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뉴욕 6연전(1)
시즌은 길고.
아직도 5월은 끝나지 않았다.
강송구의 호투에 힘입어 얻어낸 1승이 추가되었고.
라스베이거스는 계속해서 상승세의 기류에 올라섰다.
연승은 끊겼지만, 라스베이거스는 계속해서 위닝시리즈를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다음 등판.
강송구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경기에 등판해서 8이닝 11K 무실점의 완벽투를 보여주었다.
2개의 피안타가 흠이었지만.
병살타를 2번이나 유도하며 잘 넘어갔다.
그렇게 긴 광란의 5월이 끝났다.
6월의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6월 초에도 라스베이거스는 사막기후 덕분인지 낮에는 30도 후반까지 기온이 치솟았다.
작년과 같은 이상기온이 감지되는 상황.
하지만 작년과 다르게 이번 시즌의 라스베이거스의 홈구장은 만반의 준비가 끝나 있었다.
“작년에 에어컨이 좀 부족하게 배치됐을 때는 지옥 같았는데 지금은 그냥 천국이 따로 없네.”
“매일 지금 수준의 기온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밤에는 10도 근처까지 내려가지?”
“난 그게 참 좋더라고.”
선수들은 개폐형 돔구장인 777 베가스 그라운드의 지붕이 닫히는 것을 보며 고갤 끄덕였다.
작년보다 2배는 늘어난 에어컨은 선수들이 움직이기 좋은 적절한 온도를 만들어주었다.
그 덕분일까?
라스베이거스는 6월에 접어들었음에도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며 지구 2위인 오클랜드와 13경기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6월 5일.
강송구의 6월 첫 번째 등판.
상대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였다.
시즌 초반에 강송구를 만났던 적이 있는 그들은 이번 경기에서는 주전들의 대거 빼며 경기를 포기했다.
특히 필승조 불펜과 원래 등판 예정이었던 팀의 에이스까지 등판을 미루며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그 판단은 몇몇 전문가에게 작은 비난을 받았지만, 적어도 캔자스시티가 다음 시리즈에서 마이애미를 상대로 원정 3연전을 모두 잡아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무튼.
강송구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경기에서도 8이닝 무실점 피칭을 이어가며 다시금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2경기 연속 8이닝 무실점.
라스베이거스는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상대로 위닝시리즈를 기록한 뒤에 뉴욕으로 향했다.
인터리그고 상대하는 뉴욕 메츠 원정 3연전.
그리고 뉴욕 양키스까지 상대한다.
뉴욕 6연전.
아쉽게도 강송구는 메츠를 상대로는 로테이션이 맞질 않아 등판을 할 수 없었다.
강송구의 다음 상대는 뉴욕 양키스.
3연전의 첫 번째 경기에 등판이 확정되었다.
* * *
-인 뉴요오오오오오옥! 콘크릭 정글 웬 드림 어 토메이로오오오! 뉴욕! 뉴욕! 뉴욕! 뉴욕! 뉴욕!
우효가 방방 날뛴다.
제이지와 알리샤 키스가 부른 ‘Empire State of Mind’를 어설픈 콩글리쉬로 부르고 있었다.
확실히 라스베이거스랑 달랐다.
라스베이거스보다 더 화려하고, 동시에 뉴욕의 불빛 아래로 가라앉은 어둠은 더 깊었다.
그리고 시작된 뉴욕 6연전의 첫 경기.
-쳤습니다!
-뉴욕 메츠의 반격이 매섭습니다! 특히 이노-유의 타격이 오늘 불을 뿜습니다!
한국인 출신의 아버지를 둔 미국인.
2022년부터 뉴욕 메츠의 부실한 포수 자리를 채우고 긴 시간 메츠의 안방마님 자리에서 팀을 지탱한 베테랑.
유인오가 안타를 때리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대단하네.”
“역시 혼혈은 달라. 일반적인 동양인 피지컬과 전혀 다른 느낌이라니까. 아! 나 인종차별주의자 아니야. 오해하지 마.”
“뭐……. 분명히 차이는 있으니까.”
“난 그래서 더 캉이 대단한 것 같아. 저게 어떻게 순수한 동양인이 가진 피지컬이야? 분명히 신이 캉을 만들 때 뭔가는 과하게 첨가한 게 분명해.”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도 유인오의 활약을 보며 꽤나 감탄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캬……. 저게 준명전급 포수의 힘인가?
우효도 유인오를 보며 감탄했다.
매 시즌 15개 전후의 홈런을 때리고.
11년 동안 평균 0.297의 타율과 0.823의 OPS를 기록하고 있는 유인오는 수비에서도 흠이 없었다.
아니, 수비력만큼은 MLB 최고였다.
‘확실히 대단하군.’
7년 연속으로 포수 부분에서 NL 골든글러브를 싹쓸이하고 있는 괴물이었다.
거기다 22시즌에 불던 장기계약 열풍 덕에 메츠는 이 괴물을 24시즌이 끝나고 겨울에 10년 1억 6500만 달러라는 생각보다 적은 금액으로 잡았었다.
-메츠 역사상 최고의 계약이라지?
우효가 고갤 끄덕였다. 저 정도 괴물이라면 10년 1억 6500만 달러라는 금액은 껌값이었다.
거기다 11년 동안 잔 부상도 없었다.
그 대단한 조던 델가도도 유인오라는 포수 앞에서는 달빛 아래 반딧불과 같았다.
-그래도 아쉽네. 홈런이 특히 너무 아쉬워.
뛰어난 타격 능력과 빠른 발을 갖춘 유인오의 유일한 단점은 장타력이었다.
매 시즌 15개 이상 홈런을 때려내는 타자에게 뭘 더 바라느냐마는, 만약 유인오가 매 시즌 30개 이상의 홈런을 때릴 파워를 갖췄으면 준명전급 포수가 아니라 그냥 명전급 선수였다.
그래서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저 뛰어난 포수에게 장타력이 없다는 사실에 말이다.
아무튼.
뉴욕 메츠 3연전의 첫 경기는 라스베이거스가 가져갔다.
선발진이 두터운 라스베이거스도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타격 능력이 뛰어난 메츠를 상대로 실점을 억제할 수 없었다.
치열한 타격전이 이어졌고.
8 대 6이라는 점수 차이로 경기는 끝났다.
이어지는 2차전.
이번 경기에서도 라스베이거스는 뉴욕 메츠를 상대로 리드를 가져가며 위닝시리즈에 가까워졌으나.
빠아악!
-쳤습니다!
-이노-유의 시즌 10호 홈러어어언!
-여기서! 메츠가 역전합니다!
유인오의 역전 홈런에 힘입어 메츠가 승리를 가져갔다.
각각 한 경기씩을 나누어 가진 두 팀.
시리즈의 행방은 마지막 경기에 쏠렸다.
-저렇게 잘하는데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인기가 없을까? 거의 없는 존재처럼 여겨지는데.
‘한국 국적이 아니라서 그렇지.’
-아! 그렇군.
우효가 고갤 끄덕였다.
-어쩐지 한국 뉴스에는 잘 나오지 않더라.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유인오가 워낙 한국 기자들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도 원인이었다.
아마도 데뷔 시즌에 한국산 기레기를 맛보고 제대로 학을 떼게 된 것 같았다.
그래도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경기가 끝나고 따로 강송구를 불러 밥은 사주었다.
강송구는 유인오가 자신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며 ‘메츠는 어때?’라고 묻기에 ‘팀에 4억 달러는 있습니까?’라고 답했다.
메츠의 안방마님은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인 강송구의 공을 직접 받아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3연전의 마지막 경기 날이 찾아왔다.
이번 경기의 선취점은 메츠에서 나왔다.
이번에도 유인오였다.
-여기서 타점을 쓸어 담는 이노-유!
-깔끔한 2루타였습니다.
-점수는 2 대 0으로 메츠가 앞서나갑니다.
하지만 유인오를 제외한 메츠의 다른 타자들이 죽을 쓰며 좋은 기회를 여럿 날렸다.
위기 다음의 기회라는 말처럼 위기를 잘 넘긴 라스베이거스가 순식간에 5점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 5 대 2라는 점수 차이를 지켜내며 기어코 뉴욕 메츠를 상대로 위닝시리즈를 가져갔다.
그렇게 끝이 난 뉴욕 메츠 3연전.
하지만 라스베이거스는 뉴욕을 떠나지 않았다.
아직 메츠와 같은 연고지를 쓰는 팀.
양키스 3연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시즌 13번째 등판.
뉴 양키스타디움은 어느덧 관중석으로 꽉 찼다.
원래부터 관중 동원력이 뛰어난 구단이었지만, 유독 오늘 경기에 관심이 많이 쏠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강송구가 연속 100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팬이라면 당연히 이 오렐 허샤이저를 아득히 넘어서 압도적인 기록을 세우고 있는 강송구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저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은 언제 깨질까?”
“글쎄……. 130이닝까지는 가지 않을까?”
“제발 양키스가 그 기록을 망가트리길……!”
동시에 양키스의 더그아웃도 평소보다 더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연했다.
프로라면 강송구의 100이닝 연속 무실점이라는 새하얀 눈밭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법이니까.
양키스 타자들이 두 눈을 활활 태웠다.
이윽고 양키스의 선발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젊은 5선발 데이비드 몰리나.
강송구를 상대로 조금 아쉬운 라인업이었다.
하지만 오늘 양키스는 승패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승패를 떠나 강송구가 이어나가는 대기록에 흠집을 남기고 싶어 했다.
다만, 양키스 소속 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한 선수만 오늘 경기에서 필승을 다짐했다.
‘상대가 캉이라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데이비드 몰리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래, 충분히 할 수 있다.
“플레이 볼!”
주심의 콜과 함께 시작된 경기.
데이비드 몰리나는 초구부터 좋은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최근 랜디 에드워즈를 밀어내고 확실한 주전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조쉬 마이어스를 상대로 데이비드 몰리나는 3구를 던져 빠르게 카운트를 쌓았다.
그리고 4구째 위닝샷으로 던진 써클 체인지업.
그 완벽한 오프 스피드 피칭에 조쉬 마이어스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스위이잉! 스트라이크 아웃!
-데이비드 몰리나가 기분 좋은 출발을 보여줍니다! 이번 시즌 5.3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는 데이비드 몰리나 선수인데요. 대체로 1회에 많은 실점을 했던 선수이기에 아직은 더 지켜봐야겠지만……. 오늘 컨디션이 정말 좋아 보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초구!
-쳤습니다!
-높게 뜨는 공! 우익수 방면으로 향하는 큰 타구! 하지만 브라이스 하퍼가 달려가서! 달려가서! 잡았습니다!
-이걸 잡네요!
카디안 스타우트가 입맛을 다시며 타석에서 물러났다. 완벽한 2루타라고 생각했는데 브라이스 하퍼라는 노장이 보여준 호수비에 가로막혔다.
야수의 도움으로 위기를 잘 넘긴 데이비드 몰리나는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인 호세 피자로를 상대로 5구 승부 끝에 내야 땅볼로 아웃을 잡아냈다.
이루수 앞으로 굴러간 공을 가빈 럭스가 잡아 깔끔하게 1루로 송구하며 이닝이 종료되었다.
1회 초가 끝나고 찾아온 1회 말.
어마어마한 포스를 풍기는 괴물이 천천히 뉴 양키스타디움의 마운드에 올랐다.
꿀꺽.
침을 삼키는 몇몇 관중들과 양키스 선수들.
그만큼 이번 시즌 강송구가 보여주고 있는 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거기다 오늘은 경기 초반부터 왼손을 꺼내 들었다.
“우릴 작살 낼 생각이군.”
“저 괴물을 상대로 1점? 진짜 가능해?”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그래, 기록의 희생양이 되기 싫으면 몸에 맞는 공으로라도 출루해서 어떻게든 1점을 만들어야지.”
양키스의 선수들이 투지를 활활 태웠다.
이윽고 우타석에 양키스의 1번 타자인 베니야민 발레리가 들어섰다.
‘이번 시즌 0.157의 타율. 홈런 1개. 그야말로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선수.’
하지만 양키스의 외야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 이런 선수라도 좌익수에 배치하지 않으면 안 될 수준이었다.
-와……. 예전 양키스가 아닌데?
‘윈 나우에 실패하고 노장들만 잔뜩 끌어안은 팀의 최후와 같은 모습이지.’
그래도 양키스는 양키스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최악의 폼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베나야민 발레리는 강송구의 투구수를 6구나 뺏어냈다.
다음 상대는 가빈 럭스.
LA 다저스의 최고 유망주였고, 지금은 양키스 최고의 선수가 된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타자도 노화를 피할 수 없었다.
어느덧 34살에 접어든 나이.
그리고 그의 성적도 완곡한 곡선을 그리며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작년보다 훨씬 틈이 많군.’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그의 데뷔 시즌에 만났던 가빈 럭스가 아니었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평소라면 배트가 따라붙었을 상황에서도 가빈 럭스는 굳은 표정으로 배트를 내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밀 수 없었다.
2구째.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평소라면 잘 커트했을 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헛스윙을 가져갔다.
“Fxxk!”
그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나이를 먹었음을 말이다.
그리고 3구째.
강송구가 몸쪽 하이 패스트볼을 던졌다.
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들었고.
가빈 럭스는 시원하게 삼진을 헌납했다.
-헛스위잉! 삼진!
-캉이 가빈 럭스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오늘 캉의 폼이 정말 좋아 보이네요.
분한 표정의 가빈 럭스.
그가 타석에서 물러나고 1회 말의 마지막 타자가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3번 타자 앤드류 본.
그도 별다를 것이 없었다.
그나마 5구까지 공을 보며 끈질기게 승부를 이어나가던 그도 강송구가 던진 컷 패스트볼에 허무하게 아웃을 허용했다.
깔끔히 이닝을 끝낸 강송구.
그가 마운드를 내려가며 생각했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제법 마음에 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