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미스터 제로!(3)
3회 말.
피트 버로우는 생각했다.
‘뭔데 저건?’
3회 말의 선두타자인 알프레도 나바로.
그의 폼이 심상치 않았다.
자신이 던진 스플리터를 깔끔한 배트컨트롤로 때려내는 것을 보고 등줄기에서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상대가 카디안 스타우트였다면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그의 스플리터를 때려낸 선수는 이제 커리어 첫 풀시즌을 시작한 애송이였다.
그나마 타구의 힘이 부족해서 안타가 된 공이었지만, 조금만 힘이 좋았다면 이 공은 안타가 아니라 홈런이 되었을 확률이 상당히 높은 공이었다.
1루 베이스를 밟고 주루용 벙어리장갑을 꺼내는 알프레도 나바로를 뒤로하고 그가 다음 타자를 바라봤다.
다음 상대는 8번 타자 조쉬 마이어스.
랜디 에드워즈에게 밀려난 백업 2루수인 선수이자 지명타자로 간간이 출전하는 젊은 타자.
하지만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재능이 없다면 21살에 콜업되지 못했겠지.’
그래, 저 타자는 재능이 넘친다.
메이저리그에서 콜업이 되고 지난 3년 동안 규정 타석을 모두 채우지 못했지만, 콜업이 된 21살부터 메이저리그 3년 차가 된 23살이 된 지금까지 그는 꼬박꼬박 제 몫을 보여줬다.
‘팀의 주장인 랜디 에드워즈의 서비스 타임 6년을 채우던 게 내년이던가? 내후년이던가? 아마도 2년 이내에 저 젊은 이루수가 주전이 되겠지.’
아무튼.
무사 1루의 상황에서 마주한 조쉬 마이어스를 상대로 피트 버로우는 초구부터 강하게 나갔다.
-초구 커브!
초구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피트 버로우.
조쉬 마이어스는 배짱을 부린 투수를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며 타격자세를 잡았다.
2구째는 포심 패스트볼.
가운데로 살짝 몰린 공을 보고 조쉬 마이어스가 빠르게 배트를 휘둘렀다.
“파울!”
물론, 결과는 파울.
배트의 힘이 부족했다.
3구째는 몸쪽 스플리터였다.
그리고 그 공을 조쉬 마이어스가 노렸다.
제대로 때려낸 타구.
공이 빠르게 그라운드를 튀며 외야로 향한다.
-내야를 꿰뚫는 타구우우우!
-순식간에 무사 1, 3루의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3회 말에 흔들리는 피트 버로우!
좋지 않았다.
오프너까지 쓰면서 마운드에 올랐는데…….
벌써 위기가 찾아왔다.
숨을 크게 내뱉는 피트 버로우.
그가 다음 타자를 바라봤다.
9번 타자는 토미 리브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직 하위타선이다.
‘병살만 잘 유도하면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어.’
거기다 상대는 지난 시즌에 중요한 순간에 제법 땅볼을 때려내며 좋은 기회를 제법 놓친 적이 있는 타자였다.
그가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리고 빠르게 팔을 휘둘렀다.
그의 오른손을 빠져나가는 공.
포심 패스트볼이 몸쪽으로 나아가는 순간.
토미 리브스의 배트가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빠아아악!
큼지막한 타구가 때려졌다.
-타구가 중견수 방면으로 높게! 날아듭니다! 제법 깁니다! 장타가 될 것 같습니다!
-중견수인 가이 산소비노가 달립니다!
‘잡을 수 있어!’
무사 1, 3루의 상황이다.
자신이 아웃을 잡아낸다면 3루는 몰라도 1루 주자는 홈을 밟을 수 없었다.
-가이 산소비노가 공을 따라갑니다!
-빠릅니다! 타구 반응이 조금 늦었는데도 떨어지는 공을 향해 정확히 뛰고 있습니다.
촤아아악!
공이 떨어질 방향으로 달린 가이 산소비노가 아슬한 타이밍에 몸을 날리며 글러브를 뻗었다.
폭!
다행히 공을 깔끔하게 그의 글러브에 들어왔다.
그 순간 3루 주자가 홈으로 달렸다.
가이 산소비노는 쉴 틈이 없이 공을 던졌다.
깔끔한 중계 플레이.
-이건 가이 산소비노의 훌륭한 수비였습니다!
-아! 2점이 될 상황을 1점으로 만들었네요. 이건 가이 산소비노가 점수를 벌어준 호수비였습니다.
‘하…… 저걸 잡는다고?’
안타라 확신했던 토미 리브스가 혀를 내둘렀다.
아무튼.
점수는 1 대 0으로 라스베이거스가 선취점을 얻어냈다.
굳은 표정의 피트 버로우.
그가 타순이 돌아서 다시금 타석에 들어선 1번 타자인 랜디 에드워즈를 맞이했다.
* * *
-3회 말이 끝납니다.
-점수는 1 대 0! 피트 버로우가 더 많은 점수를 내줄 수 있는 위기를 고작 1점으로 막아냅니다.
-네,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4회 초.
강송구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계속해서 오른손으로만 공을 던지는 강송구.
타순이 돌아 다시금 선두타자로 타석에 선 네이트 테이트를 상대로 깔끔히 삼구삼진으로 아웃을 하나 잡아냈다.
“네이트가 삼구삼진?”
“저 괴물은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거야?”
“난 처음 봤어. 네이트가 저렇게 무력하게 타석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말이야.”
네이트가 혀를 차며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패스트볼의 구속이 조금 늘어났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작년이랑 전혀 다른 투수가 되었어.’
투구폼은 물론이고 구속도 달랐다.
거기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 강송구의 피칭 로케이션도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다.
‘전력분석팀이 보여준 자료만으로 저 괴물을 공략하기에는 무리야. 뭔가 방법이 없나?’
조던 델가도에게 공을 돌려받은 강송구는 삼구삼진을 당한 네이트 테이트를 떠올렸다.
‘지난 시즌과 다르게 몸쪽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몸쪽 공에 더 자주 배트를 내미는 느낌이군.’
-그런 것도 기억해?
‘웬만하면 메이저리거들의 자료는 모두 섭렵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 메이저리그에서 정보는 곧 성적으로 나타나니까.’
우효가 강송구의 말에 감탄했다.
다음 타자는 제레미 웰던.
앞선 타석에서 4구 만에 내야 플라이로 잡아냈던 제레미 웰던을 보며 강송구가 초구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바깥쪽 체인지업.
초구 체인지업에 제레미 웰던이 허를 찔렸다는 표정을 살짝 내보이며 잠깐 타석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그래도 더는 체인지업이 날아들지는 않겠지.’
강송구는 대체로 초구로 체인지업을 던졌을 때 그 승부에서 체인지업을 잘 꺼내 들지 않는 편이었다.
머릿속에서 체인지업을 지운 제레미 웰던.
2구째 승부가 이어졌다.
-2구째.
-다시 바깥쪽!
-이번에는 볼입니다! 낮게 제구가 된 커브가 이번에도 제레미 웰던의 바깥쪽으로 흘러갑니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시작이네요.
-앞선 타석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제레미 웰던이 두 눈을 찌푸린다.
‘계속 바깥쪽이네?’
3구째 던진 포심 패스트볼도 바깥에 걸쳤다.
뭔가 투수가 노리는 것이 있을까?
잠깐 고민을 하던 제레미는 이윽고 다시 타격 자세를 잡으며 자신이 정했던 목표를 수정했다.
‘몸쪽을 노리자……. 아무리 캉이라도 날 상대할 때 몸쪽으로 하나 찔러넣지 않겠어?’
몸쪽으로 들어오는 패스트볼 계열의 구종.
그게 제레미 웰던이 노리는 공이었다.
4구째.
바깥에 걸치는 슬라이더.
카운트는 순식간에 2-2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제레미는 생각했다.
저 괴물이 승부를 걸어올 때가 왔다고.
위닝샷을 던질 타이밍이라고 말이다.
5구째.
강송구가 공을 던졌다.
몸쪽으로 날아드는 공.
제레미는 그 공이 패스트볼이라고 생각했다.
‘꺾이든 떨어지든 다 때려주마!’
꽈악.
배트를 쥐고 빠르게 휘두른 제레미.
하지만 공은 그가 생각했던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
배트가 홈플레이트를 지나감에도 공은 그가 생각한 위치로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순간적으로 멈춘 것 같은 공.
‘체인지업!’
강송구가 꺼내든 위닝샷은 체인지업이었다.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연속 삼진!
강송구의 체인지업에 제레미 웰던이 혀를 내둘렀다.
‘완전히 속았어. 지금 마운드에 있는 투수는 작년의 캉이 아니야. 전혀 다른 투수라고!’
하지만 후회를 해도 늦었다.
이미 기회는 날아갔다.
따악!
4회 초의 마지막 타자도 깔끔히 외야 플라이로 잡아낸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굳은 표정이 가득한 로열스의 더그아웃.
어쩌면 이미 오늘 경기의 승기가 넘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 * *
피트 버로우는 완벽했다.
아, 물론 선취점을 내준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6이닝 1실점! 오늘 경기에서 호투를 보여준 피트 버로우가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7회 말을 깔끔히 막아낸 피트 버로우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불펜투수에게 공을 넘긴다.
점수는 1대0으로 충분히 해볼 만한 상황.
하지만 피트 버로우는 역전을 떠올릴 수 없었다.
8회 초.
강송구가 다시금 마운드에 등판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라스베이거스의 홈구장.
777 베가스 그라운드를 가득 채운 홈팬들이 내지르는 함성이 로열스의 선수들을 압박감으로 짓눌렀다.
따악!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순식간에 3번의 기회가 사라지고 8회 초를 막아낸 강송구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로열스 선수들의 눈빛은 좋지 않았다.
‘저 괴물…….’
‘기어코 완봉승을 가져가려 하는군.’
‘도대체 우리가 뭐가 부족했다는 거야?’
모든 준비를 했음에도 저 괴물에게 점수를 뺏어낼 수 없다는 절망감이 선수들을 뒤덮었다.
이윽고 9회 초.
다시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곧이어 마지막 아웃이 잡히는 순간 로열스의 선수들을 고개를 숙이고 짐을 챙겨 더그아웃을 빠져나갔다.
-경기 끝납니다!
-1 대 0으로 라스베이거스가 로열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위닝 시리즈를 가져갑니다!
-정말 대단한 투수전이었습니다.
-9이닝 13K 무실점의 호투를 보여준 캉입니다.
경기가 끝나기 무섭게 강송구의 완봉승 소식이 여러 언론을 통해 퍼져나갔다.
[강송구 13K 완봉승!]
[시즌 2승을 거두며 기분 좋은 출발을 보여준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
[치열한 순위싸움! 4승 2패를 기록했음에도 지구 2위인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
[AL 서부지구의 1위는 오클랜드! 6승 무패로 라스베이거스를 제치고 지구 1위로 올라서다!]
[타이탄은 역시나 타이탄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젊은 리포터가 MVP인 강송구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이미 반쯤 기대를 접고 있었다.
‘캉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말주변이 없는 투수니까.’
어차피 별다른 말이 없을 것이다.
‘네’와 ‘아니오’만 내뱉고 ‘감사합니다.’와 ‘좋은 피칭을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쁩니다.’가 가장 긴 인터뷰 대답이었던 선수였기에 그녀는 조금 편히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었다.
강송구가 다가오기 무섭게 그녀는 인터뷰를 시작했고, 강송구는 그녀의 예상처럼 짧은 대답만을 내뱉었다.
그렇게 기대감 없이 질문을 내뱉던 리포터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서 폭탄이 터졌다.
“이번 시즌의 목표는 무실점입니다.”
“네?”
“단 하나의 실점도 없이 시즌을 끝낼 생각입니다.”
멍한 표정의 리포터.
“그게 무슨……?”
“이번 시즌 목표는 25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단 하나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끝낸 강송구.
그 인터뷰가 끝나기 무섭게 전 세계의 야구 커뮤니티가 거대한 폭탄을 맞은 것처럼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