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월드시리즈(3)
빠른 공을 던진 뒤.
느린 공을 던지면 맞을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투수들은 빠른 공을 던진 뒤에 느린 변화구 던지는 순간을 가장 주의한다.
빠른 공을 던진 뒤에 느린 공이 타자를 속일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왼손 다음에 오른손을 꺼내면 얻어맞는 거 아니야?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평범한 투수면 그렇겠지.’
-와……. 진짜 재수 없다.
강송구와 우효가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5회 초의 선두타자가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유니오르 가르시아.’
다저스의 4번 타자.
29시즌에 홈런 63개.
30시즌에 홈런 57개.
그야말로 쳤다 하면 홈런인 수준의 활약을 보여준 다저스의 거포가 눈에 들어왔다.
‘올해는 에이징 커브로 고작 38개의 홈런밖에 때려내질 못했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 없는 타자다.’
물론, 한 시즌에 홈런 38개를 때린 타자가 부진하다고 말하기엔 무리지만, 유니오르 가르시아가 그동안 보여준 활약을 생각하면 부진했다는 평가를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내셔널리그 최강의 거포.
그게 유니오르 가르시아였다.
-다저스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거포지. 이 친구 없었으면 다저스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없었을 거야.
그런 타자를 앞두고 강송구가 오른손을 꺼내 들었다.
챱챱챱챱.
우효는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강송구와 유니오르 가르시아를 번갈아 보며 밀웜을 입에 쑤셔 넣었다.
‘떨어지는 공도 잘 때려내고 몸쪽으로 들어오는 모든 공에 완벽히 반응할 수 있는 타자지만…….’
바깥쪽이 너무 약했다.
특히나 바깥쪽 낮은 코스로 들어오는 변화구에 삼진을 너무 많이 당해서 너튜브에 ‘유니오르 바깥쪽 낮은 코스 삼진쇼’라는 이름의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오른손에 적당히 로진을 바른 강송구가 조던 델가도와 사인을 하고 공을 던졌다.
초구는 몸쪽 포심 패스트볼.
이 공이 가장 중요했으며, 어쩌면 유니오르 가르시아에게 홈런을 맞기에 가장 좋은 공일 수 있었다.
‘그가 초구를 노린다면 무조건 맞겠지.’
하지만 유니오르 가르시아는 몸쪽으로 낮게 들어오는 초구를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다.
“스트라이크!”
지금처럼 말이다.
초구를 지켜본 유니오르 가르시아가 고갤 끄덕인다.
아마도 이 정도 구속이라면 안타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가진 것 같았다.
따악!
-공이 높게 뜹니다.
-파울이군요. 캉이 던진 슬라이더에 배트를 내밀었던 유니오르 가르시아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3구째.
2구째는 바깥쪽 슬라이더.
3구째는 다시 몸쪽 싱커였다.
“볼!”
싱커가 낮게 제구되는 것을 보면서 유니오르 가르시아는 강송구가 몸쪽 높은 코스로 공을 던질 생각이 없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유니오르 가르시아가 조용히 웃었다.
‘아마도 바깥쪽 코스를 노릴 거다.’
그도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약점을 가졌음에도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가 마냥 부족한 선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바깥쪽 낮은 코스를 노리고 기다린다면……. 적어도 커브만큼은 크게 때려낼 자신이 있다.’
그가 노리는 것은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커브.
4구째.
강송구의 손에서 커브가 나왔다.
그는 공이 살짝 뜨는 느낌을 받기 무섭게 투수가 던지는 공이 커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우우우웅!
시원하게 배트를 휘두르는 유니오르 가르시아.
하지만 그가 원하는 코스에 공이 들어오지 않았다.
틱!
바깥쪽이 아닌 몸쪽 낮은 코스의 커브.
“파울!”
유니오르 가르시아가 이를 꽉 물었다.
‘바깥쪽 낮은 코스가 아니었나?’
5구째.
유니오르 가르시아가 생각이 많아진 틈을 강송구는 놓치지 않고 바깥쪽 낮은 코스에 걸치는 스플리터를 던졌다.
그것도 존에 정확히 걸치는 공이었다.
이번에도 유니오르 가르시아의 배트가 시원하게 휘둘러졌다. 하지만 아까처럼 타이밍이 엉망이었다.
따악!
“내가 처리할게!”
이루수인 랜디 에드워즈의 외침이 들려오고 곧 그가 높게 뜬 공을 처리하며 아웃 카운트 하나를 늘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유니오르 가르시아로 이어지는 4-5-6 타선에 배치된 타자들이 귀신같이 침묵하고 말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들은 강송구가 던지는 공에 제대로 타격을 하지 못하고 한 이닝을 쉽게 낭비했다.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강송구를 보며 다저스의 타자들이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저런 투수가 있을까?
계속해서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고, 2경기 연속 퍼펙트게임을 달성까지 한 괴물이었다.
이런 선수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나는 저런 투수의 공을 때려낼 수 있을까?
다저스의 더그아웃이 더욱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런 압박감이 다저스 선수단의 몸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강송구의 투구는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난폭했다.
90마일짜리 패스트볼이 타자의 약점을 후벼팠다.
이윽고 굳은 표정으로 필드에 나서는 다저스의 야수들이 자신들의 에이스인 코디 호이어를 바라봤다.
어쩔 수 없다.
적어도 정규 이닝까지는 절대 저 투수를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코디 호이어가 9회 말까지 버텨줬으면 좋겠다고 그들은 작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기대감을 받고 마운드에 오른 다저스의 에이스인 코디 호이어는 좋은 피칭을 보여줬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아까보다 구속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98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을 압박했다.
거기다 투구수가 조금 많아지기 시작하자 그는 베테랑의 경험을 보여주며 완급조절로 자신의 체력을 아끼기 시작했다.
그도 깨달은 것이다.
정규 이닝이 끝날 때까지 저 괴물을 상대로 절대 점수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을 잡아냈다.
코디 호이어의 두 눈에 투지가 타올랐다.
오늘 경기.
그는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5회 말의 첫 번째 아웃을 잡아내기 무섭게 다음 타자를 상대한 코디 호이어가 이번에는 범타를 유도했다.
“아웃!”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은 코디 호이어는 자신의 등 뒤로 다저스의 야수들이 외치는 응원을 들었다.
“집중하자! 외야로 보내! 무조건 잡아줄게!”
“1차전은 꼭 이기자!”
“할 수 있어!”
코디 호이어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5회 말의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실투를 던졌지만, 중견수의 멋진 호수비로 이닝을 끝낼 수 있었다.
작은 플레이였지만, 이 호수비로 기세가 단단히 오른 다저스를 보며 코디 호이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찾아온 6회 초.
강송구는 단 7구 만에 이닝을 끝내며 5회 말에 희망을 품은 다저스의 선수들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
* * *
강송구가 6이닝을 완벽하게 박아낸 순간.
라스베이거스의 팬들은 환호성을 내지르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한 명에게 쏠렸다.
“이번에도 그거지?”
“어……. 대기록.”
“퍼펙…….”
“야! 닥쳐! 부정 탄다.”
천천히 마운드로 내려와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강송구.
그의 뒷모습을 보며 라스베이거스의 홈팬들은 거대한 환호성을 내지를 뿐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분위기.
다저스의 선수들은 아까 전 나왔던 호수비로 끌어 오르던 분위기가 축 처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녀석은 악마야.’
‘제발 다음 이닝에 안타 하나만 달라고!’
‘미치겠네……! 저 망할 동양인 투수 때문에 분위기가 더 엉망이 됐어!’
강송구의 완벽한 피칭.
하지만 코디 호이어의 역투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악착같이 마운드에서 버텼다.
6회 말.
연이어 2개의 안타를 내주며 흔들리던 코디 호이어는 삼진 하나와 멋진 병살타로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냈다.
-코디 호이어의 역투가 돋보입니다!
-이번 6회 말이 정말 고비였거든요. 그걸 코디 호이어 선수가 정말 잘 넘긴 것 같습니다.
-그렇죠. 여기서 다저스의 내야진이 좋은 수비를 보여주면서 코디 호이어 선수를 도와줬습니다.
아까보다 훨씬 지친 표정의 코디 호이어.
반대로 7회 초를 막기 위해서 마운드에 오르는 강송구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공을 던지는 기계처럼 보일 정도였다. 당연히 그 모습은 다저스의 선수들에겐 크게 압박으로 다가왔다.
7회 초.
마운드 위의 투수가 체력적으로 지칠 시간대.
강송구는 덤덤한 표정으로 초구를 던졌다.
오늘 강송구의 오른손은 평소보다 더 정교했다.
제구력이 더 날카롭게 변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타자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허를 찌르는 피칭, 꼭 완벽한 하나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볼 로케이션이었다.
“아웃!”
높게 떠오르는 공.
7회 초의 첫 번째 타자를 가볍게 잡아낸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다음 타자를 기다렸다.
좌타자와 우타자를 가릴 것이 없었다. 강송구의 피칭은 무자비하게 다저스의 타선을 뒤흔들었다.
“후우……. 진짜 답이 없네.”
“무슨 저런 괴물이 다 있지?”
“지치지도 않는 건가?”
다저스의 타자들이 불만을 토했다.
만약에 코디 호이어의 역투가 아니었다면 진즉 그들은 오늘 경기를 포기했을 터였다.
7회 초의 두 번째 타자가 아웃을 헌납했다.
4구째 던진 체인지업이 높게 떠올랐다.
트윈스와 레인저스의 강타선도 강송구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는데, 내셔널리그에서 그리 뛰어난 타선을 갖췄다고 볼 수 없는 다저스가 강송구를 공략하기에는 무리였다.
순식간에 아웃이 쌓였다.
그리고 7회 초의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강송구가 퍼펙트게임까지 6개의 아웃 카운트를 남겼다.
그리고 7회 말.
코디 호이어가 마운드에 올랐다.
* * *
완벽한 피칭을 보여주는 강송구.
흔들리는 가운데 악착같이 버티는 코디 호이어.
두 투수의 대결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8회 말까지 버티고 버틴 코디 호이어.
110구가 넘는 공을 던지면서 지쳤음에도 버텼다.
그리고 성공했다.
8회 말까지 0 대 0으로 버티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 9회 말만 버틴다면…….’
강송구가 마운드를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연장에서 우리 팀 타자들이 점수를 만들어줄 거야.’
그러면 끝이다.
강송구가 9이닝을 퍼펙트로 막아내도 문제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승리였으니까.
9회 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포스트시즌 역사상 3번의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최초의 투수가 도리 수 있는 괴물.
다저스의 선수들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마운드를 바라봤다.
9회 초의 선두타자를 상대로 강송구는 5구 승부 만에 삼진을 잡아내며 남은 3개의 아웃 중에서 하나를 잡아냈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남은 두 타자도 순식간에 잡아냈다.
-캉이 9회 초를 완벽히 막아냅니다.
-네, 퍼펙트게임의 조건을 달성합니다. 하지만 9회 말에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캉의 퍼펙트게임이 날아갑니다.
끝났다.
강송구가 오늘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일 뿐.
9회 말.
코디 호이어가 마운드에 올랐다.
지친다.
다리도 조금 후들거린다.
이러다가 실투가 나오지는 않을까.
하지만 다행히 실투는 없었다.
코디 호이어의 피칭은 더 날카로웠다.
마지막 불꽃을 내뿜는 것처럼 선두타자를 상대로 아웃을 잡아낸 그가 그 기세를 이어나갔다.
-코디 호이어! 2타자 연속 삼진!
-이제 남은 아웃은 단 하나입니다. 여기서 코디 호이어가 무실점으로 막아내면 캉의 퍼펙트게임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남은 타자는 이제 단 한 명.
이 타자를 잡아내면 경기는 연장으로 이어진다.
이제부터 다저스가 해볼 만한 승부였다.
다저스는 불펜만큼은 강한 팀이니까.
그리고 8구 승부 끝에 결판이 났다.
코디 호이어가 삼진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예스! 예스! 예스!"
해냈다.
라스베이거스의 괴물이 마운드를 내려갈 때까지 자신도 마운드를 지켜냈다.
이제 남은 것은 팀의 승리를 기도할 뿐이다.
그래도 아까보다 훨씬 가능성이 컸다.
그가 천천히 더그아웃으로 내려왔다.
그를 보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다저스의 선수들.
다른 선수들의 표정도 좋았다.
“이제 진짜 시작이겠지.”
“딱 1점이야! 1점만 만들자고.”
믿기지 않았다.
저 괴물을 상대로 9회 말까지 버텼으니까.
팀의 3번 타자인 르윈 디아즈도 그게 신기한지 말해서는 안 될 최악의 대사를 내뱉었다.
“진짜 해치웠나? 해치운 거 맞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코디 호이어가 피식 웃으며 고갤 흔들었다.
“어?”
“설마…….”
“아니겠지.”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갑자기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선수들의 시선이 마운드로 몰렸다.
그들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감정만 가득했다.
코디 호이어는 순간 싸늘한 무엇인가를 느꼈다.
‘설마……. 그럴 리 없어.’
꿀꺽.
침을 꿀꺽 삼킨 그가 뒤를 돌았다.
그리고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마운드에 있는 것은 거인이었다.
앞선 9이닝을 소화한 괴물인 강송구.
그가 덤덤한 표정으로 공을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코디 호이어가 중얼거렸다.
“X발……. 이래서 내가 클리셰를 싫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