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가을의 남자 강송구!(3)
체이스 반 다이크의 평균 구속은 91마일.
그리 빠른 구속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가 가진 패스트볼의 구위가 뛰어난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은 그런 체이스 반 다이크의 공을 제법 까다로워하고 있었다.
“저 커브가 문제야.”
“6구째 커브만 던지고 있지?”
“아! 풀카운트다.”
“브랜든이 몰렸어.”
팀의 중심타자라 할 수 있는 카디안 스타우트와 랜디 에드워즈가 빠진 라인업에서 가장 타격감이 좋으면서 지난 와일드카드전에서 활약한 타자인 브랜든 마쉬가 곤욕스러워하고 있다.
‘빨랐다가 느렸다가 슬라이더처럼 꺾이다가 슬러브처럼 떨어진다. 그냥 커브로 던질 수 있는 모든 궤적의 공을 던지는군. 너무 까다로운 상대야.’
부우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선두타자인 그가 7구 승부 끝에 아웃을 당했다.
낙폭이 큰 체이스의 커브에 낚였다.
2번 타자는 토미 리브스.
카디안 스타우트가 빠진 자리를 대신해서 중심타선에 배치된 젊은 유망주의 눈에 의욕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런 의욕은 곧 체이스의 커브 앞에서 무력해졌다.
따악!
“아웃!”
2구 만에 내야 뜬공으로 아웃.
토미 리브스가 허탈한 표정으로 타석에서 물러났다.
3번 타자는 조쉬 마이어스.
평소 리드오프로 출전하던 것과 다르게 오늘 경기에서는 3번 타순에 배치된 그의 표정이 사뭇 비장했다.
-초구는 바깥쪽 커브!
-조쉬 마이어스가 잘 지켜봤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라스베이거스는 주전급 선수 셋을 제외하고 젊은 선수들로 라인업을 구성했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컨디션 난조죠. 카디안 스타우트를 비롯한 주전 라인업이 변화한 이유는 이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라스베이거스의 유망주들은 이번 시즌에 제법 성과를 낸 선수들이라 아마 이번 포스트시즌에도 어느 정도 기대를 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따악!
초구를 노리고 힘차게 배트를 휘두른 조쉬 마이어스.
하지만 체이스의 커브를 노리기엔 얕았다.
“써드!”
삼루수 방향으로 흐르는 공.
레인저스의 삼루수인 드류 브루저가 급히 몸을 옮겨 공을 잡아 1루로 빠르게 공을 던졌다.
“아웃!”
조금 영점이 벗어났지만, 일루수가 잡기에 충분한 높이로 날아든 송구였다.
-1회 초가 끝납니다.
-드류 브루저는 이게 문제입니다. 송구의 정확도가 너무 떨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그렇군요.
-그래도 수비에서는 이제 어느 정도 안정감이 생긴 느낌인데……. 확실히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입니다.
1회 초를 깔끔히 지운 체이스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 * *
우우우우우우!
레인저스의 팬들이 내뱉는 야유가 거세다.
그만큼 강송구를 두려워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애송이들 데리고 되겠어?
우효는 오늘 경기에서 라스베이거스가 꺼내든 라인업을 떠올리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문제없다. 거기다 랜디 에드워즈는 몰라도 카디안 스타우트는 시즌 아웃일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이길 줄 알아야 해.’
-시즌 아웃?
‘말이 컨디션 난조일 뿐이다. 와일드카드 경기에서 적극적으로 도루를 하다가 다친 부위가 심상치 않아.’
강송구는 최악의 상황을 준비했다.
어쩌면 지금 라인업으로 월드시리즈까지 가야만 하는 상황이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라인업이 마냥 부족한 수준도 아니다.’
주전급 선수가 빠졌음에도 강송구는 충분히 월드시리즈까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카디안 스타우트가 빠진 자리에 21살의 젊은 유격수인 알프레도 나바로가 들어왔다.
그는 올해 40인 로스터에 합류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기어코 플레이오프 로스터에 포함되었다.
물론, 카디안 스타우트가 와일드카드에서 얻은 부상이 아니었다면 절대 선발 라인업에 포함될 수 없었겠지만…….
우효와 잠깐 수다를 떠는 사이에 텍사스 레인저스의 1번 타자가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드류 브루저.
오늘 경기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3명의 타자 중 한 명이 강송구를 매섭게 노려보며 타격 자세를 잡는다.
‘좌완 상대 바보. 우투수 상대로 압도적인 타율과 출루율을 자랑하지만, 좌투수만 상대하면 떨어지는 공에 너무나 쉽게 삼진을 허용하는 유형의 우타자.’
강송구는 왼손에 송진을 충분히 바르고 조던 델가도와 가볍게 사인을 교환했다.
‘캉! 몸쪽 패스트볼로 바짝 긴장을 줘보자고!’
고개를 끄덕인 강송구.
그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98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몸쪽에 붙자 움찔하고 놀란 드류 브루저나 몸을 뒤로 뺐다. 그러고는 강송구를 매섭게 노려보며 배트를 꽉 부여잡았다.
2구째.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가 튀어나왔다.
“스-윙! 스트라이크!”
드류 브루저가 시원하게 선풍기를 돌렸다. 그리고는 무릎 높이에 걸친 스플리터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포크볼이 나오는 거야?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고갤 흔들었다.
‘아니, 지금 꺼내기엔 아깝지.’
쓸 수 있는 무기는 많다.
굳이 상대가 모르는 송곳니를 드러낼 필요는 없다. 가지고 있는 다른 구종으로 삼진을 잡을 수 있다.
슈우우우욱! 펑!
3구째로 던진 슬라이더에 드류 브루저가 다시 시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물론, 결과는 강송구의 압승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캉이 1회 말의 첫 아웃을 기분 좋게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드류 브루저를 더그아웃으로 돌려보냅니다.
-레인저스도 선발진이 참 믿음직하지만……. 역시 AL 최고의 선발진은 라스베이거스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캉-켄 크로윈-윌리 알비드레즈-대니 아비티아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선발라인은 레인저스의 선발보다 더 퀄리티가 있는 것 같습니다.
23승의 강송구.
16승의 윌리 알비드레즈.
15승의 대니 아비티아.
14승의 켄 크로윈.
부진한 부분이 있었음에도 라스베이거스의 선발진은 중계진이 말한 것처럼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했다.
거기다 5선발인 스티브 하그레이브도 올해는 10승을 기록하면서 모든 선발이 10승 이상을 기록한 라스베이거스였다.
아무튼, 중계진이 라스베이거스의 선발진에 관한 칭찬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레인저스의 2번 타자인 짐 싱클레어가 배팅 장갑을 정리하며 타석에 들어섰다.
‘레인저스가 자랑하는 3명의 괴물에 가려져 있는 타자. 앞선 드류 브루저보다 더 주의해야 한다’
이번 시즌 9개의 홈런밖에 때리질 못했지만, 빠른 발과 정확한 타격 능력으로 0.321의 타율과 4할에 가까운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는 호타준족의 타자였다.
거기다 홈런을 때려낼 힘이 부족할 뿐이지 2,3루타를 제법 많이 때려내는 중장거리형 타자다.
-내보내면 골 아픈 유형의 타자네.
‘그렇지. 도루 센스도 좋은 타자니까.’
조던 델가도도 그걸 잘 알고 있는지 초구부터 까다로운 코스를 요구했다.
조심스럽게 승부하자는 뜻이었다.
고갤 끄덕인 강송구.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우타자 바깥쪽 코스로 들어가는 포심 패스트볼.
조금 가운데로 몰린 공임에도 짐 싱클레어는 위력적인 구위를 보여주고 있는 100마일짜리 패스트볼을 그저 지켜만 봤다.
2구째.
이번에는 몸쪽 컷 패스트볼.
“볼!”
너무 낮게 제구가 되며 아쉽게 빠진 공을 보며 조던 델가도가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타자를 살폈다.
‘몸쪽은 노릴 생각이 없는 건가?’
다시 바깥쪽 코스롤 노리자고 생각했다.
체인지업 사인이 나오자 강송구도 고갤 끄덕였다.
3구째.
바깥쪽 체인지업.
짐 싱클레어가 배트를 내밀다 멈췄다.
움찔!
“볼!”
조심의 판정은 배트가 돌지 않았다고 본 것 같았다.
조던 델가도는 슬쩍 일루심을 바라봤지만, 일루심도 배트가 돌지 않았다고 본 것 같았다.
‘아쉽네……. 조금 더 판정이 후한 심판이라면 돌았다고 판정해 줬을 텐데 말이야.’
그래도 상대가 바깥쪽 코스를 노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시 몸쪽으로 파고드는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짐 싱클레어가 싫어하는 코스에 깔끔히 들어간 포심 패스트볼을 보며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이번 공은 진짜 제대로 긁힌 공이었다.
-상당히 신중하게 피칭을 이어갑니다.
-아무래도 짐 싱클레어를 내보내면 피곤하다는 사실을 캉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5구째는 다시 바깥쪽 커브.
따악!
“파울!”
짐 싱클레어가 배트를 내밀었다.
하지만 타이밍이 어긋나서 파울이 되었다.
다시 공을 던진 강송구.
100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이 가운데로 파고들었음에도 짐 싱클레어의 배트를 허공을 갈랐다.
-스트라이크 아웃!
-캉이 짐 싱클레어를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천천히 카운트를 쌓다가 상대가 소극적으로 나오자 바로 강속구를 던지며 삼진을 잡아버렸습니다.
-이런 부분이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보통 구속이 빠른 투수들은 스트라이크 존에 적극적으로 피칭을 하는데……. 캉은 필요하다면 볼도 서슴없이 던지는 유형의 투수거든요? 덕분에 집 싱클레어가 자신이 생각한 목표를 제대로 노리지 못하고 결국 아웃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다음 타자는…… 네! LA 다저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어마어마한 기록을 쌓은 남자. 코디 벨린저입니다!
‘드디어 늙은 괴물이 나오는군.’
이번 시즌 135타점이라는 경이로운 수준의 활약을 보여준 베테랑이 타석에 들어섰다.
다저스와 레인저스에서 각각 우승을 한 번씩 기록한 코디 벨린저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좌타석에 들어섰다.
-정말 무시무시하네. 지금 저 상태가 에이징 커브에 들어선 상태라니……. 저 정도 폼이면 마흔까지 버틸지도 모르겠어.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여기서 포크볼을 꺼내야겠군.’
-정말?
저 위대한 타자를 잡으려면 전력을 다해야 한다.
저번 경기에서도 여력을 두다가 솔로홈런을 맞았으니까.
‘베테랑이 왜 베테랑이겠어?’
강송구의 사인에 조던 델가도가 고갤 끄덕인다.
초구는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빠져도 좋으니 전력으로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바깥에 걸칩니다.
-좋네요. 코디 벨린저가 쉽게 배트를 내밀 수 없던 코스였습니다. 이번에는 캉이 정말 잘 던졌어요.
2구째는 몸쪽 포심 패스트볼.
빠아아악!
코디 벨린저는 시원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그리고 공은 높게 떠올라 파울 홈런이 되었다.
오우우우우우!
홈팬들의 탄식이 들려오는 클로브 라이프 필드.
강송구는 빠르게 스플리터 사인을 보냈다.
‘이거에 속으면 포크볼을 던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강송구는 저 늙은 여우가 스플리터에 속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슈우우욱! 펑!
“볼!”
-깔끔히 떨어지는 스플리터!
-이건 코디 벨린저가 잘 참았습니다.
-캉이 아까부터 낮게 제구를 하고 있는데……. 뭔가 노리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높은 코스로 파고드는 포심 패스트볼.
코디 벨린저가 배트를 꾹 참았다.
“볼!”
쉽게 당해주지 않는 코디 벨린저.
조던 델가도는 살짝 혀를 내밀었다.
그리고 강송구에게 사인을 보냈다.
볼넷으로 내보내더라도 어렵게 가자고.
하지만 강송구의 선택은 달랐다.
‘다시 스플리터?’
의아한 표정의 조던 델가도.
이내 고갤 끄덕이고 미트를 내민 그에게 강송구의 스플리터가 날아들었다.
따악!
“파울!”
-코디 벨린저! 캉의 스플리터를 노렸지만 아쉽게도 다시 파울이 되고 말았습니다.
-카운트는 계속 2-2가 이어집니다.
-오늘 캉이 굉장히 조심스럽게 피칭을 이어나갑니다.
어느 정도 상황이 무르익자 강송구가 모자챙을 만지며 포크볼을 던지겠다고 사인을 보냈다.
놀란 표정의 조던 델가도.
그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미트를 내밀었다.
‘그래, 코디 영감을 잡으려면 노림수가 필요한 법이지.’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강송구.
곧이어 그의 손에서 포크볼이 빠져나왔다.
스플리터와 다르게 탑스핀으로 회전하는 공.
코디 벨린저는 이번에도 스플리터라고 확신하며 강송구가 던진 스플리터의 궤적에 맞춰 배트를 휘둘렀다.
‘아!’
하지만 강송구가 던진 공은 더 떨어졌다.
홈플레이트에 처박힐 것처럼 말이다.
조던 델가도는 그런 강송구의 포크볼을 글러브로 잡아내고는 주먹을 움켜쥐며 미소를 지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멍한 표정의 코디 벨린저.
그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강송구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