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164화 (164/198)

#164. 미친놈과 돌아이(3)

4회 말.

시애틀의 팬들은 기도했다.

“드디어 4회 말까지 왔다.”

“노엘의 징크스인 마의 4이닝이야.”

“노엘이 아무리 또X이지만 4이닝만 넘기면 대체로 호투를 해주는 녀석이라구!”

“제발! 제발! 제발!”

마운드에 오른 노엘 레벤하겐의 기행은 대체로 4이닝이 넘어가는 시간대에 사라지는데, 그 전에 털리면 그 날 경기는 그대로 끝나는 것이고, 만약 4이닝을 탈 없이 넘기면 남은 이닝을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지켜내는 징크스가 있었다.

그 마의 4이닝이 곧 끝난다는 사실에 시애틀의 팬들은 작은 희망을 품었다.

-뭐? 희망? 큭큭……!

우효가 씩 웃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노엘 레벤하겐은 또X이라고.

저 동태 같은 눈깔을 보면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건 사람 새끼가 아니야. 짐승이야. 짐승.

초구부터 놀라운 공이 날아들었다.

회전이 전혀 없는 공.

너클볼이었다.

다만, 너클볼러가 던지는 공과 크게 달랐다.

일반적으로 너클볼러가 던지는 공의 회전은 많아야 2번 정도인데, 저 공은 4번이나 회전했다.

그 뜻은 그냥 밋밋한 배팅볼이라는 뜻이었다.

따아악!

-쳤습니다!

-호세 피자로의 2루타!

-노엘 레벤하겐의 실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야! 이 X같은 새끼야!”

“정신 차려! 그냥 체인지업만 던져도 이것보다는 잘 던지잖아! 뭐 하는 거야?”

“너 어디에 배팅이라도 했지? 그렇지?”

“또X이 새끼야! 제대로 던져!”

시애틀의 원정팬들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또 노엘 레벤하겐의 못된 심보가 발동되었다.

[중계창]

-???: 뭐? 완봉승? 못된 심보 on!

-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 메이저리그는 진짜 대단하네. 저런 또X이도 마운드에 오름ㅋㅋㅋ

-한국이었으면 무조건 2군행이짘ㅋㅋㅋ

-앜ㅋㅋㅋㅋ 진짜 꿀밤마렵넼ㅋㅋㅋ

-진짜……. 저 새끼는 승부 조작임.

-ㅋㅋㅋㅋ 저 너클볼 거의 우리 회사 사회인 야구팀의 에이스인 강 부장님이 던지는 너클볼이랑 흡사함ㅋㅋㅋ

-진짜……. 쟤도 대단한 놈이긴 해.

2루타를 허용한 노엘 레벤하겐.

하지만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는 계속 강송구를 연기하고 있었다.

그 미친 모습을 보며 그 대단한 강송구도 잠깐은 고개를 절레 흔들 정도였다.

-와! 이 미친놈도 고갤 흔들 정도면……. 진짜 저 녀석도 대단한 녀석이긴 한 것 같아.

우효가 혀를 내둘렀다.

다음 타자인 제프 브레넌이 배트를 휘두른다.

빠악!

-필드에 바운드되며 외야로 향하는 공.

-호세 피자로가 3루로! 제프 브레넌이 1루에 안착합니다! 시애틀 매리너스! 위기가 이어집니다!

-4회 말부터 급격히 흔들리는 노엘 레벤하겐 선수입니다. 갑자기 공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니다.

저건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실험을 이어 나가고 있다.

-어지간히 또X이가 아니라면 실전에서 저런 이상한 공을 던질 이유는 없는데 말이야.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엉성한 공을 던지며 묘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이는 노엘 레벤하겐은 오늘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았다.

무사 1, 3루의 위기.

하지만 노엘 레벤하겐은 바깥쪽에 걸치는 체인지업을 던져 병살타를 유도했다.

-호세 피자로는 홈으로!

-하지만 병살타를 유도하며 2개의 아웃을 잡아내는 시애틀 매리너스입니다!

-이건 선택을 잘했어요. 1점을 내주더라도 2개의 아웃을 잡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방법이었거든요.

평소라면 위기를 1점으로 잘 틀어막은 것처럼 보이나 상대는 올해 ERA 0점을 찍고 있는 괴물이었다.

1점을 잃었다는 뜻은 오늘 경기에서 시애틀 매리너스가 졌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물론, 야구는 끝까지 모르는 법이다.

하지만 저 괴물은 규격 외였다.

4회 말을 1점으로 막아낸 노엘 레벤하겐이 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5회 초.

노엘이 내려가고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라섰다.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고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시애틀 더그아웃의 누군가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미친 새끼…….”

또X이가 내려가고 미친놈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 * *

오랜만에 왼손을 꺼내든 강송구.

100마일 근처의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들기 무섭게 시애틀의 타선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오늘 경기 2개의 피안타를 제외하면 1루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캉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매니 세가라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1할 근처에서 놀고 있는 타율을 갖춘 타자다.

조던 델가도는 힘들게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빠르게 잡아버리자고.’

하지만 강송구의 생각은 달랐다.

차분히 바깥쪽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스트라이크!”

“볼!”

“볼!”

“파울!”

“볼!”

5구 연속 바깥쪽 코스.

포심과 슬라이더만으로 풀 카운트를 쌓은 강송구가 위닝샷으로 몸쪽 낮은 코스로 빠지는 커브를 던졌다.

부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조금 멀리 놀아갔지만 깔끔하게 삼진으로 타자를 잡아내는 것을 보고 조던 델가도는 감탄했다.

‘캉도 은근 이상한 기질이 있다니까.’

어쩌면 그 이상한 기질 때문에 5월 중순까지 ERA 0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다른 팀 선수들이 강송구를 보며 ‘미친놈이다.’라고 하는 말이 마냥 헛된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음 타자는 에이롤 베라.

멘도사 라인을 자랑하는 타율.

하지만 그런 타율을 갖춘 에이롤 베라가 메이저리그에서 버티고 있는 것은 압도적인 수비 능력 덕분이다.

-유격수가 수비 능력만 좋으면 그만이지. 솔직히 타격까지 바라는 건 양심이 없는 거야.

우효가 그렇게 말을 내뱉었지만, 사실 강송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저 고슴도치의 모바일 야구게임 계정의 주전 유격수는 MVP를 받은 ‘31시즌 카디안 스타우트’라는 사실을 말이다.

800만 원을 갈아 넣었다고 들었었다.

초구는 몸쪽 포심 패스트볼.

100마일 근처의 공이 날아들자 타자가 움찔 몸을 떤다.

사실 90마일 근처의 공이 몸쪽 근처로 날아들어도 타자는 조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왜?

아프니까.

70마일짜리 공도 맞으면 아프다.

그런데 100마일짜리 공은?

머리에 잘못 맞으면 죽을 수 있다.

슈우우욱! 펑!

“후우…….”

2구째도 몸쪽 공이다.

카운트는 1-1의 상황.

하지만 에이롤 베라는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100마일이 원래 이렇게 빠른 공인가?’

다른 100마일을 던지는 투수를 상대로는 이렇게 무섭지가 않았는데 저 괴물을 상대로는 이상하게 겁이 났다.

3구째.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

그가 급히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하지만 내야로 높게 뜨는 공.

에이롤 베라가 눈을 질끈 감고 1루로 달렸다.

하지만 곧 들려오는 목소리.

“아웃!”

강송구가 순식간에 아웃 카운트 2개를 잡아냈다.

남은 타자도 깔끔히 잡아냈다.

100마일이라는 숫자가 주는 강력함은 강송구의 투구로 드러나며 순식간에 이닝을 정리했다.

5회 말.

노엘 레벤하겐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3개의 아웃을 깔끔히 막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 과정에서 그는 2개의 삼진을 골라냈다.

“드디어 저 또X이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

“그러면 뭐하냐. 이미 경기는 졌는데.”

“야! 아직 1 대 0이야! 충분히 역전할 수 있다니까?”

“제발! 할 수 있어!”

“상대가 캉이야. 기대하지 마.”

시애틀의 원정팬들은 5회 말에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준 노엘 레벤하겐을 보며 작은 희망을 품었다.

물론, 그 기대감은 6회 초에 마운드에 올라서 3개의 삼구삼진을 보여준 강송구 덕분에 박살 났지만 말이다.

단 9구 만에 끝난 이닝.

그래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신나게 두들겨 맞고 끝날 것처럼 보이는 경기가 그래도 그럴듯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거기다 아무리 강송구가 대단해도 야수들의 수비까지 어떻게 할 수 없는 투수다.

“실책 하나만 나온다면 어쩌면 역전은 몰라도 연장까지 경기를 이어 나갈 수 있을 거야.”

“제발……. 제발!”

“그냥 배트를 휘둘러 이 X같은 놈들아!”

따악!

높게 뜨는 공.

“아웃!”

시애틀 원정팬들의 기대와 다르게 라스베이거스의 야수들은 큰 실책 없이 공을 잘 처리했다.

-그렇지! 이게 야구지! 이게 야구야!

우효가 앞발을 꽉 쥐며 소리쳤다.

그러더니 아련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대전 호크스……. 하늘에서는 잘 있지.

강송구는 그런 우효를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금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애틀의 타선이 내 공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다음 이닝부터는 구사 비율이 낮았던 너클 커브랑 슬라이더를 더 적극적으로 던져야겠어.’

점수는 아직도 1 대 0.

아직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니었다.

시애틀도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강송구는 방심할 수 없었다.

6회 말.

노엘 레벤하겐이 마운드를 밟았다.

별다를 것 없이 공을 던지는 노엘.

하지만 그의 팔은 앞선 이닝과 다르게 조금 내려가고 있었다.

‘지쳤군.’

강송구는 그 차이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이윽고 팔이 내려가기 무섭게 노엘 레벤하겐의 공이 통타당하기 시작했다.

따악!

-쳤습니다!

-1루에 안착하는 주노 팍!

-대타로 나와서 한 건 해주는 주노 팍입니다!

대타자로 나와 안타를 때린 박준호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1루 주루코치에게 풋 가드를 건넸다.

장타를 때리지 못한 아쉬움이 클 것이다.

이어지는 승부.

노엘 레벤하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베이스 온 볼스!”

-볼넷!

-아직 이제 90구를 막 넘기는 상황에서 노엘 레벤하겐 선수가 흔들립니다.

‘90구도 같은 90구가 아니지.’

전혀 다른 투구폼으로 30구 정도 던졌던 노엘이었다.

아무리 그가 압도적인 재능을 갖췄어도 갑자기 바꾼 투구폼에 금방 익숙해질 방법은 없었다.

당연히 금방 몸이 지칠 수밖에 없다.

평소에 던지던 투구폼과 다른 투구폼을 꺼내며 안 쓰던 근육을 혹사한 것이니까.

‘만용이지.’

그래, 저건 만용이었다.

이윽고 노엘 레벤하겐이 만루를 채웠다.

무사 만루.

그제야 시애틀 매리너스의 감독이 마운드로 향했다.

아마 투수를 교체할 생각이겠지.

하지만 이미 승부가 크게 기울었다.

타석에는 교체로 투입된 조던 웨스트버그가 들어섰다.

공갈포에 가까운 타자지만, 클러치 상황에서는 그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베테랑이었다.

그는 마운드에 오른 스윙맨 크리스티안 카르도조가 던진 초구를 시원하게 담장 밖으로 보내버렸다.

빠아아악!

-넘어갑니다!

-조던 웨스트버그! 시즌 5호 홈런!

-여기서 조던 웨스트버그가 만루포를 쏘아 올립니다!

-여기서 점수가 더 벌어집니다!

이걸로 끝이었다.

점수는 이제 5 대 0.

조금씩 전의를 다시 끌어올리던 시애틀의 선수들이 이번 만루포를 보며 기세를 잃었다.

그리고 강송구는 기세를 잃은 시애틀의 타선을 누구보다 손쉽게 조리하며 1승을 추가했다.

-경기 끝났습니다!

-9이닝 12K 완봉승! 오늘도 캉이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주며 라스베이거스를 승리로 이끕니다!

-라스베이거스가 기분 좋은 연승을 이어나갑니다!

9이닝 12K 무실점 완봉승.

강송구가 다시금 또 하나의 승리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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