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가을의 남자 강송구!(2)
텍사스 레인저스는 어떤 팀인가?
이번 시즌의 텍사스 레인저스의 키워드는 당연히 ‘강한 타선’이었다. 그것도 이번 시즌에 40개 이상의 홈런을 때린 타자가 셋이나 존재하는 강력한 타선.
드류 브루저-코디 벨린저-제리 멕콘.
이 세 명의 타자가 배치된 상위타선을 상대로 무실점으로 막아낸 투수는 AL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강송구도 지난 텍사스 레인저스와 경기에서 1실점을 허용했을 정도였다.
거기다 위 세 명의 타자들은 모두 100타점을 넘어서며 AL의 모든 투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라스베이거스의 투수진도 마찬가지였다.
그 쾌활하던 켄 크로윈도 디비전시리즈의 상대가 텍사스 레인저스라는 것을 알자마자 굳어진 얼굴로 ‘염병할 레인저스! 누가 코디 영감한테 설사약을 먹일 생각 없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물론, 강송구는 예외였다.
‘어렵지만, 무서울 정도의 타선은 아니지.’
어려운 상대인 것은 맞았다.
2년 연속 리드오프로 출전해서 40홈런-100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드류 브루저와 다저스부터 레인저스까지 6년 연속으로 40홈런-100타점을 때려내며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한 늙은 괴물인 코디 벨린저를 상대한 뒤에 2년 연속 40홈런-100타점을 생산하고 올해 6할이 넘는 장타율을 기록한 제리 멕콘도 상대해야 한다.
나머지 타자들도 무시할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매 시즌 10개 이상의 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타자들이 저 괴물들의 뒤로 쭉 나열된다.
거기다 발도 빠른 타자들이 많아서 이번 시즌 AL에서 가장 많이 베이스를 훔친 것도 레인저스였다.
투수에게는 숨이 턱 막히는 라인업.
이 타선만 보면 레인저스가 왜 2030시즌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을 시작할 때부터 아무도 레인저스를 우승 후보라 말하는 전문가들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강력한 선발진도 지켰다.
재계약을 하며 지켜낸 선발진은 올해도 멋진 활약을 하며 4명의 선발 투수가 모두 10승 이상을 기록했다.
하지만 흠은 존재했다.
[AL 최악의 마무리인 매니 셀타레스! 시즌 13번째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며 무너지다!]
[마무리 투수의 ERA가 4.23? 명백한 트레이드 실패!]
[노쇠화된 불펜을 바꾸지 못한 대가를 치르는 텍사스 레인저스! 과연 올해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을까?]
[AL 불펜 순위 12위! 텍사스 완벽한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존재하는 크나큰 약점!]
아메리칸 리그에 존재하는 16개의 팀 중에서 가장 약한 필승조 불펜과 12위 수준의 불펜 지표를 가진 것이 텍사스 레인저스의 ‘유이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작년에는 그래도 AL 불펜 순위 8위로 좋지도 않았지만, 승리를 꼭 챙겨주는 뛰어난 필승조가 구성이 되어 중요한 순간에 필요한 1이닝을 잘 막아주었다.
거기다 내야 수비도 문제였다.
코디 벨린저와 후안 파딜라.
그리고 제리 멕콘이 버티는 외야는 AL 최고의 수비력을 자랑하지만, 삼루수인 드류 브루어스와 유격수인 대니 코스타가 최악의 수비력을 자랑하며 내야 수비진의 구멍이 되고 있었다.
작년에는 대니 코스타를 대신하며 내야 유틸리티 자원인 트레아 터너가 유격수 자리에서 준수한 수비력을 보였기에 드류 브루어스의 수비력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올해 38살의 나이를 먹으며 은퇴를 준비하는 트레아 터너를 대신해서 주전으로 발돋움한 대니 코스타는 드류 브루어스와 함께 올해 최악의 수비력을 보여주며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그나마 대니 코스타는 이제 2년 차인 신인이기에 아직 크게 질타를 받지 않았고.
드류 브루어스는 2년 연속으로 40홈런-100타점이라는 기록을 세웠기에 팬들도 ‘그래, 타격 때문에 참는다.’라고 합리화를 하며 화를 참았다.
그런 텍사스 레인저스를 상대로 라스베이거스가 내세운 1차전 선발 투수는 당연히 강송구였다.
“캉이 아닌 투수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키 스토리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히며 1차전에 꼭 승리를 가져가겠다고 다짐했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내세운 1차전 선발은 이번 시즌에 206.1이닝을 소화하며 18승 4패 ERA 3.49를 기록한 2선발 투수인 체이스 반 다이크였다.
2년 연속 200이닝을 소화하며 꾸준함을 보여준 그는 엉망진창인 내야 수비를 두었음에도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으로 팀에 18승을 안기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몇몇 야구팬들은 텍사스에 전기톱 살인이 벌어지면 그 범인은 체이스일 것이라며 최악의 내야 수비진을 갖춘 레인저스에서 고생하는 체이스를 불쌍히 여길 정도였다.
-저 녀석도 알고 있는 건가?
우효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뭘?’
-호크스 수련법.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다시 고갤 돌렸다.
또 시답지 않은 농담이다.
-그래, 투수는 성장하려면 저런 X같은 내야진을 데리고 최소 10승 이상을 해야 한다니까?
‘너 야구의 요정이라면서 너무 비전문적인 말을 가볍게 내뱉는 거 아니야?’
강송구의 물음에 우효가 씩 웃었다.
-넌 몰라서 하는 소리야. 이게 얼마나 많은 투수들이 증명한 성장법인데! 그 대단한 강현준도 LA 다저스로 이적하기 전에 호크스에서 이 수련법으로 단련했다.
‘…….’
-그리고 너도 이 수련법으로 단련해서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하고 있지.
우효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강송구가 비디오를 다시 재생시키며 레인저스의 타선이 나오는 영상 자료를 살펴보았다.
화면에 나오는 레인저스의 타선은 달랐다.
느낌 자체가 달랐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타선은 무게감이 있었다.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이번에 새롭게 얻은 무기를 잘만 활용하면 레인저스를 상대로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 얻은 무기는 어때? 쓸 만해?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쓸 만하다.”
* * *
포크볼.
이제는 메이저리그에서 사장된 구종이자,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그 명맥을 이어나가는 투수가 몇 존재하지 않는 구종으로, 곧게 가다가 뚝 떨어지는 움직임으로 삼진을 잡는 데 사용된다.
대체로 타자들의 헛스윙을 잘 끌어내서 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고루 사용되었지만, 스플리터의 등장과 함께 포크볼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신체조건이 안되면 절대 던질 수 없는 구종이며, 손가락이나 손목에 큰 부담을 줘 부상 위험이 큰 구종이라고 알려져 더 기피되었으며 기어코 2020년 중반 이후로는 멸종이 돼버렸다.
“포크볼 말입니까?”
라스베이거스의 구단 관계자는 강송구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당황했다.
당연했다.
올해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투수가 손목이나 손가락을 다칠 확률이 증가하는 포크볼을 사용하겠다고 말했는데 그걸 웃으며 알겠다고 할 구단 관계자가 몇이나 될까?
찰리 브라운 단장도 ‘스플리터도 던진다는 양반이 왜?’라며 단장실에서 아픈 머리를 부여잡았었다.
하지만 마냥 구단에서도 강송구에게 ‘포크볼은 안돼!’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무려 올해 262이닝을 소화하며 단 17실점만을 허용한 괴물이 바로 강송구였다.
거기다 ‘한 경기에서 5구 정도만 던질 생각이다.’라고 강송구가 밝혔기에 적극적으로 막기에는 뭔가 무리가 있었다. 그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이스 볼!”
불펜에서 직접 공을 받아본 조던 델가도는 강송구의 포크볼이 제법 훌륭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플리터와는 좀 다르다.’
스플리터는 백스핀이 걸리고.
포크볼은 탑스핀이 걸린다.
‘종으로 떨어지는 커브인 느낌인데……. 이 포크볼이 패스트볼이나 스플리터에 섞여 들어오면?’
타자는 죽을 맛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부상의 위험 때문에 강송구가 한 경기에 많이 던지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이런 구종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타자에게는 더 골치 아프게 다가오는 법이지.’
그는 볼펜에서 공을 점검하는 강송구를 보며 빨리 디비전시리즈 1차전이 시작되는 날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2031년 10월 13일.
AL 디비전시리즈 1차전이 열리는 날이 찾아왔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인 글로브 라이프 필드.
벌써 많은 팬이 관중석을 채우며 이번 디비전시리즈의 관심도를 잘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경기의 선발인 체이스 반 다이크는 평소보다 잘 긁히는 커브의 궤적을 보며 고갤 끄덕였다.
“좋아.”
“오늘 컨디션이 진짜 좋은데?”
“체이스가 일을 좀 내겠어.”
코치진의 눈빛도 신뢰가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시즌에 저 부실한 내야진을 데리고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과 18승을 기록했으니까.
젊은 투수들도 어느덧 불펜에 나타나 그의 피칭을 구경하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체이스의 속마음은 달랐다.
그는 불만이 가득했다.
‘내 불펜 피칭으로 시시덕거릴 시간에 제발 연습 좀 해라! 타자들을 본받으라고!’
사실, 팀에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실한 내야진 때문에 큰 손해를 보고 있지만, 체이스는 딱히 그 부분을 신경 쓰지 않았다.
실수가 잦지만……. 레인저스의 야수들은 정말 구슬땀을 흘리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그런 선수들에게 어떻게 불만을 느끼겠는가?
하지만 불펜은 달랐다.
‘양심이 있으면 연습을 해!’
매니 셀타레스도 그렇고 팀의 필승조라는 놈들이 날린 팀의 승리만 몇 개인가?
그런 주제에 엄청 게을렀다.
레인저스의 불펜진이 엉망이 된 원인으로 투수진의 새로운 리더가 된 스털링 샤프의 우유부단함과 이번 시즌에 13개의 블론 세이브를 기록한 주제에 클럽에 다니기 바쁜 매니 셀타레스가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매니 셀타레스에 물들어 놀기 바쁜 젊은 불펜들도 문제지. 멍청한 새끼들.’
체이스 반 다이크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베테랑이라고 몇 번을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충고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빈정거림뿐.
그때부터 체이스는 이번 시즌을 포기했다.
‘그냥 내 성적만 챙기자.’
그게 이번 시즌 그의 마음가짐이었다.
아마 이번 겨울에 엉망인 불펜을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저 망할 불펜은 내년에 볼 필요가 없겠지.
그것 하나만 믿고 체이스는 버텨왔다.
“체이스! 마운드에 오를 시간이야.”
불펜 코치의 말에 그가 모자를 고쳐 썼다.
드디어 경기시각이 다가왔다.
불펜 문이 열렸다.
체이스는 마운드를 향해 힘차게 걸음을 옮기는 자신을 보며 환호성을 내지르는 팬들의 함성에 주먹을 꽉 쥐었다.
개인 성적만 생각하자던 마음은 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이들의 함성에 씻겨져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늘 경기 악착같이 버틴다.’
저 망할 불펜 녀석들은 싫었지만.
오늘 경기는 팬들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다.
그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며 먹고 살 수 있게 만들어준 이들이 지금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아닌가?
저들의 표정에서 실망을 안기기 싫었다.
국민의례와 시구가 끝났다.
체이스가 가볍게 왼손에 송진을 바르고 주전 포수인 드류 로모와 사인을 교환했다.
라스베이거스의 베테랑인 브랜든 마쉬가 타석에서 마운드에 선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와인드업에 들어간 체이스 반 다이크.
그가 있는 힘껏 초구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