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광란의 5월(3)
1 대 0으로 앞서나가는 3회 말.
강송구가 리드를 지키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그를 바라보는 볼티모어의 8번 타자인 조쉬 넛텔이 입술을 깨물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좋지 않습니다.
-2구 만에 카운트에 몰렸어요. 오늘 경기에서 유달리 캉의 스플리터가 날카롭게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캉이 왼손을 꺼낸 적이 있나요?
-거의 없죠. 지난 경기에서도 1이닝 정도 왼손으로 공을 던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3구!
-그대로 헛스윙 아웃!
-캉의 위닝샷은 날카로운 너클 커브였습니다.
허탈했다.
조쉬 넛텔은 고갤 흔들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뒤를 이어 제이든 멜렌디즈가 타석에 들어섰다.
이번 시즌에 콜업이 된 선수로 주전 포수인 애들리 러치맨보다 타격이 다소 많이 떨어지지만, 압도적인 수비능력으로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려가는 젊은 포수였다.
조던 델가도가 힐끗 젊은 타자를 바라보곤 강송구에게 초구를 요구했다.
‘몸쪽 낮은 코스?’
평소 바깥쪽을 시작으로 천천히 좌우 로케이션으로 타자를 공략하는 것과 다르게 조던 델가도가 이번에는 몸쪽 낮은 코스의 공을 요구했다.
강송구는 고갤 끄덕이며 초구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무릎 높이에 걸친 완벽한 공.
제이든 멜렌디즈가 배트를 내밀다 멈췄지만,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 정확히 걸쳤다.
2구째.
강송구가 바깥쪽 컷 패스트볼을 던졌다.
따악!
“파울!”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제이든 멜렌디즈.
그러나 그의 표정은 덤덤했다.
‘감 잡았어. 바깥쪽 코스의 공이라면 커브만 아니라면 모두 때려낼 자신이 있다.’
그는 확신했다.
바깥쪽으로 날아드는 어떤 공이든 때려낼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오만이었다.
부우우웅! 따악!
-높게 뜨는 공.
-내야 뜬공! 유격수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공을 카디안 스타우트가 깔끔히 처리합니다.
-좋은 체인지업이었습니다. 2구보다 공 한 개가 더 빠지는 공이었는데 타자가 너무 쉽게 배트를 내밀었어요.
-저런 코스는 아무리 힘있게 때려도 좋은 코스가 잘 나오지 않는데……. 제이든이 너무 조급했던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2명의 타자를 잡아낸 강송구.
이윽고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그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4회 초.
앙헬 풀리도가 마운드에 올랐다.
회심의 솔로포를 얻어맞은 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흉흉해서 다른 야수들이 말을 걸지 못했다.
‘확실히 그 뜬금포 홈런은 기분이 나쁘지.’
‘앙헬이라면 금방 털어낼 거야.’
‘승부욕 하나는 진짜 끝내주네.’
야수들은 첫 타자를 상대로 압도적인 피칭으로 삼진을 잡아낸 앙헬을 보며 감탄했다.
그렇다고 앙헬이 감정에 잡아먹힌 것도 아니었다.
그는 노련했다.
자신의 승부욕을 잘 활용해서 어려운 위기 없이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을 깔끔히 정리했다.
-카디안 스타우트! 이번에는 2루타입니다!
-정말……. 앙헬 선수도 허탈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듭니다. 이번 안타도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저놈은 그냥 번외라고 생각하자.’
차라리 안타로 막아내서 다행이었다.
카디안 스타우트가 컨디션이 더 좋았으면 지금쯤 점수는 1 대 0이 아니라 3 대 0이었을 것이다.
앙헬은 남은 아웃을 깔끔히 잡았다.
점수 차이는 계속 1 대 0을 유지했다.
4회 말.
다시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가 위기 없이 깔끔히 이닝을 끝낸 것처럼 강송구도 모처럼 볼넷을 하나 내줬지만, 깔끔히 이닝을 지워냈다.
그렇게 찾아온 5회 초.
경기는 이제 절반이 막 지나가고 있었다.
* * *
6회 초.
앙헬 풀리도는 생각했다.
‘이 경기가 이렇게 흘러갈 경기였던가?’
1 대 0을 유지하며 9회 말까지 1점 차이 승부가 계속 이어질 것처럼 경기는 팽팽했었다.
그래 5회 초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마운드를 내려가고 있었다.
불펜 투수에게 공을 건네준 뒤에 말이다.
전광판을 바라보니 점수 차이는 5 대 0으로 벌어진 상황, 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더그아웃에 앉았다.
실책 두 번이 그를 무너트렸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뱉는 그의 머릿속에는 상대 타자에게 기어코 장타를 허용한 장면만 남았다.
앙헬 풀리도가 낙심하고 있는 사이.
볼티모어의 위기는 계속되었다.
불펜투수인 앤디 플리젠트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알프레도 나바로였다.
따악!
-벌써 8구째 커트!
-오늘 알프레도 선수의 배트가 날이 섰습니다.
-9구째 또 커트!
길게 이어지는 승부.
마운드에 있는 투수의 두 눈이 흔들렸다.
-아! 벌써 11구입니다.
-알프레도 선수! 풀카운트까지 가는 승부를 넘어서 이제 12구째 앤디 플리젠트 선수를 괴롭힙니다.
끈질겼다.
어떤 공을 던지던 알프레도는 날이 선 배트 컨트롤로 아주 끈질기게 공을 커트했다.
덕분에 앤디 플리젠트의 멘탈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14구째 승부.
앤디 블리젠트가 던진 ‘에라 모르겠다.’ 수준의 공을 알프레도 나바로가 그대로 받아치면서 2사 2루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홈런을 때린 토미 리브스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따아아악!
그가 타석에 들어서기 무섭게 들려오는 타구음.
토미 리브스가 환히 웃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또 넘어갑니다!
-토미 리비스! 시즌 8호 홈런!
-오늘 경기는 토미 리브스가 만듭니다! 점수는 이제 7 대 0으로 더 벌어집니다!
빅이닝이 끝났다.
6회 말.
푹 쉰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오른손에 글러브를 낀 상태로 말이다.
오랜만에 꺼내든 왼손.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선수들이 눈을 찌푸렸다.
“여기서 왼손?”
“갑자기? 최근에 몇 번 던지지도 않았잖아?”
“정신이 나갈 것 같네.”
6회 말의 첫 타자는 9번 타자 제이든 멜란디즈.
실책 하나와 볼넷 하나를 허용한 저 괴물을 상대로 그는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삼구삼진을 허용한 제이든 멜란디즈가 체념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오른손을 상대해도 힘든데……. 100마일까지 나오는 왼손을 상대로 어떻게 이기냐고.’
두 번째 타자는 마이크 가디너.
앞선 두 타석에서 그는 썩 재미를 보지 못했기에 이번 타석에서 어떻게든 안타를 치고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강송구였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100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들었다.
그것도 좌완 투수가 던진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마이크 가디너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100마일이 이렇게 빨랐나?’
앞선 타석에서 평균 94마일 근처의 공을 보다 6마일 차이가 나는 공을 보니 배트가 따라 나오질 못했다.
문제는 구속만 빠르다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 섞여 나오는 고속 슬라이더와 준수한 체인지업은 마이크 가디너를 타석에서 발레리노처럼 빙글 돌게 했다.
-캬! 오랜만에 왼손이네.
‘그렇지.’
-그런데 언제 최고구속을 보여줄 거야? 103마일까지 던질 수 있는 거 굳이 감출 필요가 있나?
‘원래 비밀무기란 것은 결정적일 때 꺼내야 하는 법이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지. 남자라면 자신의 능력을 3할은 숨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야.’
-그거 무협지에서 나오는 말 아니야?
‘그렇군.’
뻔뻔한 강송구의 얼굴에 우효가 혀를 내둘렀다.
저 얼굴을 보고 말싸움에서 이길 수 없었다.
6회 말의 마지막 타자는 에릭 커.
볼티모어에서 최근 가장 타격 능력이 좋은 그를 상대로 강송구가 99마일-98마일-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연이어 던지며 순식간에 아웃을 하나 빼앗아냈다.
-외야로 떨어지는 공!
-토미 리브스가 깔끔히 공을 잡았습니다.
-경기 초반에 실책을 범했던 토미 리비스 선수였는데요. 타격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후에 수비에서의 집중력을 되찾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네, 그런 것 같네요.
깔끔히 6회 말을 끝낸 강송구.
그의 투구수는 아직도 80구를 넘기지 않고 있었다.
* * *
9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오늘 경기 강송구가 허용한 출루는 단 3번뿐이었다.
물론, 그중에서 두 번은 야수 실책이었고, 남은 하나는 볼넷으로 내준 출루였다.
그렇다.
강송구는 지금 노 히터에 도전하고 있었다.
타석에 마이크 가디너가 들어섰다.
오늘 경기에서 강송구에게 단단히 묶인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오른손이네.’
해볼 만했다.
평균 94마일의 공을 본 뒤에 날아든 100마일보다 그 100마일을 본 뒤 날아드는 94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훨씬 쉬운 법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송구의 포심 패스트볼은 구속으로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스트라이크!”
돌처럼 단단한 구위와 날카로운 제구력.
강송구의 오른손에서 빠져나간 포심 패스트볼에 매섭게 마이크 가디너의 약점을 후벼팠다.
2구째.
이번에는 몸쪽 공이었다.
우타자 몸쪽으로 바짝 붙는 싱커.
사실상 이 공으로 끝이었다.
급히 배트를 휘두른 마이크 가디너도 배트에 빗맞는 공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아!’
오늘 경기는 완전히 틀렸다고.
터덜터덜.
허탈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에 들어선 마이크 가디너.
하지만 그는 동료들의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
“뭐야?”
팀의 4번 타자이자 거포인 조쉬 알바레도가 크리스 리차드 감독의 재수 없는 얼굴에 스트레이트를 날리고 있는 장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마운드 위에 있는 강송구도 모처럼 덤덤한 표정이 아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볼티모어의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잠깐 중지된 경기.
씩씩 성을 내는 조쉬 알바레도를 동료들이 격하게 말리며 진정시켰다.
이윽고 다시 시작된 경기.
모두의 집중력이 떨어져 있었기에 강송구는 무난하게 노 히터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끝난 경기.
서로 축하하는 라스베이거스 선수단과 다르게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더그아웃은 그야말로 겨울이 온 것처럼 쌩쌩 찬바람이 지나간 것처럼 차가웠다.
* * *
[강송구 시즌 첫 노 히터 달성!]
[라스베이거스, 리그 11연승 달성!]
[조쉬 알바레도는 왜 크리스 리차드 감독에게 주먹질을 날렸단 말인가?]
[조쉬 알바레도, ‘아무리 감독이 대단해도 나와 내 동료들의 열정을 비웃을 권한은 없다.’]
[크리스 리차드 감독 인터뷰 거부.]
[충격! 크리스 리차드 감독의 폭언이 밝혀져 파문!]
[강송구를 공략하지 못하는 볼티모어의 선수들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인신공격을 펼친 크리스 리차드 감독.]
[크리스 리차드 감독, ‘다 선수들이 수준 이하라서 벌어진 일이다. 솔직히 난 잘못 없다.’]
-와;; 어메이징하넼ㅋㅋ
-어쩐짘ㅋㅋ 그 좋은 전력을 갖추고 왜 볼티모어가 알동부 2위인지 깨달을 좋은 기회였다.
-ㅋㅋㅋㅋㅋ 아닠ㅋㅋ 감독 수듄 왜 저러냐?
-크리스 리차드 : 아! 일단 선수 차이라고! ㅅㅅㅊㅇ!
-ㅋㅋㅋㅋㅋㅋㅋ 우리 팀 탑솔러도 이런 X소리는 안할 것처럼 느껴지는뎈ㅋㅋㅋ
-저게 탑솔러가 감독이 되면 벌어지는 일이구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 덕분에 강송구 노 히터도 묻혔다궄ㅋㅋ
-어메이징 팀이넼ㅋㅋㅋ
-강송구는 이제 팀까지 파괴하넼ㅋㅋ
-저 주먹질 덕분에 강송구 노 히터랑 오렐 허샤이저 59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 깬 것도 묻힘ㅋㅋㅋㅋㅋ
-앜ㅋㅋㅋ 강송구가 신나게 기록 깨는 것보다 옆집 싸움구경이 더 재미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