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천국과 지옥(1)
-후반기에 보여준다며?
103마일의 강속구를 보여준 순간.
우효가 묘한 표정으로 강송구를 바라봤다.
‘지금 보여줘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솔직히 6월이나 7월이나 그게 그거였으니까.
아무튼.
분위기는 아까와 달랐다.
[중계창]
-103마일ㅋㅋㅋㅋㅋ
-왘ㅋㅋㅋ 진짜 대단하네.
-103마일이면 거의 166㎞/h 아님?
-진짜 강송구는 어나더 레벨이구나
-캬……. 돌았다.
-재능이 다르구나.
-ㅋㅋㅋㅋ 이번 고교 최고 파이어볼러 유망주라던 이제혁은 153㎞/h도 겨우 나오는뎈ㅋㅋ 강송구는 그냥 슉하니 166㎞/h를 찍어버리넼ㅋ
103마일.
고작 3마일 차이지만.
강송구는 전혀 다른 투수가 되었다.
아니, 양키스의 타자들이 그렇게 느꼈다.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지.’
3마일이란 숫자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었다.
87마일과 90마일의 차이.
고작 그 3마일의 차이로 메이저리그에서 통하거나, 통하지 않는 투수가 갈린다.
하물며 100마일과 103마일의 차이다.
타자가 느끼기에 더 압도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6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오르자 아까와 다르게 한풀 기세가 꺾인 양키스의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103마일이라는 숫자가 주는 압박감.
이번 이닝의 선두타자이자 7번 타자인 지미 브런스에게 이 정도 구속은 처음 보는 구속이었다.
정확히는 ‘제구가 되는’ 103마일이겠지만.
초구는 몸쪽 포심 패스트볼.
지미 브런스가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제대로 때려내질 못했다.
구위에 완전 밀린 것이다.
“파울!”
-초구는 높게 뜨는 공.
-3루 관중석으로 떨어집니다.
-생각보다 반응은 빨랐는데……. 배트가 밀렸죠?
-네, 워낙 구속이 빠르고 구위가 좋다 보니 지미 브런스 선수가 제대로 공략할 수 없었던 공이었습니다.
2구째.
생각보다 빠른 공에 대처가 좋은 지미 브런스를 상대로 꺼내든 2구째는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제대로 헛스윙을 한 지미 브런스.
그리고 3구째에 다시 몸쪽 컷 패스트볼을 던지며 기어코 삼구삼진을 잡아낸 강송구였다.
-완벽한 피칭! 캉이 삼진을 잡아냅니다!
-컷 패스트볼의 코스가 너무 좋았습니다. 거기다 타자가 반응하기 쉽지 않은 몸쪽을 잘 노렸어요.
-이번 이닝의 선두타자를 깔끔히 잡아낸 캉!
-다음 타자는 마이크 델크.
이번에는 오른손을 꺼내 들었다.
굳은 표정의 마이크 델크.
초구는 몸쪽 낮은 커브.
패스트볼을 기다리던 그에게 갑작스럽게 날아든 커브는 전혀 대응할 수 없는 변화구였다.
2구째.
바깥쪽 체인지업.
따악!
“파울!”
3구째는 몸쪽 슬라이더.
좌타자의 몸쪽으로 파고든 우투수의 슬라이더.
하지만 너무 깊었다.
“볼!”
4구째.
다시 바깥쪽 싱커.
따악!
“파울!”
그리고 마지막 5구째.
몸쪽 높은 코스로 파고든 포심 패스트볼.
마이크 델크가 급히 배트를 휘둘렀으나.
101마일의 포심을 때려낼 수 없었다.
“아웃!”
5구 승부 끝에 내야 뜬공으로 타석에서 물러났다.
[중계창]
-와; 진짜 오늘 구위 돌았네;
-101마일 미쳤누;
-양키스 타선이 약한 것도 아닌데, 저걸 그냥 구위로 찍어눌러 버리네;
-오늘도 완봉승 하나 찍겠구만.
-역시! 정배야! 돈을 복사해 준다니까?
-침팬치도 돈을 복사한다구! 강송구 등판하는 경기에는 무조건 애국 배팅이지!
이윽고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
데이브 메르츠가 타석에 들어섰다.
따악!
-높게 뜨는 공!
-캉이 단 1구로 아웃을 잡아냅니다!
-6회 말도 깔끔히 막아내는 캉!
-오늘 경기에서도 완벽한 피칭을 이어나가고 있는 라스베이거스의 캉입니다.
“굿 피칭.”
“조던의 몸 상태는 괜찮습니까?”
“방금 연락이 왔는데……. 그리 큰 부상은 아니라더군. 이번 시리즈가 끝난 뒤에 다시 복귀할 수 있을 거야.”
벤치 코치인 크리스티안 피넬리가 내미는 스포츠음료를 마시며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7회 초.
양키스는 벌써 4번째 투수가 마운드를 밟고 있었다.
메이콜드 레온.
패스트볼과 슬라이더가 좋은 불펜.
하지만 패스트볼의 구위가 그리 좋지 않아 상대 타선을 찍어누르는 힘이 부족한 투수였다.
그래도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을 상대로 메이콜드 레온은 7회 초를 깔끔히 막아내고 있었다.
“양키스가 이번 경기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군.”
“3점 차이니까. 아무리 캉이라도 언젠가는 흔들리겠거니 생각하고 있겠지.”
“진짜 흔들릴 것 같아?”
“아니, 전혀.”
두 선수가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에 있는 강송구는 덤덤한 표정으로 7회 말에 던졌던 볼 배합과 관련된 의견을 바비 데 프랑크에게 이야기하며 7회 말에는 어떻게 던질 것인지 정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투수라면 쉬기도 바쁠 때.
강송구는 오히려 다음 이닝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무섭게 느껴졌다.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놈이 악착같이 노력까지 하는군.”
“애초에 노력하는 범재는 천재를 이길 수 없는 법이야. 왜? 천재도 그만큼 더 노력하니까.”
그렇기에 스포츠에서 재능은 중요했다.
이윽고 7회 초가 끝났다.
다시 글러브를 들고 마운드로 향하는 강송구.
그는 오늘 완봉승을 노리고 있었다.
* * *
9회 말.
남은 아웃은 단 3개.
앞선 두 이닝에서 각각 안타 하나씩을 내줬던 강송구는 이번 이닝의 선두타자이자 9번 타자인 데이브 메르츠를 상대로 초구부터 100마일의 포심을 던지고 있었다.
“저 괴물은 지치지도 않는 건가?”
“결국, 마무리는 왼손이네.”
질린다는 표정으로 마운드를 바라보는 양키스의 선수들과 홈팬들 사이로 강송구가 2구째를 던졌다.
-날카롭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오늘 유난히 스플리터의 구사 비율이 높은 캉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카운트를 스플리터로 잡았습니다.
-확실히 다양한 구종을 던질 수 있다는 장점이 여기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캉을 상대했던 타자들이 대부분 ‘한 경기에 3명의 투수를 상대하는 것 같다.’라고 말을 했었죠.
-말씀드리는 순간 삼진아웃!
-오늘 캉이 16번째 삼진을 잡아냅니다.
다음 타자를 상대로 와야 플라이.
마지막 타자인 가빈 럭스를 상대로 삼진을 잡아내며 9이닝 3피안타 17k 완봉승을 기록했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바비 데 프랑크.
당연하다는 듯이 강송구의 완봉승을 축하해 주는 카디안 스타우트와 호세 피자로.
오늘 고생한 야수들에게 엄지를 척 들어 올리는 미키 스토리 감독까지.
오늘 경기의 승자는 라스베이거스였다.
[강송구, 17K 완봉승!]
[뉴욕 양키스! 강송구를 상대로 전력을 다했으나 거인을 무너트릴 수 없었다.]
[이번 경기의 중심 구종은 스플리터! 강송구, 매 경기 바뀌는 볼 로케이션으로 상대 타선의 혼란을 주다.]
[충격 103마일! 자신의 최고 구속을 경신한 강송구! 여기서 더 성장할 여지가 있었나?]
-주모오오오오!
-캬……. 진짜 갓송구 개쩐다.
-진짜 완봉을 밥 먹듯이 하네;
-오늘 느꼈다. 생각보다 크보도 경쟁력이 있구나.
-엥? 크보가 경쟁력이 있다구?
-아니, 생각해 보셈ㅋㅋ 강송구도 크보에서 실점하는데 메이저리그에서는 109이닝 무실점 찍잖아.
-메이저리그! 고개를 들어라! 너희가 약한 것이 아니다! 그저 크보가 조금 강할 뿐.
-생각해 보면 크보가 타격만큼은 메이저리그에 비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친놈들ㄷㄷㄷㄷ
-이 새끼들 크보에 돈 받음?
-아닠ㅋㅋㅋ 크보를 어따 비비냐궄ㅋㅋㅋ
-강송구가 지금 크보오면 전 경기 퍼펙트게임도 가능할 것 같은뎈ㅋㅋㅋㅋㅋ
-진짜 요즘 라스베이거스 넘모 강하다구.
양키스 3연전의 첫 경기를 승리로 이끈 라스베이거스는 기세를 타 두 번째 경기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강송구와 더불어 라스베이거스의 원투펀치를 구성하고 있는 윌리 알비드레즈가 6이닝 2실점의 호투를 보여주었고 이어서 남은 이닝을 데이비드 리빙스톤과 조쉬 브라운이 각각 1.2이닝 1.1이닝을 소화하며 끝을 맺었다.
점수는 13 대 2였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는 양키스가 저력을 보여주었다.
연장 13회까지 간 경기.
양키스의 해결사인 가빈 럭스가 13회 말에 터트린 솔로포로 점수는 7대6이 되었고 그렇게 경기는 끝났다.
뉴욕 6연전이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찾아온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홈 3연전.
라스베이거스는 시즌 최초로 3연패에 빠졌다.
그리고 3연전의 마지막 경기.
강송구의 등판이 잡혔다.
* *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많은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결실을 이번 시리즈에서 가져갈 수 있었다.
그 대단한 라스베이거스를 상대로 위닝시리즈를 확정 지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금방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했다.
“라스베이거스를 상대로 스윕은 어렵지.”
“상대는 캉이니까. 당연하지.”
“그래도 좋았어. 라스베이거스를 상대로 위닝시리즈를 가져갈 수 있었으니까.”
AL 북부지구 꼴찌.
하지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지구 1위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지구 1위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승률은 고작 5할.
33승 33패를 기록하고 있었으니까.
이번 시즌 AL 북부지구의 모든 팀이 엉망이었다.
그렇기에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이번 시즌만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좋은 시즌도 없다고 생각했다.
겨우겨우 4할대 승률까지 올라온 그들은 이번 라스베이거스 3연전에서 위닝시리즈를 거머쥔 것을 즐겼다.
하지만 단 한 선수만큼은 달랐다.
“왜 벌써 경기를 포기하는 거야?”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라이언 펠트너.
작년 어깨 부상으로 시즌을 모두 날린 그는 이번 시즌 5승 6패 ERA 4.26를 기록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야구 팬이라면 고작 하위 선발급 기록이라며 그를 깎아내리겠지만, 그를 진득이 지켜본 전문가들은 그가 가진 가능성을 잘 알고 있었다.
“라이언 펠트너는 무조건 1선발급이지.”
“저 X같은 타이거스 내야진과 극악의 포수를 데리고 4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가지고 있는 투수야. 이런 평가를 받을 수준의 투수가 아니라고.”
“정상적인 포수가 있던 시즌이었던 30시즌에 15승 5패 ERA 3.48를 찍었던 선수야.”
“90마일짜리 패스트볼도 놓치는 포수를 데리고 4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고 있는 투수야. 팀만 옮긴다면 무조건 한 팀의 에이스를 해줄 투수라고.”
아무튼.
전문가들의 의견처럼 라이언 펠트너는 대단한 투수다. 이 엉망진창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에이스로서 항상 기대 이상의 피칭을 보여줘 왔다.
하지만 그는 지금 팀의 모습에 지쳐가고 있었다.
디트로이트는 점점 몰락하고 있었다.
AL 최악의 내야 수비진.
자신이 던지는 패스트볼 하나 제대로 못 받는 타격만 좋은 수준 미달의 포수.
반대로 수비만 좋고 타격은 엉망인 외야진.
공만 던졌다 하면 불을 지르는 불펜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의 팀이다.
하지만 웃기게도 이런 팀도 4할 승률을 보장받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였다.
“Fxxk.”
라이언 펠트너가 욕을 내뱉었다.
그의 나이는 이제 서른다섯이었다.
아마 33시즌이 끝나고 찾아오는 FA가 그의 인생 마지막 FA일 확률이 높았다.
그는 이 지긋지긋한 디트로이트에서 탈출하기 전까지 좋은 기록을 쌓고 싶었다.
그리고 적어도 이 팀과 헤어지기 전까지는 좋은 관계로 남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은 아닌 것 같았다.
이번 3연전의 마지막 경기.
그가 등판하는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의 표정이 풀어져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저런 표정을 짓는 선수는 다음날 어마어마한 실책을 저지르며 무너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X같은 팀.’
계속해서 팀을 향한 애정도가 떨어지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가 야구의 신에게 기도했다.
내일 경기에서 적어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일이 없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