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미스터 제로!(1)
빠아악!
또 들려온다.
-때려라! 때려라! 때려라! 때려라! 홈런 넘어간다! 쭉! 쭉쭉쭉! 쭉! 쭉쭉쭉!
보스턴 레드삭스의 1선발인 자크 워트는 멍한 표정으로 만루 홈런을 때린 조던 델가도를 바라봤다.
우효는 신나게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5회 말! 계속해서 흔들리던 자크 워트가 결국 만루 홈런을 맞고 무너집니다!
-아! 레드삭스가 자크 워트를 마운드에서 내립니다. 오늘 4.1이닝 5실점으로 무너진 자크 워트가 내려가고 브리안 마타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지난 시즌 99이닝을 소화하며 ERA 6.64를 기록한 스윙맨인데요. 포심과 싱커를 주력으로 던지며 가끔 던지는 커브와 체인지업도 준수한 선수입니다.
5회 말.
자크 커크는 자신이 강판당하는 순간까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힐끗 라스베이거스의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이어서 마운드에 오른 선수는 브리안 마타.
작년에 온갖 경기에서 스윙맨으로 투입되어 이닝을 쏠쏠히 먹어준 레드삭스의 마당쇠다.
일반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는 스윙맨에 배치되는 선수가 5선발 경쟁에서 아깝게 탈락한 투수이며, 대체로 스윙맨까지는 필승조로 구분되는 경향이 컸다.
하지만 레드삭스의 스윙맨인 브리안 마타는 한국 프로야구식 스윙맨에 어울리는 선수였다.
한마디로 패전, 필승조 가리지 않는 노예.
그게 브리안 마타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작년 불펜에서 99이닝 소화한 것부터가 이 선수를 얼마나 험하게 다루는지 증명하고 있지.’
그 무덤덤한 강송구도 안쓰럽다는 표정을 보내는데 본인은 얼마나 힘들까.
‘매 이닝 60이닝만 소화하게 해도 6점대 평균자책점은 최소 4점대까지는 내려가겠지.’
너무 많이 던진다.
그러니 후반기에 퍼져서 신나게 두들겨 맞지.
그래도 개막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브리안 마타의 공이 평소보다 더 날카로웠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깔끔히 남은 아웃을 정리하고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브리안 마타를 보며 우효도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친구는 팀을 잘못 만났어.
6회 초.
강송구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이번에도 강송구는 오른손이었다.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날카롭게 꺾인 너클 커브를 던진 강송구가 연이어 바깥쪽에 걸치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따악!
그 슬라이더를 때려낸 중견수 크리스티안 파체가 주먹을 움켜쥐며 좋아했다.
그가 오늘 경기에서 첫 안타를 만들었다.
-여기서 슬라이더를 노리네. 아쉽게 됐어. 개막전 퍼펙트게임이라도 나오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상대가 잘 노렸군.’
이어지는 승부에서 지터 다운스를 상대로 병살타를 유도하며 깔끔히 2개의 아웃을 잡아냈다. 그리고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인 마이크 마린을 상대로 삼진을 잡아냈다.
-캉이 6회 초를 깔끔히 막아내며 이닝을 끝냅니다.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알고도 막지 못하는 피칭을 연이어 보여주네요.
깔끔히 6회 초를 끝낸 강송구.
그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 * *
[라스베이거스 개막전 9대0 대승!]
[개막전 8이닝 무실점 피칭으로 시즌 1승을 거둔 강송구! 사이 영 컨텐더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다!]
[8이닝 12K 무실점 호투와 최고 96마일의 오른손! 강송구는 지난 시즌보다 더 진화했다.]
[몇몇 메이저리그 전문가들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의 캉은 전혀 다른 투수가 되었다.’]
-역시……. 강송구는 다르다.
-캬……. 좀 더 여유가 있었을 텐데 미키 스토리 감독은 칼같이 100구 찍자마자 강송구를 내리네.
-오늘은 오른손으로만 던졌으니……. 이해할 수 있음.
-그것보다 박준호는 언제 선발로 뛰냐?
-그래도 대수비로 나와서 잘했음.
-아닠ㅋㅋ 중등부 야구선수도 잡을 외야 플라이 하나 처리 못 하면 문제 있는 거 아님?ㅋㅋㅋㅋㅋㅋ
개막전이 끝났다.
강송구의 호투와 타선의 폭발로 개막전 승리를 거머쥔 라스베이거스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개막시리즈 2차전.
부상을 당하고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켄 크로윈을 제치고 2선발 자리를 차지한 윌리 알비드레즈가 7이닝 3실점 호투를 보여주며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상대인 알렉스 노바도 6이닝 3실점의 호투를 보여줬기에 야구팬들을 충족시킨 재미있는 투수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연승으로 기세를 잡은 라스베이거스.
개막 3연전의 마지막 경기에서 3선발인 대니 아비티아가 2이닝 6실점으로 무너지며 결국 승리를 헌납했다.
개막 3연전에서 2승 1패.
라스베이거스의 다음 상대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였다.
“캔자스시티라면 해볼 만하지.”
“이빨 빠진 호랑이니까.”
라스베이거스의 팬들은 이번 캔자스시티 홈 3연전에서도 그들이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확신했다.
작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캔자스시티는 올해 주전급 선수들을 FA나 트레이드로 대거 잃었다.
본격적인 리빌딩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젊은 투수진을 미리 갖춘 덕분에 그들은 개막전부터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AL 남부지구 2위에 안착했다.
물론, 고작 3경기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타격은 썩 좋다고 볼 수 없었다.
특히나 출루를 자주 했음에도 개막 3연전에서 마무리 투수인 크리스 포타쉬가 3개의 세이브를 기록할 정도로 점수가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타격이 극도로 부진했다.
-타격이 부족하다기보단……. 결정력이 떨어지지.
그래, 우효의 말이 옳다.
결승타를 때려낼 만한 선수가 없다.
정확히는 가이 산소비노라는 타자를 제외하면 클러치 히터라고 부를만한 존재가 없었다.
즉, 로열스의 타선은 24살의 어린 타자 한 명이 홀로 힘겨운 싸움을 하는 팀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존 오넬이나 밀란 톨렌티노와 같은 좋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슬로우 스타터였다.
시즌 초반부터 활약을 해주는 선수들은 아니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팀이군.”
새로운 이빨이 자라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그 전에 아메리칸리그에서 호랑이를 가장 잘 잡는 투수와 붙었다는 점이었다.
-아! 그것보다 이 망고 스무디가 아주 달고 맛이 좋군. 역시 과일은 스무디로 만들어 먹어야 해!
“살찌면 어쩌려고?”
강송구의 물음에 우효가 잠깐 고민하다가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효호홋! 그건 내일의 나에게 맡길래!
* * *
아메리칸리그에 소속된 16개의 팀.
그중에서 총 15개의 팀은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에 소속한 명의 투수를 두려워하고 경외했다.
당연히 그 투수는 강송구였다.
그리고 그 투수와 관련된 자료를 작은 부분이라도 조사하며 열심히 준비했다.
그건 캔자스시티 로열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쓸데없는 자료라도 차곡차곡 모았다.
심지어 강송구가 손으로 코를 긁으면 31.2%의 확률로 싱킹 패스트볼을 던진다는 자료라고 하기도 모호한 유사과학에 가까운 통계까지 모아두었다.
그만큼 아메리칸리그에 속한 모든 팀은 강송구라는 전대미문의 투수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2030년대에 데드볼 시대의 야구를 하며 0점대 평균자책점과 262이닝을 소화한 괴물이니까.”
“그런데……. 아무리 저 괴물이 약점이 없어도 이건 심하잖아. 어떻게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 응? 너희 구단에 돈 받고 일하는 스카우트들 아니야? 지금이 무슨 1980년대야? 애인이 못생긴 건 그 선수가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거니 타석에서도 자신감이 없을 거라는 유사과학을 믿는 거냐고!”
한 남자의 말을 듣고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전력분석팀이 숙연해졌다.
“후우…….”
회의실을 가득 채운 한숨.
내일 있을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와 원정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강송구를 상대하게 된 로열스의 전력분석팀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그냥 포기하죠.”
“그래서 포기하면……. 앞의 두 경기는 모두 이길 수 있고? 켄 크로윈과 이번에 콜업된 존 바예호……. 이 두 사람을 상대로 우리 타선에 제대로 공략할 수 있겠어?”
“캉을 상대하기보다 훨씬 쉽죠.”
“그건 그렇지.”
전력분석팀장도 고갤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니까.
“아무리 캉이 난공불락이라도 포스트시즌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팀이야. 저 괴물을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월드시리즈는 구경할 수 없다고.”
“이제 막 개막했는데……. 벌써 포스트시즌을 준비하십니까? 그리고 우리 전력으로 작년처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솔직히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 쉽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손만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우선 켄 크로윈은 어때? 분석했을 거 아니야.”
“지난 시즌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체인지업이 완성되지 않는 이상 켄 크로윈의 피칭 스타일은 단조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부상 이후로 폼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저는 부상보다는 이 단조로운 피칭 스타일이 문제라고 봅니다.”
“공략 방법은?”
“커브죠. 두 종류의 커브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면……. 그 어떤 투수보다 쉽게 공략할 수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 타자가 우리 팀에 몇이나 되지.”
“셋이죠. 존, 가이, 네이트.”
모두 선구안이 좋은 타자였다.
전력분석팀장이 고갤 끄덕였다.
“존 바예호는?”
“솔직히 표본이 너무 부족합니다. 트리플A에서 20경기를 뛰었고 115이닝을 소화했습니다.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으로는 역시 체인지업이라고 볼 수 있네요.”
“그렇게 구분하기 어려워?”
“빈의 말로는 70점짜리 체인지업이랍니다. 그거 하나만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솔리드한 선발이 되기에 문제가 없을 정도라고 호들갑을 떨던데요?”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라스베이거스의 주요 선수들에 관한 자료를 점검하고 분석한 뒤에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강송구는 어떻게 막을까?
“X같네…….”
물론, 새벽이 깊어가는 순간까지 그들의 고뇌는 쉽사리 풀릴 기미가 없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밝았다.
캔자스시티 3연전의 첫 경기.
라스베이거스는 켄 크로윈을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조이 카터를 내보냈다.
-넘어갑니다! 켄 크로윈이 2회 초에 투런 홈런을 맞으면서 캔자스시티가 3대0으로 앞서나갑니다.
-앞선 1회 초에도 안타를 맞으면서 선취점을 내줬던 켄 크로윈이거든요? 오늘 컨디션이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켄 크로윈은 경기 초반 크게 흔들렸다.
1회 초에는 선취점을, 2회 초에는 투런포를 맞으며 순식간에 캔자스시티 타선에 3점을 내줬다.
“상대가 준비를 잘했어.”
“켄은 커브를 얻어맞기 시작하면 크게 흔들리니 어쩔 수 없지. 빨리 체인지업이 익숙해져야 할 텐데…….”
켄 크로윈의 주 무기인 두 종류의 커브를 구분한 존 오넬과 가이 산소비노가 경기 초반부터 투수를 괴롭히며 그에게서 점수를 빼앗아냈다.
그래도 지난 시즌 초반까지 라스베이거스의 2선발이었던 켄 크로윈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남은 이닝을 착실히 막으며 5이닝을 소화한 그는 결국 6회 초에 2명의 주자를 남기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 뒤를 조쉬 브라운이 마운드에 올라 2이닝을 깔끔히 막으면서 8회 초까지 3대2라는 점수 차이를 유지했다.
하지만 추격은 거기까지였다.
9회 초에 나온 투런포.
크리스 울프의 컷 패스트볼을 존 오넬이 시원하게 넘기며 결국 경기는 5대2로 캔자스시티가 가져갔다.
1차전에 기세를 가져온 캔자스시티.
하지만 2차전은 정반대의 양상이 되었다.
이번 시즌에 처음으로 풀시즌을 치르는 존 바예호가 8이닝 2실점의 호투를 보여주며 웨스트스타즈의 승리를 이끌었다.
“존 바예호 덕분에 C.J 포스터를 전문적인 클로저로, 스티브 라그레이브를 셋업맨으로 돌릴 수 있었네요.”
“스티브가 선발투수라는 직책에 큰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을 줄 몰랐어.”
“아무튼……. 잘 풀려서 다행이네요.”
“그래도 아직 멀었어. 거기다 바비가 완벽한 컨디션으로 돌아오면 계투진도 다시 정리해야 해.”
“하긴……. 바비만 한 클로저가 따로 없죠.”
작년에 어깨의 큰 부상으로 8개월을 날린 바비 할이 이번 전반기가 끝나기 전에 돌아온다.
물론, 복귀시키고 바로 바비 할을 클로저로 기용할 생각은 없었다. 안 그래도 어깨를 다친 선수인데 조금은 관리가 필요할 테니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했다.
“그것보다 내일 경기가 문제군.”
“문제랄 게 있나요? 캉의 등판일인데요.”
투수코치의 말에 미키 스토리 감독이 고갤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앞선 두 경기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보여준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최근 전력분석팀에 많은 돈을 쏟았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군. 평소보다 로열스 선수들의 집중력이 남다르다. 거기다 뭔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타석에 들어서고 있어. 그 뜻은 우리 팀이 어느 정도 분석이 되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걱정이었다.
혹시나 강송구가 공략을 당한다면?
라스베이거스에는 큰 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 캉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어?’
거기다 자신들도 강송구의 약점을 제대로 못 찾았는데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찾을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미키 스토리 감독이 굳은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