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미스터 제로!(2)
캔자스시티 로열스 3연전의 마지막 경기 당일.
로열스의 전력분석팀은 엉망진창인 얼굴로 카페인을 부르짖으며 겨우 강송구의 자료를 정리할 수 있었다.
“딱 1점만 만들자.”
“고작 시범경기와 개막전 경기뿐인 자료지만……. 이 정도라면 최소 1점을 빼앗을 수 있겠지.”
“오늘 경기에서 꼭 이겨서 위닝시리즈를 가져가자고.”
그리고 그 자료를 건네받은 로열스의 선수들은 주먹을 움켜쥐며 필승을 다짐했다.
경기 시각이 다가왔다.
홈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라스베이거스의 홈팬들.
지난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지난 시즌보다 훨씬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리고 위독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의 구단주가 된 캐롤 웰링턴도 오늘 경기를 보기 위해서 777 베가스 그라운드를 찾았다.
“어떻던가요?”
“에이전시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겠죠.”
그녀가 내민 금액은 어마어마했다.
당연히 그런 반응일 수밖에 없다.
“카디안 스타우트의 연장계약은 당연한 이야기겠고……. 캉은 어떻죠? 반응이 궁금한데요.”
찰리 브라운 단장은 조금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딱히 큰 반응이 없더군요.”
“…….”
화사하게 웃던 캐롤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찰리 브라운 단장은 순간 실직하고 다른 직장을 찾으려 고생하는 자신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렇단 말이죠.”
“에이전시를 통해 물어도 딱히 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저 이번 시즌이 끝나고 알려주겠다는 말만 하더군요.”
“좋아요. 어차피 쉽지 않을 계약이었어요.”
예상은 하고 있었다.
상대는 작년에 역사를 쓴 투수였다.
어설픈 계약 내용으로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국민의례와 시구가 끝났다.
1회 초.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공격.
선두타자는 좌익수이자 1번 타자인 네이트 테이트였다.
“플레이 볼!”
-1회 초의 첫 타자는 네이트 테이트입니다.
-작년 0.333의 타율과 39개의 홈런을 때린 뛰어난 타자입니다. 특히 출루율이 0.401, 장타율은 0.589로 OPS만 0.989를 기록했던 강력한 타자입니다.
-29시즌부터 차근차근 성장해서 결국 작년 후반기에 제대로 터진 유망주입니다.
좋은 타자다.
특히 배트컨트롤이 뛰어나고 선구안이 좋아서 쉽게 삼진을 허용하지 않는 모습을 작년 후반기에 보여줬었다.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를 노려보는 네이트 테이트.
그가 삼유간으로 강한 타구를 보냈다.
하지만 유격수 카디안 스타우트의 깔끔한 수비에 막히며 첫 번째 아웃의 주인공이 되었다.
-카디안 스타우트! 좋은 수비입니다.
-캉이 내야수를 믿고 초구에 싱커를 던졌습니다. 몸쪽 낮게 떨어지는 싱커에 네이트가 허무하게 물러나는군요.
초구를 노린 네이트 테이트가 허무하게 아웃을 헌납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란 감정이 없었다.
강송구는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뭔가 많이 준비한 느낌이네……. 만약에 네가 몸쪽 낮은 코스로 패스트볼을 찔러넣었다면 그냥 안타를 내줬을 거야.
‘그렇겠지.’
-그런데 어떻게 알고 싱커를 던진 거야?
‘일부러 흘린 쿠세(습관)가 있다.’
-쿠세? 뭔데?
‘1회 초에 초구를 던지기 전에 글러브를 조금 오므리면 몸쪽 패스트볼이고, 그게 아니면 무조건 바깥쪽 공을 던졌지.’
-설마…….
‘그래, 일부러 낚은 거다.’
자신의 습관마저 활용하는 강송구의 모습에 우효가 혀를 내두르며 고갤 흔들었다.
그가 고갤 돌려 다음 타자를 바라봤다.
‘많이 준비했군.’
예상은 했다.
앞선 두 경기에서 로열스가 보여준 경기.
그 경기를 보며 그들이 라스베이거스와 자신을 잡아내려고 정말 큰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번 타자.
제레미 웰던이 타석에 들어섰다.
작년 0.282의 타율과 22개의 홈런을 때려낸 우익수.
강송구의 초구가 날아들었다.
따악!
-높게 뜨는 공! 4구 승부 만에 내야 플라이로 제레미 웰던이 타석에서 물러납니다.
-캉! 이번에는 높은 코스로 들어가는 컷 패스트볼로 재미를 봤습니다.
3번 타자인 가이 산소비노는 3구 승부 끝에 외야 플라이로 아웃을 내주었다.
하지만 제법 날카로운 타구였었다.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가 1회 초를 깔끔히 막으며 기분 좋은 출발을 보여줍니다.
깔끔히 끝난 1회 초.
VIP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캐롤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있던 찰리 브라운도 비즈니스 미소를 지으며 연신 캐롤 웰링턴의 눈치를 봤다.
“출발이 상당히 좋네요.”
“캉은 항상 출발이 좋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닝도 그 어떤 투수보다 깔끔히 막아주죠.”
찰리 브라운 단장의 말에 캐롤 구단주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것처럼 올라갔다.
이윽고 1회 말.
라스베이거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 * *
-1회 말이 끝납니다.
-19구를 던지며 1회 말을 조금 힘겹게 막아낸 진 루어스! 그래도 무실점으로 잘 막아냈습니다.
-2회 초! 다시 캉이 마운드에 오릅니다.
2회 초.
오프너인 진 루어스가 마운드를 내려가는 모습을 잠깐 지켜본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강송구는 타석에 선 타자의 자세를 살폈다.
‘타격자세가 바뀌었군.’
4번 타자 존 오넬.
작년에 한 번 마주했던 타자였다.
‘그때는 레그킥을 가져가지 않았었는데…….’
이번 시범경기부터 레그킥을 가져갔다.
덕분에 타율은 다소 떨어지고 빠른 공에 대응이 조금 더뎌졌지만, 그만큼 많은 장타가 터졌다.
‘레그킥 없이도 작년 37개의 홈런을 때린 타자다. 한방을 조심할 필요가 있겠어.’
그래도 마냥 걱정은 없었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초구는 낮게 깔리는 스플리터.
존 오넬이 눈을 찌푸린다.
2구째는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순간 존 오넬의 배트가 휘둘러진다.
빠악!
“파울!”
파울 홈런이 된 공.
그 공을 보며 존 오넬이 미간을 좁힌다.
‘생각보다 구위가 더 좋다. 분명히 타이밍이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배트가 밀렸어.’
전광판에 떠오른 숫자는 95마일.
절대 때려내지 못할 구속이 아니었다.
존 오넬이 다시 배트를 세웠다.
‘패스트볼 계열을 노리자.’
그러나 강송구가 던지는 3구째는 바깥쪽 커브.
제대로 뚝 떨어지는 공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그대로 공을 피해 포수의 미트로 빨려 들어가는 커브를 보며 존 오넬이 혀를 내둘렀다.
"X같은 커브군.“
삼구삼진.
강송구의 압도적인 피칭에 로열스의 더그아웃이 평소보다 더 가라앉은 분위기가 되었다.
그의 피칭에 압도된 것이다.
“역시……. 저 녀석은 괴물이다.”
“이번 경기는 역시 1점 승부야.”
삼진을 허용한 존 오넬은 대기 타석에 있던 빈스 윌리엄스에게 짧은 말을 전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다음 타자는 빈스 윌리엄스.
이번 시즌에 처음 콜업된 23살의 1루수.
그야말로 애송이었다.
-캬! 애송이가 애송이 킬러를 만났네.
우효는 그런 빈스를 보며 명복을 빌어줬다.
‘더블A 성적은 타율 0.378, ops는 0.981에 홈런은 25개를 기록, 전형적인 중장거리형 타자로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를 잘 만들어내며 필요하다면 타격자세까지 망가트리며 공을 때려낼 정도의 배드볼 히터. 이게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인데…….’
젊은 유망주는 짧은 순간마다 변하기에 쉽게 예측할 수 없어 조금 곤란한 부분도 있었다.
물론, 마냥 겁먹을 필요도 없었다.
슈우우욱! 펑!
“볼!”
초구는 94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
몸쪽으로 바짝 붙은 공을 보고 빈스가 몸을 움찔하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2구째는 바깥쪽 싱커.
살아 있는 뱀처럼 휘는 공을 보며 빈스 윌리엄스가 당혹감을 드러내며 배트를 휘둘렀다.
“파울!”
-현재까지 1-1의 상황.
-빈스가 캉의 피칭에 말리는 느낌입니다.
-그렇죠.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한 빈스에게 캉은 아직 상대하기 벅찬 투수인 것 같습니다.
슈우우욱! 펑!
3구째는 몸쪽 스플리터.
빈스의 배트가 시원하게 헛돌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오……. 생각보다 스윙이 깔끔하네?
‘타이밍은 맞아 들었는데……. 내 스플리터의 궤적을 예측하지 못해서 헛스윙한 거야.’
싹수가 있는 유망주다.
-싹이 노란 놈은 뭐다?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답했다.
‘싹을 잘라야지.’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아웃!”
루킹삼진.
강송구의 4구는 너클볼이었다.
멍한 표정의 빈스 윌리엄스.
순간적으로 모든 타격 타이밍이 엉킨 느낌은 받은 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송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라스베이거스의 홈팬들처럼 강송구도 모자를 살짝 들어 타자에게 인사했다.
-타석에 앤디 요스트가 들어섭니다.
이번 겨울에 라스베이거스에서 트레이드로 휴스턴 애스트로스 소속이 되었던 앤디 요스트는 다시금 트레이드의 매물이 되어서 다시금 캔자스시티 로열스 소속이 되었다.
“앤디! 요즘 어때?”
조던 델가도의 물음에 그가 씩 웃었다.
“나쁘지 않지. 그런데 조금 무섭네.”
“뭐가?”
“캉을 상대하잖아. 라스베이거스에서 뛸 때는 캉을 상대하지 않아서 참 좋았는데 말이야.”
앤디 요스트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바라봤다. 상대는 AL 최강의 투수였다.
‘후우…….’
4일 만에 들어서는 타석이다.
그런데 첫 상대가 저 괴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운이 좋아 행운의 안타나 홈런이 터지길 빌며 시원하게 배트를 휘두를 뿐이었다.
물론, 그런 행운은 없었다.
따악!
-높게 뜨는 공! 그대로 외야로 향하다가……. 중견수의 글러브에 들어갑니다!
-친정팀을 상대하는 앤디 요스트의 첫 타석은 외야 플라이 아웃이었습니다.
앤디 요스트가 절레 고갤 흔들었다.
그렇게 끝난 2회 초.
강송구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2회 말.
로열스의 1선발.
피트 버로우가 마운드에 올랐다.
30시즌 17승 7패 ERA 3.16을 기록했던 그는 31시즌에 11승 9패 ERA4.33의 부진을 겪었다.
그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래로 가장 적은 이닝인 180.2이닝을 소화한 것도 작년이었다.
그렇기에 올해 그는 절치부심했다.
어떻게든 팀에 도움이 되자고.
올해는 30시즌처럼 좋은 성적을 기록하자고.
그리고 개막전의 그는 썩 좋지 않았다.
4.2이닝 5실점을 기록하며 개막전에서 패전투수가 된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가진 한계를 말이다.
그는 오래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고 싶었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의 괴물처럼 팀에 확실한 승리를 안겨주는 투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경기에서 오프너를 승낙했다.
오늘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굴욕적이더라도 롱 릴리버 투수처럼 2회 말에 마운드를 밟았다.
1선발 에이스가 말이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확실히 1-3번의 타순을 건너뛰니 편했다.
동시에 차근차근 제구력도 다잡을 수 있었다.
제구로 인한 자신감이 붙으니 순식간에 2회 말을 지우개처럼 말끔히 지워낼 수 있었다.
* * *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3회 초.
구종과 코스를 예상했음에도 7번 타자인 바비 위트 주니어는 시원하게 헛스윙을 하고 삼진을 허용했다.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는데…….’
투수의 속임수에 완전히 속고 말았다.
다음 타자는 8번 타자 알렉스 게레로.
-타구가 높게! 높게! 떠오릅니다!
-중견수 방향으로 떨어지는 타구.
-아! 캉이 오늘 경기에서 첫 안타를 허용합니다.
오늘 경기에서 나온 첫 번째 안타였다.
낮게 제구된 너클 커브였는데, 상대가 노리는 타구도 떨어지는 변화구였던 것 같았다.
-이건 상대가 잘 쳤네.
‘그래도 단타로 막아냈으니 문제없다.’
강송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투수라면 안타와 홈런을 맞을 수밖에 없다.
안타 하나에 의미를 담을 시간도 아까웠다.
다음 타자는 9번 타자 스티브 살디바르.
유격수로 수비력만큼은 카디안 스타우트와 비견될 수준이지만, 공격력에서 많은 아쉬움을 드러낸 타자다.
‘작년 0.212의 타율과 OPS 0.636을 기록한 타자. 홈런도 17개를 때려내면서 아무리 유격수라지만 타격이 조금 아쉬울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줬지.’
더블플레이를 유도하기에 딱 좋은 타자다.
선구안도 좋지 않아서 일단 들어온다 싶은 공을 냅다 때려내는 유형의 타자였으니까.
‘그래도 제법 힘이 좋으니 조심해야지.’
좋지 않은 코스에도 배트가 나오는 편이지만, 동시에 그 좋지 않은 코스의 공을 홈런으로 만들 파워도 있는 타자였다.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강송구의 상대는 아니었다.
따악!
-4구 승부!
-낮게 떨어지는 싱커를 때립니다!
-유격수 방면으로 구르는 공!
-그대로 카디안 스타우트가 잡아서 2루로! 그리고 1루로 연이어 송구가 되면서 그대로 아웃!
-캉이 더블플레이를 유도하며 깔끔히 3회 초를 막아냅니다!
순식간에 3회 초가 삭제되었다.
그리고 찾아온 3회 말.
피트 버로우가 마운드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