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타격 기계 강송구!(3)
3회 초가 끝났다.
1 대 0의 리드를 잡았던 것이 신기루였던 것처럼 순식간에 점수는 역전이 되어 있었다.
샌디에이고의 더그아웃이 소란스러웠다.
“저 괴물이 타격도 잘할 줄이야.”
“저기서 홈런이 나올 줄이야…….”
“그래도 2 대 1이니까 다시 역전할 기회가 올 거야. 집중하자!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렉의 말이 맞아! 기회는 있어! 집중하자.”
그래도 선수들은 금방 정신을 차렸다.
아직 점수 차이는 1점 차이다.
거기다 경기는 이제 3회 초가 끝난 상황이다.
샌디에이고의 선수들이 승부욕을 끌어올린다.
아니, 끌어올리려 했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쉽지 않았다.
3회 말에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가 꺼내 든 왼손에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살벌하네.’
‘분명히 100마일짜리 공도 신나게 때려낸 적이 있는데 왜 저 괴물의 공은 때려내질 못할 것 같지?’
‘후우……. 갑갑하네.’
다른 투수가 던지던 100마일의 공과 지금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강송구의 100마일은 너무나 달랐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아웃!”
2명을 모두 삼진으로 잡아낸 강송구.
다시 타순이 돌아 1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 경기 강송구에게 홈런을 빼앗은 로버트 하셀이 굳은 표정으로 다시 배트를 붕붕 휘둘렀다.
‘초구 홈런을 맞았으니……. 조금 더 신중하게 공을 던지겠지? 거기다 오른손이 아닌 왼손이야.’
머리가 복잡했다.
초구 홈런을 때렸던 첫 타석과 다르게 지금은 온전히 강송구와 수 싸움으로 결과를 만들어야 할 때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부우웅!
“스트라이크!”
초구는 바깥쪽 컷 패스트볼.
오늘 경기에서 강송구의 왼손에서 나오는 구종은 포심과 커터, 싱커, 체인지업이었다.
100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과 함께 어우러지는 변형 패스트볼은 샌디에이고의 타선에 지옥과도 같았다.
그리고 마무리는 체인지업이었다.
그래, 이렇게 말이다.
슈우우욱! 따악!
“숏!”
유격수 방향으로 굴러가는 공.
카디안 스타우트가 공을 가볍게 잡아 1루로 던졌다.
전력을 다해서 뛰던 로버트 하셀은 허탈한 표정으로 1루도 밟지 못하고 그대로 더그아웃으로 몸을 돌렸다.
3회 말이 끝나기 무섭게 4회 초가 찾아왔다.
젊은 투수는 평소보다 더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다음 이닝을 막기 위해서 마운드에 올랐다.
-저 친구 벌써 지쳤나?
‘아마 최소 4이닝까지 던질 생각이었을 거야.’
5이닝 정도 소화하게 하고 나머지는 쌩쌩한 불펜을 연이어 넣어서 1점 차 승부를 지켜낼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3회 초에 나온 강송구의 홈런이 샌디에이고의 마운드 운영을 엉망으로 만들어놨다.
-오! 쳤다!
4회 초의 첫 타자인 호세 피자로가 출루에 성공했다.
일반적인 타자라면 2루까지 갈 수 있고, 발이 빠른 타자라면 3루도 도전해봄 직한 타구였다.
하지만 출렁이는 지방과 단단한 근육을 모두 갖춘 무거운 호세 피자로는 1루로 만족했다.
-와……. 대단하네. 저 느린 발 때문에 어마어마하게 손해를 보고 있잖아?
우효의 감탄에 강송구도 고갤 끄덕였다.
‘그래도 지금까지 39개의 홈런을 때린 괴물이지.’
오죽하면 한국 팬들이 호세 피자로를 볼 때마다 ‘호세 피자로는 뛰기 싫어서 홈런을 때린다.’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약점은 확실하지만, 강점도 확실한 타자.
그리고 누구보다 인기도 많았다.
특유의 둥글둥글한 얼굴 때문에 한국에서는 ‘핏짜형’이라 불리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어느 인터뷰에서 ‘페페로니 피자를 좋아한다.’라는 말을 듣고 어느 한국 네티즌이 직접 라스베이거스까지 찾아와 페페로니 피자를 선물로 준 적도 있었다.
아무튼.
그런 호세 피자로가 1루에 안착했다.
하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라스베이거스의 팬들은 큰 기대를 품고 있지 않았다.
“저 느린 발로 뭘 하겠어.”
“병살만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홈런 좀 때려라……!”
다음 타자인 제프 브레넌이 타석에 들어섰다.
최근에 제법 타격감이 좋은 제프 브레넌을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라스베이거스의 원정팬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환상적인 더블 플레이!
-여기서 더블 플레이가 나옵니다! 이걸로 에드윈 몬타노 투수가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샌디에이고엔 천만다행인 상황이네요.
와아아아아!
다시 들썩이는 샌디에이고의 펫코 파크.
병살을 유도하며 한숨을 돌린 에드윈 몬타노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마지막 남은 아웃도 깔끔히 잡아냈다.
점수는 계속해서 2 대 1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
4회 말.
다시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 * *
[중계창]
-송구 멈춰!
-ㅋㅋㅋㅋㅋ 역배충들 강송구가 던지는 공이 배트에 맞기만 하면 ‘홈러어어언!’거리는 거 왤케 귀엽냐ㅋㅋ
-응, 토토충 아웃!
-아! 끝났다.
-호투 멈춰! 호투 멈춰! 호투 멈춰! 호투 멈춰! 호투 멈춰! 호투 멈춰! 호투 멈춰! 호투 멈춰!
-제발 호투 멈춰!
-ㅋㅋㅋㅋㅋ 역배충들ㅋㅋㅋ 강송구한테 ‘호투 멈춰!’ 하는 거 실화냐?ㅋㅋㅋㅋ
-4회 말 삭젴ㅋㅋㅋ
-5회 초다!
-이번 이닝도 에드윈이냐? 싱커를 잘 던지기는 하는데……. 왜 이렇게 불안하냐.
-지금부터 불펜 준비하는 거 보니까. 5회 초까지 맡기고 위기상황이 오면 바꾸려고 하는 듯.
5회 초.
에드윈 몬타노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4이닝을 소화하면서 소모한 투구수만 90구가 넘는 그는 이번 이닝이 마지막이 될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그래도 라스베이거스의 타순이 6-7-8로 이어지기에 큰 문제 없이 이번 이닝을 끝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5회 초의 첫 타자와 승부에서는 에드윈 몬타노의 생각처럼 흘러갔다.
6번 타자인 조던 델가도를 상대로 삼진을 잡아낸 에드윈 몬타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번 이닝의 첫 번째 아웃을 잡아낸 에드윈 몬타노는 3회 초에 그에게 안타를 빼앗은 브랜든 마쉬가 타석에 들어서는 것을 보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앞선 타석과는 다를 거야.’
이번 이닝에서 절대 실점할 생각이 없었다.
작은 틈도 주기 싫었다.
에드윈 몬타노의 의지가 담긴 초구.
이번엔 브랜든 마쉬도 그런 에드윈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며 순식간에 카운트가 몰렸다.
-현재 카운트는 2-2의 상황.
-아! 6구째는 볼입니다. 풀카운트가 되었군요.
-브랜든 마쉬가 침착하게 잘 참고 있습니다. 에드윈 몬타노가 뭘 노리는지 잘 알고 있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에드윈 몬타노가 던진 혼신의 커브가 삼진을 만들었다. 잘 떨어진 커브에 삼진을 허용한 브랜든 마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뚝 떨어지는 커브였다.
이번 타순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에드윈 몬타노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다.
어쩌면 그가 이번 경기에서 마지막으로 상대하게 될지 모르는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알프레도 나바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앞선 타석에서는 삼진을 당했죠?
-분명히 좋은 타자이고……. 라스베이거스가 기대하고 있는 최고의 유망주라기에는 조금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알프레도 선수거든요? 이번 타석에서 과연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제대로 이를 갈고 나온 알프레도 나바로.
그의 두 눈은 마운드에 선 투수에게로 향했다.
‘이대로 다시 트리플A로 내려갈 수 없어.’
그래, 적어도 이번에 결과를 보여줘서 곧 FA로 풀려날 조던 웨스트버그의 빈자릴 채울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모두에게 인정을 받아야 했다.
-기합이 단단히 들어갔네.
우효의 말에 대기 타석에서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한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저렇게 잔뜩 부담감을 가지고 타석에 선 젊은 선수의 결과는 뻔하다.
‘무조건 삼진이지.’
하지만 정말 가끔 그런 부담감을 딛고 일어나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부담감을 이겨낸 선수들은 높은 위치까지 빠르게 올라서는 경우가 많았다.
-초구는 바깥쪽 싱커.
-알프레도 선수를 상대로 에드윈 몬타노가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이닝을 꽉 틀어막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따악!
2구째는 바깥쪽 커브.
알프레도는 뚝 떨어지는 에드윈의 커브 궤적을 떠올리며 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것보다 조금 더 떨어지는 궤적을 생각하자.’
그의 목표는 커브였다.
에드윈 몬타노의 싱커를 때려내기에는 자신의 배트 컨트롤이 많이 부족했으며, 그 싱커 사이를 파고드는 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노리기에는 상대 배터리보다 수 싸움이 약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시즌도 풀로 뛴 적이 없는 21살의 어린 유망주이고, 마운드에 있는 상대는 최소 2시즌은 풀로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투수라는 것을 말이다.
3구째는 다시 몸쪽 포심 패스트볼.
4구째는 바깥쪽 싱커였다.
좌우 로케이션에 맞춰 날아드는 공에 알프레도는 최대한 자신이 생각한 스트라이크 존만 생각하며 참았다.
그리고 찾아온 5구째.
드디어 그가 원하는 커브가 날아들었다.
에드윈 몬타노의 손에서 떠오르는 커브.
그 모습을 보기 무섭게 알프레도 나바로는 자신이 생각은 궤적과 커브의 낙폭을 생각해 배트를 휘둘렀다.
빠아아아악!
-쳤습니다!
-조금 짧은 느낌! 우익수가 빠르게 달립니다!
-담벼락에 맞고 떨어지는 공!
-우익수인 로버트 하셀이 잠깐 공을 더듬는 사이에 알프레도 나바로가 2루에 안착합니다!
-간결한 2루타! 알프레도 나바로가 오랜만에 안타를 신고하면서 좋은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주먹을 움켜쥔 알프레도와 예상치 못한 안타를 허용한 에드윈 몬타노의 허탈한 표정이 화면에 잡혔다.
어쩔 수 없이 마운드에 올라가는 샌디에이고의 감독.
그는 여기서 에드윈 몬타노를 내려야 한다고 판단하고 빠르게 불펜에서 몸을 풀던 투수를 불러 마운드를 교체했다.
책임 주자를 한 명 남기고 마운드를 내려간 에드윈 몬타노의 뒤에 이번 시즌에 콜업되어 스윙맨으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여준 호세 리베라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그리고 타석에 강송구가 들어섰다.
-저 알프레도라는 녀석이 안타를 칠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좋은 선수라는 거겠지.’
저 부담감을 이겨냈으니 이제는 더 빠르게 메이저리그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내년에는 27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않을까?
강송구는 그렇게 생각하며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강송구가 타석에 들어서기 무섭게 모두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주심도 놀란 표정으로 강송구에게 되물었다.
“좌타석 맞나?”
“맞습니다.”
그 말을 듣고 샌디에이고의 포수인 지미 아담스가 ‘Fxxk’이라는 욕설을 내뱉었다.
주심도 황당한지 그런 지미 아담스에게 딱히 뭐라 경고를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마운드에 있는 호세 리베라도 당혹감을 드러냈다.
감독이 자신을 투입한 것은 상대적으로 우타자에게 강한 좌투수라서 그런 것이었다.
‘알아서 좌타석에 들어서 준다면……. 나야 고맙지.’
그렇다고 호세 리베라가 좌타자에 약한 것도 아니었다.
커브-체인지업-스플리터-너클 커브.
네 종류의 변화구를 준수하게 던질 수 있는 그에게 있어서 좌타자나 우타자는 크게 차이가 없었다.
‘낮은 코스를 잘 공략하냐 못하냐가 문제지.’
거기다 크게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샌디에이고의 전력분석관이 급히 찾은 강송구의 고교 시절 타격 자료를 보면 대부분 93마일 이하의 투수들을 상대로 때려낸 기록만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98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은 타석에서 처음 보는 공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지.’
자신 있었다.
이번 이닝을 깔끔히 정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최소 3이닝은 무실점으로 막아낼 수 있다.
‘일단은 스트라이크 하나 잡고 시작하자.’
호세 리베라가 초구를 던졌다.
낮은 코스로 파고드는 98마일의 포심 패스트볼.
저 덩치만 큰 친구는 자신의 강속구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헛스윙하며 스트라이크를 하나 내줄 것이다.
씩.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그가 공을 던지고 미소를 짓기 무섭게 강송구의 배트가 벼락같이 휘둘러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강한 타구음.
빠아아아악!
호세 리베라의 자신감은 단 1구 만에 무너졌다.
-넘어갑니다!
-카아아아앙! 또 투런포오오오오!
-캉의 연타석 홈런이 터집니다!
-이게 무슨 일이죠?
-도대체 저 선수는 왜 투수를 하는 겁니까? 너무나도 아름다운 스윙이었습니다! 호세 리베라가 던진 낮은 코스의 포심 패스트볼을 그대로 퍼 올립니다!
-메이저리그 첫 타자 데뷔에서 캉이 시즌 2호 홈런을 때려내면서 라스베이거스가 4 대 1로 점수 차이를 더 벌립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더그아웃이 고요해졌다.
호세 리베라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공이 넘어간 담장을 바라봤다.
홈팬들도 연이어 홈런을 때린 강송구를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봤다.
[중계창]
-홈런 멈춰!
-홈런 멈춰!
-홈런 멈춰!
-제바류ㅠㅠ 갓송구님 홈런 좀 멈춰주세요ㅠㅠㅠ 저 진짜 결혼반지 판 돈으로 토토해서 와이프한테 혼나요ㅠㅠㅠ
-와; 진짜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는 말이 사실이구나!
-ㅋㅋㅋㅋㅋㅋ 토토충들 아웃!
-단체로 ‘홈런 멈춰!’ 하는 거 개웃기넼ㅋㅋ
-그런 말 내뱉는다고 강송구가 홈런을 멈추겠냐?ㅋㅋㅋㅋ 그냥 포기하고 경기나 더 지켜봐랔ㅋㅋ
-와……. 진짜 갓갓이다;
-국뽕이 차오른다. 저런 선수가 한국 국적이라니……!
천천히 베이스를 돌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강송구.
우효는 강송구가 가볍게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을 보며 ‘도도도!’ 네발로 달려와서 소리쳤다.
-야! 이 개자식아! 투수 말고 야수로 복귀했으면 내 연금이 박살 날 필요도 없었잖아! 거기다 그 여자아이랑 호크스를 우승시키겠다고 약속한 것도 쉽게 지킬 수 있었고! 이 머저리야!
우효의 성난 외침.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아……! 그렇군.”
-뭐?
“몰랐다.”
그 대답에 우효가 멍하니 강송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더그아웃의 구석에 앉아서 좋아하는 키위 조각도 먹지 않고 한참을 하늘만 바라봤다.
나중에 펫코 파크의 구장 직원이 원정팀 더그아웃을 청소하러 들어왔을 때 더그아웃 구석에 소량의 짠물이 남아 있던 것을 이상하게 여긴 것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