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타격 기계 강송구!(1)
어느덧 시간이 흘러 9월에 도달했다.
이제 남은 경기도 몇 남지 않은 상황.
AL에서 다른 지구의 1위는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상황이지만, 이상하리만큼 라스베이거스가 속한 서부지구의 1위 다툼은 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AL 서부지구]
1,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 77승 56패.
2, 시애틀 매리너스 74승 59패.
3, LA 에인절스 69승 64패.
4,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66승 66패.
9월로 넘어오면서 2위인 시애틀이 3경기 차이로 라스베이거스의 등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가운데, LA 에인절스도 2연승을 이어가면서 다시 와일드카드 경쟁에 끼어들었다.
꼴찌인 오클랜드도 다시 5할 승률에 도달하며 다른 지구의 꼴찌와 다르게 서부지구의 격전을 더 격화시키고 있었다.
“지옥의 서부지구라…….”
기자에 실린 기사 제목을 보며 미키 스토리 감독이 땀으로 젓은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현 상황을 정확히 꿰뚫는 기사 제목이다.
AL 서부지구도 치열하지만, NL도 현재 서부지구에서 혼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NL 서부지구]
1,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70승 63패.
2, 콜로라도 로키스 67승 65패.
3, LA 다저스 67승 66패.
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62승 71패.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도 1위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2, 3위 팀의 승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2위인 로키스와 2.5경기.
3위인 다저스와 3경기.
심지어 지구 꼴등인 자이언츠도 1위와 8경기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언제 역전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두 리그의 서부지구가 혼전에 빠진 상황에서 두 지구의 1위가 맞붙게 되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vs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가 펫코 파크에서 맞붙다!]
[치열한 각 리그의 서부지구 1위 간의 맞대결!]
[승수가 간절히 필요한 두 리그의 1위끼리 만나다!]
[그 어느 시리즈보다 중요한 인터리그! 이번 3연전을 잡는 팀이 지구 1위를 확고히 가져갈 수 있다!]
-서부지구는 진짜 지옥이네.
-다저스가 설마 8월부터 그렇게 부진할지 몰랐어. 서부지구 1위였잖아. 그것도 제법 승수 차이를 냈는데……. 왜?
-선발진이 무너진 게 컸지.
-샌디에이고는 진짜 탄탄하네……. 뭔가 엄청 뛰어나다는 느낌은 아닌데 전체적으로 강한 느낌?
-그런 게 강팀이지.
-첫 경기는 어느 팀이 이길까?
-두 팀 모두 최근 폼이 좋은 선발투수가 선발이라서 타격에서 갈릴 것 같다.
-윗놈은 야구 처음 보냐? 당연히 캉이 출전하는 라스베이거스가 유리하지.
-현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하게 0점대를 유지하고 있는 투수다. 지난 미네소타 전에서도 8이닝 1실점을 기록했지.
-8이닝 1실점을 기록했는데……. 평균자책점이 올라가는 투수는 캉이 최초일 거야.
-AL 최고가 NL에서 통할 거라고 보는 거야?
야구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물론, 한국에서도 관심이 쏟아졌다.
인터리그 첫 등판이기도 했고.
내셔널리그로 원정을 떠나면서 강송구가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타석에 서는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우효는 스마트폰으로 댓글을 쭉 보다가 하나 궁금한 부분이 생겨 옆에 있던 강송구에게 물었다.
-너 타격은 해봤냐?
“해봤다. 고교 시절에.”
-그래? 어땠는데?
“무난했다.”
강송구의 대답에 우효가 고갤 끄덕였다.
무난했다는 뜻은 고교 시절에 에이스 겸 팀의 중심타선에서 적당히 활약했다는 뜻일 것이다.
우효는 금세 관심을 껐다.
지금 이 작은 고슴도치가 집중하고 보는 것은 ‘5세~7세 아동을 위한 양치법’이었다.
아기곰이 나와서 ‘치카치카붐붐’이라는 돌림노래를 부르며 이를 닦는 영상이 나왔다.
우효는 열심히 그 ‘치카치카붐붐’을 따라 했다.
작은 면봉으로 이를 치카치카 닦는 우효.
-치카! 치카! 붐붐!
동영상에 열중하는 우효를 잠깐 바라보다가 강송구가 배트를 들고 호텔 방을 나섰다.
오랜만에 서는 타석.
강송구의 눈빛이 평소보다 더 깊어졌다.
* *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서 불펜 투수를 가장 잘 키우는 팀이라는 명성처럼 가장 강력한 불펜진을 갖추고 있다.
더불어 영리한 트레이드로 탄탄한 스쿼드를 만들었고, 지난겨울에는 일루수 중에서 가장 핫한 그렉 바스케즈를 유망주 셋을 지불하고 트레이드로 데려오기도 했다.
덕분에 이번 여름부터 천천히 치고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8월이 모두 지나기 전에 LA 다저스를 제치고 NL 서부지구 1위 자리에 올라섰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무너질 다저스가 아니었다.
거기다 로키스도 2경기 차이로 바짝 1위를 쫓고 있어서 샌디에이고에도 마냥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마주한 것이 AL 서부지구 1위이자 자신들과 사정이 비슷한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였다.
거기다 상대가 내민 카드는 필승카드.
샌디에이고 코치들의 표정이 절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포기하고 있을 수만 있겠는가?
그들도 자신들이 가진 카드 중에서 가장 활약이 좋은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에드윈 몬타노.
베네수엘라 출신의 투수.
지난 시즌에 3승 2패 1세이브를 기록.
불펜에서 천천히 선발로 전환을 하려고 노력을 하다 이번 시즌 6월부터 본격적으로 4선발로 낙점이 된 젊은 유망주.
현재까지 기록은 9승 2패 1세이브로 약 140이닝을 소화하면서 2.8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평균 91마일의 구속을 갖추고 있으며, 하드 싱커와 커브를 주력으로 쓰며 거기에 간간이 체인지업을 던져 상대 타이밍을 빼앗는 피칭을 가져가는 편이었다.
대체로 조심해야 할 것은 하드 싱커.
최근 베네수엘라 출신의 투수들이 빠른 구속과 뛰어난 스터프로 무장한 이들이 많았다면, 반대로 에드윈 몬타노는 수준급의 제구력을 무기로 삼고 있는 투수였다.
그런 투수에게 하드 싱커는 잘 맞는 무기였고 메이저리그에서 91마일의 투수가 활약할 수 있게 만들어준 원동력이었다.
물론, 이 정도로는 강송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샌디에이고의 타선이 1점이라도 만들 때까지는 충분히 버텨줄 수 있을 것이다.
1점만 만들면 문제가 없었다.
그때부터는 강력한 불펜진을 모두 쏟아 넣으며 강송구에게서 1승을 가져갈 생각이었다.
그게 펫코 파크를 찾아온 라스베이거스를 잡아낼 샌디에이고의 전략이었다.
“부담가지지 마. 알겠지?”
샌디에이고의 투수코치가 오늘 경기 선발로 낙점된 에드윈 몬타노를 적극적으로 케어했다.
제구력을 무기로 삼는 투수가 만약에라도 큰 부담감으로 무너질까 걱정한 것이다.
거기다 에드윈은 젊은 유망주.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멘탈이 터질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에드윈 몬타노는 딱히 예민한 성격이 아니라는 점일까?
그래도 투수코치의 표정을 밝지 않았다.
‘상대가 상대니까.’
이윽고 마운드에 올라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깊게 숨을 내쉬는 에드윈 몬타노.
그가 자신감이 넘치는 발걸음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 * *
펫코 파크를 찾은 관중들.
그들의 시선은 오늘 경기에서 마운드를 지켜줄 젊은 유망주에게 향했다.
에드윈! 너만 믿는다!
딱 6이닝만 막아줘!
레츠고 파드리스! 레츠고 파드리스!
홈팬들의 열렬한 환호성.
그만큼 원정을 온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단은 승리를 다짐하며 경기를 준비했다.
“이번 시리즈는 꼭 이겨야 한다.”
미키 스토리 감독의 말에 고갤 끄덕이는 선수들.
사실 이번 시리즈뿐만 아니라 다른 경기도 중요하단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9월에 접어들었음에도 1위를 확정 짓지 못했기에 남은 경기가 모두 지나가기 전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그건 아마 샌디에이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지구가 1위와 2위의 차이가 최소 8경기에서 20경기 이상까지 나는 것과 다르게 오늘 두 팀은 2위와 고작 2~3경기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까.
마운드에 센디에이고의 유망주가 올라섰다.
같은 베네수엘라 출신인 윌리 알비드레즈는 자신과 다른 유형의 투수를 빤히 바라봤다.
1회 초.
첫 타석에 들어선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는 팀의 주장인 랜디 에드워즈였다.
최근에 같은 이루수인 조쉬 마이어스에게 밀려 출장이 적었던 랜디 에드워즈는 8월 말부터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
0.247의 타율과 0.697의 OPS의 아쉬운 성적이 계속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으나, 조쉬 마이어스보다 훨씬 안정적인 수비가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
거기다 타격도 최근에는 많이 좋아졌다.
9월에 접어들며 40인 로스터로 마이너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의 흙을 밟기 시작했으나, 이루수 자리만큼은 랜디 에드워즈와 조쉬 마이어스가 꽉 잡고 있었다.
슈우우욱! 따악!
“파울!”
그가 에드윈 몬타노의 초구를 노렸다.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원하는 코스와 타이밍에 맞췄으나 하드 싱커의 구위에 배트가 밀린 것이 원인이었다.
‘구속이 느린데 구위는 상당하네.’
그만큼 공에 회전이 상당하다는 뜻일 것이다.
변화가 밋밋한 에드윈 몬타노의 하드 싱커가 어떻게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았는지 알 것 같았다.
거기다 뛰어난 제구력까지 섞이니 3구째가 되는 순간 랜디 에드워즈가 카운트가 불리해졌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것이 커브였다.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완벽한 타이밍에 나온 커브였다.
하드 싱커를 계속 노리던 랜디 에드워즈는 자신의 노림수가 너무 단순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는 카디안 스타우트.
1회 초부터 가장 위험한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에드윈 몬타노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꿀꺽.
오늘 경기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상대.
그가 신중하게 피칭을 시작했다.
그의 오른손을 떠난 공이 빠르게 휘며 우타석에 선 카디안 스타우트의 몸쪽 낮은 코스로 떨어졌다.
-초구는 몸쪽 싱커.
-좋은 코스입니다. 초구를 지켜본 카디안 스타우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 싱커를 보고 패스트볼을 노릴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에드윈 몬타노의 조금 밋밋한 패스트볼이라면 카디안 스타우트에겐 손쉬운 사냥감이니까요.
중계진의 말처럼 카디안 스타우트는 패스트볼을 노리는 게 더 손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어설픈 변화구가 들어오자 그가 벼락같이 배트를 휘둘러 에드윈 몬타노의 타구를 멀리 때려냈다.
-쳤습니다!
-2루까지 달린 카디안 스타우트! 오늘 경기 첫 번째 안타의 주인공은 카디안 스타우트입니다.
-대단하네요. 싱커가 조금 몰렸다고 바로 때려낸 것을 보면 고작 2구 만에 타이밍을 잡았다는 뜻이거든요?
-그렇죠. 아무리 에드윈 몬타노의 하드 싱커가 변화가 밋밋하더라도 고작 공 2개를 보고 타이밍을 잡기에는 무리인 공인데……. 그걸 카디안 스타우트가 해냅니다.
다음 타석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낸 호세 피자로가 들어섰다.
길게 숨을 내뱉은 에드윈 몬타노가 좀 더 까다롭게 공을 던지며 카운트를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들려오는 타격음.
배트에 빗맞고 내야를 굴러가는 공을 보며 호세 피자로가 이를 꽉 물고 1루로 달렸다.
2루에 있던 카디안 스타우트는 뛰지 못했다.
공을 잡은 샌디에이고의 유격수가 그대로 1루로 공을 던지면서 두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에드윈 몬타노.
1회 초의 마지막 타석에 들어선 제프 브레넌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힘겹게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리고 찾아온 1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라섰다.
샌디에이고의 홈구장인 펫코 파크를 가득 채운 관중들이 그런 강송구를 보며 긴장했다.
“저 선수가 캉이라고?”
“이번 시즌에 저 투수를 제대로 공략한 타자가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더라.”
“진짜 거인 같네.”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샌디에이고의 1번 타자.
로버트 하셀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초구를 노릴 생각이었다.
‘캉에게서 홈런을 빼앗은 타자들은 모두 캉의 바깥쪽 패스트볼을 노려서 만들었다.’
바깥쪽에 잘 걸치는 코스였기에 노려서 쳐도 홈런이 될 확률은 높지 않았지만, 대체로 강송구에게 점수를 빼앗았던 타자들은 이 바깥쪽 코스의 포심 패스트볼을 노렸다.
오늘 경기에서 로버트 하셀도 그 코스로 빠지는 포심 패스트볼에 배트를 휘두를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의 노림수는 통했다.
빠악!
그의 노력과 운이 섞인 타구는 그대로 중견수의 머리 위를 지나서 담장을 넘었으니까.
-홀리카우!
-로버트 하셀이 캉의 초구를 때려냅니다!
-9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공략당했습니다!
-넘어갑니다! 넘어갔습니다!
-로버트 하셀의 시즌 11호 홈러어어언!
우와아아아아아아!
환호성을 내지르는 샌디에이고의 홈팬들.
라스베이거스의 더그아웃도 조금은 소란스러워졌다.
강송구가 저렇게 초구 홈런을 맞은 경우는 있었지만, 경기 초반부터 홈런을 맞은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캉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고 거의 처음으로 리드를 당한 상태로 마운드를 책임지게 된 건가?”
“좋지 않아……. 어쩌면 흔들릴 수 있어.”
“제길……. 하필이면 오늘 같은 경기에서 그런 초구 홈런이 터지는 거야?”
“내셔널리그 원정이라 평소와 다르게 캉이 9번 타자로 뛰고 하위 타선은 유망주들로 구성되어서 좀 약한 상태인데……. 먼저 리드를 내준다고?”
반대로 샌디에이고의 더그아웃은 희망이 가득했다.
난공불락이던 거인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좋았어! 기회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거인을 무너트릴 기회다!”
“집중해! 집중!”
샌디에이고의 감독도 두 눈을 번뜩였다.
‘1점이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수비에서 모조리 막아준다. 불펜까지 모두 소모해서라도!’
모두가 소란스러운 가운데.
딱 3명만이 덤덤했다.
첫 번째로 포수인 조던 델가도였다.
그는 강송구가 이런 초구 홈런을 맞았다고 흔들릴 수준의 투수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두 번째는 강송구였다.
그는 이번 홈런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언젠가 맞을 홈런이었을 뿐.’
마지막으로 덤덤한 인물을 의외의 인물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타격코치.
루이스 알레잇이었다.
그는 홈런을 맞은 강송구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어제 훈련장에서 보여준 강송구의 타격과 어느 전문가가 떠든 이번 시리즈의 프리뷰를 떠올렸다.
“뭐? 주전들의 휴식을 위해 하위 타선에 대거 배치된 유망주와 캉의 타격을 기대하기 어려워서 샌디에이고가 연장까지 가서 승리할 수 있다고?”
절레절레.
오히려 승부는 일찍 갈릴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강송구의 손으로 말이다.