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광란의 5월(2)
“미치겠네.”
최근 박준호의 활약으로 출전시간이 줄어든 토미 리브스가 긴장 어린 표정으로 경기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의 긴장감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베테랑들은 이런 분위기가 젊은 선수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며 몇몇 젊은 선수들 옆에 붙어서 그들이 오버 트레이닝을 해 다치거나, 경기 내에서 흥분해서 무너지는 상황을 막으며 잘 조절시켜주었다.
확실히 그런 부분만 아니라면 라스베이거스의 라커룸은 최근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당연했다.
10연승이었다.
지난 시즌에도 7연승이 최다였는데, 올해는 전반기부터 착실히 승리를 쌓아가고 있었다.
덕분에 미키 스토리 감독의 입가도 한없이 귀가 있는 방향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무튼, 토미 리브스는 오늘 경기에서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고 싶었다.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외야에서 가볍게 캐칭을 주고받는 사이에 캠든 야즈에 많은 관중이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리올스의 40년 팬이자 라스베이거스에서 데뷔한 자신을 갈구는 존재 둘이 외야 관중석에 나타났다.
그들은 외야에 가까이 붙어 소리쳤다.
“토미! 오늘 무조건 4삼진이다!”
“하하하하! 4삼진이라니? 삼구삼진, 내야 땅볼, 외야 플라이, 내야 플라이! 이렇게 하나씩 당해야지!”
“아빠……. 그리고 누나! 제발 좀 그만해!”
그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가족을 바라봤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두 사람은 입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네가 오리올스에서 데뷔했으면 이렇게 갈구지 않지. 쯧쯧쯧……. 그러게 누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데뷔하래?”
“아니! 오리올스가 트레이드로 날 라스베이거스에 넘겼는데 어떻게 오리올스에서 데뷔해?”
토미 리브스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저 두 사람에게 신경을 쓰다가는 오늘 경기에서 신나게 공을 놓칠 것 같아 고갤 돌렸다.
‘그래, 신경 쓰지 말자.’
하지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목소리는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 예전 네 첫사랑인 메리가 안부 전해달라더라.”
“Fxxk! 제발! 나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니까?”
“그래, 열심히 집중해. 난 열심히 떠들게.”
그의 누나는 신나게 입을 떠들었고, 그의 아버지는 토미 리브스가 3살 때 코딱지를 파먹는 순간을 찍은 사진을 깃발로 만들어 흔들고 있었다.
토미 리브스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국민의례와 시구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시구자는 볼티모어의 보육원에서 40년을 일해온 켈리 아주머니가 주인공이었다.
그녀는 가뿐히 공을 던지고 손을 흔들며 마운드를 내려갔고, 곧이어 볼티모어의 앙헬 풀리도가 마운드에 올랐다.
부상으로 전반기를 거의 통으로 빠진 앙헬 풀리도는 132.1이닝을 소화하며 작년 10승 7패 ERA 4.15를 기록했다.
30시즌에 193.1이닝을 소화하며 16승 8패 ERA 3.49을 기록했던 에이스의 성적이라기엔 아쉬웠다.
그렇기에 앙헬은 오늘 경기에서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다.
아메리칸 리그를 지배하는 투수.
강송구를 상대로 자신이 어떤 투수인지 말이다.
“앙헬! 오늘도 잘 부탁해!”
“투수는 상대 투수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타자를 상대하잖아. 너도 9이닝 무실점으로 막으면 라스베이거스의 거인과 동급인 거라고! 알겠어?”
“상대 타선을 박살 내버려!”
오리올스의 홈팬들이 내뱉는 함성.
앙헬 풀리도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로진백을 들어 올려 자신의 오른손에 잔뜩 로진을 묻혔다.
타석에는 조쉬 마이어스가 선두타자로 나섰다.
-앙헬 폴리도가 피칭을 준비합니다.
-최근 너무나도 불운했죠? 1승 4패 ERA 3.48을 기록하고 있는 앙헬 풀리도입니다.
-팀의 득점 지원과 야수들의 실책 때문에 승리를 제법 많이 날렸던 앙헬 풀리도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다를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 코르테스가 부상에서 막 복귀했거든요?
-맞습니다. 거기다 앙헬 풀리도 본인도 상당히 좋은 투수입니다. 포심-체인지업-커브만 던져서 이 정도 성적을 거두는 투수는 몇 없으니까요.
초구는 몸쪽 포심 패스트볼.
앙헬 풀리도는 자신 있게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공격적인 피칭을 보여주는 투수를 보며 타석에 선 조쉬 마이어스가 고갤 끄덕였다.
‘충분히 때려낼 수 있어.’
평균 96마일의 포심 패스트볼.
딱히 어려운 공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공이 플러스급 체인지업과 섞이면 그 어떤 타자도 쉽게 때려낼 수 없는 마구가 된다.
부우웅! 따악!
“파울!”
2구째.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배트를 휘두른 조쉬 마이어스는 체인지업이 떨어지는 타이밍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체인지업이 이런 무브먼트를 보여줄 수 있나?’
3구째.
이번에는 몸쪽으로 깊게 들어오는 커브.
조쉬 마이어스는 배트를 내밀지 않았다.
“볼!”
4구째.
다시 몸쪽 커브.
이번에는 무릎에 아슬하게 걸치는 코스로 날아드는 깔끔한 커브였다.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아직 앙헬 풀리도가 던지는 커브의 낙차에 적응하지 못한 조쉬 마이어스가 헛스윙하곤 타석에서 물러났다.
[중계창]
-그렇지! 나이스! 앙헬이 커브는 진짜 좋다니까?
-요즘 앙헬 디그롬 루트 타고 있어서 기대됨. 여기서 조금만 더 발전하면 디그롬보다 더 잘할 듯ㅋㅋㅋ
-평자 3점 따리 투수보고 디그롬이라 그러네;
-드디어 오늘 역배각 떴냐?
-아닠ㅋㅋ 침팬지도 강송구 나오는 경기에서는 정배 신나게 찍어대는데 누가 역배를 찍음?
-침팬지보다 못한 머저리들이 존재한다는 거지.
-이래서 도박이 나쁜 거다. 사람의 판단력을 침팬지보다 못한 수준으로 만들어버린다.
2번 타자 카디안 스타우트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초구를 노려치며 손쉽게 1루에 안착했다.
앙헬 풀리도는 너무나도 쉽게 야구를 하는 카디안 스타우트를 잠깐 바라보고는 다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저 녀석은 다른 차원의 선수라고 생각하고 넘기자. 그래, 장타를 맞은 것도 아니잖아.’
자기합리화를 끝낸 그가 3번 타자인 엘빈 하인리히를 상대로 가볍게 병살타를 유도했다.
-1회 초를 깔끔히 막아내는 앙헬 풀리도입니다!
-체인지업에 엘빈 선수가 완벽히 속았습니다. 보세요. 공이 배트 밑에 맞고 투수 정면으로 향하는 모습을요.
-오늘 유난히 체인지업이 날카로운 앙헬 선수입니다.
“좋았어.”
주먹을 꽉 쥔 앙헬이 더그아웃에 들어와 타는 목을 스포츠음료로 적시며 자리에 앉았다.
그의 시선은 다시 마운드로 향했다.
마운드에는 괴물이 올라섰다.
작년 AL 사이 영 수상자이자.
월드시리즈 MVP인 투수.
그를 상대로 오리올스의 1번 타자인 마이크 가디너가 타석에 들어섰다.
데이비드 코르테스를 3번 타순으로 돌리고, 에이징커브가 찾아온 코리 시거를 6번 타순으로 돌린 상황에서 가장 리드오프에 어울리는 타자가 바로 마이크 가디너였다.
그는 아직 강송구의 무서움을 몰랐다.
지난 시즌에 맞붙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다양한 일 때문에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저 동양인이 뭐가 무섭다고…….’
잘하는 건 인정한다.
그게 아니라면 지난 시즌에 0점대 평균자책점이 기록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타석에서 잔뜩 겁을 집어먹고 들어서는 이유를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스트라이크!”
“파울!”
“파울!”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단 4구 만에 끝난 승부.
마이크 가디너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타석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쯧쯧……. 저 멍청한 녀석! 내가 누누이 이야기했는데……. 캉은 완전 다른 투수라고.”
“이건 마이크가 실수한 거야.”
다음 타자는 에릭 커.
지난 시즌에 플래툰으로 활약한 이 젊은 중견수는 이번 시즌에는 완전히 주전으로 도약했다.
지난 시즌 86경기에 출전해서 0.307의 타율과 16개의 홈런을 기록한 그는 올해 주전으로 출전해서 0.292의 타율과 9개의 홈런을 때리며 주전으로서 연착륙에 성공했다.
그런 젊은 유망주도 강송구의 앞에서는 순한 양이었다.
따악!
“파울!”
초구부터 노렸음에도 강송구의 싱커는 타자의 배트에 정확히 맞지 않았다.
-에릭 커의 초구 타격!
-하지만 그대로 공은 파울이 됩니다.
-좋은 움직임의 싱커였어요.
2구째는 바깥쪽 커브.
3구째는 몸쪽 체인지업이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위닝샷으로 던진 하이 패스트볼.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94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배트의 위를 가로질렀다.
허탈한 표정의 에릭 커.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왜 그런지는 몰라도 우효가 그런 에릭 커를 보며 주먹 감자를 먹이고 있었다.
‘왜 그래?’
-아니! 저 녀석이 내 SNS에 와서 고슴도치에게 망고는 사치가 아니냐고 물어보잖아! 무엄하게 말이야.
‘요즘 SNS도 하나?’
-내가 요즘 핫한 SNS랑 미튜브 스타야! ‘우효튜브’라고 먹방 채널을 운영하는데 인기가 최고라고!
‘그렇군.’
강송구는 이해할 수 없으나 그저 고갤 끄덕였다.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3번 타자 데이비드 코르테스.
딱히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작은 문제라면 외야 플라이로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토미 리브스의 실책으로 데이비드 코르테스가 1루에 안착했다는 사실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강송구나 우효는 딱히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원래 실책이라는 게 은행 이자 같은 거니까.
‘그렇지.’
하지만 토미 리브스는 달랐다.
“푸하하하하! 릭! 봤어요? 저 꼬마가 실수하는 거?”
“엘리! 네 동생은 정말 대단한 광대야!”
“토미! 토미! 토미! 토미!”
가족은 물론이고 언제 왔는지 모를 고향 사람들까지 토미 리브스의 실수를 보며 웃는다.
멘탈이 탈탈 털린 토미 리브스.
그는 글러브를 팡팡 두들기며 멘탈을 가다듬었다.
‘후우…….’
이윽고 4번 타자인 호세 알바레도의 타구가 높게 떠올라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토미 리브스가 외야 뜬공을 잘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자 가족들과 고향 사람들이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래도 코흘리개 토미가 제법 야구를 잘하네’라며 중얼거렸다.
2회 초.
앙헬 풀리도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제대로 기세가 올랐는지 3명의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며 캠든 야즈를 찾은 홈팬들의 환호성을 이끌었다.
“커모오오오온!”
“앙헬! 앙헬! 앙헬! 앙헬! 앙헬!”
“이거지! 이게 앙헬이지!”
하지만 2회 말에 다시 등판한 강송구의 호투에 다시금 시무룩해지며 입을 닫았다.
“저 괴물은 틈이 안 보여.”
“저 친구 FA가 언제래?”
“2년 뒤인가? 그럴걸.”
“제발 오리올스로 오길…….”
“우리 팀에 4억 달러는 있고?”
다시 찾아온 3회 초.
신나게 떠들던 홈팬들이 다시 환호성을 내지른다.
앙헬 풀리도는 주먹을 꽉 쥐었다.
팬들의 기대감을 지키고 싶은 젊은 에이스가 차근차근 타자를 상대해나가기 시작했다.
내야 뜬공.
그리고 삼진.
하위 타선임에도 제법 공을 들여 아웃을 잡아낸 앙헬 풀리도의 앞에 9번 타자 토미 리브스가 들어섰다.
그는 배트를 꽉 쥐고 있었다.
‘가운데 외야로 보낸다.’
자신의 가족들과 고향 사람들이 있는 방향.
그 방향으로 큰 타구를 보내고 싶었다.
이윽고 투수가 공을 던진다.
초구는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참았다.
2구째는 몸쪽 체인지업.
이번에는 배트가 나갔으나 파울.
3구째는 낮게 떨어지는 커브.
4구째는 몸쪽 포심 패스트볼.
5구째는 바깥쪽 체인지업.
카운트는 순식간에 풀카운트가 되었다.
앙헬 풀리도는 배트를 바짝 잡았음에도 생각보다 신중한 토미 리브스를 보며 까다롭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6구째.
앙헬 풀리도가 승부수를 던졌다.
자신의 최고 구속인 98마일의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그에 맞춰 토미 리브스가 빠르게 배트를 휘둘렀다.
빠아아악!
그리고 들려오는 큰 타구음.
토미 리브스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상하게 외야에서 누나의 비명이 들려온 것 같았지만……. 그는 쿨하게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