니다.
-오늘 경기 계속해서 범타를 유도하던 캉이 갑작스럽게 삼진을 잡으러 들어오니 헤이든 선수가 당황한 것 같습니다.
-그렇죠. 아무래도 싱커와 체인지업을 적극적으로 써먹던 캉이 갑자기 스플리터를 꺼냈으니까요.
1사 1루.
다음 타자는 제프 베이커.
루크 레토와 함께 뛰어난 수비력을 갖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유이한 야수.
포지션은 중견수.
하지만 타격 능력은 썩 좋지 않았다.
‘멘도사 라인을 기록하고 있는 타자. 특히 장타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지.’
그렇기에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삼진을 잡으려는 피칭을 가져가도 나쁠 것이 없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몸쪽 높은 코스의 포심을 던진 강송구를 보며 제프 베이커가 이를 꽉 물었다.
‘나 정도는 별것 아니란 뜻인가?’
꽈드득.
배트를 꽉 쥔 제프 베이커.
그가 살벌한 눈으로 강송구를 노려봤다.
하지만 노려만 본다고 안타를 칠 수 있다면 누구나 다 무서운 눈으로 투수를 노려봤을 것이다.
따악!
“파울!”
이번만큼은 폼이 좋지 않은 강송구가 유일하게 깔끔히 삼진을 상대가 제프 베이커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4구째로 던진 슬라이더에 시원한 선풍기 스윙을 보여준 제프 베이커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분노는 금방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인데도 이 정도인데 폼이 좋은 상태라면 내가 저 괴물을 이겨낼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2사 1루.
1루에 묶인 C.J 아커프는 초조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서는 9번 타자 마이크를 바라봤다.
-마이크 오브라이언.
-22살의 젊은 유격수입니다.
-준수한 선구안과 평균 수준의 수비 능력을 갖춘 젊은 선수거든요? 이제 타격에서 발전된 모습만 보여주면 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캉의 초구.
-바깥쪽 싱커네요.
-이번 이닝 벌써 2개의 삼진을 잡아낸 캉입니다. 이번에도 삼진을 잡아낼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이번에도 삼진을 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범타를 유도하며 내야수들의 도움을 받아 이번 이닝을 깔끔히 지워버렸다.
컨디션이 좋지 못한 강송구를 상대로 제대로 된 타격을 가져가지 못한 디트로이트의 타자들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묘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좋지 못한 날도 이 정도인데…….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 거야?”
“우리도 저런 투수가 있으면 지구 1위도 무리는 아니겠지? 진짜 라스베이거스가 부럽다.”
감탄사를 내뱉는 디트로이트의 선수들.
그 사이에 수건을 머리에 덮고 앉아 있던 라이언 펠트너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느그들 수비 수준으로는 캉이 와도 지구 1위는 무리다. 이 망할 XX같은 새끼들아.’
그는 더욱더 이 망할 팀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6회 초.
라스베이거스의 공격이 끝나고.
다시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
슬쩍 고개를 든 라이언 펠트너가 그를 부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도 저런 야수들이랑 같이 야구 하면 행복할 텐데…….’
행복 야구를 꿈꾸는 라이언 펠트너.
곧이어 강송구가 야수들의 도움을 받아 6회 초를 깔끔히 막아내는 것을 보며 더더욱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이윽고 6회 초를 깔끔히 막은 강송구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어진 라스베이거스의 공격.
경기는 라스베이거스 쪽으로 기울었다.
라이언 펠트너가 마운드를 내려가기 무섭게 방화범만 가득했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불펜진이 펑! 터졌으니까.
점수는 벌써 13 대 0까지 벌어진 상황.
강송구는 7회 초까지 막은 뒤.
마운드에서 내려와 아이싱을 시작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에 마운드에서 빨리 내려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금방 경기가 끝을 맺었다.
7이닝 4K 무실점.
시즌 12승.
강송구가 또 한 번의 승리를 거두었다.
* * *
[라이언 펠트너, ‘행복한 야구가 하고 싶다.’]
[13 대 1로 승리를 거둔 라스베이거스! 강송구 오랜만에 7이닝 무실점 피칭을 보여주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에도 야수들의 도움을 받아 무실점 행진을 이어나간 강송구!]
[미키 스토리 감독, ‘캉은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우리들의 믿음에 보답을 해주는 선수다. 정말 대단한 선수!’]
[아쉽게도 스윕을 놓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강송구, ‘그런데 도치 코인이 뭔가?’란 인터뷰에 50% 떡상한 도치코인! 관련된 가상화폐도 덩달아 떡상!‘]
[공격력만 좋으면 뭐해? 디트로이트의 좋지 않은 내야 수비 능력과 방화범 수준의 불펜진이 만든 패배!]
-행복 야구가 하고 싶다고? 라이언 펠트너……! 널 대전 호크스의 1선발로 임명한다.
-라이언! 행복 야구의 본고장 대전으로 와라!
-라이언 펠트너! 호크스로 와라!
-어허! 라이언 선생님이 느그들 친구냐? 빨리 ‘님’자 붙여서 불러라 알겠냐?
-호크스 새끼들 또 좋다고 난리넼ㅋㅋㅋ
-앜ㅋㅋㅋ 이미 디트로이트에서 행복한 야구를 즐기고 있던 거 아니었냐구?ㅋㅋㅋㅋㅋㅋ
-진짜 디트로이트에서 수련한 라이언 펠트너가 다른 팀 야수를 데리고 어떤 수준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디트로이트는 티탄즈 수준의 내야진과 호크스 수준의 외야진이 혼재한 메이저리그의 개그팀이짘ㅋㅋ
-이쯤 되면 디트로이트란 팀은 크보랑 비교해도 부족함이 느껴지는 팀이 아닐까?
-개솔ㄴㄴ 썩어도 준치라고. 디트로이트가 저렇게 엉망이어도 크보오면 1위 껌으로 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