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163화 (163/198)

#163. 미친놈과 돌아이(2)

노엘 레벤하겐이 초구를 던졌다.

80마일 근처의 체인지업.

그가 던진 공은 타자의 바깥쪽에 걸쳤다.

강송구가 보여주던 마법과 같은 제구력이 다른 이의 손에서 펼쳐지자 타석에 섰던 조쉬 마이어스가 혀를 내둘렀다.

‘이러니 다른 타자들이 캉의 공을 제대로 노리질 못했군. 보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제구력이야.’

2구째도 비슷한 코스의 체인지업이었다.

다만, 아까보다 조금 더 깊게 들어오는 공이었다.

카운트는 1-1의 상황.

곧 노엘 레벤하겐이 다시 공을 던졌다.

3구째.

이번에도 체인지업이었다.

따악!

“파울!”

그제야 조쉬 마이어스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 새끼……. 미쳤나?’

3구 연속 체인지업.

그는 설마 했다.

‘이번에도 체인지업이겠어?’

이런 생각을 하던 조쉬 마이어스의 앞에 노엘 레벤하겐이 꺼내 든 것은 또 바깥쪽 체인지업이었다.

따악!

“아웃!”

-4구 연속 체인지업으로 범타를 유도한 노엘 레벤하겐! 오늘 노엘 선수의 피칭은 과거 톰 글래빈이 떠오르는군요.

-엄밀히 말해서 톰 글래빈이 떠오른다기에는 4구 연속으로 체인지업이 조금 이상한 볼 배합이네요. 그래도 제구력 하나만큼은 정말 감탄사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다음 타자는 카디안 스타우트.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강력한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음에도 노엘 레벤하겐의 피칭을 변하지 않았다.

[중계창]

-또또 시작이닼ㅋㅋㅋㅋ

-노엘쉑 또 승부 조작 들어가쥬?

-ㅋㅋㅋㅋㅋㅋ 아니, 미쳤낰ㅋㅋㅋㅋ 4구 연속 바깥쪽 체인지업은 도대체 무슨 무지성 피칭임?

-웃긴 건 그 무지성 피칭에 타자들이 당하고 있다는 거지ㅋ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 꼬우면 느그들도 4구 연속 바깥쪽 체인지업을 던져보던가?ㅋㅋㅋㅋㅋ

-볼 때마다 개빡치네;

-진짜 또X이임.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지독한 새끼.”

“저거 진짜 또X이 아니야?”

“미쳤으니 저러는 거지.”

이번에도 바깥쪽 체인지업.

놀라운 점은 체인지업이란 구종 자체가 포심 패스트볼과 함께 쓰며 타자를 속이기 위한 구종인데, 노엘은 80마일 초반의 체인지업을 패스트볼처럼 활용하며 70마일 중반의 체인지업을 활용해 타자를 속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번에는 상대가 좋지 않았다.

7구 승부 끝에 안타를 치고 1루로 나선 카디안 스타우트를 보며 노엘 레벤하겐이 고갤 끄덕였다.

“인간이 로봇을 어떻게 이기겠어.”

그 말을 내뱉고 다음 타자를 상대했다.

최근 폼이 조금씩 올라오며 기어코 2할대 타율까지 올라온 엘빈 하인리히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로봇처럼 던져볼까?”

노엘은 묘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초구를 던졌다.

아까와 전혀 다른 공이 날아들었다.

“스트라이크!”

몸쪽 포심 패스트볼.

뜬금없는 공이 튀어나왔다.

[중계창]

-아! 이번에는 또 뭔데?

-투구폼은 왜 바꿈?

-저거 딱 강속구 투구폼인데?

-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건 또 무슨 무근본 피칭인데? 쟤 메이저리그 놀러 온 거야?

-무근본? 너 지금 강송구 선생님의 투구폼을 보고 근본이 없다고 말한 거냐?

-우리 강 선생님의 근본력이 좀 끝내주지.

-여기서 글 쓸 시간에 일이나 해; 한국시각으론 오전 경기인데 여기서 이 지랄을 하는 거 보니 다들 월급도둑이냐?

-아니, 나 백수야!

-…….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쟤 또 왜 저래?”

“갑자기 몸쪽 공이라고?”

이제는 몸쪽 공만 던진다.

더 웃긴 것은 그가 던지는 투구폼이 아까와 다르게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그래, 꼭 우완으로 공을 던지는 강송구와 흡사했다.

기계처럼 덤덤한 표정으로 공을 던지는 노엘 레벤하겐은 엘빈 하인리히를 상대로 범타를 유도했다.

유격수 방면으로 튀는 공.

그 공을 유격수가 잡아서 2루로.

그리고 공은 다시 1루로 향했다.

-완벽한 더블 플레이!

-노엘 레벤하겐이 1회 말을 깔끔히 막으며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을 꽁꽁 묶었습니다.

-기복이 심한 선수이기에 오늘 경기 어쩌면 일방적인 경기가 될 수 있다고 봤는데요.

-아무래도 오늘 노엘 레벤하겐 선수의 컨디션이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이 노엘 선수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때?”

다른 선수의 물음에 병살타를 때린 엘빈 하인리히가 고개를 절레 흔들며 답했다.

“캉을 상대하는 기분이야.”

“그 정도야?”

“컨트롤이 특히 캉과 비슷해. 아니, 꼭 캉을 따라 하려는 것처럼 공을 던지고 있어.”

이윽고 글러브를 들고 필드로 나선 선수들.

강송구는 엘빈 하인리히의 말을 생각하며 마운드에 올라 로진백을 들어 올렸다.

-캬……. 난 미친놈이 너 하나뿐인 줄 알았는데 상대 팀에도 하나 더 있을 줄 꿈에도 몰랐어.

‘난 미치지 않았다.’

-미친놈은 자기가 미친 줄 몰라.

우효가 고갤 흔들었다.

강송구는 그런 우효를 무시하고 2회 초의 선두 타자를 바라보며 조던 델가도에게 사인을 보냈다.

‘하워드 멜란데인.’

다른 부분이 부족하더라도 ‘힘’이라는 부분에서 큰 장점이 있는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작년보다 훨씬 장타력이 늘어난 느낌인데…….’

뭐……. 타율은 0.240을 찍으며 바닥을 기고 있으니 강송구가 딱히 크게 고민할 상대는 아니었다.

만약 하워드 멜란데인이 30대 초반의 베테랑이었다면 강송구는 전력투구를 하며 몰아붙였겠지만, 지금 강송구 앞에 있는 하워드 멜란데인은 이제 26살에 접어든 젊은 선수다.

“스트라이크!”

조금은 여유롭게 몰아붙일 수 있었다.

2구째는 몸쪽 싱커.

따악!

“파울!”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강송구가 3구는 유인구로 한 번 빼는 공을 던졌다.

그리고 이어진 4구째.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로 삼진을 잡아냈다.

하워드 멜란데인은 묘한 표정으로 강송구를 노려보다가 혀를 짧게 차고는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강송구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런 하워드를 바라보다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다시금 승부에 집중했다.

하지만 우효는 알고 있었다.

-나 같아도 노려보겠다.

왜 저들이 강송구를 노려보는지.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매섭게 배트를 휘두르는 타자.

하지만 강송구의 공은 배트를 농락이라도 하는 것처럼 절묘한 코스로 도망쳤다.

-3구째는 바깥쪽 컷 패스트볼.

생각보다 오늘 캉의 컨디션이 좋은 것 같습니다. 공의 무브먼트가 평소와 조금 다른 느낌이네요.

4구째.

이번에도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였다.

따악!

“아웃!”

투수 정면으로 튄 공을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빠르게 잡아 1루로 송구했다.

이번에도 위닝샷은 스플리터였다.

순식간에 두 명의 타자를 잡아낸 강송구.

마지막 타자도 마지막 위닝샷으로 스플리터를 던지며 2회 초를 깔끔히 막아냈다.

-첫 번째 타자를 제외하고는 다 스플리터로 아웃을 잡았는데 이유가 있는 거야?

우효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강송구는 그런 우효의 물음에 짧게 답했다.

“그냥. 그게 좋을 것 같아서.”

그 대답을 듣고 우효가 고갤 절레 흔들었다.

-저러니 미친놈이란 소릴 듣지.

* * *

[중계창]

-속보! 강송구 오늘 스플리터 끝내줌.

-와; 진짜 미쳤다. 위닝샷으로 스플리터만 던지는데 타자들이 알고도 때려내질 못하네.

-저러니 작년에 AL에서 0점대 평자 찍고 사이 영까지 먹은 거지; 근데 어떻게 작년에 4패나 한 거야?

-그거 메이저리그 4대 미스터리임.

-진짜; 저런 공을 던지는데 4패나 했다고?

-이게……. 메이저리그?

-그것보다 시애틀 타자들은 좀 빡치겠다. 사회인 야구에서도 알고도 치지 못하는 공을 보면 속 터지던데.

-강송구는 즐겜 모드여도 압도적이네;

“Fxxk! 저 녀석은 또 왜 저래?”

“저 두 놈끼리 따로 통하는 뭔가가 있는 거야? 캉은 갑자기 저 망할 놈처럼 던지고, 저 또X이는 왜 갑자기 캉처럼 던지기 시작하는 건데?”

이해할 수 없었다.

3회 초.

강송구는 계속해서 위닝샷으로 스플리터를 고집했다.

물론, 그 고집으로 2개의 안타를 내줬지만……. 지금까지 무실점을 계속 유지 중이니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그건 노엘 레벤하겐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투구폼도 바꿔가며 강송구처럼 던지기 시작한 그는 1회 말에 내준 안타와 3회 말에 안타를 하나 내준 것을 제외하면 딱히 큰 실책은 없었다.

두 투수 모두 기행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4회 초, 시애틀 매리너스의 공격이 찾아왔다.

첫 타자는 라몬 로잘레스.

몇몇 한국에 있는 시애틀팬들은 병살레스라고 부르며 그를 조롱하지만, 필요할 때는 제대로 타점을 뽑아주는 타자였기에 마냥 그를 싫어하는 이들은 없었다.

따악!

“아웃!”

그리고 뛰어난 포텐셜을 갖춘 라몬 로잘레스라도 강송구를 상대로는 병살레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 물론 4회 초의 선두 타자이기에 병살이 나올 수 없긴 하지만 말이다.

다시금 타석에 들어서는 하워드 멜란데인.

강송구가 공을 던졌다.

앞선 승부에서 보여줬던 볼 배합과 같았다.

그리고 3구까지 이어진 승부에서 하워드 멜란데인은 순간 머리끝까지 열기가 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 타석이랑 똑같은 볼 배합이라고?’

순간 입에서 ‘미친 새낀가?’란 말이 튀어나왔다.

4구째.

강송구의 위닝샷인 스플리터가 날아들었다.

‘날 아주 우습게 보는군!’

이건 유인구일 것이다.

배트를 내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하워드가 공을 지켜봤다.

하지만 공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밋밋하게 떨어졌다.

정확히는 낙폭이 체인지업보다도 덜한 수준이었다.

‘뭐?’

이러면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빠져나가지 않는다.

무릎에 정확히 걸치는 공이 된다.

그야말로 실투에 가까운 공.

하지만 그 공을 하워드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배트를 내밀어봤자 공을 건들 수 없으니까.

그의 배트 스피드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주심의 판정을 기다렸다.

하지만 야구의 여신은 오늘 그에게 웃어주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루킹 삼진!

-아! 이건 하워드 멜란데인 선수가 생각이 너무 많았습니다. 캉이 정말 오랜만에 던진 실투거든요?

-이건 타자의 실수가 크네요. 무조건 배트를 내밀었어야 하는 공이었습니다. 명백한 실수에요.

-하워드 멜란데인…….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화가 난 것일까요? 허벅지로 배트를 박살 냅니다.

-화가 날 수밖에 없던 상황입니다. 정말 좋은 공을 놓친 것이나 다름이 없거든요.

물론, 해설자들의 생각과 다르게 하워드 멜란데인이 화가 난 이유는 자신의 실수 때문이 아니었다.

‘저 미친 새끼……. 사람을 우습게 보고 있어.’

타자를 조롱하듯이 공을 던지는 투수.

강송구를 보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그는 다음 타석에서는 꼭 장외 홈런을 때리고 시원하게 배트 플립을 하며 베이스를 돌 때 온갖 퍼포먼스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며 주먹을 쥐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흐흐흐! 두고 보자. 캉!”

음침하게 웃는 하워드 멜란데인을 바라본 우효가 의아한 표정으로 강송구에게 말했다.

-야, 저 친구 웃는데?

‘내버려 둬. 기분 좋은 상상이라도 하고 있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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