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월드시리즈(5)
1회 초.
코디 호이어는 타석에 들어선 라스베이거스의 선두타자를 바라보며 숨을 크게 내뱉었다.
1차전과 다르게 이번 5차전은 홈에서 치르기에 더욱 어깨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 덕분일까?
그는 1회 초를 가볍게 막아냈다.
코디 호이어가 마운드에서 내려와 더그아웃에 앉았다.
집중하기 위해서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까지 했다. 미지근한 물에 담갔던 수건을 머리에 덮고 고갤 숙였다.
‘후우…….’
1회 말의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그는 눈까지 꾹 감았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아.’
연습 투구를 할 때까지 어깨가 크게 무겁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지금 그는 큰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상대에게 단 1경기만 내줘도 끝나는 상황.
당연히 크게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코디 호이어는 버텼다.
그러는 사이에 1회 말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강송구는 마치 코디 호이어에게 휴식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매섭게 공을 던졌다.
-캉! 원정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순식간에 1회 말이 끝났습니다!
-오늘 경기에서는 오른손을 먼저 꺼냈는데……. 정말 제구력이 날카롭네요. 너무나 환상적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코디 호이어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차갑게 식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입은 점퍼를 벗고 모자를 고쳐 쓴 코디 호이어가 마운드로 향했다.
모든 게 투수에게 좋지 못했다.
특히 11월의 추위는 손의 감각을 아리게 만들었다.
이런 감각으로는 제대로 변화구를 던지기 어렵다.
아마도 오늘 경기에서 실투가 제법 나오겠지.
‘그건 저 괴물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코디 호이어는 더욱 자신에게 채찍질하며 2회 초를 깔끔히 막아내고 있었다.
-코디 호이어! 이번에도 삼진!
-다저스의 에이스가 1차전에서 보여줬던 피칭을 이번 5차전에서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홈에서만큼은 지고 싶지 않다고 인터뷰를 했던 코디 호이어 선수였습니다. 과연 5차전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지……. 그 부분도 시청자분들이 끝까지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높게 뜨는 공!
-내야 뜬공으로 2회 초의 두 번째 아웃이 잡힙니다.
삼진 하나와 내야 뜬공 하나.
순식간에 2개의 아웃을 잡아낸 코디 호이어는 남은 타자도 삼진으로 잡아내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더그아웃에 앉기 무섭게 점퍼를 입으며 어깨가 식지 않게 방지한 그가 손으로 핫팩을 만지며 눈을 감았다.
‘절대 질 수 없어.’
팀의 에이스로서도.
그리고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도.
마지막으로 한 명의 투수로서도.
그는 오늘 경기에서 질 생각이 없었다.
조용히 눈을 감은 그가 기도했다.
‘제발 무너져라……. 제발!’
다저스의 팬들도 비슷했다.
오늘 경기를 지켜보는 다저스의 팬들은 야구 커뮤니티에 기도에 가까운 말을 남기고 있었다.
-미쳤어! 저 괴물은 미쳤다고! 포스트시즌 중에 한 번쯤은 무너질 수 있잖아? 그런데 왜! 왜! 왜!
-진짜 괴물이야……. 흔들림이 없다고…….
-틀렸어……. 다저스는 올해 우승하지 못할 거야.
-얘들아? 조금만 집중하자. 왜 저 망할 동양인을 공략하지 못하는 거야? 이 망할 새끼들아!
-쯧쯧! 또 급발진하네; 멍청한 다저스들.
인터넷 중계 댓글란이 바삐 움직인다.
이런 추운 날씨에도 실투 하나 없는 강송구의 피칭에 감탄하거나 놀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2회 말.
강송구는 묵묵히 마운드에 올라서 공을 던졌다.
고작 90마일 근처의 구속이었음에도 다저스의 타선은 강송구의 공을 공략하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으로 첫 번째 아웃을 잡아냈다. 조던 델가도가 감탄 어린 표정으로 강송구를 바라본 것은 덤이었다.
슈우우욱! 따악!
다음 타자를 상대로는 유격수 방면 땅볼.
강송구의 싱커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유격수인 카디안 스타우트가 가볍게 공을 잡아서 1루로 던졌고 깔끔히 아웃을 잡아냈다.
“아웃!”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5구 승부 끝에 외야 플라이로 아웃을 잡아내며 이닝을 끝냈다.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피칭이었다.
동시에 강송구가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코디 호이어가 3회 초를 막기 위해서 마운드로 향할 때 두 팀의 선수들은 뭔가를 깨달았다.
‘경기 탬포가 상당히 빠르다.’
‘캉의 피칭만 빠른 게 아니야. 다저스의 코디 호이어도 평소보다 빠른 타이밍에 승부를 가져가고 있다.’
‘이상하군. 캉이 평소에도 피칭을 빠르게 가져가는 편인 투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3회 초.
코디 호이어가 빠르게 승부에 들어갔다.
그도 평소보다 인터벌을 짧게 가져가면서 최대한 빠르게 이닝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그 부분이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다저스의 포수인 윌리 스미스가 타이밍을 끊고 마운드로 올라갔다 왔을 정도였다.
“코디! 왜 이렇게 급한 거야? 천천히 하자! 이제 고작 3회 초야! 최대한 체력을 아껴야지.”
그 말에 고갤 끄덕이는 코디 호이어.
하지만 그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아웃!”
깔끔히 3회 초를 정리한 그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찾아온 3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라섰다.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로진백을 들어 올렸다.
* * *
강송구.
올해 AL을 대표하는 괴물 투수다.
데뷔 첫 시즌은 올해 성적만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 어떤 투수보다 대단하다고 평가를 받는 괴물.
매 시즌 20승 이상을 거둘 수 있는 포텐셜이 있으며, 아마 내년에도 충분히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괴물에 어울리는 투수.
그는 자신이 어째서 괴물이라고 불리는지,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이라 불리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삼진! 또 삼진! 그리고 삼진! 캉이 3명의 타자를 상대로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3회 말을 끝냅니다.
-무섭습니다. 그리고 압도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투수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는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하위 타선을 상대로 깔끔히 이닝을 끝낸 강송구를 보며 다저스의 더그아웃이 가라앉는다.
동시에 다저스타디움을 찾은 홈팬들이 괴력을 선보이는 강송구에게 큰 야유를 보냈다.
우우우우우우!
누가 저 망할 녀석을 강판 좀 시켜!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우린 다저스라고!
홈팬들이 내뱉는 외침에 조금 움츠러든 다저스의 더그아웃을 보며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경기 초반의 분위기를 잘 가져왔군.’
나쁘지 않았다.
이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간다면 아마 상대 투수는 큰 압박감을 느끼다가 금방 무너질 확률이 높았다.
‘물론, 베테랑이라서 쉽지 않겠지만…….’
뭐, 딱히 상대가 무너지지 않아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투수뿐만이 아니라 타자도 크게 압박감을 느끼고 있으니 조금만 놔두면 알아서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강송구의 예측처럼 다저스의 타자들은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를 보며 절망에 빠져 있었다.
‘미치겠네……. 왜 저 공을 못 치겠지?’
‘코디가 계속해서 멋진 호투를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뭘 하는 거야? 제길…….’
‘오른손일 때가 기회야. 캉이 다음 이닝부터 왼손을 꺼내 들면 지금보다 더 공략하기 어렵게 된다고.’
물론, 다저스의 타자들도 코디 호이어를 생각하면 빨리 점수를 만들어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상대는 강송구였다.
AL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
4회 초.
코디 호이어가 마운드에 올랐다.
평소보다 더 날카로운 커터를 던지는 그는 제대로 삘을 받았는지 연속해서 두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특히나 주 무기인 커터가 제대로 빛났다.
강송구는 그의 커터를 보며 감탄했다.
‘평소보다 더 날카로운 커터다.’
공의 무브먼트나 궤적의 문제가 아니었다.
공을 던질 때 보여주는 제구나 그 공을 중심으로 가져가는 볼 로케이션이 평소와 완전 달랐다.
‘많이 준비했군.’
강송구를 알 수 있었다.
상대가 많은 것을 준비했다고.
3회 말의 마지막 타자였기에 그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타석에서 그 커터를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커터의 궤적을 중심으로 다음 타석에서 코디 호이어를 공략하면 충분히 오늘 경기 가져올 수 있겠어.’
자신감이 넘치는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곧이어 끝이 난 4회 초.
강송구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 * *
4회 초에 코디 호이어는 안타 하나와 볼넷 하나를 내주며 급격하게 흔들렸다.
물론, 베테랑의 경험으로 그 위기를 깔끔히 잘 넘어갔지만 흔들렸던 것은 사실이었다.
4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제발! 하나만 때려줘!”
“이제 한 타순이 돌았을 뿐이야 집중해!”
“아무나 제발 1루로 출루 좀 해줘! 5차전도 설마 대기록을 내줄 생각인 건 아니겠지?”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을까?
따아악!
4회 말에 드디어 안타가 터졌다.
-드디어 다저스가 캉을 상대로 첫 안타를 빼앗습니다!
-과연 경기가 어떻게 풀려나갈지 너무 궁금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타석에 니코 호너가 들어섭니다.
다저스의 2번 타자.
니코 호너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강송구를 상대로 7구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내며 출루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제야 더그아웃에 앉아서 집중력을 끌어올리던 코디 호이어도 두 눈을 번뜩이며 마운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기회다!’
그는 생각했다.
이번 이닝이 유일한 기회라고.
저 괴물을 상대로 점수를 빼앗아낼 기회라고.
-캉이 흔들립니다.
-오랜만에 보네요. 캉이 스코어링 포지션까지 주자를 내보낸 것도 정말 오래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하하! 보통 캉은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내보내는 것보다 홈런으로 인한 실점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맞습니다.
무사 1, 2루의 상황.
타석에는 다저스의 3번 타자.
르윈 디아즈가 들어섰다.
‘늙은 생각이 타석에 들어섰군.’
숨을 크게 내뱉는 강송구.
그가 초구를 던졌다.
바깥쪽을 노리는 슬라이더.
슈우우욱! 빠악!
“파울!”
초구부터 매섭게 배트를 휘두른 르윈 디아즈는 날카로운 슬라이더의 궤적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흔들려도 괴물은 괴물인가?’
이어지는 2구째는 몸쪽 높은 코스로 들어가는 90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스트라이크!”
깔끔히 걸치는 공.
르윈 디아즈가 눈을 찡그렸다.
3구째는 바깥으로 빠지는 싱커.
4구째는 몸쪽 낮게 떨어지는 커브였다.
카운트는 이제 2-2까지 왔다.
-르윈 디아즈가 제법 공을 참고 있습니다.
-좌우 로케이션을 구석구석 노리는 캉의 피칭이 르윈 디아즈의 눈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아마 일반적인 타자였다면 진즉 삼진을 허용하고 더그아웃에 들어갔을 겁니다.
5구째.
강송구가 위닝샷을 꺼내 들었다.
그의 위닝샷은 체인지업이었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체인지업을 보는 순간 르윈 디아즈가 빠르게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히트!
-공이 이루수 정면으로 굴러갑니다.
-공을 잡아낸 랜디 에드워즈가 유격수인 카디안 스타우트에게 연결하고 2루 베이스를 밟은 카디안 스타우트가 그대로 1루로 송구하면서 아웃! 아우우웃!
-무사 1, 2루가 순식간에 2사 3루가 됩니다!
좋았던 상황이 단 하나의 병살타로 어그러지는 순간.
기대하고 경기를 지켜보던 코디 호이어가 두 눈을 질끔 감으며 실망한 표정으로 자리에 다시 앉았다.
이윽고 4번 타자인 유니오르 가르시아를 상대로 강송구가 내야 뜬공을 유도하며 4회 말을 깔끔히 막아냈다.
길게 한숨을 내뱉는 코디 호이어.
그가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를 보며 자신의 글러브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5회 초를 막기 위해 마운드로 향하는 그는 아까와 다르게 더 어깨가 무거워졌음을 느끼며 한숨을 내뱉었다.
뭔가 느낌이 너무 좋지 않았다.
꼭 부상을 당하기 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